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768><colcolor=#fff> 현대제철 제12대 사장 정몽필 鄭夢弼 | Chung Mong-pil | |
출생 | 1934년 1월 1일[1] |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現 북한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 |
사망 | 1982년 4월 29일 (향년 48세) |
경상북도 금릉군 아포면 대신동 (現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대신리) 경부고속도로 김천JC 인근 | |
본관 | 하동 정씨[2] |
직업 | 기업인 |
학력 | 서울상업고등학교 (졸업) 연희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 / 학사)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 |
부모 | 아버지 정주영, 계모 변중석[3] |
형제자매 | 남동생 정몽구, 정몽근, 정몽우, 정몽헌, 정몽준, 정몽윤, 정몽일 여동생 정경희, 정정인, 정정임 |
배우자 | 이양자(1942 ~ 1990) |
자녀 | 장녀 정은희(1971 ~ ) 차녀 정유희(1973 ~ )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인천제철 사장으로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의 장남이었으며, 현대그룹의 후계자였지만 1982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2. 생애
1934년 강원도 통천군 출생. 정주영의 장남이다. 정몽필의 생모는 정주영의 첫사랑으로, 정주영이 19세, 생모는 17세 때 정몽필을 낳았다. 하지만 정주영 집안에서 생모와의 혼인을 인정하지 않아[4] 결혼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일로 정몽필의 생모는 통천을 떠나게 되어 정주영과 헤어졌다.[5]이후 정주영이 변중석과 결혼하였을 때 정몽필은 이미 태어난 것이다. 1921년생인 변중석과 1934년생인 정몽필은 나이 차이가 13살밖에 나지 않는다.[6] 사실상 모자지간보단 남매라고 해도 될법한 나이였던 것.[7] 그래도 변중석은 시집을 오자마자 어린 아이인 정몽필을 친자식처럼 양육하였고 정몽필도 변중석을 친어머니로 여기고 성장하였다.
본인도 불같은 성격이지만 아버지는 정몽필보다 더 불 같은 성격이라 아버지를 어려워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사실 정몽필 뿐만 아니라 정주영의 자식들과 동생들이 모두 정주영을 어려워한 건 많이 알려진 사실. 그래서 정주영에게 전할 말을 어머니인 변중석 여사를 통해서 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경영 수업을 받던 와중, 1982년,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8] 경부고속도로에서 현대 그라나다를 타고 울산에서 서울로 가다가 트레일러와 추돌로 운전기사와 함께 허무하게 사망했다. 12톤 트레일러를 추월하려고 하다가 옆구리를 들이받아 8m 정도 끌려가 낭떠러지로 추락해 연료탱크가 터지고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운전기사와 정몽필 모두 숨졌고, 차량은 전소되었다.#
정주영은 정몽필의 사망을 접하고도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업무를 모두 마치고서야 귀가하였다. 결혼생활 내내 정주영을 내조하며 남편이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고 말을 아끼던 변중석 여사는 이 때만큼은 뒤늦게 귀가하는 정주영을 보자마자 "당신! 사업하다가 애들 다 죽일 셈이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자신이 직접 낳은 자식이 아님에도 변중석이 정몽필을 친자식으로 여기며 키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순간.[9]
3. 가족관계
자세한 내용은 범현대가 문서 참고하십시오.4. 특징
- 현대건설에서 회장까지 역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정몽필을 정주영의 불 같은 성격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아들로 묘사하였다.[10] 이명박이 사장이던 시절 정몽필은 현대건설에서 전무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정몽필이 아버지와 마찰을 한참 일으키다가 중간에서 안건을 물리치는 일이 잦아서 직원들이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결국 이명박이 정몽필에게 협조를 부탁하자 정몽필이 정주영에게 협조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 정몽필의 남동생 중 하나인 정몽우는 1990년 4월 호텔에서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난다. 그 이후 정몽필의 처 이양자는 같은 해인 1990년 9월 위암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자식들과 큰며느리의 잇다른 사망에 계모인 변중석과 아버지인 정주영은 건강을 많이 잃어버리고 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 슬하에 아들 없이 딸만 둘을 두었다. 이 때문에 정주영은 정몽필 생전에는 정주영-정몽필-(정몽구를 건너뛰고)-정의선으로 회장직을 승계하는 것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11] 장녀인 정은희의 남편은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IHL의 대표이다. 자동차 램프를 제조하며 형이 사망하고 장남의 역할을 맡는 동생 정몽구가 정몽필 가계의 회사로 남겨두었다. 차녀인 정유희는 쌍용그룹의 회장을 역임한 김석원의 장남이자 국민대학교의 이사장인 김지용과 결혼하였으나 이후 이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 드라마 영웅시대에서는 강석우가 정몽필을 모티브로 한 천일국 역할을 맡았는데, 실존인물의 강직함과 불같은 성격과 달리 상당히 유약하고 재벌가 장남이라는 중임을 어려워하며 꽤 무능한 인물로 그려졌다.[12] 실제 정몽필은 성격은 왕회장과 빼다 박았으며 경영적인 능력도 꽤 탁월했으나 아버지같은 성격탓에 아버지와 경영의 일로 갈등을 겪어 잠시 미국으로 나가있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 정주영과 인간적인 관계까지 파탄난것은 아니었으며 정주영도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은 장남인지라 미국에서 첨단산업 공부를 시켰으며, 이후 귀국해 현대전자 설립에 기여하며 최고 요직인 현대전자 미국본부 사장을 맡았다. 그러나 사장을 맡자마자 동년 4월 사고로 사망했다.
- 여담이지만 정몽필 생전 정주영은 확실히 후계자로 정몽필을 점찍었고, 다른 형제들은 계열분리를 시키되 자녀들은 각 계열사의 지분을 주고 독립경영을 하나 계열분리는 하지 않는 SK그룹식의 후계구도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몽필이 요절하고 이후 사실상 장남인 정몽구보다 5남 정몽헌을 총애하다가 삼성처럼 본인이 힘이 있을때 노선정리도 확실히 하지 못해 결국 정주영 본인의 타계직전 왕자의 난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시장의 신뢰를 잃은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전자, 현대반도체 등 수많은 계열사들이 넘어갔고 정치사에 얽혀 정주영 사후 정몽헌마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여파로 현정은이 경영을 승계하고 가문의 적대적 M&A 시도, 본인의 경영능력 부족으로 현대상선과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까지 날라가버렸다. 만약이지만 정몽필이 살아 있었더라면 현대가가 지금처럼 조각나진 않았을거라는 의견도 상당수 존재한다. 고대의 일이지만 삼국지의 원소, 유표나 조선 이성계의 말년과 비슷하다.
[1] 음력 1933년 11월 16일[2] 지예부사공파(知禮部事公派) 25세손 상(相)○, ○채(采), ○문(文), ○림(林) 항렬이나 이를 따르지 않고 범현대가만의 돌림자를 사용하였다.[3] 생모는 정주영이 결혼하기 전 만난 첫사랑이나 결혼을 인정받지 못하였고 변중석은 정몽필이 태어나고 정주영과 결혼하여 정몽필에게는 계모이다. 그러나 변중석이 친아들처럼 여기고 양육하여 정몽필도 변중석을 친어머니로 생각하고 성장하였다.[4] 정주영의 집안은 몰락 양반인 잔반(殘班)가문이었으나, '양반 집안'이라는 정체성은 계속 유지돼 왔다. 반면, 정몽필 생모의 아버지는 이장을 하던 당시 유력 집안이었으나 상민 출신이었다. 일제 강점기엔 여전히 신분제의 흔적이 남아 있었기에 결혼 반대가 있었을 것이다.[5] 광복 이후 6.25 전에 둘이 한번 또 만났다는 설도 있다. 다만 이땐 다른 남자랑 결혼한 상태였다고. 이후 첫사랑은 6.25가 터지면서 함경북도 청진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소떼 방북 시절 그녀를 그리워한 정주영 회장이 김정일한테 찾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알아보니 몇년 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한다.[6] 참고로 정몽구는 1938년생으로 친모 변중석과 17살 차이가 난다.[7] 당장 변중석 소생의 첫 아들인 정몽구와 막내아들인 정몽윤의 나이 차이가 변중석과 정몽필의 나이 차이보다 더 많이 난다.[8] 당시 행정구역상 경북 금릉군 아포면. 현 김천JC 부근. 이때 당시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없었다.[9] 이는 드라마 영웅시대에서도 여러 번 묘사된 부분으로 변중석이 정몽필을 거의 친자식 이상으로 아끼는 것을 볼 수 있다.[10] 사실 정몽필 뿐만 아니라 정몽필의 동생인 정몽구나 정몽근, 정몽헌도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죄다 한 성깔 하는 인물들인 것은 사실이다. 특히 정몽구는 2000년대 초반에 현대차가 차체 결함으로 골머리를 앓자 울산공장으로 쳐들어가서 맨주먹으로 차문을 두들겨서 부숴버렸을 정도라고.[11] 엄격한 장자 중심의 재벌가인 범현대가에서 정몽필에게 아들을 낳으라는 압박이 없었을 리가 없다. 때문에 정몽필이 죽지 않았다면 정의선은 큰아버지 구본무의 양자로 입적해 회장직을 물려받은 LG가의 구광모처럼 큰아버지인 정몽필의 양자로 입적했을 가능성도 있다.[12] 마냥 무능하다기보단 적응이 더딘 쪽에 가깝다.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아들을 현장에서 굴러봐야 한다며 냅다 시멘트포대부터 나르게 하고 삼촌인 천태산의 동생들도 보다못해 얘가 왜 이런걸 하냐면서 천태산이 안볼 때 억지로 쉬게 하는 등 현장에 맞지 않은 타입이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노력하다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