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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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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정에 대한 내용은 제네바 합의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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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체결된 도로교통에 관한 협정에 대한 내용은 국제운전면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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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제1협정문
<colbgcolor=#ddd,#191919> 한국어/한자 제네바 協約
영어 Geneva Conventions[1]
프랑스어 Conventions de Genève
1. 개요2. 제네바 협약의 탄생3. 의정서의 추가4. 적용 대상5. 국제적 영향력6. 대한민국과 제네바 협약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협약으로, 제네바 조약이라고도 하며 전쟁에서의 인도적 대우에 관한 기준을 정립한 국제 협약이다.

8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 4개의 개별 협약과, 최종 협약 탄생 이후 추가된 3개의 의정서로 이루어져 있다. 개별 협약이 여러 개다 보니 영어로는 복수형을 써서 Geneva Conventions 라 표기해야 한다. 제네바 협약의 각 개별 협약은 다음과 같다.추가적인 의정서(Protocol)는 다음과 같다.좁게 말할 때는 1949년에 만들어진 4번째 협약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경우 영어 표기로는 Geneva Convention 이라는 단수 형태를 써서 협약 전체와 구별한다. 이 4번째 협약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협의된 것인데, 앞서 만들어졌던 3개의 협약들(1864년, 1906년, 1929년)을 갱신하며, 민간인 보호 등에 관한 조항을 새로이 명시한 협약이다. 즉, 전쟁 지역의 민간인 보호를 명문화 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 포로의 기본적인 권리를 여러 면에서 규정했으며, 부상자의 보호를 명문화했다.

제네바 협약은 일부 조항을 유보한 채 비준한 국가까지 포함하면 총 194개국에 의해 비준되었다. 참고로 유엔 회원국은 193개국이며, 전 세계 국가는 230~240개국 정도 된다.

제네바 협약은 무력 충돌 시에 적용되는 규칙으로서, "적대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자"에 대한 보호를 추구한다. "적대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자"에는 민간인은 당연히 포함되며, 군인이라 할지라도 부상병, 포로, 조난자라면 그에 포함된다.

흔히 있는 오해와는 달리, 제네바 협약은 살상 무기 자체에 대해서는 규제하지 않는다. 제네바 협약은 사람에 관한 협약이기 때문이다. 살상 무기에 관해서는 헤이그 협약과 제네바 의정서(생화학무기 관련)가 규제하고 있다.

2. 제네바 협약의 탄생

제네바 협약은 인도주의의 또 다른 산물인 국제적십자사와 연관이 있다. 이 둘의 탄생을 이끈 사람이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출신 앙리 뒤낭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가 벌어지고 있던 이탈리아의 솔페리노를 여행하던 중, 수많은 시체와 부상자들이 그대로 버려져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몇 년 뒤인 1862년, 그는 그가 목격했던 전쟁의 참상을 담은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을 발간한다. 그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제안했다.
  1. 전시에 인도적 구호를 할 영구적인 구호기관을 만들자.
  2. 이 구호기관이 전장에서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국제 협약을 만들자.
이 제안의 첫 번째 항목은 국제 적십자 기구의 설립으로 이어졌고, 두 번째 항목은 제네바 협약으로 이어졌다.

제1 협약, 즉 첫 제네바 협약은 1864년에 12개국에 의해 채택되었다. 이들 12개국은 스위스, 바덴 대공국,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제국, 헤센 대공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왕국, 포르투갈 왕국, 프로이센 왕국, 스페인뷔르템베르크 왕국이다. 미국은 이보다 한참 뒤인 1882년에 비준했다. 제1 협약은 10개 조항으로 이루어졌으며 육상전에서의 부상자 등에 대한 대우를 규정한 협약이다.

제2 협약은 1906년 7월 6일에 확정되었으며, 해상에서의 인도적 대우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제3 협약은 1929년 7월 27일에 확정되어 1931년 7월 19일에 발표되었다. 포로의 대우에 대한 협약이다.

제4 협약은 1949년에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인도주의/평화주의가 무르익었고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밝혀진 전쟁범죄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 이에 따라 1949년에 여러 차례의 회담을 거치며 제1, 제2, 제3 제네바 협약이 증보되고 경신되었으며, 아울러 제4 협약도 새로이 만들어졌다. 제4 협약은 전시의 민간인 보호를 명시한 협약이다.

3. 의정서의 추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제네바 협약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다. 1949년에 만들어진 협약은 냉전으로 인해 변화된 전쟁의 양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에 접어들면서, 무력 충돌의 대부분을 내전이 차지하였으며, 국가간의 전쟁조차 점차 비대칭적 전쟁, 즉 강대국과 약소 집단 간의 전쟁으로 변해갔다. 게다가 현대의 무력 충돌에서는 민간인 희생이 늘어만 갔고, 따라서 민간인과 그의 재산을 보호할 필요성이 커져갔다. 이러한 맥락에서, 2개의 의정서(Protocol)가 1977년에 채택되었다. 이 의정서들은 추가적인 보호를 규정하여 1949년의 제네바 협약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제1 의정서는 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것이다. 식민통치, 외세의 점령 및 인종차별에 맞서 민족자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쟁하는 무력충돌을 국제적 무력충돌로 격상시켰으며 제네바 협약의 범위에 포함시켰다.[2] 또한 전투에 있어 그 방법 및 수단과 관련하여 신무기가 불필요한 고통을 주거나 적군의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분없이 공격하는 무기인 경우, 새로운 무기가 국제인도법에 의해 금지되어야 하는지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제2 의정서는 비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비국제적 무력충돌이란 제 1추가의정서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무력충돌로서, 체약 당사국의 영토 내에서 당사국의 군대와 조직된 무장집단과의 무력충돌에 적용된다고 규정하여 그 대상을 명백히 하고 있다. 쉽게 말해 (공통 3조에서 국제적 무력충돌로 격상된 민족해방운동(NLM)을 제외하고) 일국 내 영토 일부분을 통제하며 책임 있는 지휘 하에서 지속적이고 조화된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조직된 무장집단(예: 반군)이 있다면 전부 제2 의정서의 관할 대상이 된다.

요약하자면 민족해방운동을 포함한 국제적 무력 분쟁은 제네바 4개 협약 및 제1 추가의정서의 관할 아래에 있으며, 반군 등 비국제적 무력 분쟁은 제네바 4개 협약의 공통 3조 및 제2 추가의정서 관할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2005년에는 세 번째 의정서가 추가되어 의료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식별표장의 추가가 규정되었다. 이는 의료 상징 표식, 쉽게 말해 적십자 기호 같은 것을 하나 더 도입하자는 내용인 것이다. 원래는 국제 구호기관을 상징하는 기호로서 다들 잘 아는 "적십자"(red cross), 그리고 마이너하지만 "적신월"(赤新月, red crescent. 붉은 초승달)이 함께 쓰이고 있었다. 초기에는 적십자만 쓰이다가 이슬람 쪽의 (십자가에 대한) 종교적 반발을 고려해서 적신월이 추가로 도입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상징이 정치/종교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정치와 종교를 초월한다는 국제구호의 참뜻에 어긋난다는 곤란함이 있었다. 게다가 이스라엘에서는 이 두 기호가 아닌 자체 기호만을 고집하고 있는 문제도 있었다.[3] 따라서 구호기관의 취지도 살리고 이스라엘 건도 해결하기 위해 붉은 마름모 모양의 "적수정"(Red Crystal)이 고안되었고 이를 의료기관의 상징들에 추가한다는 것이 제3 의정서의 내용이다. 어찌보면 큰 의미가 없는 내용이고 중동 지역에 개입하지 않는 이상 필요없는 부분이라 그런지 대한민국은 이것만은 비준하지 않고 서명으로 그쳤다. 다른 나라들도 이 의정서는 비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4. 적용 대상

제네바 협약은 전쟁이나 무력 충돌시에 이 협약을 비준한 국가들에 대해 적용된다. 구체적인 적용 정도는 공통 2조와 공통 3조에 명시되어 있다. 이 조항들은 각 차수별 협약에 공통으로 들어있기에 공통 조항이라 불린다.제네바 협약 및 기타 조약에 관한 최종 국제재판소 역할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맡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안보리가 제네바 협약에 관해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의 사건은 본국법이나 다자 간 조약에 의해 처리된다.

제네바 협약에 어긋나는 행위들이 모두 똑같이 취급되는 것은 아니다. 몇몇 행위는 “중대한 위반 행위” (grave breaches)라 하며 심각한 위반으로 취급되며, 전쟁범죄의 구성 요건이 된다. 제3 협약과 제4 협약에서의 공통적인 중대한 위반 행위는 다음과 같다.제4 협약에서 중대한 위반행위로 간주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이 협약을 비준한 나라들은 반드시 이러한 범죄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고 집행해야 하며, 이들 범죄의 용의자를 수색하고 법정에 세울 의무를 가진다. 용의자의 국적이나 범죄가 발생한 지역은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게다가 중대한 위반 행위에 대한 조항은 관습법으로 간주되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전범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가입/미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제네바 협약 미준수는 그 자체가 범죄가 된다. 대표적인 예가 나치 독일일본 제국이다. 독일은 독소전쟁 당시 소련 포로를 잔혹하게 대하거나 대량학살하면서 소련이 1929년 제2 협약에 사인하지 않은 것을 구실로 삼았지만 패전 후 그것은 아무런 변명이 되지 못했으며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비준했지만 실제로는 준수하지 않았는데 일본군이 국민과 병사들에게 반일분자는 협약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세뇌했기 때문이며 놀랍게도 그 반일분자에 일본과 전쟁 중인 나라의 군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8]

중대한 위반에 대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UN헌장에 따른 관할권을 행사하기도 하며, 이 경우 보편 관할권[9]의 원칙이 적용된다. 쉽게 말해 국적이고 국가고 간에 상관없이 UN이 직접 재판할 수 있다. 안보리는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를 열었을 때 이 권한을 행사한 바 있다.

제네바 협정은 국제적 분쟁뿐만 아니라 내전에도 적용된다. 현대에 들어와서 전쟁은 내전 형태가 많아졌고 전투원과 민간인 간의 경계가 모호해져 가고 있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한 점이다. 내전에 관련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통 3조가 마련되어 있고, 이는 제2 의정서에 의해 보충된다. 이러한 조항들은 그간 소집되었던 국제재판소들, 특히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의 판례를 통해 명확하게 되었다. 1999년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는, 중대한 위반행위는 국제적인 충돌뿐만 아니라 국내 간의 무력 충돌에도 적용된다며 관련자들에게 잇달아 무기징역을 판결[10]하여 이러한 원칙을 분명히 하였다. 그렇다고 100% 제네바 협약을 지키는 경우는 없다, 특히 탈레반, 알 카에다, 마약 카르텔 같은 테러단체 등이 이러한데, 애초에 인권 같은 거 생각할 자들이 아니므로 수틀리면 민간인이라도 제네바 협약을 무시하고 살해하는 경우가 많다,

5. 국제적 영향력


HBO 드라마 더 퍼시픽

제네바 협약에 의해 일본군 포로를 폭행하는 미군을 제지한다. 근데 미군도 포로로 잡히면 저런대우를 당했다.[11] (1:33)

제네바 협약은 전쟁의 수단과 방법을 규제한 헤이그 협약과 함께 현대 국제 사회의 국제인도법을 구성하는 큰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12]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있는 국제 사회지만 정말 어지간한 국가들은 제네바 협약을 어느 정도 준수하고 있다. 대놓고 무시했다간 상대 진영에게 큰 명분을 제공할 위험성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 같은 초강대국이라 하더라도 타국과 전쟁 중에 제네바 협약을 무시한다면 당장 반미 진영에서 전쟁광 미국이라고 일제히 비난할 것이고 동맹국의 협조도 얻기 어려워지거니와 미국 내부에서도 지지율이 떨어질 것이다.

워낙 기본이 되는 협약이다 보니 최소한 제네바 협약 자체는 거의 모든 나라가 비준 했다. 북한,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의 막장 국가들도 비준은 했을 정도다.

다만 추가적인 부분인 의정서에 대해서는 비준하지 않은 나라가 좀 있다. 대한민국은 제1, 2 의정서는 비준했고, 제3 의정서는 서명은 했으나 비준까지는 하지 않았다. 제3 의정서이란 게 "적수정"이라는 상징의 추가에 관한 것이라서 별 내용이 없긴 하다. 북한은 제1 의정서만 비준했다.

정확히는 총 194개국에 의해 제네바 협약 본문이 비준되었다. 의정서에 대해서는, 제1 의정서는 173개국에 의해, 제2 의정서는 167개국에 의해 비준되었다. 제3 의정서는 좀 많이 영향력이 떨어져서 54개국이 비준, 36개국이 서명하는 데 그치고 있지만 이건 애시당초 중동 지역 혹은 이 지역에 개입할 국가들만 서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생각이 없는 국가라면 굳이 적극 나서서 서명할 필요가 없다.

미국, 이란, 파키스탄은 제1 의정서, 제2 의정서 모두 비준하지 않았고 서명만 했다. 인도, 이스라엘 그리고 파키스탄도 제1, 제2 의정서에 비준도 서명도 하지 않았고, 제3 의정서에만 비준했다. 단 제네바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도 실질적으로는 지킬 의무가 부과되기 때문에 이 나라들도 비준만 하지 않았다뿐 제네바 협약을 준수하고 있다.

전쟁의 양상이 1949년의 제네바 협약 이후로 크게 변해서 현실에 안 맞는 부분도 있긴 한데, 그래도 제네바 협약은 현시대의 국제인도주의법의 기본이 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의 실질적인 효과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체첸 사태, 남오세티야 전쟁 등의 국제적 분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시리아 민주화 운동 같은 내전에서도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다. 물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 국제 사회인데다가, 막나가는 전쟁 당사자들이라면 제네바 협약 따윈 씹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탈레반, 알 카에다 같이 아예 정규군이 아닌 테러집단인 경우만 빼면 최소한의 인도적 조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전쟁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군은 주요 전쟁에 참전하면서 붙잡은 적군에 대해 테러리스트가 아니면[13] 적 전투원 지위를 부여하여 제네바 협약에 준하여 대우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탈레반이나 이라크 수니파 반군도 그런 이유로 미군에 붙잡히면 일단 포로로 대우받고 있으며, 명백한 전쟁범죄가 밝혀지더라도 일단 포로로 억류하다가 확인 후에 정식기소하여 전범재판으로 처벌한다.

즉, 최소한 없는 거보단 낫다.

6. 대한민국과 제네바 협약

대한민국 헌법 제6조
①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한국은 제네바 협약에 가입(비준)했다. 비준된 국제 협약이니 국내에서 / 한국인들과 유엔 회원국 국민들 전부에게 효력을 가진다. 협약의 내용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등록되어 있다.

의정서 또한 등록되어 있다. 다만 제3 의정서는 비준이 안 되었으므로 미등록.

위와 같이 대한민국은 제네바 협약에 가입하였으나, 유보한 내용이 좀 있다. 즉 몇몇 조항의 일부 내용은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다. 유보한 내용은 제3 협약 118조의 일부, 제4 협약 68조의 일부, 그리고 제1 의정서 44조의 일부다.
대한적십자사문건에 대한민국과 제네바 협약에 대해 나와 있다.

7. 관련 문서



[1] 고유 명사이므로 Conventions의 C도 대문자로 쓴다.[2] 이는 기존 민족자결권에 맞선 투쟁이 유난히 국가들의 가혹한 탄압과 진압에 시달렸던 것을 고려한 조항이다. 민족자결권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고 하여 다 포함되는 것은 아니며, 언급된 세 가지의 경우에만 인정된다.[3] 이스라엘은 십자가도 초승달도 거부해서 그 대신 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에 붉은 칠을 해서 제멋대로 적십자 대신 사용해 왔다.[4] 사실 이것은 중국군의 오랜 관습 중 하나이다. 중국공산당의 당군인 중국 인민해방군의 표어가 '인민을 위해서'인데 이 인민에는 적국의 인민, 즉 민간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6.25 전쟁에서 중국군에게 잡힌 한국군의 포로 대우도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사상 교육을 시켰지[5] 하노이 힐튼을 보면 대략 짐작이 가능하다. 미군 포로들을 집단 수감한 일종의 감옥인데 대우가 상상 이상으로 열악해서 살아 나오지 못하는 미군들도 적지 않았을 정도지만 그래도 '규정'상으로는 포로 대우를 해 줬다. 물론 미군들이 학살당하거나 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북베트남군 일선 부대 혹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소행으로 상층부에서 직접 개입할 여지가 있었을 때는 그런 짓이 허용되지 않았다.[6] 제1협약부터 제4협약까지 네 개의 조약 모두 3조로 일국 내에서 발생하는 비국제적 충돌 시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7] 아프리카 및 남아시아의 내전에서 너무나 이런 사태가 자주 벌어지다 보니 생겨난 조항이다.[8] 다만 대공황으로 일본군이 내각의 통제를 벗어나기 전에는 최소한 정규 군인에 대해서는 협약을 준수하는 성의를 보이기는 했다. 이것은 당시 일본의 문민 정치인들과 군 고위층의 사고 방식 차이 때문이기도 한데, 탈아입구를 숭상하던 문민 정치인들은 서양이 만든 제네바 협약을 준수하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야마토의 혼"을 강조하는 군 고위층(특히 대공황 이후의 군국주의 시절)은 "일본의 전통"과 관련없다는 이유로 협약을 경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9] 범죄가 저질러진 국가나 범죄자의 국적에 상관없이 재판할 수 있는 권한.[10] 국제사법재판소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11] 포로를 보호 겸 감시할 의무가 있는 육군 군사경찰과 정보장교가 포로에게 도를 넘은 폭행을 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제지하지 않을 수가 없다. 포로를 잡은 측에서도 적개심이 없지 않았을 테니 침뱉고 욕하는 정도까지는 이해해줬지만 대놓고 밀치는 등 직접적인 공격까지 눈감아주면 나중에 자신들이 관리소홀로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만약 사병들이 장교의 말을 무시하고 포로를 계속 학대하면 항명죄까지 추가되며, 병과까지 다른 만큼 책임소재 공방도 커지게 된다. 로버트 맥 소대장이 유진 슬레지에게 재발시 군법재판에 보내겠다는 경고를 한 것도 그에게 제네바 협약 준수 의지가 충만해서가 아니라 이미 도를 넘은 행동을 한 게 군사경찰에게 발각된 이상 같은 행위를 하다 또 걸리면 자기가 감싸줄 도리가 없기 때문에 그 사실을 경고한 것이다.[12] 과거에는 "전쟁법" 등의 표현을 사용했지만 UN의 창설 이후 (UN 헌장 2조 4항에서는 무력 사용을 금하고 있으며, UN의 1차 목표는 바로 전쟁의 방지이다) 국제법에서는 더 이상 전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며 대신 무력 충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전시법 등의 단어도 국제인도법(헤이그+제네바)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용어의 변경은 결국 군사적 필요성보다 인도적 고려를 중요시하는 오늘날 국제법의 발전 방향과 무관하지 않다.[13] 다만 이런 지위는 미국의 이성이 유지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편이다. 9.11 직후에는 탈레반 전투원 포로들도 포로 대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북부동맹 측에 잡힌 포로들은 죽이건 말건 놔두는 편이었다가 어느 정도 이성을 찾고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 사건도 터진 2004년 이후에는 명백한 테러리스트들이 아니면 일단 포로대우를 하도록 방침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