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4ecd5><colcolor=#015566> 이정연 李貞演 | Rhee Jeong Yoen | |
출생 | 1952년 7월 30일 ([age(1952-07-30)]세) |
서울특별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화가 |
학력 | 서울대학교 회화과 졸업.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 졸업. 컬럼비아 대학교 사범대학원 미술교육전공 박사과정 수료. |
웹사이트 | 이정연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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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정연(李貞演, Rhee Jeong Yoen, 1952년 7월30일~)은 동양적 감수성과 기독교정신이 융합된 한국성이 배어나오는 미의식을 표출하는 대한민국 화가이다.2. 생애
(왼쪽부터)뒷줄왼쪽부터 시계방향 조카 유승일, 이숙연(큰언니). 이준연(큰오빠), 이거연(작은오빠), 이옥연(작은언니), 이정연, 어머니와 아버지, 친할머니 1958. 이정연과 아버지(1976), 뒤 그림은 서울미대 입학 후 첫 서양화 작품(1971). 컬럼비아 대학교 MACY갤러리 개인전 1989. '이정연 회화 40년展’ 남편과 함께,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2019. 사진제공=이정연. |
대학졸업 후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에서 당대 명필인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1927~2007)선생에게 전서와 예서를 사사 받았다. “여초 선생은 희끗한 반백의 머리카락이 앞으로 내려오는 강한 의지력의 외모였다. 안에서부터 밖으로 나오는 포스가 느껴졌다. 여초 선생은 부모님 묘비(墓碑)를 화선지에 써 주셔서 현재까지도 새겨져 있다. 당시 어떤 보상도 받지 않으셔서 지금도 가슴 한 구석에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선생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는데 나는 그림에 더 뜻이 있었기에 응하지 못했다. 마음으로 굉장히 죄송함을 가지고 있다.[1]” 이와 함께 동방연서회에서 대학시절 존경했던 스승 이종상 교수에게 인물화, 일본 채색화, 견화(絹畵), 실경산수화 등 동양화 기초부터 전체적인 이론과 실기를 1983년까지 탄탄하게 익혔다. 1970년대 후반 이종상 선생에게 배웠던 제자들의 모임인 랑우회(浪友會)가 결성되고 멤버가 된다. 이후 이정연은 1984년 가을,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에 입학하여 서양화와 판화 두 개를 전공했고 88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해 컬럼비아대학교 사범대학원 미술교육전공으로 입학, 1993년 박사학위논문을 쓰던 중 갑작스럽게 귀국하는 상황이 발생되어 수료하게 된다. 교육자로써 사디(SADI)에서 1995~2017년까지 기초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부학장으로 정년퇴임했다. 이정연은 1995년 정형외과전문의 의학박사 박규래(朴奎來,1952~)와 결혼하였다.
3. 년대별작품영상
4. 작품세계 발자취
(위 왼쪽부터)설화, 120×168㎝ 화선지에 수간채색 1976. 12폭 병풍, 1976. 대나무, 87×170㎝ 견에 수묵 1978. (아래왼쪽부터)도시, 79×198㎝ 캔버스에 혼합재료 1985. 산수(1), 180×165㎝ 캔버스에 유채 1987. 십자가, 76×61㎝ 캔버스에 유채 1989. 믿음의 반석, 61×76㎝ 캔버스에 유채 1989. 자연(Ⅰ), 50×27㎝ 장지위에 석판화 1990. 사진제공=이정연. |
◇자유로운 표현 주님과의 영적만남(1983~93년)=동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채색에 대한 작업이 별로 없었는데 이때부터 컬러를 쓰기 시작한다. 그래도 힘겨움이 어두운 색채로 암시되고 있으나 서양화를 하면서 표현에서 자유로움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1985년 성령의 빛을 체험하며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뜨거웠던 시기다. “온 방안에 은비가 내리는 것을 체험했고 처음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때부터 성경이 꿀과 같이 달아 떼어낼 수 없었다.[3]” “우리는 이정연의 캔버스 속에서 빛과 어두움의 투쟁, 그리고 혼란을 질서로 이끌려는 싸움, 단순한 시각이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한 노력과 창조된 작품은 높은 찬사를 받을 만한 것이다.[4]” “검은 먹 선과 같은 느낌을 반영하는 오일 컬러는 종래의 동양화 수업에서 발견했던 기(氣)의 도입 이며 거친 붓 선과 채색의 흐트러지는 효과는 이정연 의식내면의 정동(情動)의 표출이다. 자연스러움과 자유스러움이 그의 내면적인 영적체험을 바탕으로 화면에 그대로 반영된 혼적이랄 수 있다.[5]”
(왼쪽부터)바람, 94×94㎝ 장판지 먹 수간채색 1993. 만남Ⅲ, 210×148㎝ 장지에 혼합재료 1996. 만남Ⅴ, 295×200㎝ 캔버스에 혼합재료 1997. 만남∞, 258×193㎝ 장지에 먹 진채 1998. 만남EXⅠ, 100×70㎝ 장지에 먹 옻 1988. 사진제공=이정연. (아래왼쪽부터)Re-Genesis(신창세기), 194×260㎝ Mixed Media 1999. 194×291㎝, 1999. 168×152㎝, 2000. 259×193㎝, 2001. 162×112㎝, 2001. 사진=손영자. |
“화가 이정연의 화면색채는 검정과 짙은 엄바색, 옻 색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바탕화면인 삼베천의 색감과 어울려 깊고 차분한 분위기를 흡사 수묵의 느낌마냥 부풀려 준다. 그것은 어쩌면 혼돈과 생성으로서의 대지, 자연을 닮아있다. 이정연의 회화가 보여주는 이 세계는 결국 가장 근원적인 문제와 대결하고 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을 새삼 해 본다.[7]” “저는 옻을 손가락이나 손바닥에 묻혀 직접삼베가 바탕재료로 되어 있는 캔버스 위에 마치 붓을 문지르듯 몇 차례에 걸쳐 손으로 문질러 색칠을 합니다. 곧 간접적인 표현의 붓질이 아니라 직접적인 신체접촉을 통하여 그리는 것인데 캔버스의 삼베 질감이 손에 그대로 느껴져요.[8]” “미국에서 돌아온 작가는 90년대 중반이후 ‘바람(hope)’, ‘만남’ 등의 연작을 주제로 삼고, 그림의 내용에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 한다. 형식은 추상이지만, 충돌적이었던 그림 속 형상들이 감소하거나 단순해지면서 그 모양새를 찾아갔다. 이후 ‘Re-genesis(신창세기)’연작을 통해서 불필요한 선과 색은 최소한의 내용으로 수렴되어 갔고, 주제를 향한 집중력이 두드러진다.[9]”
◇옻의 발견 활기를 불어넣는 자개(1999~2005년)=강원도 원주에서 옻칠작업을 하는 작가와 만남에서 영감을 얻는다. 화선지에 옻칠을 해도 큰 효과는 얻지 못하였는데 우연히 깨진 접시위의 흙과 옻으로 어우러진 건칠(乾漆)기법을 보게 된다. 이 시기 원주의 폐교 2층을 작업실로 얻어 삼베에 숯가루, 황토가루, 옻을 섞어 큰 옻칠작품들을 제작하게 된다. 이후 경기도광주 폐교유치원으로 옮겨 종유석가루, 화산재, 달걀껍질, 동, 구리 등 다양한 재료로 확장, 시도하게 된다. “성경에서 회개하고 천국 들어갈 때 세마포를 입는다. 보혈과 흙이 섞이면 영생이라 생각했다. 옻은 유화와도 잘 안 섞이고 오직 자연만 흡수하는 고집스럽고 독특한 성격의 재료였다.[10]” “이정연의 회화는 어떤 생명체로서의 모양을 이루는 그 시초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이정연 자신은 이 뼈와 같은, 대와 같은 모양에 대해서, 그것이 속이 비어있다는 것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공허(空虛)’라는 것이 있다.[11]” “2000년 즈음 작가는 자개가 화면에 또 다른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음을 발견한다. 거친 붓 자국과 촉각적 질감, 정비된 형태와 비정형의 선들, 동양과 서양의 매체와 기법을 넘나들 듯, 작가의 혼성적 화면구성은 경계의 의미를 무효화한다.[12]”
(위 왼쪽부터)Re-Genesis(신창세기), 130.3×162㎝ Mixed Media 2006. 182×116.5㎝, 2009. 70×47㎝, 2010. 72.7×91㎝, 2012. 112×145.5㎝, 2013. (아래 왼쪽부터)Re-Genesis, 131×162㎝ Natural materials on wood with lacquer finish 2023. 130×162㎝, 2023. 160×140㎝, 2022. 122×122㎝, 2023. 56.5×56.5㎝, 2022. 사진=이준호. |
◇칠과 자개로 현대적인 단순한 구성(2019~현재)=손맛을 절제하고 붙여나가는 디자인적인 기법을 반영한다. 옻칠이 아닌 자개와 칠로만 풀어가는 작업이다. 회화적인 것 보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단순한 느낌의 디자인화 된 구성으로 엑기스를 뽑아 낸 것이다. 디자인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익숙했던 사디(SADI) 재직의 영향도 적지 않다. “강렬하고, 역동적이고, 활기차고, 직관적이며, 빼어나다. 한국작가 이정연의 회화 작업은 단번에 보는 이의 시선과 영혼을 사로잡는다. 작가로서 한 걸음씩 나아가며 동시대적 작가 정신으로 주목받게 하고, 동·서양을 오가며 두 세계의 대화를 만들어나가며, 더 나아가 서양의 모더니즘과 동양의 영성을 만나게 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의 발걸음을 보여준다.[16]” “직선과 원, 사각형 등 차가움과 도식적인 기호의 현대문명의 느낌을 반영했다. 현대적 감성으로 풀어 낸 Re-Genesis(신창세기)이다. 이전의 자개, 삼베를 쓰지 않고 나무 위에 페인팅으로 전환했는데 자연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칠보기법의 긁어낸 바탕 위에 공간은 되도록 복잡하지 않은 여백을 많이 사용하고 같은 원(圓)이라도 모두 다른 조형성과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옻칠을 안 하지만 정신성은 그대로 한국적이며 나의 체험적인 기독교적 체험과 영성을 나타내려 노력했다.[17]”
5. 개인전·주요단체전·미술관소장
△주요개인전=2022 카지나 데이 모자이치(LA CASINA DEI MOSAICI, 이탈리아), 2020 나폴리 시립미술관(Palazzo delle arti napoli, 이탈리아), 2019 이정연 회화 40년전(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2015 Steinberg Museum of Art at Hillwood(뉴욕), 2014 Palazzo Tagliaferro Museum(이태리 안도라), 2014 우에노 모리 미술관(上野の森美術館, 일본), 2011 RHEE JEONG-YOEN 초대전(Kips Gallery, NewYork), 2009 이정연 개인전 (CASO,Contemporary Arl Space Osaka, 일본), 2006 이정연 초대전(박영덕화랑), 2001 성곡미술관 초대전, 동산방 초대전, 1999 금호미술관, 1998 공평아트센타, 1990 한국미술관 초대전, 1987 Higgings hall(프랫인스티튜트).△주요단체전=1983 한·독 수교 100주년 기념전(본, 독일), 1992 Seoul/New York 92(한국문화원화랑, 뉴욕), 1994 한국여류작가 8인 초대전(Haenah-Kent,뉴욕), 1999 한국미술의 자생적 지평론(포스코미술관), 2000 한국·불가리아 수교 10주년 기념전(소피아 현대시립미술관, 불가리아), 2016 2회-Incheon Art Platform Exhibftion ha, 2015 제3회 서울미술협회 초대작가전(한전아트센터 갤러리), 2015 예술, 공감의 코드 2015(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초대전), 2005 서울미술대전 초대작가전(서울시립미술관), 2004 Seoul Contemporary Art Exhibition in Rome(이탈리아), 2005 서울미술대전 초대작가전(서울시립미술관), 2022 ‘동음과 이음’전(동덕아트갤러리)
△미술관소장=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금호미술관.
6. 이정연 화론(畵論)
작업실에서 이정연 작가, 2024. 사진=권동철. |
◇내재된 음성에 귀 기울여라!
1984년 8월, 2학기 때 나는 미국 프렛 인스티튜트 대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나는 회화와 판화를 전공하면서 조교를 했고 나중에 판화강사도 경험하게 된다. 대학원시절의 가장 큰 수확은 그곳 학생들의 그림을 만들어 가는 과정 중 처음엔 우습게만 보이던 출발점에서 중간 중간 발전하는 퀄리티를 보면서 내심 놀라웠다.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집중력을 쏟아 나만의 것을 표현해 낼 수 있었다. 당시 나는 판화조교를 하면서 학생들의 작업 뒤처리, 판화에서 쓰는 약품 등 열악한 환경 속에 오랫동안 갇혀 지내게 되면서 건강이 무척 안 좋게 되었다. 이후 컬럼비아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미술교육박사과정을 전공하게 된다. 1989년 바이널헤이븐(Vinalhaven) 섬에 레온 골럽(Leon Golub,1922~2004)의 작품을 판화로 만들어 주는 작업을 하러 판화조수로 1개월간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1928~2018) 화실을 방문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당대 최고화가와 대화하고 직접 작품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화가로서 정상을 향하는 열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1993년 귀국한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 분의 힘에 의해서 더 큰 자유로움을 얻었다. 그러면서 서양화에 대한 이해도 빨랐고 갈 길을 찾은 것이다. 젊은 날엔 변화를 좋아하고 늘 새로운 것을 꿈꾸고 같은 그림이 하나도 없는 것을 약점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월을 견뎌오면서 지금은 그것이 나의 특성이고 장점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경험들에서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는 본인의 음성에 귀 기울면 반드시 자기의 그림이 나온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갖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라! [이정연 화백 작업실에서. 대담정리=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2024.7]
7. 외부링크
화가 이정연‥낙원의 동산 일월의 기운생동(인터뷰)화가 이정연
이정연 회화40년‥한가람미술관
(화가 이정연)신창세기,Re-Genesis
화가 이정연‥우에노 모리미술관
[1] 이정연 작가, 대담: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2024.[2] 김종근 미술평론가, 만남-절대자를 위한 진실한 조형미, 2000.[3] 이정연 작가, 대담: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2024.[4] 저스틴 쇼어(Dr. Justin Schorr), 컬럼비아대 교수, 1992.[5] 김복영 미술평론가, 자아와 세계와 상징들-이정연의 작품세계, 1990.[6] 윤범모 미술평론가-만남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1998.[7] 박영택 미술비평-자연과 의식이 혼재한 풍경, 1999.[8] 오세권 미술평론가, 이정연 작가와의 만남, 1998.[9] 진휘연 미술사가, 은유와 통찰로 빚어낸 에너지의 변조, 2014.[10] 이정연 작가, 대담: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2024.[11] 치바시게오(千葉成夫)미술평론가, 이름 없는 사건, 2001.[12] 진휘연 미술사가, 은유와 통찰로 빚어낸 에너지의 변조, 2014.[13] 와시오 토시히코(ワシオ・トシヒコ)미술평론가, 현대와 전통의 견고한 결합, 2014.[14] 류석우 미술시대 주간, 자아성이 강한 선험적 조형언어, 2014.[15] 로버트 모건(Robert C. Morgan)미술평론가, 영혼을 부여받은 형태들, 2015.[16] 파올라 데 시우시스(Paola de Ciuceis)큐레이터, 신창세기-자연에 대한 찬가, 2022.[17] 이정연 작가, 대담: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