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U-18 팀인 매탄고등학교 축구부 소속이었으나, 유럽 진출을 위해 영등포공고로 전학했다. 이후 영등포공고에서 국내 고교대회인 금강대기에서 7경기 16골을 기록하며 대회의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특히, 금강대기에서의 기록은 금강대기라는 대회가 생긴 후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이며 경기를 관람하던 관계자들이 "50년 간은 깨지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이러한 활약 속에 해외 구단과 K리그 구단의 제안이 있었으나, 포르투갈 2부의 CD 마프라로 이적을 했다. 등번호는 17번.
20-21 시즌 리그 개막전에서 후반 37분에 교체투입되어 후반 43분 자신의 유럽 데뷔골을 기록하며 팀의 4-0 대승에 기여했다. 이후로도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꾸준히 출전했고, 프로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본인이 왜 유럽으로 향했는지를 증명했다. 20-21 시즌 기록은 21경기 1골 1도움.
하지만, 다음 시즌인 21-22 시즌에는 이전만큼 많은 기회를 받지는 못했다. 출전을 하더라도 출전 시간을 많이 가져가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고, 컵대회를 제외하면 리그 전반기에는 단 3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허나 지난 20-21 시즌에서의 활약이 괜찮았으며 여전히 어린 나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잠재력이 있는 이광인에게 일부 구단에서 임대 이적을 제의했다.
완전 이적 후 맞이한 22-23 시즌은 이광인에게 의미가 큰 시즌이었다. 4부리그 소속이기는 했지만 2선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지속적으로 출전 시간을 가져감과 동시에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도 기록했다. 이 시즌을 기점으로 장크트파울리의 주전 2선 자원으로 본격적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A팀 콜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23-24 시즌 역시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로 시즌을 소화했다. 발 부상으로 인해 리그 초반에는 경기를 뛰지 못했지만 이내 부상에서 복귀했고,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지난 시즌에 이어 23-24 시즌에도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계약 마지막 시즌이었기에 향후 이광인이 뛸 구단을 찾기 위해서는 이 시즌의 활약이 중요했는데,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