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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13:00:30

오바야시 노부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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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林宣彦
출생 1938년 1월 9일
사망 2020년 4월 10일 (향년 82세)

1. 개요2. 생애3.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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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영화감독.

2. 생애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 출신. 1938년생으로 나이가 많지만 2010년대까지 왕성하게 활동중이었다. 2020년 4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6살때 필름에 직접 그려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노는등 어려서부터 영화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영화 감독을 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1964년부터 CF 계에서 화려한 이미지와 현란한 편집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감각적인 영상을 만들기 위해 세계를 돌아 다니며 사이키델릭아방가르드를 연구했다. [1] 1960년대 일본 영화계는 언더그라운드 영화가 활발했던 편인데 [2] 오바야시도 그런 활동으로 경력을 시작한 감독이었다. 80년대에는 아방가르드로 유명한 제작사 아트 시어터 길드(ATG)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77년 하우스라는 호러 코미디 영화로 상업영화계에 데뷔한다. 이 하우스라는 작품이 참 골때리는데, 영상, 음악, 배우, 소품, 특수효과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정말 모두가 미쳐있다. 그런데 이 미치광이 영화가 당시 아이들한테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면서 예상외로 흥행하게 된다. 일본의 록키 호러 픽쳐 쇼라고 불리기도 한다.

역시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1983년판 시간을 달리는 소녀/영화일 것이다. 흥행수익 28억엔으로 대박이 났으며 당시 신인이던 하라다 토모요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의 고향 오노미치시를 배경으로 제작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 '전학생'(1982)과 '쓸쓸한 사람'(1985)은 '오노미치 3부작'으로 불린다. 오노미치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만든 건 자신의 추억이 담긴 고향 풍경이기도 하고 오노미치시가 발전도 덜 되고 [3] 관광객도 안 드는 곳이라 고향 발전에 공헌하고자 오노미치시를 배경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3부작이 유명해지면서 [4] 오노미치시는 관광 명소가 되었고 그래서 오노미치시에서는 그를 지역 발전에 공헌한 인물로 꼽는다. 다만 이후 개발이 너무 진행되어 그의 영화에 나온 그 풍경은 영화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이가 적지 않은데도 젊은 감각 + 청춘 영화라는 묘한 일관성으로 꾸준히 연출을 한다. CF감독 출신+영상미+젊은 감각 등의 요소는 이후 나카시마 테츠야, 미이케 다카시 등 여러 감독이 계승한다. 일본 영화 역사에서 보면 1960년대 고전 스튜디오 시절과 1980년대 이후 새로운 일본 영화 간의 가교 역할을 하는 감독이다. [5] 한국에서 일본 영화를 보면서 과장과 오버가 심하다고 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오바야시 감독의 영향을 받은 감독 작품들이 특히 그런 소리를 많이 듣는다.

특이한 화면 전환 편집, 프레임을 일부러 빼는 점프 컷 연출, 현실에 있을 법 하면서도 무언가 과장되거나 뒤틀려 일본 같지 않고 환상의 세계처럼 보이는 메르헨, 그림책 같은 미장센이 특징이다. 과장이 심해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신선하고 자극적이다. 그는 자신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이라서 어린이가 꿈을 꾸는 것처럼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애들용 작품을 만드는 감독은 아니고 자신의 미적 감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오바야시의 작품을 볼 때는 현실과 다르잖아 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아 현실이 아니구나. 꿈 같은 거구나.' 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이 받아들이기 편하다.

오바야시의 특유의 연출은 현실과 달라 불쾌한 골짜기를 유발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오히려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서 그 연출이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애니메이션 계에서는 미소녀가 많이 나오는 학원물, SF, 호러 작품 연출은 대부분 오바야시 감독의 연출에서 차용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이다. 카와모리 쇼지, 미즈시마 세이지, 오시이 마모루, 호소다 마모루, 신카이 마코토 [6], 다이치 아키타로, 사카이 카즈오 등의 애니메이션 감독이 이 감독 연출을 자주 차용하기로 유명하다. 오바야시의 작품을 보고 애니메이션 같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오바야시를 따라한 것이다. 오바야시도 카도카와의 지원으로 '소년 케냐'라는 아방가르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으나 아방가르드 연출이 당시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바야시가 애니를 만들 때는 이미 다른 애니 감독들이 오바야시 연출을 다 따라한 뒤라 신선함도 부족했다. 거기다 경쟁작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라 흥행에 실패했다.

이야기 흐름과 무관하게 영화 중간에 여성의 누드나 탈의, 목욕 같은 서비스신이 들어가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에 대해서 무의미한 성적 대상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오바야시 감독은 "내 취향이 들어간 것도 부정은 하지 않지만 아방가르드 연출의 일종으로 봐 달라." 라면서 단순히 성적인 흥분을 유도하는 목적으로 넣은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실제로도 음란한 작품을 만들거나 관능, 에로티즘을 추구하는 감독은 아니었고 이런 장면은 전체적인 연출에 느낌을 더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2009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하우스 상영을 통해 내한했다. 부인과 딸도 동행했다고.

2017년 오랫동안 만들고 싶어했던 하나카타미를 발표해 호평을 듣고 있다. 다만 암 투병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져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투병 생활 중에도, 기어이 새 영화 해변의 영화관-키네마 보물상자를 완성했다.

마지막 작품인 해변의 영화관-키네마 보물상자가 개봉예정이었던 2020년 4월 10일에 오랜 투병끝에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그날 예정되어있던 개봉도 코로나바이러스-19의 영향으로 연기되었다.

3. 작품 목록



[1] 그래서 진짜로 약을 빨고 작품을 만든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2] 시대로 보면 오시마 나기사 뒷세대에 속한다. 꽤 늦게 장편 영화계에 데뷔한 감독[3] 그의 오노미치 3부작을 보면 오노미치시는 목조 주택이 대부분이고 1940 ~ 50년대 풍경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거리 풍경이 굉장히 레트로하다.[4] 다만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전학생은 대히트작이지만 쓸쓸한 사람은 평가가 좀 떨어지는 편이다.[5] 데뷔작 하우스는 스튜디오 출신 감독이 아닌 외부 감독을 기용한 첫 스튜디오 영화로 꼽힌다. 이 이후로 스튜디오 간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다.[6]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은 전학생과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섞었다고 보면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