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20:40:35

엠마 크랩서 살인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뉴욕 노파의 죽음3. 경찰의 수사4. 사건 해결?5. 항소6. 누명7. 누명 피해자 듀이 보젤라8. 후속 조사

1. 개요

1977년 6월 14일 뉴욕주 포킵시의 아파트에서 당시 92세의 엠마 크랩서(Emma Crapser)가 집 안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

사건을 해결하려던 경찰이 당시 18세였던 소년을 무고하게 범인으로 몰아 26년이나 수감생활을 하게 했으며 2009년에 소년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미제사건으로 남게된 사건이다.

2. 뉴욕 노파의 죽음

엠마 크랩서는 뉴욕주 포킵시의 2층짜리 벽돌집 2층에 거주하던 92세의 여성으로, 미혼으로 자녀나 가족 없이 혼자 거주하고 있었다.

1977년 6월 14일 화요일 크랩서는 성 요셉 교회에서 지인들과 빙고 게임을 했고 밤 11시가 되기 직전에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부부가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다음날 아침 크랩서의 사촌 루스 린제이(Ruth Lindsay) 부인은 크랩서의 아파트가 뭔가 다른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전화했으며 부엌 바닥에서 경찰에 의해 크랩서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크랩서의 손과 다리는 전기 코드나일론 빨랫줄로 감겨 ​​있었다. 머리에는 티셔츠와 여성용 슬립이 감겨 있었으며 둔기에 맞은 흔적이 있었다. 손수건, 목걸이 두 개, 레이스 조각이 목에 묶여 있었고 그것들로 목이 졸려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크랩서가 집에 귀가했을 때 이미 아파트 안에는 강도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고 집에 귀가한 크랩서를 보고 놀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며 강도로 인한 우발적 살인일 것으로 봤지만 크랩서의 집에서는 사라진 물건이 없었으며 그녀의 손가락에는 그대로 반지가 끼어 있었고 주머니 안에는 1달러짜리 지폐가 들어 있었다.

3. 경찰의 수사

포킵시시는 1977년에 상당히 치안이 좋지 못한 곳이었으며 크랩서의 아파트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맨션 스퀘어 공원에서 범죄 경력이 있는 지역 젊은이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기도 했다.

그 중에는 라마 스미스(Lamar Smith)와 스탠리 스미스(Stanley Smith) 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은 경찰 조사에서 살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했지만 라마 스미스는 얼마 후에 또 다른 강도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 살해 당일 밤 크랩서의 집 현관에서 18세 듀이 보젤라(Dewey Bozella)와 15세 웨인 모슬리(Wayne Moseley)를 보았다고 경찰에 진술했으며 동생은 형의 설명을 확증했다. 스미스 형제는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받았고 진실 반응이 나타났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크랩서가 살해된 지 한 달도 안 되어 18세의 전직 프로 복서였던 듀이 보젤라, 웨인 모슬리, 보젤라의 친구였던 알버트 피트맨(Elbert Pittman)이 체포되어 살인 혐의를 받았지만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기소되지는 않았다.

4. 사건 해결?

1983년, 웨인 모즐리가 지갑을 훔친 혐의로 감옥에 갇혔으며 검찰은 그를 설득해 보젤라에 대해 증언하도록 했다.

1983년 강도짓을 하던 듀이 보젤라는 다시 체포되었고 재판을 받았다. 첫 번째 수사에서 보젤라는 크랩서가 살해된 날 밤 맨션 스퀘어 파크에 있었고 오후 7시쯤 자전거를 타고 수양 형제의 아파트로 갔다고 말했다. 수양 형제는 나중에 살해되었기 때문에 알리바이가 증명되지 못했다.

보젤라를 범죄와 연관시키는 법의학적 증거는 없었지만 모즐리는 그와 보젤라가 정문을 통해 크랩서의 집에 침입했다고 진술했다. 그녀의 아파트에 들어간 후 그들은 복도에서 크랩서의 소리를 들었고 그녀가 안으로 들어오자 보젤라가 그녀를 붙잡고 옆구리와 머리 옆면을 때렸다고 증언했으며 보젤라는 그녀의 다리를 묶고 있었고 모즐리가 집에서 뛰쳐나갔을 때 보젤라는 크랩서의 머리 주위에 천 같은 것을 감싸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스미스 형제는 1983년에 감옥 안에서 보젤라에 대해 증언했고 라마는 증언의 대가로 가석방 없이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스탠리는 보젤라가 유죄 판결을 받은 직후 진술을 번복했다.

1983년 12월, 배심원단은 보젤라에게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리고 종신형을 선고했다.

5. 항소

1990년, 보젤라는 항소를 요청했고 항소 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재심을 명령했는데 검찰이 1심 재판 당시 보젤라의 배심원단에서 흑인을 의도적으로 제외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듀이 보젤라는 흑인이었고 엠마 크랩서는 백인이었기 때문에 인종차별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두 번째 배심원단에는 흑인 여성과 인도인 남성이 있었고 사망한 증인의 증언이 배심원들에게 다시 낭독되었다. 플로리다 교도소의 수감자 스탠리 스미스는 라마 스미스가 살인에 연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형이 자신의 알리바이를 제공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보젤라 자신이 2심 재판에서 직접 증언하지 않았고 배심원단은 보젤라에게 2급 살인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6. 누명

보젤라는 2007년에 잘못된 기소로 고통받는 이들을 무료로 도와주는 ‘이노센스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를 이용했고 윌러해일(WilmerHale) 로펌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2009년에 또 다른 판사에 의해 2심 유죄 판결을 취소받고 재심을 받았는데 보젤라에게 유리한 사건의 증거가 두 번의 재판 동안 변호인과 배심원들에게 제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누락된 증거는 수십년 전에 있었던 사울 홀란드(Saul Holland)라는 남자와 경찰의 인터뷰였다. 홀란드는 앤서니, 도널드 와이즈(Donald Wise) 형제와 함께 크랩서가 살해된 지 약 7개월 후에 사건 현장에서 0.5마일 떨어진 곳에서 장애를 가진 세 자매를 공격해 언니 매들린과 캐서린을 폭행하고 셋째인 메리 킹(Mery King)을 살해했다. 와이즈 형제들은 홀랜드에게 과거에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기 때문에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고 경찰에 증언한 내용이었다. 크랩서의 화장실 창문에서 발견된 지문은 도널드 와이즈의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포킵시에서 에스텔 도블러(Estelle Dobler) 할머니가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후에 밝혀진 바 이 사건에 와이즈 형제가 연루되어 있었다. 와이즈 형제는 대부분 범행을 연쇄적으로 저질렀기 때문에 크랩서의 살인에 이어서 도블러를 공격하는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크랩서의 위층 이웃과 기록되지 않은 크랩서의 다른 이웃이 크랩서의 집 창문에 대해 증언한 내용도 누락되어 있었는데 검찰이 주장한 보젤라가 정문을 사용해 침입했다는 부분과 반대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보젤라의 첫 번째 재판에서 와이즈 형제는 메리 킹을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 중 앤서니 와이즈의 아내인 매들린 다이슨 사우스(Madeline Dixon South)는 자신이 사건과 관련해서 검찰로부터 압력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2009년 10월 28일, 뉴욕주 대법원 판사는 26년간 수감되어 있던 듀이 보젤라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7. 누명 피해자 듀이 보젤라

듀이 보젤라는 1959년생 흑인으로, 아버지가 임신한 어머니를 구타하여 살해했을 때는 9세였으며 현장의 목격자였다. 살해 후 그의 아버지는 도망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에게는 3명의 다른 형제가 있었는데 한 명은 칼에 찔려 죽었고, 다른 한 명은 총에 맞아 죽었고, 또 다른 형제는 에이즈로 사망했다. 10대 시절 전 세계 헤비급 챔피언 복서플로이드 패터슨과 함께 한동안 훈련을 받았으나 어려운 환경으로 탈선해 10대 후반에는 강도짓을 일삼았고 18세 때 이 사건이 발생했다.

20세때 강도 미수 혐의를 받아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며 출소한 직후인 24세때 크랩서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뉴욕주 오시닝에 있는 싱싱교도소에 수감되었고 수감되어 있는 동안 교도소의 라이트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 되었다.

26년간 수감되어 있다가 2009년에 50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풀려났다.

2009년 10월 28일 풀려난 그는 아내 트레나(Trena Bozella)와 함께 뉴욕주에 거주하며 뉴버그에 있는 지역 체육관에서 10대들에게 복싱과 갱단 가입의 위험성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체육관을 닫은 후 종종 다양한 기관을 방문하여 자신의 인생 경험에 대한 연설을 하고 다니며 뉴욕시 지역 복싱 카드에서 자주 보인다고 한다.

2011년 10월 15일 62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버나드 홉킨스채드 도슨 경기 오프닝에서 래리 홉킨스를 상대로 프로 복싱 데뷔전을 치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보젤라에게 전화를 걸어 다가오는 경기의 행운을 빌었다. 그는 래리 홉킨스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했다.

2016년에는 회고록을 출판했다.

8. 후속 조사

이 사건은 누명에 대한 새로운 조사를 시작하게 만들었고 2006년 이후부터 2017년까지 살인에 관련하여 263건의 살인 유죄 판결이 뒤집혔다. 유죄 판결이 취소된 263명 중 161명이 흑인이었고, 백인 65명, 히스패닉 33명, 아메리카 원주민이 4명이었다.

다만 이들 중 24건은 이 사건은 저지르지 않았지만 다른 범죄로 장기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 중 48명은 유죄판결이 취소된 후 재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최소 4년 뒤 무죄를 선고받았다. 나머지 215건의 잘못된 유죄 판결 중 검찰은 그 중 단 16건(7%)만 살인 혐의로 새로운 용의자를 체포해 기소했다. 범인을 제대로 잡지 못했는데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특히 16개 사건 중 11개 사건에서는 또 다른 유력 용의자가 존재했기 때문에 새로운 기소가 이루어질수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조사를 통해 누명이 의심되는 사건들에 재조사가 들어가 이한탁 사건, 미셸 미첼 살인사건의 억울한 피해자들이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너무 오래 전에 일어났고 크랩서가 나이 많고 자녀가 없는 독신 여성이었기 때문에 현재 그녀를 살해한 진범을 찾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