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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00:07:34

조르주 베스

르노 전 CEO
조르주 베스
Georges Besse
파일:조르주 베스.pn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출생 1927년 12월 25일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사망 1986년 11월 17일 (향년 58세)
프랑스 파리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직업 기업인
학력 에콜 폴리테크닉 (X1948)
파리국립고등광업학교 (Mines ParisTech)
최종 경력 르노 회장 (1985~1986)
과거 USSI 엔지니어링(USSI Ingénierie) 총괄 관리자 (1958~1964)
CIT-알카텔 부사장 (1964~1974)
유로디프 사장 (1974~1978)
COGEMA 회장 (1978~1982)
페치네이-우진-쿨만 사 이사 (1982~1985)

[clearfix]
1. 개요2. 생애
2.1. 르노 회장 이전2.2. 르노 회장 시기2.3. 암살

1. 개요

프랑스의 기업인으로 르노 회장을 역임한 바 있었다.

2. 생애

2.1. 르노 회장 이전

1927년 크리스마스에 프랑스 클레르몽페랑에서 태어났다.

1958년에 USSI 엔지니어링(USSI Ingénierie) 사의 총지배인으로 경력을 시작했고, CIT- 알카텔 사에서 부사장직을 역임했다. 이후 유로디프 사의 사장, 오라노 사이클 사의 전신인 COGEMA의 회장, 페치네이-우진-쿨만 사의 이사를 맡다가 르노 사의 회장이 되었다.

2.2. 르노 회장 시기

당시 공기업인 르노에서 엄격한 비용 관리를 통해 1986년 9월에는 적자 투성이였던 기업의 수익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간 기업과 같이 고품질의 자동차를 만들어 팔자"는 구호를 외치던 외치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미국의 경기회복으로 인해 르노의 컴팩트카 라인업이 판매부진에 빠지며 적자를 면치 못하던 미국 시장에서도 아메리칸 모터스 코퍼레이션 산하 지프 브랜드의 잠재력 등을 이유로 미국 시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공장까지 새로 지었다.[1]

하지만, 르노의 회생 과정에서 공장 폐쇄와 21,000명의 근로자 해고 조치로 인해 노동자들의 불만을 야기하기도 했다.

2.3. 암살

1986년 11월 17일 파리 14구 몽파르나스 지역 12번가 에드가 키네 대로, 자택 앞 길가에서 노동자 해고에 반발한 좌파 테러 단체, 악시옹 디레크트(Action Directe)[2] 일원에게 총 4~6발을 머리, 가슴 부분에 맞으며 암살당했다.[3] 당시 암살을 목격한 사람들의 말로는 암살자들이 도망간 경로는 차, 오토바이 또는 도보로 도망쳤는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파일:조르주 베스 암살범.png
조르주 베스 회장 암살범들

이후 암살범인 나탈리 메니곤과 조엘 오브론은 1987년 3월에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1989년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2명의 공범인 장마크 루이양과 조르주 시프리아니 역시 종신형을 받았다. 이 중 주범인 조엘 오브론은 2004년 3월 뇌종양 수술을 받았고, 3개월 후 석방되었으나 2006년 3월에 사망하였다.
파일:르노 두에 공장.png
그의 이름을 딴 르노의 두에 공장

이로 인해 회장이 바뀌면서 르노아메리칸 모터스 코퍼레이션의 지분을 크라이슬러에 넘기면서 북미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이후 프랑스에 있는 르노 두에 공장에 추모의 의미로 이 이름이 사용된 바 있었다. 또한, 트리카스틴 지역의 원전에서 COGEMA가 운영하던 기체 확산 우라늄 농축 공장에도 그의 이름을 딴 공장이 있었는데, 2012년까지 운영되다가 조르주 베스 Ⅱ 원심 분리 농축 공장으로 대체되었다.


[1] 이때 르노 모터스포츠 부서인 고르디니 출신의 엔지니어인 프랑수아 카스탱이 미국으로 건너가 북미시장에 특화된 신차들을 개발했다. 대표적으로 1983년에 출시된 모노코크 컴팩트 SUV인 지프 체로키 XJ형이 프랑수아 카스탱이 관여한 북미시장형 신차 라인업이었다.[2] 단체의 뜻은 직접 행동. 자사의 공장 곳곳에서 구조조정을 행하면서 해외 공장, 미국에서의 르노 차 사업에 투자를 집중하던 행보가 화근이 되었다.[3] 하필 암살 시간대에 그의 딸이 아버지의 퇴근 시간대에 맞춰 집 위층 창문에서 거리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