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에 사용되는 성씨에 대한 내용은 오와리(성씨) 문서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
기나이 畿内 | ||||
도산도 東山道 | ||||
[가] 무츠국에서 분리: | ||||
[나] 데와국에서 분리: | ||||
산인도 山陰道 | ||||
산요도 山陽道 | ||||
율령국 외 | ||||
율령국 외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지도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 | }}}}}}}}} |
[ruby(尾, ruby=お)][ruby(張, ruby=わり)][ruby(国, ruby=のくに)] 尾張國 / 오와리국 | |
기본 정보 | |
별칭 | 비슈([ruby(尾, ruby=び)][ruby(州, ruby=しゅう)]) |
소속 | 도카이도 |
현재 영역 | 아이치현 서부 |
국력 | 상국(上国) |
행정구역 | 8군 69향 |
주요 시설 | |
코후 | 미에현 이나자와시 |
코쿠분지 | 오와리 코쿠분지([ruby(尾張国分寺, ruby=おわりこくぶんじ)]) |
코쿠분니지 | 아이치현 이나자와시추정 |
이치노미야 | 마스미다 신사 ([ruby(真清田神社, ruby=ますみだじんじゃ)]) 오미와 신사 ([ruby(大神神社, ruby=おおみわじんじゃ)]) |
[clearfix]
1. 개요
오와리국([ruby(尾張国, ruby=おわりのくに)], 구자체: [ruby(尾張國, ruby=をはりのくに)])은 도카이도에 속한 율령국이다. 7세기 무렵부터 이 지명이 기록된 내용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 아이치현 서부 일대에 해당하며, 나고야시 일대가 이 지역에 해당한다. 별칭은 비슈(尾州)이다.2. 역사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일본 센고쿠 시대의 쟁쟁한 인물이 여기 출신이다. 3개 하천 하류에 형성된 비옥한 노비(濃尾) 평야가 있어 쌀 수확량이 매우 높았고, 혼슈 동부에서 교토로 가는 길목이라 교통이 좋아 자연스레 상업이 발달하여, 다른 지방과 비교하면 꽤 살기 좋은 축에 속했다고 한다. 센고쿠시대 당시 농민봉기가 빈번하게 일어나던 우에스기 겐신의 에치고국이나 다케다 신겐의 카이국 오닌의 난 이후 쑥대밭이 되어버린 킨키 일대에 비하면 확실히 살기 좋은 땅이었다. 따라서 타 지방보다 먹고 살 만하니 악바리가 약해, 오와리 병사는 3명이 뭉쳐야 미카와국 병사 1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1] 여기에다 카이국[2] 병사는 미카와 병사보다 강하다는 속설도 생겨났다. 다케다가 오다와 교전 중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코요군감에도 오와리 병사는 약병(弱兵)이었으나 이마가와의 동국[3] 무사와 싸우면서 단련되었다고 서술한 부분이 있다. 오다의 병사가 약탈품을 둘러싸고 도쿠가와의 병사와 싸우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도쿠가와의 병사에게 깨졌다는 기록이 있다는 걸 보면 그냥 낭설은 아닌 것 같다.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에도 막부가 세워지면서 오와리 일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4남인 마츠다이라 타다요시의 차지가 되고 오와리는 본성의 이름을 따 키요스 번으로 개명한다. 그러나 1607년에 타다요시가 28세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대가 끊기게 되자 당시 고슈 번주이자 이에야스의 9남인 요시나오가 오와리로 전봉되면서 오와리 번으로 다시 개명했다. 이 요시나오의 가계가 에도 막부의 고산케(御三家)중 필두인 오와리 도쿠가와 가로서, 이 시기 이후 본성이 키요스 성에서 나고야 성으로 바뀌며 이후 나고야가 일대의 중심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3. 역대 번주 및 당주
- 초대 도쿠가와 요시나오
- 2대 도쿠가와 미츠토모
- 3대 도쿠가와 츠나노부[4]
- 4대 도쿠가와 요시미치
- 5대 도쿠가와 고로타
- 6대 도쿠가와 츠구토모
- 7대 도쿠가와 무네하루
- 8대 도쿠가와 무네카츠
- 9대 도쿠가와 무네치카
- 10대 도쿠가와 나리토모
- 11대 도쿠가와 나리하루
- 12대 도쿠가와 나리타카
- 13대 도쿠가와 요시츠구
- 14대, 17대 도쿠가와 요시카츠[5]
- 15대 도쿠가와 모치하루
- 16대 도쿠가와 요시노리
- 18대 도쿠가와 요시아키라[6]
- 19대 도쿠가와 요시치카[7]
- 20대 도쿠가와 요시토모[8]
- 21대 도쿠가와 요시노부[9]
- 22대 도쿠가와 요시타카 - 현 당주.
4. 현재 지명
[1] 정확히 따지면 미카와 동쪽의 산악지대 사람 이야기이다. 미카와 동부는 오와리와 달리 척박한 산지가 많았다.[2] 평야가 거의 없는 척박한 지형이라 다른 지방에선 보통 수확량의 6할을 세금으로 거둘 때, 카이는 5할만 거뒀는데도 불구하고 카이 영민들이 타지방 사람들보다 잘 먹고 잘살았다는 기록이 없다시피한 땅이었다.[3] 옛 스루가국[4] 혹은 도쿠가와 츠나나리라고도 함.[5] 최후의 오와리 번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친형.[6] 여기서부턴 오와리 도쿠가와 후작가 당주. 도쿠가와 요시카츠의 서양자.[7] 마츠다이라 슌가쿠의 4남. 요시아키라의 서양자.[8] 이 대에 화족제 폐지로 후작 작위 상실.[9] 동명의 마지막 쇼군과는 이름만 같다. 이름 한자는 아예 다름. 요시토모의 서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