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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3 12:17:33

장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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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장조민.jpg
성명 장조민 (張朝民)
출생 1907년 1월 19일
평안북도 선천군
사망 1967년 3월 1일 (향년 60세)
강원도 인제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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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조민은 1907년 1월 19일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망명했고, 1922년 서로군정서에 입대했다. 이후 중국, 만주 각지에서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했으며, 1929년에 결성된 조선혁명군에 가입해 1936년까지 조선혁명군 대원으로서 작전을 수행했다. 이후 중국인 산둥유격대에 편입되어 부관으로 활약했으며, 1942년 6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장이자 과거에 조선혁명군 간부였던 김학규의 설득을 받아들여 초모위원회 부주임으로 선임되어 일본군의 후방에서 공작 활동을 수행했다.

1943년 10월 광복군에 입대한 그는 한광반(韓光班) 조직위원과 제3지대 비서실장으로 한인병사에게 선전문을 보내 그들이 일본군 진영을 탈영해 광복군에 가담하도록 유도했다. 8.15 광복 후 덕지구(歸德地區) 특파단장으로 임명되어 송병하(宋炳河)·왕세일(王世一)·오일립(吳一立) 등 대원을 통솔하여 교포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 귀국을 도모하다 1946년 1월 귀국했다. 이후 강원도 인제군에서 조용히 살다 1967년 3월 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장조민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9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