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대륙과는 멀리 동떨어진 대륙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나라라는 특성상, 전차 따위에 신경 안 쓰고 살다가 일본군의 침공이 가시화되자 호주는 급하게 전차 개발을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수입해온 구형 빅커스 중형전차 십여 대나 장갑차 약간 정도밖에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일본군의 위협 증대에도 불구하고 본국인 영국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던 호주는, 영국으로부터의 전차도입이 곤란했기 때문에 전차의 자체 제작을 시도해야 했다. 당시 호주는 약간의 자동차 생산 경험 밖에 없었기 때문에 1940년 영국에서 개발자를 모셔와 개발을 시작했고 1942년 1월에는 첫 모델인 A.C.I이 완성되었다.
A.C.I는 28톤의 무게에 2파운더 강선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장갑 두께는 차체 전면이 66도 각도의 65밀리로서 M4 셔먼과 비슷한 수준. 인력과 기술력 부족으로 차체와 포탑 둘 다 주조로 제작되었으며[1] 엔진도 자체 개발할 여력이 없어서 캐딜락 자동차용 엔진을 3개 붙인 330마력짜리를 사용했다. 개발이 시작될 무렵에도 2파운더 포는 너무 약했으므로 최종적으로는 17파운더까지 올릴 수 있게 일부러 많은 여유를 두고 설계했는데, 문제는 호주가 영국과 워낙 멀다 보니 17파운더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으므로 그냥 25파운더를 2개 달아서 그 반동을 버텨낼 수 있는가 시험해보기도 했다.
특징으로 여겨지는 차체 정면의 길쭉한 것은 바로 기관총이다. 호주라는 상대적으로 더운지역에서 활동한다고 상정해서 개발된 나머지 기관총을 식히기 위해 수랭커버를 씌운건데 그 모양새가 영 엄해보이는지라 밀덕들 사이에서는 소소한 놀림거리로 여겨진다.
A.C.IV 썬더볼트 시제품이 제작된 시점까지도 현가장치와 변속기의 문제가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군이 뉴기니에 상륙하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센티넬 계열 전차들은 실전에 투입할 수 없었다.
일본의 호주 침공에 대비하여 만든 전차이나 일본이 호주에 관심이 거의 없었기에 공습만 하고 상륙은 하지 않아 실전 경력은 전혀 없으며, 영국이나 미국에서 남아도는 마틸다 II나 M3 리를 무기대여법으로 건네주어 굳이 이 애물단지를 만들 이유도 점점 사라졌다. 애초에 호주군이 맞서 싸워야 할 일본 전차들이야 치하나 하고, 치헤, 좋게 봐줘야 치누 정도인데 이들을 잡는데에 17파운더는 너무나도 과잉화력이기도 하고, 유럽 전선에서는 티거나 판터 앞에 무력한 구형 전차라 애초에 호주에 주는 데도 부담이 없었다. 때문에 그럭저럭 이름을 떨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뢰성이 바닥을 달렸던 센티넬 전차는 실전 경험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도태되고 만다. 이후 1944년에 독일군 전차 프롭으로 개조되어 영화 한 편(The Rats of Tobruk)을 찍는데 동원된 것이 활약의 전부였다.
퇴역한 이후에는 성능보다도 차체 기관총 장갑의 형상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저게 저렇게 두꺼운 이유는 위에 제원에 나와있는 빅커스 기관총이 수랭식 기관총이라 공랭식보다 훨씬 두꺼운 구조라서 기관총 사수 보호 차원으로 장착한 기관총 포방패 또한 두꺼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잘보면 같은 회사 수랭식 기관총을 장착한 포탑 공축기관총도 다른 전차에 비해 매우 두껍게 튀어나와있다.
또한, 월드 오브 탱크를 제작한 워게이밍 사에서 아직까지 실제로 남아있는 센티넬 전차를 미국의 전차 수집가에게서 받아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해당 전차는 케언즈 주에 있는 호주포병박물관에 옮겨져 복원 작업중이라고 한다. 워게이밍이 복원한 차량은 민간인에게 넘어가 포탑을 제거한 채 트랙터로 사용되다가 전차 수집가에 의해 수집된 후 AC4의 포탑을 장착했다고 한다.(출처)
니콜라스 모런의 바보같은 전차 Top 3
그 외에, 월드 오브 탱크의 자문인 니콜라스 모런이 뽑은 바보같은 전차 TOP3에 A38 발리언트 전차와 하고와 함께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