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0-11 12:10:03

주도일



1. 개요2. 생애3. 여담4.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군인 겸 정치인이며, 김일성의 측근이었다.

2. 생애

1916년 출생설, 1922년 출생설 등이 떠돌아다녔으나 북한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1919년 5월 5일에 길림성 화룡현에서 태어났다. 소학교 2학년까지만 다니고 학업을 때려쳤고 1931년부터 혁명활동을 시작했으며 1935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다. 1936년 10월, 김일성 빨치산 부대에 입대하여 시난차 전투 등에 참여했다. 김일성 유격부대에서 김일성의 호위병 겸 전령병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대, 소련군 특수정찰병으로 두만강을 넘나들며 활동하였다.

광복 후 김일성을 호위하며 입국하였다. 조선인민군이 창설되면서 중대장을 하다가 6.25 전쟁에 참전, 1950년 10월에 대대장으로 진급했다. 1951년 5월 4군단 교도연대장에 임명되었다. 북한의 선전에 따르면 광주지역 위수사령관을 지내면서 김일성의 남한 현지지도를 호위하였다고 하는데 김일성이 포화를 헤치고 남한 곳곳을 누볐다는 것 자체가 북한 구라라서 광주 위수사령관 지냈다는 것 외에는 딱히 믿을게 없다.

1954년 소련군사대학에 유학하였고, 1958년 졸업 후 귀국하여 20여단장이 되었다. 1961년, 4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되었다. 1964년 제15사단장에 임명, 1965년 9월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6군단장에 임명되었다. 1966년 중장계급을 유지하고 3군단 참모장으로 이동했다.

1967년 11월, 최고인민회의 4기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였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78년에 3군단장에 임명, 상장으로 진급하였다. 1975년 10월, 2군단장에 임명되었다. 1979년 5월 5일, 환갑기념 공화국영웅 칭호 및 국기훈장 제1급, 금별메달을 수여받았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승진 및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81년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지내다가 1982년 4월, 최현 장의위원, 1984년 3월, 김일 장의위원, 1984년 4월, 오백룡 장의위원을 지냈다. 조선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83년 3월, '조선인민군의 주요직책'에 임명되었는데, 정확한 직책은 불명이나 이후 활동 경력을 보면 평양 방어 관련 일을 하지 않았는가 추정된다. 1985년 4월 13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오극렬, 백학림, 김두남, 리을설, 김봉률, 김광진, 리두익과 함께 대장으로 진급했다. 북한군 현대화 사업에서 상당한 활약을 했으며 저격부대 창설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1986년 4월, 김좌혁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87년 8월, 박영순 장의위원, 1988년 4월, 림춘추 장의위원이 되었다. 1988년 12월 제91수도방어군단장에 임명되었다.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당선, 5월에 최고인민회의 9기 1차 회의가 개최되자 국방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92년 4월 20일,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중앙인민위원회의 공동 정령에 따라 최광, 리을설, 최인덕, 백학림, 리두익, 김봉률, 김광진과 함께 조선인민군 차수로 진급하는 한편 4월 23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을 기념하여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오진우, 최광, 김철만, 전문섭, 백학림, 리을설, 리두익, 최인덕, 황순희, 태병렬, 김룡연, 최용진, 리종산과 함께 공화국 2중영웅이 되었다. 1992년 9월, 서철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4년 7월 1일, 오후 6시에 숙환으로 7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는 공동명의로 부고를 발표, "동지는 전후 무력기관의 중요한 직책에서 당의 군사로선을 받들고 우리 인민군대를 강화발전시키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 동지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고히 세우고 당과 수령에게 무한히 충실하였다."라고 칭송하였다.

이후 시신은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장되었으며 반신상이제작되었다.

3. 여담

장남은 주영수이며, 조선로동당 창건 관련 소개편집물에 나와 인터뷰를 한 바가 있다. 또 다른 아들 주영길은 직총 중앙위원장을 역임하였다.

4.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