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9 00:50:20

이바라기 노리코

이바라기 노리코
茨木のり子| Noriko Ibaragi
파일:Ibaragi_Noriko.jpg
이름 이바라기 노리코 ([ruby(茨木のり子, ruby=いばらぎ こ)], Noriko Ibaragi)
출생 1926년 6월 12일
오사카부 오사카시
사망 2006년 2월 17일 (향년 79세)
도쿄도 니시토쿄시 히가시후시미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아이치현립 니시오고등여학교[1]
제국여자의학·약학·이학전문학교 약학부
직업 시인, 수필가, 작가
배우자 미우라 야스노부(1950년 - 1975년)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일본시인. 대표작으로 '내가 가장 예뻤을 때(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가 있다.

2. 생애

오사카부 오사카시에서 출생하여 아이치현 니시오시에서 성장했고, 고등여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하여 제국여자의학·약학·이학전문학교 약학부에 진학한다. 상경 후에는 전시 동란에 휘말려 공습 기아 등에 시달리지만 간신히 살아났다. 19세 때 패전을 맞았고, 이듬해 1946년 9월 학교를 앞당겨 졸업한다.

제국극장에서 상영되던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 감화되어 극작가의 길에 뜻을 둔다. 「요미우리신문 제1회 희곡 모집」에서 가작으로 선정되어, 자작동화 2편이 NHK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등 동화작가·각본가로 평가된다.

1949년 의사 미우라 야스노부와 결혼,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쵸(현·도코로자와시)로 옮겨 산다.

집안일을 하면서 시 잡지 「시학」의 투고란 「시학 연구회」에 투고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2편을 투고하였으며, 그 중 1편인 「유소로운 노래」가 선자 무라노 시로 선정되어 1950년 9월호에 게재된다.

1953년 5월에 같은 「시학 연구회」에 투고하고 있던 카와사키 히로시와 함께 동인지 「노」를 창간.[2] 1955년 첫 시집 『대화』 간행.

1975년 기타리연구소 부속병원 의사로 일하던 남편이 간암으로 사망.

1976년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일본에 한국 현대시를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1991년에 『한국현대시선』으로 요미우리문학상(연구·번역 부문)을 수상.

1999년 73세에 간행한 시집 『적극없이』는 같은 해 10월 16일 아사히신문 『천성인어』에서 다뤄져 화제가 되었으며, 시집으로는 이례적으로 15만 부가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6년 2월 17일 지주막하 출혈로 도쿄도 니시토쿄시 히가시후시미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79세.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살다가 19일 찾아온 친척이 침실에서 숨져 있던 것을 발견했다. 생전부터 유서는 준비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쓰루오카시 가모의 정선사에 있는 남편이 잠든 묘지에 묻혔다.

2007년 앞선 남편을 향한 마음을 담은 40여 편의 시가 시집 『세월』로 정리돼 1주기에 맞춰 간행됐다.

3. 여담



[1] 현 니시오고등학교[2] 창간호는 카와사키 히로시·이바라키 노리코의 두 사람만의 동인지였지만, 2호부터는 타니가와 슌타로, 3호부터 요시노 히로시, 후나오카 유지로, 4호부터 미즈오히로시가 참가하고, 그 후에도 나카에 토시오, 토모타케 타츠시, 오오카 신 등 다수의 시인이 참가했다.[3] 당시의 현대 문학 교과서. 우리에게 유명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인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