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매국노의 원수 자식의 주인공.할아버지가 독립운동자인 UDT 출신의 소방관 '김승일'이었으나 구조활동 중 순직, 이완용의 셋째 아들 '이대일'로 태어났다. UDT 장비 불량으로 부상을 당해서 화풀이로 비리를 신고했더니 청문회가 열리고 해군참모총장 등 고위 제독이 두 자릿수 넘게 짤려 버린 대사건을 일으켰다. 정작 당사자는 내부 고발자인 이상 군대에서 더 버티기 어려우니 부상당한 김에 전역하고 소방관으로 이직했다. 그래서인지 본인은 이 사건에 대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에 대해선 자세히 나오지 않았으나, 보너스 군대 사건 회차의 독백에 의하면 정황상 전두환 정권 당시 최소 영관급 장교로 추정된다.[1]
2. 작중 행적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나기 전의 이대일이란 놈이 일주일에 서너 번 싸움을 하거나, 아녀자를 희롱하거나 상인들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는 등 워낙 많은 사고를 친 지라 미국에 유학 가서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하라는, 사실상 추방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미국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사관학교 입학 자격을 딴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해의 웨스트포인트 추천서를 조지 S. 패튼이 가져가 버려서 어쩔 수 없이 아나폴리스에 입학하게 된다.1901년 기수로 체스터 니미츠, 로열 잉거솔과 동기이며 룸메이트였다. 이때 이대일은 니미츠, 잉거솔이 1901년 기수고 윌리엄 홀시가 선배인 걸 보고 1911년 웨스트포인트 별들의 기수는 알고 있었지만 1900~1902년 아나폴리스 기수는 몰랐기 때문에 1900년대에 일본이 하나님의 분노를 사기라도 했나 의아해했다.[2]
인종차별주의자인 해군장관과 대통령, 대일에게 대놓고 뇌물을 요구하는 비리가 엄청난 해군장관, 대일이 해상 상황이 최악인 것을 여러 번 경고했는데도 무시하고 훈련을 감행해 집단 좌초 사고를 일으킨 무능한 전대장[3] 등 개노답 상관을 연속으로 만나는 등 상관 운이 매우 없고,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적도 매우 많다.
이 시대의 서양인들은 흑인 인권 향상에 힘썼던 아이젠하워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인종차별주의를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지만, 적어도 무시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전공을 세웠는데도 진급을 막는 편협한 짓거리를 하는 놈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다만, 대일에게 있어서 운이 없었던 것은 하필이면 해군의 명령권자 1, 2위인 대통령 우드로 윌슨과 해군장관 조지퍼스 대니얼스가 그 얼마 되지 않는 골수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것이다. 원 역사의 윌슨과 대니얼스는 1910년대 기준으로도 골수 인종차별주의자 소리를 듣던 인간들이다.
다행히 대일이 육상전, 비행전, 프로파간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올렸기에 망정이지 그냥저냥 평범한 장교였으면 트집을 잡아서 강제 전역시켰을 수도 있다. 사실 당대 미국 해군도 예외는 아니라 유색인종도 19세기부터 웨스트포인트에 받아주던 육군과 달리 2차대전 때까지 순혈주의가 매우 강해서 아나폴리스에 유색인종을 아예 안 받아주었고, 이 때문에 1901년 이대일이 아나폴리스 사상 최초로 유색인종 입학생이 되자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나게 괴롭혔는데, 윌슨과 대니얼스 때문에 해군부 사무가 폭발하면서 '피부색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일 잘하는 소가 필요하다'며 완화되었다고(...) 한다.
1차 대전 내내 소령이었는데, 연재 당시 처음에는 그동안 너무 빨리 진급해서 그렇지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 느린 진급은 아니다는 말도 있었으나, 다른 동기들이 중령으로 진급한 게 확인된 이후로는 그냥 상부 때문에 진급 못한 게 정설이 됐다.[4] 오죽하면 1차 대전 당시 유럽 원정군 총사령관 퍼싱이나 42사단장 맥아더 같은 육군 인사들 쪽에서 먼저 대일의 진급을 건의하기도 했는데, 다시 말하자면 땅개가 물개의 진급을 걱정했다는 거다(...).[5] 여기에 해군 장관 조지퍼스 대니얼스는 이 진급 요구에 '해전에서 공을 세운 것이 아니니 진급시킬 수 없다.'고 핑계를 댔다.[6] 그나마 1차대전의 다양한 전공으로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훈장, 프랑스에서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1차 대전 종전 후 대한제국을 일본에게 갖다 바친 것이나 아내를 성희롱한 것 때문에 폭발한 대일이 이 문제 많은 상관들의 비리를 화려하게 터트려서 강제로 교체시키고 난 뒤에야 진급을 정상적으로 하게 됐으며, 해군 항공과 관련해서는 대일이 최고 전문가다 보니 49살에 소장으로 진급해서 항공국장을 맡는다. 또 정보국장으로써 자신의 사기업인 PCDA, 아내가 소유한 AMC가 전 세계에 설립한 설립한 지사나 각종 관계자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국무부보다 PCDA가 수집하는 첩보가 더 많다'는 말까지 나오는 등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한 것을 높이 평가받아 중장으로 진급한다.[7]
윌슨이 날아간 뒤의 대일의 진급속도는 엄청난 고속 승진이다. 당장 태평양 전쟁에서 지휘를 맡은 제독들 중 나이가 비슷한 레이먼드 스프루언스나 체스터 니미츠, 윌리엄 홀시 같은 날고 기는 능력자들조차 아직 대령 또는 소장이다.[8] 윌슨 대통령처럼 대놓고 차별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해도 작중 배경인 1900년대 초중반은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했다. 이 보이지 않는 차별을 뚫고 전시 상황도 아닌 평시에 비슷한 연배의 동기나 선후임 보다 한참 앞서서 진급했다는 것은 평소에 잘 다져 놓은 인맥빨도 있겠지만 대일이 그만큼 노력하고 그에 걸맞은 성과도 엄청나다는 뜻이 된다. 다만 대일은 승선 경력이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고, 황인종이다 보니 이 광속진급에 관해서 해군 내부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FDR 대통령도 이런저런 고민 끝에 대일의 진급을 강행하기로 한다.
2차대전이 발발하고 됭케르크 철수작전이 대실패한 이후 임시 대장으로 진급해서 대서양 함대 총사령관이 된다. 영국이 독일을 막아주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서 일본을 견제하는 태평양 함대보다 함대 규모가 조금 작긴 하지만. 그러다 대서양 함대 총사령관으로 영국에 체재하면서 독일과 이탈리아 해군을 견제하는 임무를 잘 수행한 점이 높게 평가됐는지 정식 대장으로써 태평양 함대 총사령관이 된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등 일본 해군 수뇌부는 대서양 함대 총사령관으로써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대일이 설마 태평양 함대 총사령관 또는 해군참모총장이 되겠냐고 조금 안일하게 생각했지만 대일이 태평양 함대 총사령관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재앙신이 태평양에 강림했다.'면서 기겁한다.
일부 트러블이 있긴 했지만 태평양 전선을 잘 이끌어나간 공을 평가받아서 해군 총사령관으로 영전한다.[9]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킹 본인을 포함해 미군 수뇌부는 사실상 대일이가 진정한 실세라고 보는 모양이다. 얼마 뒤 계급도 원수로 올라갔으며, 종전 직전에 킹이 해군참모총장을 사임해서 해군 총사령관과 해군참모총장을 겸직한다.
원 역사에서는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뒤집어지자 리히가 '최고사령관 참모총장'으로 현역으로 복귀해서 육군과 해군의 균형을 잡지만, 이 소설에서는 대일의 존재로 인해 그렇게 돌아올 기회가 없어져서 킹과 마셜의 의견 차이를 조율하는 것은 대부분 대일이 떠맡고 있다. 당연히 자기보다 높으신 분들이 싸워 대는 것을 막거나 뒤처리 하느라 골치가 아픈 모양. 본인은 2차대전까지만 재임하다가 은퇴 라이프를 즐기는 것이 목표지만 워낙 이것저것 저질러 놓은 것이 많아서 전역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독자들의 평이다.
전후 처리가 대충 끝난 1945년 5월 해군 참모총장을 체스터 니미츠 원수에게, 해군 총사령관을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원수에게 이임하고 은퇴하려고 했지만 루스벨트가 육군부, 해군부를 합친 국방부의 초대 장관을 맡기는 바람에 절망한다. 심지어 첫 업무가 전쟁을 거치면서 천만 명까지 늘어난 미군의 군축이어서 더 골치 아프게 됐다. 대일로 인해 헬창이 된 덕분에 4선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은 FDR이 4선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뒤 후임 대통령으로 맥아더가 취임했는데 여전히 할 일이 많다면서 대일을 국방장관에 유임시켜서 계속 갈려나갈 예정이다.
몇 년 뒤 군축과 미래의 전쟁에 대비한 기본 체제 정비가 마무리되자 사표를 썼지만 국무장관에 취임해버린다. 맥아더 후임 대통령인 아이젠하워도 대일을 국무장관에 유임시켜서 계속 갈려나가다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해방된다. 그래도 한반도에 돌아와 몇십 년 동안 은퇴 생활을 신나게 즐기고 사망 몇 개월 전 해군에서 조지 듀이 원수에 이어 두 번째로 대원수 칭호를 받았다.
미국의 고위직으로 살다 죽었으니 알링턴 국립묘지 안장 자격이 있지만 거의 평생을 미국에서 살았으니 사후에라도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고 유언을 남겨서 시체는 진해의 바다에 수장된다.
명확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의식이 현대로 돌아왔는지 김승일이 올림픽의 유도 금메달을 따는 장면이 에필로그에 나오기도 했다.
3. 성격
3.1. 미 해군의 누렁소
주변 사람들은 '시야가 좁고, 언변이나 처세술도 꽝일 뿐더러 머리가 좋은 녀석은 아니지만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고 성실한 데다가 특유의 끈기, 사람 보는 눈과 용인술, 열정은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평가하고 있다. 독자들 평에 따르면 그냥 타고난 누렁소라고.미래 지식을 바탕으로 재난을 예지(?)하면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부터 구하고 보는, 소위 말하는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타입이다. 그 외에도 대공포를 만들 때도 포 자체는 잘 만들었음에도 사통장치를 빼먹는 등 세부적인 것을 놓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그리고 사건이 대충 마무리되면 뒷수습한다고 무지하게 고생한다.
115명 중에서 6등을 차지한 아나폴리스 성적을 보면 대일의 머리가 그렇게 나쁜 것은 이니지만 하필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어니스트 킹, 윌리엄 리히, 더글라스 멕아더 같은 머리가 좋기로 소문난 사람들이라서 상대적으로 대일이 조금 멍청해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1900년대 당시에도 사관학교에 입학하려면 현역 군인이거나 명예훈장 수훈자의 아들이 아닌 이상 해당 주의 연방상원의원의 추천을 받아야 했고, 정기 시험에서 기준 미달이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퇴교시켰다. 이 경쟁에서 살아남아서 6위까지 올라간 대일이 멍청할 리가 있나. 운빨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해도 기본적인 실력이 받쳐줘야 하는 법이다.
현대에 원자력 미 해군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하이먼 리코버(당시 소령)가 "해군 항공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의 분야에서도 어떤 혁신적인 기술이 개발됐을 때 그 근원을 추적해보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항상 리 제독님이 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심지어 그 막나가는 일본 해군에서 조금이나마 생각이 제대로 박혀있는 항공파에서는 '혁신이 필요하면 리 다이이치(대일의 일본식 이름)의 행보를 관찰하라. 그러면 뭔가는 반드시 찾을 수 있다.'라는 비공식 금언까지 퍼져있다.
대위 시절에는 항해국 소속이었지만 병기국, 함선개발국 등 다른 부서에 팔려다니면서 혼자서 5인분의 일을 한 적도 있다. 대일 본인이 워낙 일을 잘하다 보니 전부 문제 없이 사무를 해냈는데, 평소 대일이 처리하는 사무가 얼마나 많았는지 대통령과 장관이 인종차별 때문에 해군성에서 잠깐 플로리다로 쫓아내자 해군성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항해국은 해군 장교의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이다 보니 해군부 산하의 부서 중에서 힘이 제일 센 곳인데, 대일의 장인이자 해군 대령 출신인 윌리엄 스테이튼은 대령 달 때까지 항해국 근처에 얼씬도 못했다. 이런 부서에 형식상이라고는 해도 겨우 대위였던 대일을 발령시킬 정도이니 해군의 높으신 분들이 대일을 얼마나 높게 평가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노예처럼 살다 보니 한가한 보직을 맡았을 때는 너무 심심하다면서 안 해도 될 일을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대일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떠맡겨버리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두 자릿수가 넘어가는데, 심지어 대령도 대일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 놀라운 것은 당시에 일개 대위였다! 이 사건으로 붙은 별명이 '연쇄유괴범', '노예상인'.
3.2. 기행
대일의 입지쯤 되면 몸을 사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일은 선천적으로 관종끼가 있는지 위험한 짓을 반복한다.[10] 작중에서 너무 시도 때도 없이 기행을 하는 나머지 기행에 작품이 먹혀버린다는 평을 들었을 정도.사관학교 시절에는 2학년의 해육전 미식 축구 경기에서 이긴 뒤 해군 군복을 입은 테디베어가 육군 군복을 입은 테디베어를 소형대포로 쏴버리고, 3학년 해육전에서는 아나폴리스의 마스코트 염소 '빌'을 납치하려고 숨어든 웨스트포인트 학생들에게서[11] 빼앗은 학생복을 밟고 지나가는 짓을 벌이기도 하고, 4학년 해육전에서는 아나폴리스 학생 관객 전원이 대일이 기억해낸 미 해군의 군가를 열창한 뒤, 글렌 커티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몰면서 미국을 상징하는 파란색, 빨간색, 흰색 연기를 뿜어내면서 지나가는 퍼포먼스를 3년 연속으로 벌인다.
사실 테디베어 대포 사건은 원래 반짝이 가루를 흩뿌리는 세레모니를 하려고 했는데, 하필 1g을 1파운드(450g)로 착각한 동료 때문에 그냥 대폭발해 버렸고(...) 이대일은 될 대로 되라고 웨스트포인트 학생들을 놀려서 린치당할 뻔했다. 수만 명의 관중들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희대의 대형사고라서 웨스트포인트 교장이 퇴학을 요구하는 사건까지 일어났지만 작년에 웨스트포인트에게 해육전 경기에서 진 것에 앙심이 있던 아나폴리스는 대일에게 징계만 먹였고 아나폴리스 학생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희대의 노이즈 마케팅 때문에 테디베어는 굉장히 잘 팔렸다고 하는데, 웨스트포인트는 분노에 차서 당시 해군 테디베어를 찢어버린 뒤 해군 테디베어를 대량으로 사서 갈갈이 찢는 걸로 분을 풀고 있었고, 대일의 사진을 표적으로 삼아 쏘았다.(...)
임관한 뒤에도 실제 상황처럼 낙하산 실험한답시고 비행기를 폭파하면서 뛰어내리질 않나, 1차 대전의 유틀란트 해전에서는 목제 비행기로 전함에 급강하 폭격을 하고, 1차 대전이 종전하기 얼마전에는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과 공중전을 하면서 권총으로 근접사격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이런 행동들은 쉽게 무마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과 아내 세레나에게 엄청나게 조인트를 까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각종 돈지랄을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위험한 행동은 부하들에게 시키는 것으로 완화되기는 했다.
그동안 저지른 각종 기행들이 세계 곳곳에 소문이 퍼져서 지중해의 조그만 섬인 몰타 섬에 사는 12살 소년조차 대일이 괴짜라는 것을 알고 있을 정도다.
3.3. 조선 독립운동가
정작 이완용은 불후의 충신으로 이름났건만 이대일은 미국에 이민해 미국인과 결혼하고 조선에는 거의 오지도 않는 지라 매국노 취급당한다는 게 웃음벨. 물론 진짜 매국노는 아니고, PCDA의 자금을 조선에 지원한다거나 나름대로 현대식 군대를 만드는 것을 지원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애국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대표적인 것으로는 조선 멸망이라는 책을 쓴 것이 있다. 대일은 단순히 ''미래에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니까 미리 알고 마음의 준비나 했으면 좋겠다'면서 익명으로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역사를 '조선멸망'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는데, 여기 쓰인 내용이 100% 맞자 돈이 되겠다 싶은 이완용이 연재 신문사를 통째로 사는 방법으로 저작권을 접수해버린다. 일반 민중들도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겠다!'면서 갖가지 방법으로 저항 운동에 나서기 시작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제의 윗대가리들도 조선 멸망의 정보를 입수하고, 저작권자가 이완용이라는 사실을 알자 이완용에게 암살자를 보내고, 역시 조선 멸망의 편집에 연루된 대일의 스승 아펜젤러 선교사를 사살하고, 저항운동자를 대량으로 체포해서 고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완용은 암살자들의 습격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죽을 때까지 일제와 적대할 수밖에 없는 것. 한편 아나폴리스에 재학하고 있다가 대한제국의 혼란한 상황을 전해 들은 대일은 '나 때문에 애먼 사람이 수십만 단위로 피해를 입었다.'면서 자살하기 일보 직전까지 갈 정도로 매우 괴로워했다가 동기들이 '행동을 할 당시에는 아무리 좋은 의도여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고 위로를 해서 겨우겨우 마음을 다잡고, 맞불 작전에 나서기 시작한다.
우선 전생의 김승일 시절에 UDT에서 복무하면서 익혔던 부비트랩과 연막탄 제조법을 조선에 몰래 전달하고, 세레나에게 아펜젤러 선교사 피살사건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게 해서 일본을 애먹게 한다. 그런데 이 사건과 관련해서 아시아 함대가 무력 시위에 들어갔을 당시 대한제국에서는 러일전쟁 중이어서 포진중이던 일본의 연합 함대가 미국의 전함을 러시아 전함으로 착각해서 포격을 하는 바람에 미국도 응사해서 장갑순양함 한 척을 완전히 날려버린다. 이때 포격지휘를 맡은 것이 연합함대의 포격의 충격으로 기절 중이던 포술 장교 대신 관련 지휘권을 행사한 당시 장교 후보생 신분이던 대일. 본인 曰 '태평양의 호크아이'라고.
이 대형사건으로 일본은 미국의 중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본래라면 일본의 승리로 끝나야 할 러일전쟁이 대일이 몇 가지 공작을 편 것만으로 무승부가 됐으니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를 불러온 셈. 어쨌든 애먼 사람이 수십만 단위로 피해를 입었다고는 해도 일제의 대한 제국 침탈에 큰 영향을 미쳤던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비롯해서 일제의 침략과정을 부분적이나마 저지하는 것에 성공했다. 고종의 1차대전 참전 같은 삽질에 친일정권이 세워지면서 빛이 바랬지만. 즉, 사실상 속국이 됐지만 일제가 대한제국을 합병하는 최악의 미래에서는 벗어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4. 능력
4.1. 군사적 능력
전 세계 해군 항공대의 아버지 격인 인물으로, 사관학교 시절부터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비행기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왔고, 항공모함도 대일이 지속적으로 필요성을 주장해서 탄생했으며, 이후에도 항공모함과 해군 항공 관련 신기술이 등장하면 무조건 대일과 관련이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즉, 20세기 해군을 양분하는 항공파의 시조이자 현 수장격인 인물. 다만 발상 자체는 대일이 했지만 윌슨이 홧병으로 죽기 전까지는 소령이어서, 미 해군 항공대 설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못했다. 대일을 대신해서 항공국 설립을 추진했던 것은 윌리엄 A. 모펫 소장이었다.본인의 전공도 상당한데, 오스발트 뵐케, 하인리히 곤터만, 베르너 포스, 프릿츠 루미,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이라는 에이스 파일럿을 다섯이나 잡아냈다. 베르너 포스는 자신을 포함해서 전투기 7대가 동시에 상대했으므로 온전히 자기 힘으로 잡은 것은 아니지만 대단한 것은 사실이다. 이 전공으로 붙은 별명이 에이스 킬러, 스페이드 에이스, 푸른 백작이다.[12]
비행선 격추 5기, 일반 파일럿 격추 25기 등 실로 비범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놓치기 쉬운 부분인데 비행선 격추로 에이스를 딴 인물은 대일이 유일하다. 애초에 당시 비행기보다 더 높이 나는 비행선을 격추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비행선이 군사무기로 활용된 시기가 1차대전 초반이 전부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시 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는 진기록이다. 사실 대일보다 격추 스코어가 월등한 파일럿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렇게 숙련된 파일럿들도 눈먼 총알에 맞거나 정비 불량이거나 실수했다거나 해서 한 방에 훅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대일은 괴물 파일럿을 5명이나 격추시키면서 끝까지 살아남았으니 운이 매우 좋다고 해야 할 듯.
현대 전투기들의 필수 전법인 2인 1조 편대 조직법과 공격시 방어기동인 타치 위브를 개발한 것도 대일이다. 이에 필요한 항공기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 경량화된 공대공 무전기는 (아직 성능이 좀 모자라긴 하지만) 대일 본인이 테슬라에게 사비를 투자해서 만들었다. 덕분에 에이스의 숫자는 좀 줄었지만 파일럿의 생환률이 대폭 증가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군 항공 외길의 커리어를 쌓고 있지만, 전함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어서 미국 최초의 드레드노트급 전함 피어리스의 아이디어를 제공한다거나[13] 표준형 전함의 설계에 관여하기도 한다.
다만 해군 항공의 기초를 닦는 것에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선에서 함선 지휘를 하는 것보다는 후방에서 이런저런 보고서를 쓰는 관료형 장교가 됐다. 본인도 남들도 커리어의 대부분을 워싱턴 D.C.에서 보냈다고 인정할 정도다. 이러다 보니 작중에서는 거의 높으신 분들의 노예(?) 취급이고 이대일 본인도 스프루언스 등을 워싱턴에다 끌어와 꽂아 놓고 노예 취급(...)한다. 독자들의 평에 따르면 스스로 일을 자초하는 누렁소라고...
전투함 지휘를 해본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함선보다도 전투기를 타고 다닌 것이 경력의 대부분이고, 실제 전투함을 지휘한 것은 구축함 함장[14], 구축함 분대장, 구축함 전단장, 항공모함 함장[15]을 맡은 것이 전부인 데다가 하필 구축함 분대장 착임기간에 혼다 곷에서 14척의 구축함 중 9척이 침몰 또는 파손 되는 대형 사고가 일어나서 상부에서 훈련 금지령이 내려와서 전대장으로 승진한 뒤에도 꼼짝도 못했다. 대일 본인도 자신의 승선 경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저런 이론 공부를 하면서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방어 훈련에서 공격 팀을 먼저 찾아내서 섬광탄 폭격을 퍼부은 것을 보면 해군 항공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의 능력은 있는 것 같다.
다만 작중 묘사를 보면 단순한 이론가가 아니라 사무 능력도 상당히 좋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황인이라는 이유로 D.C.의 해군부에서 쫓겨나 플로리다로 강제 전근당했더니 대일이 맡고 있던 해군부의 행정이 동료들에게 다 넘어가자 단체로 비명을 질렀고 스프루언스가 특히 큰 피해를 입어서 대일을 전근 보낸 장관에게 각종 뒷담을 다했다고 한다. 대일의 사무를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대일이 독보적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1차 대전 때 황인이라는 이유로 최전선에 대통령과 장관이 내몰자 해군부에서는 D.C.에서 서류노예로 24시간 내내 굴려도 모자랄 인간을 자꾸 내보내고 있다고 걱정할 지경이었다.(...) 사무 능력이 너무 좋아서 강제로 D.C.의 서류노예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육군의 조지 C. 마셜과 유사점이 있다.[16]
전생에서 UDT 복무를 했던 만큼 해병대의 전술에도 능통하고 전차, 상륙정 등 각종 장비에 관해서도 빠삭할 뿐더러 특수부대 네이비씰 설립, 존 브라우닝에게 의뢰해서 각종 총기를 개발하는 등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도 상당하다. 전차는 포드 모터 컴퍼니가 설립됐을 때부터 대규모 투자금과 전차라는 아이디어를 준 것부터 시작해서 전세계를 항해하는 대백색함대의 항해중에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는 러시아 공학자들을 섭외해 왔고, 1차 대전 중에 프랑스에 방문했을 때 르노 전차 도안을 받아서 포드 사에 넘겼다. 육군이나 해병대 소속이 아니라서 직접적으로 개발 과정과 전술 수립에 관여하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면 '전차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이비씰로 가면 예산이 전혀 내려오지 않아서 각종 비용을 전적으로 대일이 부담했다 보니 대일의 사병이나 다름없는 부대다.[17] 대일이 탱크나 비행기 개발에 열정적이고 해병 특수부대까지 창설했다는 소문은 외국까지 퍼져나갔지만, 행적이 너무나도 괴상하기에 헛소문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4.2. 구조 능력
전생에서 소방관으로 활동했던 덕분에 재난 구조, 후속 조치의 경험이 많다 보니 구조 전문가, 특히 해양 구조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타이타닉호 구조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경험 때문이다.이 점은 나중에 태평양 전쟁 파트에 들어가면서 어마어마한 빛을 발하게 되는데, 이미 유명세가 자자했던 미 해군의 손상통제역량이 훨씬 더 강화된 모양이다. 다만 손상통제관련 매뉴얼의 양이 뻥튀기되었는데, 작중에서 '미 해군에서 손상통제관련 매뉴얼을 전부 읽은 사람은 작성자 대일 리와 (편집자) 어니스트 킹, 그 두 명이 인정한 스프루언스 단 3명이 전부.'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4.3. 전투력
키 190cm, 몸무게 100kg이라는 엄청난 거구를 이용한 육탄전 능력도 수준급이다.[18] 전생의 김승일 시절에는 유도 국가 대표전까지 나간 적도 있다고 하며,[19] 또한 권투도 곧잘 할 줄 알아서 50대의 나이에 10대 후반~20대 초반이라는 팔팔한 나이의 아들을 5번 연속으로 KO 시킨 적도 있고, 50대의 나이로 반자동 소총으로 400m 거리의 표적 9개를 명중시키는 기염을 토한 적도 있다.4.4. 언어 능력
7개 이상의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본인이 조선인이니 한국어는 기본이고, 이완용이 주미 공사로 파견 나갔을 때 대일도 같이 데리고 간 덕에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조선에 귀국하고 난 뒤에는 주조선 러시아 공사 카를 베베르에게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를 배웠고[20], 미국에 유학 와서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을 때 2차대전 종전 후 조선이 독립했을 때 써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중국어와 일본어도 배웠다. 심지어 아나폴리스 재학 시절에는 독일계 미국인 동기인 체스터 니미츠[21]에게 독일어도 배웠고 독일 장교들과도 능숙하게 대화를 할 정도다. 다만 가르쳐 준 사람이 니미츠라서 약간 미국 남부 억양이 느껴지는 독일어인 모양이다.4.5. 재력
태평양상거래개발조합(PCDA)라는 거대 그룹의 소유자로써 어마어마한 부를 쥐고 있는 갑부이기도 하다. '미국 부자 랭킹 20위 안에 들어간다'거나, '캘리포니아의 항공사는 PCDA 산하이거나 대규모 투자를 받았거나 둘 중 하나', 심지어 '전세계 어디를 가든 PCDA 자회사 또는 투자를 받은 회사들의 제품이 보인다.'라는 말까지 나오는 등 대단한 유명인사가 됐다.아나폴리스에 들어갔을 때 이미 PCDA로 많은 돈을 벌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평생 초호화판으로 놀고먹을 수 있는 사람이 왜 군대에서 생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범죄나 스캔같은 문제거리를 전혀 만들지 않는 데다가 20년째 아내만을 바라보는 특이한 사람.'[22] 등 여러모로 괴짜라고 평가하고 있다. 독자들도 PCDA로 돈 잘 벌고 살면 되지 굳이 군대에 기어들어간 걸 보니 타고난 공노비라고 혀를 찼다.
여기에 낙하산 등 각종 실험으로 부숴먹은 비행기 값을 본인 사비로 지불한다던가, 군축으로 인해 엉망이 된 기지와 항공기를 본인 사비를 들여서 새로 장만한다던가, 훈련 비용을 사비로 때운다던가 니콜라 테슬라 같은 유명한 과학자들에게 돈을 쏟아붓는다던가 하는 돈지랄을 매우 자주 벌이고 있다. 어찌 되었든 고위 장교인 데다가 가지고 있는 재산도 엄청나다 보니 무시할 수 없는 지역 유지인데, 미주 한인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대일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이쯤 되면 거만해질 법도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겸손한 성격인 데다가 20세기 기준으로 엄청나게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갖추고 있어서 인종같은 쓸데없는 이유로 남을 차별하는 일도 없다. 일본도 이렇게 잘나가는 대일을 포섭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인생의 목적이 '2차 대전에서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들을 철저하게 날려버리는 것'인 대일은 그냥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을 포섭하려고 몇 번이고 접근해오는 일본 특히 사이토 마코토를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만 높은 임금과 인종차별 타파, 주 40시간 노동 등 시대를 너무 앞선 경영방식이다 보니 예비 공산주의자 취급받고 있으며, 그외에도 이것저것 워낙 다양한 사업을 하다보니 대일을 잘 모르는 사람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군인'이라고 하는 등 일부 사람에게는 위험인물 취급 받고 있다. 하지만 PCDA 설립 초기부터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는 무조건 해고하도록 못 박아 놔서 대놓고 의심하는 인물은 별로 없다. 여기에 원 역사를 알고 있기에 2차 대전 발발 이전까지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는다'면서 파시스트에 호의적인 대부분의 자본가들과는 달리 파시스트들과는 어떤 협력도 하지 않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인간 쓰레기, 깡패 집단이긴 하지만 깡패를 몰아내기 위해 살인마를 불러들이고 싶진 않다.'고.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 지식- 예를 들어 히틀러와 스탈린의 독소 불가침 조약의 비밀 조약의 내용이라던가 굴라그 같은 미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소련의 현실 같은 것을 아내가 소유하고 있는 AMC 소속의 여러 잡지들에 칼럼으로 쓰거나 파시스트들과 싸우고 있는 공산주의자들[23], 반전주의 정치인, 온건 민족주의 정치인들에게 엄청난 자금을 지원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들에게 열심히 엿을 먹이고 있다. 문제는 대일이 엄청난 유명인사이고, 그에 걸맞게 재산과 인맥, 명성이 끝내주긴 하지만 결국은 개인인지라 역사의 흐름에 저항할 수 없어서 파시스트들을 조금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이 한계라는 것이다.
5. 인간관계
인맥이 엄청난데, 애초에 본인 친정부터 조선 기준으로 금수저 가문 출신인 데다 인척들과 친구들도 하나같이 엄청나다.- 본인 친정부터가 조선 기준에서 명문가이며, 이완용도 명문가 출신 고위 관료이다.
- 본인의 아내 세레나 스테이튼은 출판, 언론, 연예계의 큰 손이고, 장인 윌리엄 스테이튼은 '알고 있는 법조계 인사들만 세 자릿수'라는 법조계의 중진이다.
- 장남 제이슨의 장인이 존 J. 퍼싱 육군 원수이다. 원 역사에서 사고로 사망한 딸 메리 퍼싱이 본작에서는 대일의 대처로 살아남았기 때문에 제이슨과 혼인하면서 사돈지간이 되었다.[24] 이 인맥 덕분에 보너스 아미 때 사돈이었던 퍼싱을 보내서 진압이 최루탄 수준으로 끝날 수 있었다.
- 차남 제이크 리의 장인이 니콜라이 2세 황제다. 본작에서는 살아남아 형식적으로 만주국 황제가 되었지만 허수아비라서 정무는 안 하고 캘리포니아에서 와인 농장을 차려서 임페리얼이라는 브랜드의 와인을 팔고 있었는데, 같이 탈출한 러시아 정교회 대주교의 축성까지 받았다나 뭐라나. 금주법 시대에도 재례용 술은 음용이 허가되었다는 핑계로 합법적으로 잘 팔고 있었다.(...) 원래는 혼인할 생각이 없었지만 니콜라이 2세의 4녀 아나스타샤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와 혼인하였다. 당대 유럽에서는 군주제가 폐지되어도 구 군주 가문은 가문의 격을 유지하기 위해 귀천상혼을 엄격히 고수하는 경우가 많지만, 니콜라이 2세와 알릭스 황후 모두 영국 젠트리에 가까운 성격인 데다 딸들의 연애결혼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서 귀천상혼은 별로 신경 쓰지 않다 보니 개연성이 없는 건 아니다.[25]
- 3남 레온의 장인은 조지프 P. 케네디로, 존 F. 케네디의 여동생 로즈마리 케네디와 혼인하였다. 원 역사와 달리 전두엽 절제술은 피했지만 선천적인 지적장애는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 명문가이기는 해도 지적 장애 문제로 혼인하기 힘들었던 로즈마리와 혼인하고 로즈마리를 배려해주는 레온은 케네디家의 입장에서 오히려 은인에 가깝다. 거기다 케네디家는 아일랜드계-가톨릭 가문이라 당대 미국 WASP에게서 '화이트 니그로' 소리를 들으며 차별당하는 가문이었음을 고려하면 동양인 귀족 가문 출신인 이대일과는 어느 정도 상황이 겹치기도 한다. 어니스트 킹이 자신의 딸과 레온을 혼인시키고 싶어했지만 로즈마리와의 혼인 때문에 무산되었는데, 대일은 킹과 사돈 안 되어서 다행이라 안도했다.
- 장녀 아이린의 남편인 하워드 휴즈는 심각한 바람기 때문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아이린이 휴즈를 꽉 쥐고 살아서(...) 허락하였다. 아이린의 성깔 때문에 원 역사처럼 여자 문제가 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대일이 정략결혼을 시키는 게 아닐까' 싶지만 대일 본인은 '범죄자거나 위험한 취미가 있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를 만나든 상관 없긴 하지만 애들이 왜 이렇게 높으신 분들의 자제들만 만나는지 모르겠다.'라면서 투덜거린다.
그 외에도 육군에서는 더글라스 맥아더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이며, 헨리 아놀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조지 S. 패튼, 조지 C. 마셜, 고인이 되긴 했지만 빌리 미첼, 해군에서는 한참 전에 고인이 되긴 했지만 조지 듀이와 절친한 사이였으며[26], 윌리엄 리히, 어니스트 킹, 체스터 니미츠, 윌리엄 홀시,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프랭크 플레처 등 군종을 가리지 않고 친하게 지내는 장교들이 많다. 오죽하면 '해군 장교면서 이렇게 많은 육군 장교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대일이 유일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 스탈린은 인맥과 정치적 입지, 재산, 지위 같은 정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요건을 다 가지고 있는 대일을 중용하는 FDR을 괴짜 취급하며 만약 자신이 상관이었다면 진작에 숙청하고도 남았다고 생각한다.
미래에 어떤 기업이나 사람이 대박날 것인지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PCDA 차원에서 직접 인수하거나 투자한 기업, 연구비를 투자한 기술자나 과학자들이 엄청나게 많다. 물론 이외에도 이래저래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은데 '과장을 조금 보태면 집에 초대한 사람이 거의 네 자리 수'라는 말까지 나온다.
6. 그 외
6.1. 재앙신
예언하는 재앙마다 모두 맞아떨어지는 탓에 졸지에 재앙신 취급을 받게 되었다. 특히 해군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미신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해군 눈에 비치는 대일은 진짜 재앙신이 따로 없을 것이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 지진이 일어난 후 직접 구조에 뛰어들었다. 그 외에 소방관 출신으로서 미리 위험성을 알고 조치를 취한 덕분에 원 역사에서 사고로 사망한 조지프 퍼싱의 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후 퍼싱의 딸과 자신의 아들이 혼인하면서 사돈관계가 되었으며 이 인맥을 이용해 훗날 보너스 군대 때 퍼싱에게 요청해서 퍼싱이 현장에 난입한 덕분에 진압이 최루탄으로 끝날 수 있었다.[27]
-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 타이타닉호 사고를 알고 있던 대일의 사전 조치 때문에 전원 구조는 불가능했지만 대부분을 살리는데 성공하였다. 생존자들을 구출하고 뉴욕으로 귀환했을 때 기자들이 '파멸을 부르는 전령', '타타르의 예언자', '빛의 푸 만추' 등 온갖 희한한 별명이 붙였다.[28] 이 사건을 계기로 유빙 감시단 창설, 정원수가 아니라 배의 무게 단위로 책정되어 있는 구명정 탑재 수 개선 등을 주장했고, 개선에 성공한다. 타이타닉 호에 타고 있던 여러 갑부들과 연줄이 생기고 대규모 투자를 받은 것은 덤.[29]
- 군함 연쇄 침몰 사건
- 관동 대지진 : 장소가 일본이다 보니 구조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일본 해군 고위층에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귀뜸해줬고, 조선인들이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부탁 덕분에 조선인이 입은 피해는 최소한으로 끝났다.
- 대공황 : 쿨리지가 대일의 대공황 예언을 듣고 호황이 있으면 불황도 오기 마련이라 납득,[30] '내 능력으로는 못 막을 것 같으니 행정 잘하는 후버 상공부 장관에게 넘겨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대선을 포기, 원 역사처럼 후버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 때문에 쿨리지는 독자들에게 회피기동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진주만 공습 : 원 역사에서는 1941년 12월에 공격받았지만 소설에서는 1941년 9월에 공격받았다. 그나마 대일이 반년 전부터 끈질기게 경고를 해서 그나마 피해가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시빌라 리'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으며,[31] 미 해군에서는 '대일 리가 경고하면 무조건 들어라. 이득을 보면 봤지 손해를 볼 일은 절대 없다'라는 금언도 있으며 일본에서는 대일을 모델로 인형까지 만들어서 팔고 있다. 가지고 있으면 재앙이 피해간다나... 그런데 히틀러가 대일의 비스크돌을 만들어 사용했더니 무슨 사고가 날 때마다 비스크돌에 금이 가는 등 실제로 효과가 있었고(?!) 히틀러가 2차대전이 일어나자 스스로 비스크돌을 부숴버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6.2. 영국과의 악연
대일 때문에 영국은 여섯 번이나 엿을 먹었다. 물론 대영제국 시절 전 세계에 깽판을 친 전적이 너무 많아서 대일 본인도 영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대 기업의 주인이고, 해군 제독인 입장 때문에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물론 영국 본인의 자업자득인 케이스도 있다.- 첫 번째 : 러일전쟁 중에 대일의 뒷공작 때문에 갑자기 미국이 끼어들어서 영국의 아시아 전략을 엎어버렸다.
- 두 번째 : 영국 해군이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취역시키자 미 해군이 두 달도 안 돼서 이름도 수상할 정도로 비슷한 피어리스라는[32] 전함을 취역시켰다. 이름부터 대놓고 엿을 먹인 것.
- 세 번째 :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기 전에 대일이 세레나가 소유한 AMC 산하의 타임 지에 '타이타닉은 빙산 충돌로 침몰할 것이다,'라는 예고 기사까지 썼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무시했고, 대일이 입을 턴 덕분에 '기동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침몰 현장에 온 미 해군 함대가 구조 작전을 편 덕분에 피해자 수가 대폭 감소했다.
- 네 번째 : 미국이 1차 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앞서 한발 먼저 영국에 도착한 대일이 영국군, 미군을 합해서 제일 먼저 독일 비행선을 격추했는데, 신문 인터뷰에서 '저 느려터진 것이 '나 잡아봐라'하길래 가서 잡았습니다.'라고 했다. 대일은 영국군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느낀 것을 그대로 말한 것이었는데, 최초 격추 기록을 미군에게 뺏긴 영국군이 뭐라고 생각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 다섯 번째 : 영국 대함대 사령관 존 젤리코 제독이 미국 원정 함대 사령관 헨리 T. 마요 제독에게 '대함대를 보조하되, 북해에서는 손을 떼고 지중해 순찰을 해달라'고 하자[33] 열 받은 대일이 '독일 놈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결국 항구로 돌아올 것이니 기다렸다가 공격하자'라는 아이디어를 내놨고, 결국 영국 대함대와 대판 싸운다고 힘이 빠져버린 독일 대양함대는 공격력과 방어력은 몰라도 속도에서 밀리는 미국 함대에게 대판 깨졌다.
- 여섯 번째 : 솜 전투에서 대판 깨진 더글라스 헤이그 영국 육군 원수가 패배에 대한 원인 고찰도 하지 않고 파스샹달 전투를 기획하자 '이 전투는 무조건 망한다!'고 예감한 대일이 미국 원정군 총사령관 존 조지프 퍼싱에게 독감을 핑계로 전투 참여를 거부할 것을 권유했다. 퍼싱은 '혹시 모르니 확인만 해보자'는 태도로 헤이그 원수를 찔러봤지만 대일의 예상대로 정부에 보고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전투에서 빠지는 것에 성공했다. 전투 참여만 거부한 것이지 전투 후 낙오병이나 부상병 구조 작전은 해줬지만. 이 구조 작전의 비공식 지휘관이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타이타닉 호 구조에서 맹활약한 대일이다. 대일이 전투 후 생각하기를 '여기에 미군이 끼어들었다가는 5만에서 10만 정도의 피해가 났을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퍼싱은 미군의 대손실을 막는 것에 큰 공헌을 한 대일을 엄청나게 높게 평가하게 된다.
6.3. 폭탄마
전생에 소방관이었던 주제에 폭탄마 기질이 어마어마하다. 네이비 씰 창설 및 훈련 당시에도 실제로 폭탄을 터트려가며 실전 같은 훈련을 했고, 사실상 전술적 폭격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데다가, 2차 대전에서는 로포텐 전투나 채리엇 작전 등 한 번 전투를 펼칠 때마다 수 톤에서 수십 톤의 폭탄을 신나게 터트린다. 심지어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당시 소방 작전을 시행하는 중에도조차 (불길에 취약한 건물을 통해 더 큰 화염으로 퍼지는 걸 막기 위해지만) 폭탄을 터트려댔다. 오죽하면 어니스트 킹이 '전생이란 게 실제로 있다면 소방관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라고 일축할 정도다.네이비씰이 상부에서 논란 빚은 이유 중에 하나가 대일의 폭탄마 기질이었다. 다만 당대 미국이 워낙 상마초 문화를 갖고 있다 보니 꼭 부정적이게만 여겨지지는 않았던 모양.
좀 더 은유적으로는 독일, 일본, 이탈리아, 소련에서 대일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바람을 불어넣어서 쿠데타가 터졌다.
7. 기타
원 역사의 이완용은 요절한 장남 이승구, 차남 이항구 두 아들만 있었기 때문에 셋째 아들 '이대일'은 본작의 가공인물이다.[34]태생적인 금수저로, 아버지인 이완용부터 명문 양반가 출신에 잘 나가던 고위 관료였고, 작중에서는 이런저런 역사의 나비효과로 인해 아버지와 본인 모두 귀족 작위를 갖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세 나라의 귀족이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 다만 미국에서의 성공은 집안빨보다는 본인의 재능, 행운, 노력이 크게 어우러져 자수성가한 것에 가깝다.
네 아들이 전부 군인이며, 그중 해군항공대의 레온과 해병대의 존이 휘하에 있어서 자식들의 배치와 보직 때문에 이래저래 시끄럽다고 한다. 보통이라면 편하거나 안전한 보직이 되는 것 때문에 말이 나오지만, 대일은 반대로 가장 위험한 작전에 아들들을 밀어넣는 냉혈한으로 소문이 났다. 잉거솔 曰 '스탈린 보다 더하다고...'[35] 장병들 사이에서는 육해(공) 불문하고 '대일의 아들이 있는 전장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말이 나돌며, 심지어 '포로로 잡힐 경우 조국에게 부담을 주느니 차라리 자살하라고 강요할 것이다.'는 말까지 나돈다.
[1] 김승일의 아버지가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였는데 남산에 끌려가서 못 돌아왔다고 생각한 것과 발포 명령을 끝까지 거부했다 커리어가 끝나버렸다는 것을 보아 베트남 전쟁 참전 경력이 있는 나름 잘 나가는 커리어를 갖고 있다가 5.18 민주화운동/학살 거부 때문에 강제 전역, 남산에 끌려가서 고문당하다가 고문치사를 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문에 보너스 군대 때 장남 제이슨이 대위 신분으로 진압을 대놓고 항명하다 패튼에게 두들겨 맞은 걸 알고 처음에는 화를 내려 했지만 아버지 일을 떠올리고 화내지 않았다.[2] 여담으로 본작의 모티브 중 하나인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의 주인공 유진 킴은 웨스트포인트 1911년 별들의 기수에 속하기 때문에 10년 후배이다.[3] 그나마 이 전대장은 사고 후에는 사고의 책임을 자기 혼자 떠맡아서 대일을 비롯한 다른 부하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끔 했다.[4] 이 동료들이 대일보다 별로 전공이 없거나 반쯤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중령으로 진급하는 와중에 일 많이 했던 대일만 소령으로 진급 적체를 당하고 있었다.[5] 미 국방부는 2차대전이 끝나고 난 뒤에 생겼으며 그 전에는 육군을 담당하는 전쟁부, 해군을 담당하는 해군부가 따로 있었다.[6] 이런 진급누락의 반복은 이대일이 윌슨을 날려버리기로 결심한 원인 중 하나가 된다.[7] 대일이 정보국을 지나치게 키우는 바람에 후임 국장이 업무 파악에 애를 먹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는데, 결국 대일이 대서양 함대 사령관 재임 중 정보국을 직속 부하로 써먹을 수 있도록 하는 특권이 주어지고 나서야 어느 정도 정상화된다.[8] 당시의 미 육군에서는 준장 계급이 있었지만 미 해군에는 준장 계급이 없었는지 대일 뿐만 아니라 대령에서 승진하는 모든 사람이 소장으로 임명된다.[9] 워싱턴 해군부에서 대서양 함대와 태평양 함대를 지휘하는 한국 해군의 작전사령관과 비슷한 보직이다. 즉, 미 해군 서열 2위인 셈.[10] 이대일은 독자들에게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의 유진 킴과 자주 비교되는데, 김유진이 이성으로 광기를 감추었다(마셜 曰, 평소에는 자기 능력의 30%를 광기 감추는데 쓴다) 결정적일 때 폭발시켜 다 뒤엎는 원자로라면 이대일은 평소부터 이성 자체가 없이 그냥 늘 터뜨리고 다니는 화약고라는 평을 듣는다.[11] 이걸 고안한 사람의 리더가 막 입학한 헨리 아놀드였는데, 자신이 입학했음에도 대일 때문에 기행이 묻힌 것에 대한 앙심으로(...) 이 일을 벌였다.[12] 푸른 백작은 러시아 황제에게서 받은 명예 백작위를 가지고 있고(원래 자작이었지만 백작으로 승작했다.), 본인의 전투기를 상어 아가리 노즈 아트에 맞춰 파란색으로 도색해놔서 붙은 별명이다.[13] 피어리스가 진수되자 영국 정부에서는 '산업 스파이가 있는 거 아니냐'면서 한바탕 뒤집어졌다고 한다.[14] 이 경력도 조선에 파견 나가서 미 육군, 해군의 기지 건설을 감독했던 것이 주 업무라서 미국과 조선을 왔다 갔다 한 것 빼고는 항해 시간은 전혀 없고, 그 외에는 승무원들이 사고 치지 않도록 관리 감독한 것 정도다.[15] 대공황의 영향으로 벌어진 대규모 군축의 직격타를 맞아서 훈련은 전혀 못했으며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함정과 승무원을 관리했던 것이 주 업무였다.[16] 사실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의 유진 킴도 이렇게 될 뻔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활동하는(...) 대일과 달리 정치 감각이 워낙 탁월해서 잘만 최전선에 나섰다.[17] 실제로 원 역사의 네이비씰을 비롯한 특수부대는 20세기 후반까지 군내에서 상당히 푸대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18] 1901년에 아나폴리스에 들어갔음을 고려하면 그 시대 백인들도 찾아보기 힘든 거구를 동아시아인이 갖고 있었던 것이다.[19] 1차 대전 이전에 대백색함대의 일원으로 일본에 방문했을 당시, 일본의 유도가들을 무패로 이겼다고 언급 된다.[20] 빌헬름 카나리스가 표현하길 굉장히 귀족적인 억양과 표현이 드러나는 모양이다. 성격 때문에 간과되는 건데 대일의 집안 배경을 생각한다면 대일의 억양이 귀족적인 게 정상이다.[21] 니미츠의 고향인 Fredericksburg는 텍사스에서 독일 이민자가 굉장히 많이 사는 지역이었고 니미츠 본인도 독일에 연수를 갈 정도로 독일어를 능숙하게 했다.[22] 당시만 해도 높으신 분들의 양다리가 꽤 흔했다고 한다.[23]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무시하고 반란을 일으킨 프란시스코 프랑코와 싸우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이다.[24]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 112화에 나오지만, 원 역사와 본작 모두 사고로 사망한 당시 퍼싱의 부인이 퍼싱의 20살 연하였다.(...) 대일이 퍼싱보다 20살 넘게 연하임에도 자식들 나이가 비슷했던 게 이 때문이다.[25] 실제로 니콜라이 2세가 딸들을 워낙 자유분방하게 키우다 보니 대체역사물에서도 아나스타샤처럼 계승권과 머리가 먼 케이스는 귀천상혼과 거리가 먼 혼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독자들은 오히려 아나스타샤가 혈우병 보인자 확률이 높다는 것을 더 우려했다.[26] 대일이 해참총장에 임명되면 자신이 쓰던 검을 주라고 유언까지 남겨놨다.[27] 이 과정에서 모슬리 육군참모차장이 진압을 중단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서를 빼돌리는(!) 사고를 쳤는데,(원 역사에서도 일어난 고증이다) 훗날 이게 걸려서 모슬리는 군사재판에 불려나가 처벌받았다.[28] 원 역사에서 푸 만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913년이지만, 1912년부터 단편에서 등장하기는 했다.[29] 원 역사에서 타이타닉호 사고로 사망한 인물들 중에는 21세기 시점에서 봐도 놀랄 정도의 거물들이 많았다. 이들 대부분을 대일이 살려냈기 때문에 도움을 받은 것.[30]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19세기 후반~1920년대까지 미국에서는 공황과 불황을 수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광란의 20년대와 대공황이라는 초특급 호황과 불황의 연타를 맞이했던 것.[31] 카산드라는 아무도 안 들어주지만 대일의 예언은 들어주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는 뜻에서 시빌라로 불린다.[32] 드레드노트는 '두려울 것이 없는', 피어리스는 '두려움을 모르는'이라는 뜻이다.[33] 당시는 그 유명한 갈리폴리 상륙작전이 실패하고 몇 개월 뒤였다. 즉, 말이 순찰이지 자기네들이 실수한 거 대신 처리해달라는 소리다.[34] 작가가 이름의 항렬자를 지키지 않았는데, 이완용은 우봉 이씨 23세손 ○용(用) 항렬이고, 이완용의 아들들은 우봉 이씨 24세손 ○구(九) 항렬이기 때문에 이완용의 아들이라는 설정대로라면 이○구(李○九)라고 지었어야 한다. 같은 이유로 이대일의 아들들은 25세손 병○(丙) 항렬이다.[35] 실제로 스탈린도 야코프를 전방 포병 장교로 밀어넣기는 했지만 대일의 아들들만큼 위험한 최전선은 아니었고 차방 바실리는 내내 후방에서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