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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6-08-20 20:28:07

일본서기/요메이 덴노

1. 주의2. 권 21
2.1. 즉위 전기2.2. 원년 : 585년2.3. 2년 : 586년

일본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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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권 20, 요메이 덴노

1. 주의

2. 권 21

2.1. 즉위 전기

타치바나노토요히노스메라미코토(橘豊日天皇) 요메이 덴노(崇峻天皇) 즉위전기(卽位前紀)

타치바나노도요히(橘豊日) 덴노는 아메쿠니노오시하라키히로니하노스메라미코토(天國排開廣庭天皇)의 넷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키타시히메(堅鹽媛)이라고 한다.덴노는 불법(佛法)을 믿고[1] 신도(神道)[2]를 존숭하였다. 14년 가을 8월에 누나쿠라노후타토마시키(渟中倉太珠敷天皇)가 붕했다.

9월 5일에 덴노가 황위에 올랐다. 이하레(磐餘)에 궁을 짓고, 이케노베노나미츠키노미야(池邊雙規宮)라고 이름하였다. 그리고 소가노우 마코노스쿠네(蘇我 馬子宿禰)를 대신으로 삼고[3] 모리야노오호무라지를 대련으로 삼으니, 전대 왕때와 똑같았다. 임신에 조를 내려 스카테히메노미코(酢香手姬皇女)를 이세노오호미카미노미야(伊勢神宮)에 보내어 일신(日神)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이 황녀는 지금의 덴노 때부터 카시키야히메노스메라미코토(炊屋姬天皇)의 시대에 이르기 까지 일신의 제사를 받아들였다. 이후 자신의 의지로 카즈라키(葛城)로 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취옥희기에 기록되어 있다. 어떤 책에서는 37년간 일신의 제사를 받들고 스스로 물러나 죽었다고 하였다.】

2.2. 원년 : 585년

2.3. 2년 : 586년



[1] 긴메이덴노 13년에 백제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온 이후 덴노가 공식적으로 불교를 믿는다고 언급한 최초의 기사다. 따라서 요메이 덴노대에 불교가 공인화 되었다고 볼수 있다.[2] 일본의 토속신앙을 일컫는 말.[3] 부왕이었던 비다츠 덴노대에 이미 대신으로 활동했던 인물로 불교 문제로 불교를 반대하는 인물인 모리야노오호무라지(弓削守屋大連)와 갈등을 빚었다.[4] 스이고 덴노 10년, 신라 정벌 장군에 임명되었으며 다음해에 죽었다.[5] 일본의 가문.[6] 민달기 14년 8월에 미와노키미사카후가 궁문을 지키게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형제의 장례식장에서 "죽은 왕은 모시면서 왜 나, 살아있는 왕은 차별하냐!"라는 소리를 하고 형수를 범하려고 한거 보면 어지간히 막장이었나 보다.[7] 소가노우마코노스쿠네(대신), 모리야노오무라지(대련)를 말한다.[8] 왕궁을 지키던 미와노키미사카후를 말한다.[9] 비달 황후의 궁을 말한다.[10] 접이식 의자[11] 소가노우마코노스쿠네의 직책이 대신(大臣)인 것을 이용해 조롱하는 것이다.[12] 불교를 믿겠다는 이야기다.[13] 원래 한반도 도래인으로 원래 성은 이씨(李氏)엿다고 한다. 오진 덴노때에 귀화했다고 한다.[14] 현재의 오사카[15] 두사람은 비다츠 덴노의 아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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