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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삼국지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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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恢
1. 개요2. 행적3. 기타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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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지연의가공인물.

2. 행적

황족으로, 대주(代州)[1]태수로 등장한다. 유비황건적의 난이 끝나고 정주(定州) 중산부(中山府) 안희현(安喜縣)[2]현령[3]직을 받아 부임했다가 장비독우를 버들가지로 팬 일로 도망가게 되었을 때에 독우가 정주태수에게 이 일을 알려 유비 등을 잡게 하자, 대주로 피신한 유비를 유회가 숨겨 주었다. 장거장순 등이 반란을 일으킨 소식을 듣고 유우에게 유비를 추천하는 글을 썼다.

결국 이로 인해 유비는 유우 밑에서 장거, 장순의 난을 토벌하는 것에 참가해 공을 세워 유우 등이 공로를 알렸으며, 또한 유비는 죄를 사면받으면서 공손찬도 유비를 추천해 그가 평원의 현령이 되었다.

3. 기타 창작물

삼국지를 품다에서는 낙양성의 주택가에 살고 있는데, 장비가 독우를 팬 일로 도망다닐 때 유비가 유언에게 피신을 갔지만 독우가 추격을 하자 유언이 유비를 피신시킨 후에 유비가 오자 맞이하는데, 이 때 유언의 서신을 받았다고 언급하면서 유비에게 요새는 거리도 어수선하다면서 자세한 것을 알고 싶다면 낙양성의 방문을 살펴보라고 한다.

유비가 방문을 통해 십상시의 횡포 때문에 거리가 어수선한 것을 보고온 후에는 자신은 이를 바꿀만한 힘이 없다고 하면서 손견구성을 토벌하는 것을 언급하면서 손견을 도우라는 이야기를 한다.

파일:전략유회.png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도 등장하여 유비 3형제를 숨겨주는데 이 곳에 유비의 옛 연인 부용이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유비가 현위를 그만두고 피신할 때 장비가 이 사람이 있는 지역의 고장에서 부자라면서 매우 인정있는 사람이라 늘 2, 30명의 식객이 드나든다고 하면서 이 사람의 집에 가는 것을 권했으며, 관우가 이 사람을 보고 장비에게 이 세상에는 저렇게 도량이 넓은 사람도 있구나라고 했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대주태수로 나와 전부터 유비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만나보니 부드러우면서도 씩씩한 기상이 한층 마음에 들었다고 하며, 그들을 찾는 정주태수의 통문에도 개의치 않고 숨겨줬다.

그런데 장순, 장거의 난이 일어나자 십상시들이 상의해 대주태수 유회가 그들을 진압하는 역할이 맡겨졌으며, 그러면서도 유우가 유주목으로 파견되었다가 유우가 구원을 요청하자 유비를 위한 좋은 기회라 생각해 사람을 보내 유비를 부르면서 유우의 글을 보여줬다가 죄를 씻을 기회라면서 군사 3천을 빌려줘서 유우를 구원하도록 했다.


[1] 이 지명은 삼국지연의가 집필된 시기인 명나라 때에 사용되던 것으로서[4] 이 지역은 후한 시기에는 병주(并州) 태원군(太原郡)과 안문군(雁門郡) 지역에 해당한다. 또한, 후한 ~ 삼국시대의 지명으로 유주(幽州)에 대군(代郡) 대현(代縣)이 있다. 대(代)라는 지명 자체는 춘추시대(代)나라에서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지명이기는 하다.[2] 역시 명나라 때의 지명으로[5] 후한 기준으로는 '기주(冀州) 중산국(中山國) 안희현(安憙縣)' 이 된다.[3] 정사에서는 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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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주'라는 지명은 수나라 때부터 등장한다.[5] '정주'는 북위, '중산부'는 송휘종 때부터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