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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5 19:44:34

정해두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초명 정순문(鄭順文)
해도(海燾)
본관 경주 정씨[1]
출생 1863년 4월 13일
충청도 비인현 현내면 상북리
(현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 상북마을)
사망 1932년 2월 11일
충청남도 서천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594호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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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해두는 1863년 4월 13일 충청도 비인현 현내면 상북리(현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 상북마을)에서 아버지 정범규(鄭範奎, 1826. 1. 17 ~ 1889. 2. 2)[2]와 어머니 성주 도씨(1827. 9. 6 ~ 1902. 11. 30) 도진하(都鎭夏)의 딸 사이의 5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06년 4월 충청남도 홍산군(鴻山郡)에서 민종식 의병장이 기의하자 가담하여 후군장(後軍將)에 선임되었다. 4월 16일 홍산에서 군사를 일으켜 서천·남포·보령을 지나 26일 홍주성을 함락하였다.

그 후 병력이 증강되는 한편 주민들이 동원되어 성첩이 수축되면서 5월 25일경부터 진용 재편성에 들어갔는데, 이때 선봉장(先鋒將)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5월 31일 홍주성이 함락될 때 까지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며 활동하였다.

홍주성이 함락될 당시 붙잡혀 모진 고문을 겪다가 6개월 만에 반신불수가 되어 석방되었다. 이후 고향에 은거하다 1932년 2월 1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정해두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6년 10월 9일 당초 고향인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 상북마을에 안장되어 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이장했다.

[1] 양경공파-석성공파 66세 해(海) 항렬. 족보명은 정두해(鄭斗海).[2] 초명 정치서(鄭致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