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11:09:46

이마다 코우지

파일:external/www.sanspo.com/owa15100105010004-p1.jpg
본명 今田耕司이마다 코우지
생년월일 1966년 3월 13일([age(1966-03-13)]세)
출생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직업 게닌, 사회자
소속사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데뷔년도 1985년 개그콤비 더블 호르몬즈(해산)
예풍 만자이, 콩트
혼인여부 미혼
유튜브

1. 인물2. 사회자로서의 이마다 코우지3. 친분관계4. 에피소드
4.1. 결벽증4.2. 노총각4.3. 낮은 개런티
5. 기타

개개의 능력은 몰라도, 종합적인 능력치로 보자면 나보다 이마다가 낫다 - 마츠모토 히토시

화려하진 않고, 최고라고 불리지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재능을 갖춘 게닌. 2016년 2월 현재 맡고있는 레귤러 방송의 수는 9개.

1. 인물

원래는 손으로 익힐 수 있는 기술을 사용하는 직업을 원해서 스시 요리사나 미용사가 되고자 했으나, 피부과 의사로부터 "당신은 피부가 약해서 물을 다루는 직업은 포기하는게 좋다." 하는 충고를 듣고 포기했다. 그렇게 뭔가 할 일 없나 고민하던 중에 요시모토 종합예능학원(현 NSC)을 발견하고 "뭐, 어렸을 적부터 오와라이는 좋아했으니까 이것도 나쁘진 않으려나."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입학을 결정했다.

NSC 4기생으로 입학한 이마다는 동기인 홍콩[1]과 더블 호르몬즈란 콤비를 결성해 츳코미 캐릭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1년만에 콤비는 해산하고[2] 핀게닌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마침 2쵸메극장이 개장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절친한 선배인 다운타운과도 이때 알게 되었다. 하마다 마사토시는 그가 잠시 다녔던 닛세이가쿠엔[3]의 선배였지만, 이마다가 입학하기 전 해에 졸업해서 면식은 없었다. 그마저도 이마다가 탈주 시도를 2번 한 끝에 탈출한 후 자퇴해서 동문조차 아니게 되었다. 자퇴한 후에는 오사카 시내의 불교 사립 재단인 세이후고등학교 정시제 과정에 합격해 세이후고등학교로 입학했다.[4]

이렇게 오사카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1990년에 존경하는 선배 다운타운을 따라 도쿄로 진출.

1995년에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칸무리 방송을 얻게 되고, 토와 테이 프로듀싱으로 앨범도 내고[5], 드라마 출연도 하는 등 인기 게닌으로서 발돋움했다. 2007년부터는 골든타임 대에 칸무리 방송을 얻는 등 확고한 지위를 확보하였다.

2. 사회자로서의 이마다 코우지

일찍부터 핀으로서 활동했기 때문인지 만자이나 콩트 분야에서는 그렇게 특출난 부분이 없지만, 사회자로서는 초일류로 평가받는다. 발군의 토크 능력과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는 순발력, 분야에 구애받지 않는 안정감 등으로 어느 방송에 앉혀놔도 제 몫 이상을 해 준다는 평가를 받는 중. 일본판 신동엽[6]

오리콘에서 주최하는 좋아하는 사회자 랭킹에서는 2015년 10위를 했다. 그런데 2015년에는 상대적으로 새로이 사회자로서 영역을 넓히던 마츠코 디럭스에 우치무라 테루요시, 토코로 죠지, 기타노 다케시 등 관록의 베테랑들이 다시 이름을 올리는 등 사회자 업계에서도 꽤나 선전을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명도에서 밀리는 이마다가 다소 손해를 본 감도 있다. 오히려 도쿄 진출을 노리는 킨키권의 후배 게닌들에게 우치무라의 보조로 참여하라고 독려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업계에서 사회자로서의 이마다의 평가는 대단히 높다. 이를 잘 드러내는 예시가 물의를 빚어 은퇴한 시마다 신스케의 방송 중 상당수를 그가 이어받았다는 것. 개인의 평가야 어쨌던 사회자로서의 역량은 톱 클래스였던 시마다의 방송을 무리 없이 상당수 인계받아서 지금까지 잘 이끌어 오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업계 내 평가를 알 수 있는 수준.

3. 친분관계

4. 에피소드

4.1. 결벽증

연예계에서도 손꼽히는 깔끔떠는 남자. 거의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라 동료나 후배 게닌들로부터 결벽증 에피소드가 여럿 튀어나오고, 본인도 그런 취지의 방송에 나섰을 때는 결벽증 캐릭터를 미는 편이지만 실제론 그 정도까진 아닌데 방송에서 이 소재로 웃기다 보니 본인도 편승한 것뿐이라고 한다. 그래도 일반인에 비하면 심한 편이라고.

4.2. 노총각

오와라이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노총각인데, 본인은 상당히 절실하게 결혼을 원하지만, 후배들은 "이상이 너무 높다"라고 평했다. 게닌보도라는 개그맨들의 소소한 뉴스에 대해 다루는 방송에서 이마다가 원하는 여성상을 뽑아봤는데 조건이 총 39개 항목이었다.

모 후배는 "키 168cm 이상, 피부가 고운 미녀인데다 가능하면 러시아인과의 하프, 술을 좋아하면서 허영심이 없고 친분관계도 깔끔한 여성이라는데, 그런 사람이 있겠냐!!!"라고 절규하기도.

위의 결벽증 항목과 합쳐져서 "이러니 결혼 못하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결혼 못하는 건 자업자득. 그래서인지 아직 결혼하지 않거나 이혼한 코미디언들의 모임인 '얼론회(アーロン会)'의 회장을 맡고 있다.

4.3. 낮은 개런티

추정연봉은 3억 5천만엔 가량. 경력이나 평가, 능력 등에 비하면 적절한 편이지만 건당 개런티는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한다. 즉 그만큼 많은 일을 해서 저정도 버는 것.

상당한 경력에다 지명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당 개런티가 낮은 이유는 본인이 가능하면 높은 개런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유는 "위에 저렇게 대단한 선배들이 명사회자로서 버티고 있는데, 나 정도의 인물이 그 속을 비집고 들어가려면 가능한 한 다양한 방송에 출연을 해야 하니까"라는데, 당연히 많이 출연하기 위해선 가능한 한 출연료가 낮은 쪽이 유리하게 때문에 본인이 적극적으로 출연료 교섭을 낮은 쪽으로 잡는다고 한다.

일본의 장기 경제불황 때문에 방송 제작비가 점점 빡빡해지는 현실상 이런 선택은 오히려 일거리를 늘리는 요소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은 다른 게닌의 대타로 방송에 출연하는 데가와 테츠로의 경우와 유사하다.

5. 기타

2014년 일본 예능에 나온 임수정 폭행 건으로 가스가 도시아키, 시나가와 히로시와 함께 논란이 생겼다. 이후 라디오 등에서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해 다시 논란이 일어났는데, 이마다 코우지는 PD가 예능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진검승부를 해야 한다고 부탁했다는 해명을 했다.[7]

소녀시대 서현의 팬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한국의 걸그룹이나 드라마등에 꽤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고 한국 음식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듯, 출연하는 방송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꽤나 한류 팬인듯한 모습을 보여준다.[8]

이마다를 닮은 여성의 AV(…)가 있어 절대로 검색해서는 안 될 검색어에 등재되어 있다.

2020년부터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유튜브에서는 다-이마(ダーイマ)라는 별명을 쓰면서 Apex 레전드를 플레이하기도 한다. 또한 취미생활이나 맛집 돌아다니는 컨텐츠도 하고 있는데, 오사카에서 공동 MC를 맡은 츠키테이 하치미츠도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같이 밥을 먹기도.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서, 항상 약을 챙기고 다니며 고프로 카메라, 마우스피스, 발모제를 항상 갖고 다닌다. 출장 다녀올 때는 이것저것 많이 챙기는 편이며, 식후 하겐다즈를 굉장히 좋아한다.

의외인 면이 있는데, 도쿄에 진출하는 간사이 코미디언들에게 자신이 아닌 간토 게닌의 대표이자 거물 코미디언 우치무라 테루요시와 엮일 것을 추천한 바 있다. 우치무라가 웃으면 전국적으로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하며, 실제로 치도리도 도쿄 진출 시 우치무라의 프로그램에서 호평을 듣고 잘 나가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마인드 게임의 성우로도 참여했다.


[1] 진짜로 예명이 '홍콩'이다. 2020년 들어 코로나 사태에 맞춰 각종 방송에서 혐한+니혼 스고이 발언을 하는 패널로 대활약하였다.[2] 이후 홍콩은 역시 동기인 이타오 이츠지와 함께 130R이란 콤비를 결성[3] 당시의 닛세이가쿠엔학교라 부를 가치가 없는 일본삼청교육대인지라 2회에 걸친 도주 시도 끝에 기숙사를 탈출하여 자퇴했다.[4] 닛세이가쿠엔 문서에도 나오지만 탈주자라면 쥐 잡듯이 죽도록 패거나 아니면 죽여버리고 입 싹 씻을 수 있을 정도의 막장인데, 어떻게든 살아서 나가겠다는 독종 수준의 의지 덕택에 무사히 탈출하고 자퇴에 성공하면서, 지옥에서 일찍 벗어나는 행운을 겪었다. 이마다 본인도 이런 쇼생크 탈출 스토리를 자신의 생애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회고했다. 닛세이가쿠엔의 지옥 경험을 계기로 근면하게 살기를 결심하면서, 세이후고교에 입학한 뒤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주경야독으로 졸업했다.[5] 활동명은 KOJI1200(코우지 트웰브 헌드레드). 1997년 KOJI-12000으로 바꾸고 1998년까지 활동했으나, 2020년 시점에선 오래전 일이라 그런지 아예 언급되지 않는다.[6] 유재석은 로케가 중심인 무한도전, 런닝맨 등에 출연하는 스타일이고 모범적이고 착한 이미지로 전 세대가 모두 지지하고 호감을 갖고 있는 개그맨이기에 일본과 비교할 수 있는 케이스가 잘 없다. 일본의 게닌들은 보통 짖궂거나 독한 고수위의 토크 및 코미디를 하는 경우가 많고 사생활적으로도 크고 작은 스캔들을 다들 하나씩 달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미지가 비슷한 게닌이라 하면 일본의 국민MC로 불리는 타모리 정도. 타모리는 일본의 전 국민들에게 매우 유명하면서도 별다른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점, 국민 MC로 불린다는 점에서 유재석과 닮았다. 다만, 유재석과는 달리 타모리는 주로 생방송으로 방영하는 스튜디오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7] 문제는 이런 류 방송이 몇 번 더 있었고 그때마다 한국 측 출연 선수들이 꽤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 측 연예인들의 대답은 언제나 "예능이 아니라 진지한 진검승부로 임했다"였지만, 한국 측에서 섭외한 스포츠 선수들은 대부분 "예능이라고 알고 갔는데 다들 너무 진지하게 나와서 당황했다"였다는 것. 즉, 방송국이 일본 개그맨들을 띄우기 위해 서로 다른 정보를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8] 대표적인 모습이 사랑의 불시착의 연예계 팬 모임을 주최하기도 했다. 방송 시기를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당시 방송계에선 한참 한국을 까고 있던 시기였으나, 이미 한류는 일본에서 대세 대중문화를 넘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