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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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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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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 호주의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역대 국왕 · 역대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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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호주의 방송 퍼스나우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명단이다.
TOP 10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밴조 패터슨 돈 브래드먼 하워드 플로리 존 커틴 매리 맥킬로프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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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5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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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어널 로즈 데니스 릴리 알버트 나마치라 엘리자베스 케니 빈센트 린지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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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호주 제25대 총리
존 하워드
The Hon.[1] John Howard
OM AC SSI
파일:john howard.jpg
<colbgcolor=#132331><colcolor=#fff> 본명 <colbgcolor=white,#191919>John Winston Howard
존 윈스턴 하워드
국적
[[호주|]][[틀:국기|]][[틀:국기|]]
출생 1939년 7월 26일 ([age(1939-07-26)]세)
호주 자치령 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 얼우드
학력 시드니 대학교 (법학 / 학사)
정당
계파 국민우파
가족 배우자: 자넷 파커 하워드 (1971년 결혼)
슬하: 2남 1녀
신체 176cm
종교 성공회
직위 자유당 대표
재임기간 상무장관
1975년 12월 22일 ~ 1977년 7월 17일
제2대 통상보좌장관
1977년 7월 17일 ~ 1977년 12월 20일
제29대 재무장관
1977년 12월 19일 ~ 1983년 3월 11일
제7대 호주 자유당 부대표
1982년 4월 8일 ~ 1985년 9월 5일
제8대 호주 자유당 대표(1차)
1985년 9월 5일 ~ 1989년 5월 9일
제8대 호주 자유당 대표(2차)
1995년 1월 30일 ~ 2007년 11월 29일
제25대 총리
1996년 3월 11일 ~ 2007년 12월 3일
제2대 국제민주연합 의장
2002년 6월 10일 ~ 2014년 11월 21일
서명
파일:존 하워드 서명.svg
1. 개요2. 상세3. 선거 이력

[clearfix]

1. 개요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1년간 제25대 호주 총리를 역임한 호주법조인, 정치인, 정무직 공무원이다.

2. 상세

1939년 7월 26일 시드니에서 태어났다. 시드니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상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1974년 호주 자유당에 입당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74년 총선에서 시드니 시 베넬롱 지역구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맬컴 프레이저 내각에서 상무부장관, 통상장관, 재무장관을 두루 거치며 호주 자유당의 차세대 지도자로 떠올랐고, 1982년에는 자유당 부대표를 겸직했다.

그러나 밥 호크가 1983년 총선에서 승리해 노동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며 1996년까지 야당 생활을 했다. 그 기간동안에도 국회의원에는 거듭 당선되었으며,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자유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제1야당으로서 밥 호크가 이끌던 노동당 정권의 독주를 견제하는 역할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노동당의 인기가 떨어졌음에도 자유당은 반대급부를 누리지 못했고, 존 하워드는 1989년 열린 자유당 전당대회에서 자유보수주의적인 성향의 정치인 앤드류 피콕에게 패배하며 당권을 잃었다.

헌데 앤드류 피콕을 비롯한 후임 당수들이 연이은 총선에서 노동당에 패하고 지지율조차 신통치 않자 존 하워드 재등판론이 자유당원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었고, 1995년 1월 알렉산더 다우너 당대표가 낮은 지지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이에 당대표로 추대되었다. 당대표로 취임한 그는 다문화주의자유주의적 노선을 받아들이고, 전임 밥 호크 정부에서 추진되어졌던 메디케어 등 사회보장제도를 수용함으로써 중도층을 포섭했고, 1996년 총선에서 마침내 당시 현직 총리이던 폴 키팅이 이끄는 노동당을 격파하고 13년만의 정권교체에 성공했다.[2]

총리 재직 시절 조지 W. 부시, 토니 블레어와 함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해 논란이 있었다. 호주 자유당에서도 매우 강경한 다문화주의 반대, 확고한 입헌군주제 지지자[3]로, 2001년 8월 26일, 아프가니스탄 난민 433명을 태운 노르웨이 화물선 탐파호가 공해상에서 구조된 난민들은 가장 가까운 항구에서 수용해야 한다는 유엔 난민 협약에 따라 호주령 크리스마스 섬으로 향하자 입항을 거부하고 출발지인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난민들이 호주로 가지 못하게 하면 자살하겠다고 위협하자 탐파호는 1주일간 표류하다가 크리스마스섬으로 출발했으나 하워드 총리는 공군특수부대를 급파하여 탐파호를 장악하고 난민들을 파푸아뉴기니, 나우루, 뉴질랜드로 보내버렸다. 이것이 소위 탐파 위기 사건인데, 그 직후 9.11 테러까지 터지자 하워드 내각의 인기는 급상승하여 30%에서 70%로 치솟았다. 2001년 11월 총선에서 하워드 총리는 이런 반(反)난민 정서에 힘입어 노동당을 떡실신시키고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7년 총선에서 케빈 러드가 이끄는 노동당에 22석을 잃는 대패[4]를 당하고 본인도 베넬롱 지역구에서 노동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며 총리직은 물론 국회의원직까지 잃고 정계를 은퇴한다. 총리직에서 무려 11년간 재임해서 역대 호주 총리 중 두번째로 최장기 집권했음에도[5] 퇴임 후 정계은퇴 후 급격하게 잊혀졌다.

3.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68 뉴사우스웨일스 주의회 선거 드루모인
12,194 (48.3%) 낙선(2위)
1974 호주 연방 하원의원 선거 베넬롱 32,700 (51.7%) 당선(1위) 초선
1975 39,867 (60.5%) 재선
1977 37,080 (56.2%) 3선
1980 36,075 (53.9%) 4선
1983 33,721 (50.3%) 5선
1984 33,820 (54.2%) 6선
1987 36,266 (56.9%) 7선
1990 33,862 (52.8%) 8선
1993 37,096 (50.1%) 9선
1996 40,589 (53.8%) 10선
1998 42,075 (56.0%) 11선
2001 44,861 (57.7%) 12선
2004 41,735 (54.3%) 13선
2007 42,251 (48.6%) 낙선(2위)


[1] The Honourable, 총리 본인에 대한 경칭[2] 다만 계파적으로는 온건파인 자유주의 계파가 아닌 강경파인 보수주의 계파에 속한다.[3] 그러나 호주의 국체 변경 여부를 결정하는 1999년 국민투표는 그의 임기 중에 일어났다. 입헌군주제 지지자임에도 당시 호주의 국민여론이 다이애나 비 사망사건으로 왕실에 매우 안 좋아 공화제로 국체 변경을 논하는 국민투표를 요구해서 시행했어야 했다. 결과는 존 하워드의 바램대로 현 입헌군주제 체제 유지.[4] 노동당 83석 vs 자유-국민 연합 65석. 의회 과반은 75석.[5] 그의 전후에 취임한 총리들만 봐도 대부분 3~5년 정도 재임했지 11년까지 재임한 건 드물다. 이는 같은 영연방인 영국도 최근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