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桶川ストーカー殺人事件사건 재현 영상
1999년 10월 26일 일본 사이타마현 오케가와시에 위치한 JR 타카사키선 오케가와역 앞에서 여대생 이노 시오리(猪野詩織, 당시 21세)가 전 남자친구 코마츠 카즈토(小松和人, 당시 27세)와 그 형 코마츠 타케시(小松武史, 당시 32세), 형제의 사주를 받은 쿠보타 요시후미(久保田祥史, 당시 34세), 이토 요시타카(伊藤嘉孝, 당시 32세), 카와가미 사토시(川上聡, 당시 31세)에게 살해당한 사건.
피해자인 이노 시오리는 1999년 1월 가해자 코마츠 카즈토와 게임 센터에서 우연히 만나 교제를 시작했지만 코마츠 카즈토는 본명을 숨기고 가명을 사용했으며 나이는 3살 속였고 직업도 외제차 딜러라고 꾸며내었다. 본래의 직업은 이케부쿠로에 허가를 내지 않은 불법 패션헬스(=유흥업소) 경영자였고 형[1]도 동업자였다. 살해를 사주받은 쿠보타 요시후미는 그들이 경영하던 가게의 사장으로 두 형제에게 2천만 엔을 받고 살해를 저질렀다.
이 사건 이전에도 일본에서 스토커라는 단어는 TV와 드라마 등에서 자주 사용되었지만, 실제로 스토커 때문에 살인이 일어났음이 명확히 드러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었다.
2. 가해자의 행위
가해자는 거짓말을 일삼다가 피해자에게 들키자 돌변했다.- 고가의 선물을 일방적으로 보내고 피해자가 "이렇게 비싼 것은 받을 수 없다."며 거절하자 폭력을 휘둘렀다.
- 피해자가 가해자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실내에서 몰래 촬영했는데 그걸 지적하자 적반하장으로 "여태껏 선물한 것들을 풍속에서 일해서 갚아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밝히겠다."고 협박했다.
- 30분 단위로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전화하고 "개와 산책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나보다 개가 더 중요한 것 같으니 그 개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 피해자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피해자의 자택과 친구에게까지 전화를 걸었다. 피해자가 먼저 전화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었고 흥신소를 통해 피해자의 정보를 캐내거나 그 지인들에게 금품을 뿌려 피해자의 사적인 정보까지 파헤쳤다.
- 피해자에게 "넌 나하고밖에 사귈 수 없으니 그 결의를 제대로 보여라."고 명령하면서 휴대전화를 2개 가지고 다니도록 했다.
피해자는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집착에 공포를 느껴 이별하고자 했지만 "넌 2000년을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다.", "부친의 회사를 관두게 해주겠다.", "가족을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교제를 이어갔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살해되기 4개월 전부터 가해자에게 스토커 피해를 당하였다. 피해사실을 사이타마현 경찰서에 몇 번이고 신고하고 가해자를 고소하기까지 했지만 경찰들은 제대로 받아주기는커녕 고소를 없는 것으로 하려고 수작을 부렸다. 피해자는 위험을 느껴 유서를 쓰거나 주변인들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라는 암시를 전했고 내가 만약 죽으면 범인은 반드시 코마츠 카즈토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집요하고 끔찍한 스토커 짓을 견디면서 살해되는 당일 아침까지 대학에 통학했다.
결국 피해자는 1999년 10월 26일 오케가와역 슈퍼 1층 출입구에서 가해자가 찌른 흉기에 오른쪽 가슴과 허리를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대낮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가해자들은 금방 도주했다.
3. 범죄 행각과 경찰의 대응
- 6월 13일 - 가해자 일당이 아게오시에 있었던 피해자의 집으로 억지로 들어가 피해자를 협박하여 5백만 엔을 요구했지만 피해자 아버지가 "경찰이 있는 곳에서 말하라."며 거부하자 "회사에 내용증명서를 보낼 테니 그리 알라."며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가해자는 일당에게 "성공보수를 줄 테니 피해자의 섹스 테이프를 찍어 뿌려버리자."고 이야기했다.
- 6월 15~16일 - 피해자는 아버지와 함께 앞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테이프를 들고 아게오 경찰서(이하 아게오서)로 찾아갔지만 '민사불개입'이라는 이유로 쫓겨났다. 이후 피해자 집에 말 없이 끊기는 전화가 걸려왔으며 가해자는 풍속점의 점장 쿠보타 요시후미에게 피해자를 죽이라고 사주했다.
- 7월 13일 - 피해자 자택 주변과 학교에 본명과 사진을 실은 'WANTED', '하늘을 대신해 벌줄 거야!'라는 내용으로 비방 찌라시가 뿌려졌으며 인터넷에 피해자의 사진과 전화번호와 함께 '남자 모집'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 7월 29일 - 잇다른 괴롭힘에 피해자는 재차 아게오서에 찾아가 명예훼손으로 고소장을 제출했으나 경찰은 "선물을 받았으니까...", "남녀 사이 문제라 개입할 수 없다."며 변명하고 찌라시를 보면서 "좋은 종이를 썼네요"라는 소리나 지껄이는 등 무신경의 극치인 대응을 반복했다.
- 8월 23~24일 - 피해자 아버지의 직장으로 사실과 무관한 비방 찌라시가 8백 통이나 도착했다.
- 9월 7일 - 아게오서는 피해자가 쓴 고소장을 마음대로 고쳐 썼고 증거품인 찌라시도 몰래 없애 버렸다.
- 9월 21일 - 아게오서 수사반장이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고소장을 취하할 수 없습니까? 한 번 취하해도 다시 신청할 수 있어요." 하며 고소취하를 요구했다. 한 번 취하한 고소장은 다시 낼 수 없으므로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어머니는 항의했지만 결국 서는 제멋대로 고소장을 취하해 버리고 말았다.
- 10일 16일 - 심야에 피해자 자택 앞에 커다란 소리를 울려대는 차 2대가 나타났다. 신고했지만 경찰차가 오기 전에 도주했다.
- 10월 23일 -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자택 앞에서 망을 보다 오후 12시 5분경 오케가와역에 내린 피해자를 살해하고 도주했다.
아게오서 측은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로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 피해자가 끝내 살해당하는 참극이 벌어진 후에도 대책본부를 설치하기는 했지만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어 이렇게 되었다는 뉘앙스로 기자회견을 하며 웃는 얼굴로 발표하면서 더더욱 까임의 대상이 되었다.
또 사건 당시 피해자의 옷차림이 '가방은 프라다, 시계는 구찌'라는 등 의도적으로 피해자의 이미지를 왜곡하는 설명을 덧붙였고 매스컴에서는 살에 살을 덧붙여 피해자를 '명품중독녀', '풍속업(=유흥업소) 종사자'라는 식으로 거짓된 루머를 보도하는 등 피해자의 명예를 짓밟고 유족들에게 2차적인 피해를 주었다. 이러한 경찰과 미디어의 행태에 분노한 피해자의 아버지인 이노 켄이치는 "가해자와 경찰 그리고 미디어가 내 딸을 죽인 것이다. 내 딸은 세 번 죽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4. 경찰서의 처벌
이 사건이 크게 알려진 것은 FOCUS지의 시미즈 키요시(清水潔)라는 기자 덕분이었다. 시미즈는 피해자의 유족에게 사건에 대한 증언을 듣고 충격을 받아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였다. 사이타마현과 아게오서가 무책임하게 사건을 대하고 조사했음을 지적하는 기사가 나오고 테레비 아사히 '더 스쿠프'에서도 사건이 방송되어 국회에서도 언급되었다. 사이타마현 경찰은 이 일에 대해 사죄, 아게오서 경찰 3명[2]이 징계를 받고 면직되었고 집행유예 3년 징역형을 내려졌으며 상관 5명의 월급 1~4개월분이 5~10% 감봉되었다.아게오서에서 피해자에게 무책임하게 대응했던 수사반장은 사건 이후 교통과로 좌천되었는데 사건 당시 (다른 사건 때문에) 같은 직장 동료를 협박해 체포되었다가 아게오서 차장이 살던 맨션에 방화를 저질러 다시 체포되었고 옥중에서 자살하는 한심하고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것에 불만을 품은 다른 형사도 이후에 자살했다는 말이 있다.
일본 시민들은 경찰과 매스컴을 향해 비난과 분노를 표했다(그러나 당시의 대중들도 문제였는데 피해자인 시오리를 조롱하고 차마 들을 수 없는 발언을 하였음) '민사불개입'이라는 이유로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을 막지 못한 경찰의 대응과 법의 부조리를 개선하기 위해 스토커 규제법이 제정되기까지 하였다. 이 사건은 2002년 니혼 테레비 '슈퍼 TV 정보 최전선'과 2003년 테레비 아사히 계열의 '토요 와이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드라마화되었고 2012년 '더 세계 기절초풍 뉴스!!'에서 재조명 후 또 다시 화제가 되면서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3]
5. 가해자의 처벌
12월 19일, 살해를 실행한 쿠보타 요시후미가 체포됐다. 주범에게 사주받지 않았다면 피해자를 만날 일이 없었으며 주범인 코마츠 카즈토의 공격성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받아 징역 18년을 선고받았고 공범 2명은 징역 15년이 확정되었다. 형 코마츠 타케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피해자를 끝까지 고통스럽게 한 주범 코마츠 카즈토는 도주 상태로 지명수배되었다. 오키나와에 숨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실제로는 홋카이도로 도피했다가 27일 굿샤로호(屈斜路湖)에 몸을 던져 자살하면서 끝내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은 채 지옥으로 도망쳤다.
코마츠 카즈토가 남긴 유서에는 부모에게 “나를 실종 신고하고 법적 사망이 인정되면 보험금을 보내 달라“고 적어 놓았고 러시아로 밀항할 생각이었으나 결국 밀항을 포기하고 자살했으며 뿐만 아니라 피해자나 유족에 대한 사죄는 일절 없었고 끝까지 피해자를 탓하면서 자기는 억울하다고 써 놨다.어이없는 점은 주범이 수배받은 혐의가 살해 사주가 아닌 명예훼손이었다는 것이다.[4]
쿠보타 요시후미는 2017년에, 그의 공범 2명은 2014년에 각각 만기 출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