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혼종어(混種語, Hybrid word)란 서로 다른 기원(종류)을 지닌 형태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를 뜻한다.한국어 단어들은 주로 순우리말, 한자어, 외래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혼종어로의 조합도 이 사이에서 주로 일어난다.
2. 인식
혼종어에 대한 언중들의 일반적인 인식은 썩 좋지 않다. 일단 생소한 혼종어를 보면 '원래대로라면 순수하게 한 종류만 써야 되는데 단어가 이상하게 만들어졌다', '비격식적이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한자어+영어의 조합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인식은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서 혼종어를 '야만적이다'라고 보는 입장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영어 위키백과의 Barbarism 문서를 참고할 수 있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표준어 어휘 중에도 혼종어는 꽤 많은 편이다.대체하기 어려운 어휘이거나 어휘의 외래어적 이질성이 줄어든 귀화어인 경우 이러한 거부감은 좀 더 약하다. 예를 들어 페트병 같은 단어는 혼종어이긴 하지만 'PET'를 뭐 어떻게 한자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1] 별 수 없이 쓸 수밖에 없다. 외래어여도 그 외래어와의 교류가 깊어 원래부터 그 종류의 어휘들이 다른 범주와 폭넓게 같이 쓰였다면 이때에도 거부감은 약하다. 일례로 종이컵이라는 단어도 컵이라는 영단어가 매우 대중화되었기 때문에 별 위화감이 없다. 사실 이 경우의 대표적인 예시는 빵인데 빵이라는 단어는 포르투갈어에서 들어온 명백한 서양 외래어지만 제빵, 빵식 등 아예 한자어인 것처럼 대놓고 섞는 용례가 일상에서 매우 자주 보인다.
생소한 외래어 범주일 경우 범주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기도 어렵다. 예컨대 한자어+영어라면 대체로 혼합을 인지할 수 있지만 프랑스어+영어는 (한국인 기준으로) 그만큼 혼합을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신조어는 격식성이 낮아 이러한 거부감의 영향을 좀 덜 받는 편이다. 근래의 신조어, 특히 인터넷 신조어들은 혼종어가 많다. 가령 핵노잼 같은 단어는 '核+no+재미'로 순우리말, 한자어, 영어가 모두 들어갔다.
3. 일본어에서
일본어는 단어 기원에 따라 고유어는 히라가나, 한자어는 한자, 외래어는 가타카나로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혼종어가 표기상으로도 여러 문자가 사용되는 현상을 보인다.[2]일본 한자 읽기에서 하나의 한자어인데 음독/훈독을 섞어읽는 것 역시 엄밀히 치자면 혼종어라고 할 수 있다. 두 글자에서 앞부분이 훈독이고 뒷부분이 음독인 것을 湯桶読み(유토요미)[3]라고 하고 반대로 앞부분이 음독이고 뒷부분이 훈독인 것을 重箱読み(주바코요미)[4]라고 한다.[5][6] '音読み(음독)'와 '訓読み(훈독)'도 重箱読み이다.[7]
4. 예시 (3종류 이상)
2종의 단어범주가 섞인 것은 워낙 많아 다 나열하기 어렵다. 여기서는 3개 이상의 단어 범주가 합쳐진 특이한 예만을 싣는다. 한국어는 주로 순우리말, 한자어, 영어 외래어 3개 범주로 구성되어있기에 4개 이상의 단어 범주가 합쳐진 혼종어는 실현되기도 어려운 편이다.5. 여담
- 2016년 서울시 7급 국어 문제에서 혼종어가 나온 적이 있다.[8]혼종어로만 나열된 것은?① 각각, 무진장, 유야무야② 과연, 급기야, 막무가내③ 의자, 도대체, 언감생심④ 양파, 고자질, 가지각색
- 유사한 어휘로 혼종이 있다.
- 비슷해 보이는 혼성어(混成語, portmanteau/blend)는 다른 개념이다. 혼성어는 smoke+fog=smog(스모그)처럼 단어의 일부가 절단된 뒤 혼합되어 생겨난(혼+성) 단어를 뜻한다. 다만 둘 다 비격식 신조어에 자주 쓰인다는 공통점이 있어 혼성어이면서 혼종어인 예가 종종 보인다.
- 혼종어에서는 겹말이 자주 발생하곤 한다. 의미 투명성이 낮은 범주의 단어를 음차하면서 좀 더 의미 투명성이 높은 범주의 단어를 덧붙여 이해를 도우려는 것이다. 가령 살사 소스라는 표현에서 '살사'와 '소스'는 의미가 같으며 동원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살사'라는 스페인어 단어는 의미 투명성이 낮기 때문에[9] '소스'라는 보다 의미 투명성이 높은 영어 단어를 덧붙여 겹말을 만든 것이다. 특히 로마자 두문자어는 의미 투명성이 매우 낮아 두문자어에 이미 들어간 단어를 또 넣는 일이 흔하다. 'MRI 영상' 등이 그 예로, '이미지'라는 단어는 'I'로 축약되어 버린 탓에 이를 인식하기 매우 어렵기에 '영상'이 또 들어간 것이다.[10]
6. 외부 링크
- 영어 위키백과 Hybrid word 문서: 영어의 혼종어 예를 들고 있다. 주로 그리스어 어근 + 라틴어 어근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이런 혼종어들은 특히 학술 용어에서 매우 흔한 편이다. 영어 학술 용어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 범주가 그리스어/라틴어로 양분되어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11] "둘"을 의미하는 단어로 그리스어 어근 'di-'가 아닌 라틴어 어근 'bi-'를 써서 혼종어가 되는 사례가 꽤 보인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인 눈에는 그냥 다 영어(...)로 보이기 때문에 혼종어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1] 한국어보다 많은 어휘를 자국 고유어로 번역하는 중국어로도 PET병은 寶特瓶으로 음역한다.[2] 다만 고유어여도 한자로 적어 훈독하는 사례, 순수한 한자어라도 일부를 가나로 쓰는 가나 혼용의 사례도 있다.[3] '湯'가 훈인 'ゆ', '桶'가 음인 'とう'로 읽혀서 그렇다.[4] '重'가 음인 'じゅう', '箱'가 훈인 'ばこ(본래 'はこ'이지만 연탁으로 'ばこ'이다.)'로 읽혀서 그렇다.[5] 해당 개념을 가리키는 용어 각각이 해당 개념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자기정합어라고 할 수 있다.[6] 여담으로 湯桶는 전통 일본에서 목욕할 때 자주 쓰는 동그란 나무 통이고 重箱는 음식 같은 걸 담는 네모난 찬합이다. 重箱에는 장어덮밥(우나기동) 같은 걸 담기도 하는데 이를 특별히 うな重(우나주)라고 구별해서 부르기도 한다.[7] 오쿠리가나 み가 없는 音読, 訓読는 각각 おんどく, くんどく라고도 읽을 수 있는데, 이는 평범한 음독이다.[8] 참고로 정답은 4번. 양파(洋파), 고자질(告者질), 가지각색(가지各色)은 모두 한자어 + 고유어의 혼종어들이다.[9] 쉽게 말해 '살사'라는 단어를 보고 "소스"라는 의미를 해석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영어에 비해 스페인어 습득자는 한국에 비교적 소수이기 때문이다.[10] 겹말 문서에서 다루듯 이러한 두문자어의 겹말을 RAS 신드롬이라고 한다. RAS 역시 redundant acronym syndrome의 약자로, '신드롬'이 2번 들어가 그 단어조차도 두문자어 겹말이다. 자기정합어인 셈이다.[11] 한편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학술 용어로 쓰이는 단어 범주로 한자어만이 단독 우세를 보이고 있어 이런 현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