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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9:21:38

제임스 에이머스

파일:미합중국 해병대사령관기.svg
미합중국 해병대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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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령관 취임 당시 계급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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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35대 해병대사령관
제임스 에이머스
James Amos
파일:James_F._Amos.jpg
본명 제임스 F. 에이머스
James F. Amos[1]
출생 1946년 11월 12일 ([age(1946-11-12)]세)
아이다호 웬델
재임기간 제35대 해병대사령관
2010년 10월 22일 ~ 2014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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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c101f><colcolor=#fff> 학력 아이다호 대학교
복무 미합중국 해군
1970년 ~ 1972년
미합중국 해병대
1972년 ~ 1978년
1981년 ~ 2014년
최종 계급 대장 (미합중국 해병대)
주요 참전 코소보 전쟁
이라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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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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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1946년 11월 12일 미국 아이다호 주 웬델에서 태어나 1970년에 아이다호대학교를 졸업했다. 재무와 경제로 이학사(bachelor of sceince)를 땄고 ROTC를 거쳐 1970년 해군 항공소위로 임관했다가 해군 항공중위로 진급한 다음 1972년 해병대로 전군했다.[2] 해병대 항공대 전투조종사 시절 주기종은 F-4, F/A-18 등이었고, 콜사인은 테이머였다. 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제3해병항공단장이었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제2해병원정군(MEF II) 사령관을 역임했다.

2008년에는 해병대 부사령관으로 영전했고 2010년에 제35대 미합중국 해병대 사령관에 임명 되었다. 1983년 이후로 굉장히 오랜만에 부사령관에서 사령관이 된 케이스이다.[3] 보통 해병대 사령관은 보병 병과에서 나왔는데 항공 병과에서는 그가 처음이었다.[4]

사령관 재직 시절 예산 문제로 국방부로부터 해병대용 F-35B 기종의 포기 권고를 받았을 때 해군장관과 손잡고 F-35B 사업을 지켜냈다.

미 해군의 상륙함 감소와 미 해병대의 해외전개 증가의 부조화를 개선하기 위해 미 국회와 긴밀히 협조하여 신형 해군 상륙함의 추가 건조를 이끌어 냈다.

미 해병대에서 그 존재가 잊혔던 1942년~1949년 사이에 미 해병대에 징집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해병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여 그들의 복무와 희생에 대해 국가적인 표창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오랜 이라크 아프간 전쟁으로 인해 높은 기독교적 윤리를 전통으로 하는 미 해병대의 도덕성이 크게 저하되었다고 보고, 미 해병대에게 도덕성과 기독교적 윤리의 회복을 강조했다.

전통적인 미군의 DADT 정책을 폐지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했다. 하지만 2011년 11월에 자신이 DADT 폐지에 반대했다는 게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고 해병대가 동성애를 인정하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2012년 1월에 미 해병대 제2사단 2연대 3대대 소속 정찰저격수들이 탈레반 조직원의 시신에 오줌을 싸며 모욕하는 영상이 보도되었는데, 이런 행위는 군형법과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는 전쟁범죄였기 때문에 미 해군 범죄수사국(NCIS)의 조사가 시작되었고, 이후 5명의 해병이 기소되어 3명은 형사처벌 없이 행정적인 징계 처분만 받았고, 2명은 유죄가 인정되어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에 피고측 변호사 제임스 위어릭(James Weirick) 해병 소령은 이 판결에 외압 의혹을 제기하고, 당시 국회와 국방부, 언론에 시달리던 해병대 사령관과 야전사령관들이 피의자들을 엄벌하라는 압력을 가해 직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2014년 독립언론인 해병대타임스(Marine Corps Times)는 아모스 사령관이 이 사건에 직권을 남용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이에 미 국방부 감사관실은 해병대 사령관에 대한 감사에 들어가 재판 당시 사령관의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유죄 판결을 받고 불명예 전역한 퇴역 해병은 2017년 군사법원 상소심에서 해병대 사령관의 부당한 개입을 인정받아 무죄판결을 받았다.

2014년 발생한 스티브 하웰 해병대 하사의 재판에도 부당하게 개입하여 직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이 있다. 하웰 하사는 입대 해병 어머니에 대한 강간, 후임 해병에 대한 강제 동성연애 및 동료 해병의 부인과의 간통 혐의로 18년 형을 받았으나, 이 재판의 항소심에 에이머스 사령관이 강간 사건의 80%는 합법적인 화간이라며 재판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피고인이 9년형으로 감형되는데 기여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2014년 전역을 앞두고는 인사청문회 시절 밝혔던 자신의 군 경력에 관한 위증 논란이 불거져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가 전군하는 과정에서 1972년 해병대의 기초군사교육을 수료하고 임관했다고 증언했는데, 이 시절 해외근무를 하던 조종사들의 관행대로 통신 교육으로 수료[5]했던 것이 본인의 증언과 달리 1972년이 아닌 1977년으로 밝혀졌던 것. 전술한 논란에다 이런 위증 의혹이라는 도덕성 문제에 강경한 비판이 있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의 지시에 따라 여성에게 전투 병과 문호를 개방하여 2012년부터 미 해병대의 보병장교과정(IOC)이 여성에게 개방되었다. 그러나, 훈련 수료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자 여성에게 체력검정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그는 전투병과의 기준은 전투를 염두에 두고 설정한 것이라 기준을 낮출 수 없다고 맞섰다. 그렇게 원칙을 지켜낸 결과 2012년~2016년까지 단 한 명의 여군 수료자가 나오지 않았고, 2017년부터 원칙에 따른 여군 수료자가 나오고 있다.

2014년 가을에 ISAF 사령관 출신 조지프 던퍼드에게 이임하고 만 68세, 한국 나이로 69세로 퇴역했다. 리코버의 경우는 의회에서 리코버를 제외한 원자력 전문가가 전무하다는 이유로 특례를 인정한 것이지만 대장 계급의 정년이 따로 정해지지 않고 임기제로 굴러가는 미군이라도 68세가 되면 임기고 나발이고 무조건 옷 벗어야 한다. 에이머스 대장도 군생활을 MAX로 경험한 셈이다.


[1] 애칭은 짐 (Jim)[2] 예나 지금이나 해병대 조종사가 되려면 해군비행학교를 나와야 한다. 해병대 조종사 출신으로 가장 출세한 인물로 꼽히는 존 글렌제2차 세계 대전 시절 해군비행학교 수료 후 해병대 소위로 임관했다. 그런데, 제임스 에이머스는 특이하게 해군 소위로 임관 후 해군 중위까지 진급한 다음 전군 신청을 해서 해병대 중위가 되었다.[3] 보통은 부사령관을 하다가 다른 합동 보직으로 가거나 다른 합동 보직을 하다가 해병대 사령관이 되는 식인데 순수하게 해병대에서만 대장 보직을 한 케이스. 타군이면 이게 딱히 이상할 게 없는데 해병대 자체의 대장 보직은 부사령관과 사령관 하나 뿐이다.[4] 미 해병대 18만명 중에 보병은 3만명 정도 밖에 안되지만 미 해병대에는 보병 우대 문화가 있어서 항공 병과 해병대 사령관이 나오자 의외라는 반응이 있었다. 또한 코소보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지만 베트남 전쟁걸프 전쟁 같은 미국의 대규모 전쟁을 조금씩 빗겨나간 근무 경력(물론 걸프전에서 활동했다면 테일후크 스캔들에 연루되어 옷을 벗었을 가능성도 있다.)을 봐도 그랬지만 공군 소위 출신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그를 해병대 사령관으로 지명했다.[5] 초급장교 시절에는 일본과 하와이에서 주로 활동했다. 때문에 베트남 참전 메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