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심곡서원의 전경 |
대한민국 사적 제530호 | |
<colbgcolor=#315288> 용인 심곡서원 龍仁 深谷書院 | Simgokseowon Confucian Academy, Youngin | |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
수량 / 면적 | 14,160㎡ |
지정연도 | 2015년 1월 28일 |
설립시기 | 1650년 |
소유자 | 심곡학원 |
관리자 (관리단체) | 심곡학원 |
1. 개요
용인 심곡서원은 조선 중기 중종 대의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정암 조광조 선생의 뜻을 기리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세운 서원이다.2. 역사
정암 조광조 선생은 훈구파로 인해 혼란해지자 견제가 필요했던 중종이 등용한 사림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급진적인 사회개혁을 추진하다 주초위왕으로 유명한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고 죽게 됐다.그뒤 효종 원년(1650)에 조광조 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심곡이란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하사하며 서원을 설립하게 됐다. 이로 인해 서액서원이 됐다.
1935년에 작성된 심곡서원중건기와 심곡서원도 등의 자료를 참고하면 심곡서원에는 사당과 동, 서재가 최초에 건축됐고, 후에 강당이 세워졌으며, 현재의 연지 인근에 임심루, 산앙재, 문향각 등이 건축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초의 동, 서재는 현재 강당 뒤편에 있는 치사재와 정서각의 위치로 추정되며, 이후 현재 복원되어 있는 곳에 동, 서재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 서재는 문정중학교의 부석 건물로 활용되다 철거되었다.
심곡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집권시기(1864~ 1873) 동안에 내려진 서폐령[1] 때에도 무사했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다.
1972년 5월 4일 경기도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2015년 1월 28일 사적 제 530호로 지정됐다.
3. 구조
심곡서원 입구의 홍살문과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우[2]가 거의 일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강당은 서원 내의 행사를 치르고 유림들이 회의와 학문을 토론하던 곳이며, 각 칸마다 널문을 달아 사면을 전부 열 수 있게 했다. 또한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강당 내에는 숙종의 어제어필이 써진 현판과 심곡서원의 규약 등이 걸려 있다.강당을 기준으로 남동쪽에는 서원의 책과 문서가 보관된 일종의 도서관인 장서각이 있고, 남서쪽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이자 배향객들의 숙소인 고직사가 있다. 강당의 북쪽에 위치한 사당은 심곡서원의 건물 중 보존상태가 가장 높은 건물로 앞면에 트인 퇴칸[3]이 있으며, 옆면과 뒷면엔 화재를 방비하기 위해 만든 화방벽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사당 내에는 정암 조광조 선생과 학포 양팽손[4] 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았으며, 내삼문은 3칸의 솟을대문 형식이다.
심곡서원은 최초엔 사당을 중심으로 제향기능을 강조하며 지어졌고, 이후 앞쪽에 강당을 두고 뒤편에 재사[5]를 두는 전당후재(前堂後齋)의 모습을 보였고, 심곡서원도가 그려진 시기에 압서서 전재후당(前齋後堂)의 공간구성을 보이고 있음을 옛 자료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4. 교통
5. 여담
-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중정일(中丁日)에 향사를 올리고 있다.
- 2020년 5차 발굴조사에서 장서각 남쪽 건물지의 원형을 찾던 중 정사각형의 연못과 도수로, 출수로를 발굴했다.
- 2021년 용인시는 심곡서원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심곡서원의 원형복원과 보존, 활용에 대해 기초자료 확보를 위해 2004년부터 발굴조사를 시행했다.
- 2022년 말 용인시가 165억을 들여 심곡서원역사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을 본격 착수했다.
- 1953년 심곡학원이 설립되고 문정중학교를 개교하면서 용인 심곡서원의 강당 등 일부 건물 내부가 개조되고 동·서재가 철거되는 등 원래의 모습에서 변형되었고 1958년 문정중학교는 심곡서원 자리에서 풍덕천동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