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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5-28 19:03:51

리두익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항일 빨치산 1세대 출신 북한의 군인, 정치인.

2. 생애

1921년 11월 16일에 태어났다. 소학교 3학년까지 학교를 다니다가 항일 빨치산에 가담했다. 만주 시절에 만주안전군관학교를 다녔다는 정보가 있다. 소련으로 이동한 이후 88국제여단에서 소련군 하사 계급을 받고 위생관으로 근무했다. 1942년에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김일 지휘 하에 1942~1943년 사이에 지하 공작에 참여했다.

해방 이후 북조선중앙보안간부학교가 창설되자 박영빈, 태병렬 등과 함께 교관이 되었다. 1948년 8월, 인민군 중대장으로 임관하였으며 6.25 전쟁 때 당연히 참전했다. 종전 후 1956년 6월, 인민군 24사단 산하 연대장에 임명, 1958년 2월 5일, 군관자격으로 조선인민군 창건 10주년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1962년 2월에 소장으로 진급, 9사단장에 이르렀다.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63년 5월에 중장으로 진급, 민족보위성 국장에 임명되었다. 1963년 8월, 7군단장으로 승진하였다.

1967년 11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68년 6월,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8월에 2집단군 사령관에 임명,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72년 5월, 인민군 3집단군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12월에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73년 5월 상장으로 진급했다. 그러다가 북한군 집단군 체제가 폐지되어서 그런건지 1976년 4월 2군단장에 임명, 1980년에 4군단장으로 옮겼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 및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82년 4월,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2년 4월, 최현 장의위원, 1984년 3월, 김일 장의위원, 1984년 4월, 오백룡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5년 4월 13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오극렬, 백학림, 김두남, 리을설, 주도일, 김봉률, 김광진과 함께 대장으로 진급,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건설되었다. 1987년 8월, 박영순 장의위원, 1988년 4월, 림춘추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8년 5월 평양-개성간 고속도로 건설을 감독했으며 1989년 9월에 인민군 간부휴양단을 인솔하여 중국을 다녀왓다.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92년 4월 20일,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중앙인민위원회의 공동 정령에 따라 최광, 리을설, 주도일, 최인덕, 백학림, 김봉률, 김광진과 함께 차수로 진급하였으며 1992년 4월 23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을 기념하여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오진우, 최광, 김철만, 전문섭, 백학림, 리을설, 주도일, 최인덕, 황순희, 태병렬, 김룡연, 최용진, 리종산과 함께 공화국 2중영웅이 되었다. 1992년 9월, 서철 장의위원,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5년 7월, 김봉률 장의위원, 1997년 2월, 최광김광진 장의위원, 1998년 12월, 전문섭 장의위원을 지냈다.

이후 고령이 문제였는지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는 투표만 하고 대의원에 출마하지 않았으며 별 하는 일 없이 조용히 지내다가 2002년 3월 13일, 오후 1시에 심근경색으로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사망 시점에서 중앙위원회 위원 및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는 공동 명의로 부고를 발표, "동지는 당의 전군주체사상화방침을 높이 받들고 인민군대를 우리 당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된 무적필승의 혁명군대로 강화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 동지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우리 당의 령도에 무한히 충실하였다."라고 칭송했다. 김정일이 화환을 보내주었으며 인민무력부장 김일철이 주도한 추도식도 열렸다.

2002년 9월 12일, 시신이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치되고 반신상이 제작되었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