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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04 12: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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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창안3. 상세4. 이론
4.1. 의미를 찾는 길4.2. 의미에의 의지4.3. 차원적 존재론4.4. 특별한 경험적 가치, 사랑

"...인간의 주된 관심이 쾌락을 얻거나 고통을 피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데에 있다는 것은 의미치료의 기본 신조 중의 하나이다. 자기 시련이 어떤 의미를 갖는 상황에서 인간이 기꺼이 그 시련을 견디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빅토르 프랑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p.187

1. 개요

심리치료 기법 중 하나. 어원은 Logos + Therapy다.

2. 창안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유명한 빅토르 프랑클(V.Frankl)이 창안한 기법으로, 실존주의 치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이하게도 상담기법이나 현장의 노하우보다는 이론적 기여가 상당히 많아서,[1] 긍정심리학의 최신 이론들을 짚어가다 보면 프랭클의 의미치료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나 행복 연구의 중요한 이론적 조망 중 하나가 소위 "eudaimonism" 이라고 불리는 의미추구적 행복 이론인데, 이 치료기법은 해당 조망을 기초로 해서 끊임없이 보완되고 재정립되고 있다. 더불어 몰입(flow), 회복탄력성(resilience),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과 같은 최신 이론들을 크게 촉진시키기도 했다.

3. 상세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언,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용

이 치료법의 요체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의미를 찾아낸다면 이겨낼 수 있다" 정도이다. 빅터 프랭클은 이미 나치의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심리학자로서 사람들의 대처와 반응을 관찰했고, 그 자신 역시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처절하리만치 노력하였다.

그에 따르면, 수용소에서 생의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생을 쉽게 포기하거나, 짐승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하거나,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리곤 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썼던 사람들은 일말의 생존의 가능성을 놓지 않았으며, 이것 하나가 그들이 마지막까지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었다. 실제로 그를 비롯한 일부 수용자들은 하루에 한 잔씩 배급되는 가짜 커피 한 잔 중 반을 마시고, 나머지는 옷깃을 찢어 적셔 고양이 세수 및 목욕을 하고,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했다. 사실상 세면을 안한 거나 다름없었지만, SS 대원들은 그런 사람들은 잘 건드리지 않고, 생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그냥 짐승과 같은 몰골과 본능만 남아있는 수용자부터 처리했다. 그들은 유대인은 하등생물이라 세뇌당했지만 그렇게 엉터리 세면이라도 하는 사람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간으로 보였고, 그 인간을 죽임으로서 얻는 심리적 고통을 얻기 꺼렸다. 따라서 본능적으로 그 커피를 다 마셔버리고 몸을 닦지 않는 사람은 짐승과 같은 본능과 몰골로 보였기에, 죽이면서 얻는 죄책감이 덜했기 때문에 먼저 학살한 것이다.

그렇기에 특히 의미치료는 사소한 기분부전이나 소소한 고민들보다는, 그야말로 한 인간을 완전히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 있고 압도할 수 있는 거대한 고통과 충격 앞에서 효과적이다. 다시 말해, 한 인간이 자신의 실존적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만한 가공할 고통, 즉 실존주의 치료에서 말하는 죽음, 고독, 무의미함, 자유와 같은 이슈가 자신을 덮쳐오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애초에 바로 그런 극단적인 상황 속에 내팽개쳐진 한 심리학자가 고민하다가 만들어낸 게 의미치료이니...

그래서, 많은 심리치료들이 고통을 단지 회피하거나 긍정적인 정서를 최대한 많이 경험할 수 있도록 돕지만, 의미치료는 접근 자체가 다르다. 의미치료는 고통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다른 치료법들이 고통을 피하도록 돕는다면, 의미치료는 고통 앞에 당당히 마주해서 그것을 꿋꿋이 버텨내도록 만드는 게 목표다. 치료사든 내담자든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최악의 고통 앞에 마주할 가능성은 엄연히 존재하기에, 누가 누구를 교정해 주고 격려해 주고 그런 거 없다. 그저 똑같은 처지의 인간끼리 만나서, 압도적인 고통 앞에 마주한 채, 그 고통이 가져다 줄 의미를 탐구하는 것뿐이다. 고통을 피해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없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정도는 고통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은 진정한 최악의 고통이 닥쳐왔을 때 속절없이 무너져 버릴 것이다.[2]

빅터 프랭클의 주요 저서 중 하나인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원제는 trotzdem Ja zum Leben sagen. Ein Psychologe erlebt das Konzentrationslager.[3]인데, 처음엔 홀로코스트 생존자 증언록으로 쓰였지만, 이 경험을 통해 의미치료를 고안한 데다 당장 독자들부터가 관련 내용을 원해서 개정을 통해 의미치료를 소개하는 학술서적에 가까운 책이다. 그러나 보다시피 국내 제목에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나지 않도록 번역되었다.

4. 이론

4.1. 의미를 찾는 길

빅터 프랭클은 세가지 방식을 통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고 보았다.

1. 창조적 가치
첫번째 가치는 어떤 일을 하거나 무언가를 만들어냄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가치이다. 이를 창조적 가치라고 하며, 세상에 어떤 일을 행함으로써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책을 쓰거나, 의사로서 환자들을 열심히 치료하는 일, 봉사하는 일과 같이 내가 직접 어떤 일을 행하여 의미를 성취해낼 수 있는 것이다.

2. 경험적 가치
두번째 가치는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의미다. 사랑을 통해 기쁨을 경험하는 일, 지는 노을을 보고 감명을 받는 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수동적이지만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는 가치이자 의미들이다. 특히 사랑은 수동적으로 아주 쉽게 의미를 얻을 수 있는 근원적인 현상에 해당한다고 빅터 프랭클 박사는 말한다.

3. 태도적 가치
세번째 가치는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이다. 바로 로고테라피에서 중요하게 강조하는 '의지의 자유'와 관련된 가치이며, 빅터 프랭클 박사는 피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해 특정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얻게 되는 의미, 즉 태도적 가치를 창조적 가치나 경험적 가치보다 더 우위에 두었고 성취하기 어렵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도의 자유'를 지니고 있어 성취해낼 수 있다고 보았다.

4.2. 의미에의 의지

빅터 프랭클 박사는 심리학을 동기이론이라고 보았다. 즉 무언가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지를 알아보려는 학문이 바로 심리학이라는 것이다. 로고테라피는 빈 제 3심리학파로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어 창시된 심리치료학파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움직이는 동기를 '쾌락에의 의지'로 보았고, 아들러는 우월하려는 욕구(권력에의 의지)를 인간을 움직이는 동기로 보았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움직이는 동기를 '의미에의 의지'로 보았다. 즉 인간이 1차적으로 움직이려 하는 본질적인 동기는 바로 '의미'란 것이다. 사람은 특정한 의미를 위해 쾌락과 권력을 포기할 수 있다.

또한 '무의미의 역설'을 통해 의미는 반드시 존재한다고 단정지었다. '무의미하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반대로 의미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4] 우리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의미를 조각상을 깎듯이 찾아내는 것이다. 이 의미는 개개인마다 유일하고 고유한 것이며 반드시 그 사람만이 실현시켜야 하고 또 그 사람만이 실현시킬 수 있는 의미이다.

4.3. 차원적 존재론

빅터 프랭클은 인간 본성의 이해를 차원적 존재론으로 설명하며,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2차원적 존재가 아니라 몸과 마음과 영으로 이루어진 3차원적인 존재라고 보았다. 차원적 존재론에 따르면 인간의 몸과 마음과 영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인간의 몸과 마음은 영적 차원에서 하나로 통합된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원기둥을 통해 생각해보자. 원기둥은 벽에 옆으로 투사하면 직사각형으로 투사될 수 있고 바닥에 아래로 투사하면 원으로 투사될 수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영적 차원은 다른 한면에서는 신체적인 차원으로, 다른 한 면은 심리적인 차원으로 투사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다른 것은 아니며, 인간의 영적 차원에서 신체적인 차원과 심리적인 차원이 모두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다.
차원적 존재론의 두번째 법칙은 원뿔, 원기둥, 구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세가지를 바닥에 투사하면 모두 다 원형이다. 그러나 3차원에서 보면 셋 다 다른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인간을 2차원의 존재로 바라보면 같은 존재로 보일 수 있다. 3차원의 차원에서 인간을 이해해야지만 비로소 존재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영적이란 것은 존재 그 자체란 의미이다. 빅터 프랭클은 가진 것(having)과 존재하는 것(being)으로 그 차이를 명확히 했다. 몸과 마음은 우리가 가지고 있어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지만, 영은 인간 '존재 자체(being)'이다. 존재 자체인 영은 잃어버릴 수도 없으며 아플 수도, 상처받을 수도 없는 존재이다. 빅터 프랭클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아프거나 상처받지 않는 존재임을 말한다.

4.4. 특별한 경험적 가치, 사랑

로고테라피의 과제 중 하나는 우리 각자가 어떤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하고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창조적 가치를 통해 능동적으로 인격의 유일성과 일회성을 행사할 수 있지만, 수동적인 길로서 보통은 행동을 통해 획득해야하는 것이 거저 굴러들어 오는 길이 있다. 바로 사랑받는 길이다. 사랑받음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이뤄내지 않아도 인간의 유일성과 일회성이 실현된다.
인간 존재는 계단처럼 층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앞서 말했 듯이 인간은 신체적, 정신적, 영적 전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사랑하는 자로서 인격의 여러층에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은 인간의 세가지 차원에 부응하는 사랑의 세가지 태도가 있다고 말했다.
가장 원시적인 태도는 성적 태도다, 상대방의 신체에서 성적 매력을 느끼고 성적 태도를 지닌 사람에게 신체적으로 자극한다. 이런 원시적 태도는 상대방의 가장 바깥 층 밖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런 원시적 태도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형태는 바로 에로티즘(성애)이다. 에로티즘적 태도를 가진 인간은 성적태도를 가진 인간보다 한단계 깊숙히 들어간다. 즉 정신적인 층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소위 사랑에 빠졌다고 할 때의 태도를 말한다. 성적 자극은 상대방의 신체적 특성에서 기인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정신적 특성에서 기인힌다. 상대방의 '유일'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고유한 정신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단순한 성적 태도는 상대방의 육체를 지향하고, 그것이 인간의 가장 바깥층, 신체적인 층에 머문다. 에로티즘은 정신적인 것을 지향해 한층 더 깊이 들어간다. 하지만 에로티즘 역시 상대의 본질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사랑의 세번째 태도, 바로 진정한 사랑만이 상대의 본질로 들어갈 수 있다. 바로 영적 존재로서 상대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유일하고 일회적인 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지향하며, 이런 의미에서 사랑은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에 자극받기보다는 인격적으로 이끌린다. 이럴 때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유일하고 일회적인 영적 인격을 직접적으로 지향한다. 영적 인격은 신체적, 정신적 차원의 배후에 놓여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이 가진 것(having)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being)을 사랑한다. 세번째 형식의 사랑을 하는 자에게는 신체적 유형이나 정신적 특성이 중요하지 않고 비교할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그 자체가 중요하게 된다. 빅터 프랭클은 사랑이 인간 고유의 현상으로, 실존적이며 근원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1] 상담 장면에서 직접적으로 활용할 가이드라인이 취약하다는 점은 실제로 실존주의 치료와 의미치료의 약점이기도 하다.[2] 바로 이 점이 주관적 안녕감(SWB), 즉 웰빙을 중시하는 행복 연구자들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이기도 하다. 의미치료의 관점에서는 웰빙이나 삶의 만족만 좇는 모습은 매우 위태롭고 연약해 보일 수밖에 없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만하다고 말할수 있다: 한 심리학자의 강제수용소 체험에서. 영어판이 Man Searching of Meaning 이다. 원고는 1945년에 쓰여졌지만, 1946년 출판되었다.[4] 자신이 어떤 것에 무의미하다는 의미를 부여하였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