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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8-12-22 11:57:16

엘튼 존/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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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ty Sky
1969.06.06
Elton John
1970.04.10
Tumbleweed Connection
1970.10.30
Madman Across the Water
1971.11.05
Honky Château
197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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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
1973.01.22
Goodbye Yellow Brick Road
1973.10.05
Caribou
1974.06.24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
1975.05.19
Rock of the Westies
197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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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Moves
1976.10.22
A Single Man
1978.10.16
Victim of Love
1979.10.13
21 at 33
1980.05.13
The Fox
198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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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mp Up!
1982.04.09
Too Low for Zero
1983.05.30
Breaking Hearts
1984.06.18
Ice on Fire
1985.11.04
Leather Jackets
198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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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 Strikes Back
1988.06.20
The Complete Thom Bell Sessions
1989.02.01
Sleeping with the Past
1989.08.29
The One
1992.06.15
Duets
199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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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England
1995.03.20
The Big Picture
1997.09.22
Songs from the West Coast
2001.10.01
Peachtree Road
2004.11.08
The Captain & the Kid
200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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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ion
2010.10.19
The Diving Board
2013.09.16
Wonderful Crazy Night
2016.02.05
Regimental Sgt. Zippo
2021.06.12
The Lockdown Sessions
202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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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튼 존 음악
1.1. 1960년대1.2. 1970년대1.3. 1980년대1.4. 1990년대1.5. 2000년대1.6. 2010년대
2. 영화/뮤지컬 음악 및 기획
2.1. 영화2.2. 뮤지컬
3. 공동 작곡4. 프로듀싱

1. 엘튼 존 음악

1.1. 1960년대

영국의 블루스 밴드 <블루솔로지>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던 시절인 1965년 7월 23일, 개명 전 이름과 밴드 명의로 발매된 첫 싱글 Come Back Baby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때는 완전히 신인이었고 밴드의 메인 보컬리스트도 아니었을 뿐더러, 20살 채도 안된 어린 나이여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블루솔로지> 시절, 레지 드와이트는 작사까지 맡으며 곡을 썼지만 작사에는 별 재능이 없었고 작곡 재능도 꽃피우기 전이었기에 진부한 선율과 미적지근한 사랑타령으로 구성된 가벼운 팝 음악을 작곡했다.[1] 이에 신물을 느낀 이후로 밴드 활동에서 나갔고 1967년 6월 17일부터 영국의 NME 잡지로 통해 인연을 가지게 된 신인 작사가 버니 토핀과 작사/작곡 협업을 본격적으로 가지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수많은 곡들을 작곡하면서 점차 작곡 실력도 발전해 가는 중이었다.[2]

버니 토핀과의 협업 초기 시절이던 1967~69년에는 사이키델릭 록포크 록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소박하면서도 기묘한 분위기를 담은 전형적인 1960년대 음악을 했다. 엘튼 존 특유의 스타일과 정체성이 자리를 잡히기 전이었기 때문에 전성기 시절의 음악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낯설게 들릴 수 있고 1969년 1집 Empty Sky에서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은 1969년 내내 더욱 세밀하고 짜임새가 탄탄한 곡들을 작업하면서 한층 변화를 보였으며 이를 기점으로 작사/작곡 협업이 더욱 깊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음악적 역량이 솟아올라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년 채 안되는 시기 동안 100곡 이상을 작곡했으며 2집 Elton John, 3집 Tumbleweed Connection의 수록곡들이 대부분 이 시기 때 작곡되었다.[3]

1.2. 1970년대

1970~1971년 초기 시절의 음악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현악기 배치이며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둡고 진지한 편이다. 짙은 현악이 돋보이는 심포니 록 계열의 음악과 더불어 시원스러우면서도 경쾌한 템포를 이루고 있는 컨트리 록, 포크 록 계열의 음악도 자주 선보였다. 초기 시절의 엘튼 존은 컨트리 록 음악가로 분류되는 경우가 더욱 많았음과 동시에, 이 시기의 엘튼 존을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가로 분류하기도 했다.[4] 영국적인 요소와 미국적인 요소를 골고루 차용하면서 특유의 분위기를 보이는 것을 진정한 매력으로 여겨 초기 시절의 음악을 애착하는 팬들도 많다. 보컬 억양도 상당히 미국적이라서 미국 음악을 가장 훌륭하게 재현한 영국 가수라는 평도 받았다. 당시 발매된 2집 Elton John, 3집 Tumbleweed Connection, 4집 Madman Across The Water은 전부 명반으로 평가받는다.[5][6][7]

1970년 8월 25일 웨스트 할리우드 트루버도어 극장에서 진행한 미국 진출 공연 덕분에 커다란 화제를 이끌며 호평을 받으며 신인 스타로서 전성기를 가지기 시작했다. 초기 시절에도 무대에서 특유의 강렬한 쇼맨십을 보여주어 로커의 이미지를 인식되게 만들었지만, 이 시기에는 많은 이들이 떠올릴 만한 화려한 의상을 착용하기 전이었고 히트곡은 Your Song, Friends, Tiny Dancer 같은 얌전한 곡들의 비중이 컸었기 때문에 발라드 가수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었다.[8] 직접적으로 무대에서의 엘튼 존을 보면서 경험한 팬들을 제외하면 이런 모습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72년 5집 Honky Château부터 , 으로 전향하여 음악적으로, 창법에도 변화를 주었고 1973년 6집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에서는 간결한 팝과 로큰롤로 구성되었다. 5집과 6집은 모두 1972년에 작업된데다 두 앨범의 작업 텀도 5개월 채도 되지 않았기에 불과 몇 개월 안에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보다 더욱 대중적인 음악을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했고, Love Lies Bleeding,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The Bitch Is Back", "Street Kids" 등 강력한 록 넘버들을 자주 선보여 로커로서의 이미지도 가지게 되었다. 1973년 7집 Goodbye Yellow Brick Road부터 음악적 역량이 완전히 무르익어 대중에게 익숙한 엘튼 존 특유의 스타일이 고착되기 시작했다. 작사/작곡 협업이 가장 무르익고 절정을 향해 달렸던 시절이 바로 이때부터였다.

1980~90년대의 음악은 평이 갈리는 편이지만 1970년대의 음악은 대체로 최고라는 평을 받는다. 록/팝으로 전향한 음악적 발전과 더불어 당시 주류였던 장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대중성까지 잡았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욱 큰 성공을 맞이했던 것이다. 1970년대 전성기 시절에 발매된 앨범들은 대부분 명반으로 평가받는데 1970년 3집 Tumbleweed Connection, 1972년 5집 Honky Château, 1973년 7집 Goodbye Yellow Brick Road, 1975년 9집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가 특히 가장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명반들로 평가받는다.[9][10][11]

1976년 시점으로 상당히 세련된 사운드로 작업된 역작 11집 Blue Moves를 선보였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했고 전작들에 비해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1집은 발매 당시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재평가 받는 추세이고 21세기 들어서 엘튼 존의 명반 대열에 포함하는 경향이 크다.[12] 당시 엘튼 존은 무명 시절을 포함하여 거의 10년 동안 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지나치게 달려온 탓에 혹사하고 있었으며 심적으로도 크게 지친 상태였다.[13] 1977년 11월 3일 웸블리 아레나 공연의 은퇴 선언으로 공연 활동과 더불어 음악 활동도 잠시 중단하면서 전성기가 끝났고 이 시기부터 2년간 버니 토핀과 잠시 결별했다. 이는 개인적인 불화가 아닌, 1967년부터 10년간 똑같은 구성의 협업을 지나칠 정도로 꾸준히 이어왔다고 판단하여 서로 잠시 다른 길을 걸었을 뿐이었다.[14]

엘튼 존은 버니 토핀과 결별 이후로 영국의 작사가 게리 오스번과 협업(1977~1982)을 가지면서 1978년 12집 A Single Man로 컴백했지만, 기존에 비해서 상당히 이질적인 음악성과 낮은 완성도로 혹평을 받았다.[15] 1982년 16집 Jump Up!, 1983년 17집 Too Low For Zero로 재기하기 전까지 약 5년간 침체기를 보내었고 "Song For Guy", "Mama Can't Buy You Love", "Little Jeannie" 같은 히트곡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음악적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시기라서 1977년부터 1981년까지는 엘튼 존의 경력에서 가장 돋보이지 못했던 시기로 꼽힌다. 1979년 13집 Victim Of Love에서 디스코를 시도했지만 특유의 음악적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성의 없는 완성도의 졸작이라는 혹평과 상업적 실패로 엘튼 존의 실패작으로 자리 잡았다.[16] 이로써 1970년대 말은 엘튼 존에게 가혹했던 시기로 남았다.

1.3. 1980년대

1978년 12집 A Single Man부터 1982년 16집 Jump Up!까지 협업을 가졌던 영국인 작사가 게리 오스번과 곡을 작업하던 방식은 버니 토핀과 딱 반대였는데 엘튼 존이 먼저 곡을 작곡하고 나서 게리 오스번이 가사를 덧붙이던 형식이었다.[17] 게리 오스번의 작사력은 버니 토핀에 비하면 무난한 수준에 주로 사랑타령이 비중을 차지한 데다, 엘튼 존의 음악도 전성기 시절의 음악과 사뭇 다른 분위기라서 이질감이 상당했다. 1979년 8월, 14집 21 AT 33를 작업하던 시기에 버니 토핀과 재결합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같은 협업을 눈에 띄지 못했다. 심지어 Jump Up!에서 버니 토핀과 엘튼 존은 게리 오스번 방식처럼 작업에 임하면서 곡들을 작업했는데, 이후 버니 토핀은 2013년 롤링 스톤 인터뷰에서 이 시기의 결과물이 대부분 참혹하다고 뒤늦게 밝혔다.[18]

그럼에도 《Jump Up!》은 평론으로부터 긍정적인 평을 받았고, 1983년 17집 Too Low For Zero은 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수려한 음악성을 담았다는 호평을 받으면서도 상업적으로 꽤 크게 성공했다.[19][20] 기존의 팝, 록 음악을 유지하면서도 뉴웨이브의 요소를 차용한 대중적인 음악을 해왔고 투어 활동으로도 승승장구하던 시기였지만, 엘튼 존의 1980년대는 약물 중독과 허위 스캔들, 이혼, 건강 등의 문제들로 얼룩진 암흑기였고 음악적으로도 침체기였다는 평이 대체로 크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사실인데, 상업적 성공으로만 보자면 침체기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이 시기 때 발매된 앨범들 모두 빌보드 200에서 10위 진입에 실패하여 20~30위 안에 머무는 성적을 보였지만, 유럽과 오세아니아 등에서는 10위 진입에 성공하여 여전히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8년 "Song For Guy"는 영국에서 4위, 1979년 "Mama Can't Buy You Love"는 빌보드 9위, 1980년 "Little Jeannie"는 빌보드 3위, 1981년 "Les Aveux" (with France Gall)는 프랑스 1위 등 침체기 기간 때에도 10위 진입에 성공한 히트곡을 매번 냈고, 잠시나마 음악적 재기에 성공한 《Too Low For Zero》부터 1985년 19집 Ice On Fire까지 발매된 대부분의 음반들은 좋은 성적을 거두며 꾸준한 성공을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 1985년 발매된 싱글 "Nikita"는 다수의 국가에서 10위 안에 진입해 대부분의 1970년대 싱글들보다 더욱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에 견줄만한 히트를 거두었던 1970년대 싱글은 "Don't Go Breaking My Heart" 한 곡뿐이다. 대부분의 1980년대 정규 앨범들도 유럽과 오세아니아에서 10위 진입에 성공했고 높은 판매량을 보였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1970년대와 별다를 바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21]

상업적으로는 여전히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어도 음악적으로는 침체에 접어들었다는 평이 많다. 당시 엘튼 존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십수 년간 똑같은 형식의 작업에 임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진 데다 약물에 심하게 의존했었기 때문에 전성기에 비해 돋보이는 음악을 많이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22] 1987년을 제외한 모든 연도에 정규 앨범을 1장씩 발매했지만 1980년부터 1989년까지 발매된 9장 중에서 전성기 시절 때에 비하면 부족한 완성도의 평작들이 대부분이다. 이 시기 때 발매된 1986년 20집 Leather JacketsVictim Of Love와 더불어 졸작으로 평가받았고 상업적으로도 크게 실패했다.[23]

이러한 점들로 인해서 엘튼 존의 1980년대는 그저 계약 이행을 위해 과잉 생산되어 매년 비슷한 완성도의 범작들을 발매하던 시기로 여기는 편이다. 1976년 11집 Blue Moves 이후로 십수 년간 발매된 대부분의 앨범들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완성도로 실망을 받아 한동안 엘튼 존 음악을 듣지 않았던 팬들도 있었다. 하지만 앨범 자체의 완성도에서 평이 갈려지긴 하나,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명곡으로 평가받는 곡들도 상당수 있고 이 시기의 음악을 크게 애착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엘튼 존의 1980년대 앨범들 중에서 《Too Low For Zero》는 70년대 전성기 시절의 음악과 80년대 뉴웨이브의 조류를 흡수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1950~60년대 모타운, 소울, R&B 뮤직을 헌정하는 주제를 담은 1989년 22집 Sleeping With The Past로 음악적으로 부활했다는 평을 받는다. 여기에 1981년 15집 The Fox도 숨겨진 수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많이 거론된다.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 출판하듯이 매년 간 비슷한 곡조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던 현상은 《Sleeping With The Past》로 종지부를 찍었다.

1.4. 1990년대

1990년대에 접해들면서 약물 중독에서도 이겨내고 새사람이 된 엘튼 존은 1992년 23집 The One로 재기에 성공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음악적 역량이 부활했고 발매된 음반들도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면서 1980년대보다 더욱 잘 나갔다. 1970년대 이후로 사실상 20년 만에 찾아온 제2의 전성기였다. The OneMade In England는 90년대 음악의 조류를 흡수한 구성과 전성기 시절의 앨범들을 연상케하는 높은 완성도의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고 이 시기부터 영화, 뮤지컬 음악 작곡에도 매진하여 다른 방향으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24][25] 1994년 The Lion King은 전 세계적으로 1,500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 1997년 9월에 발매된 다이애나빈 추모곡 Candle In The Wind 1997은 전 세계적으로 3,300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고 세계에서 2번째로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한 싱글이 되었다.[26]

당시 40대 중반이었던 엘튼 존은 재활 치료로 통해 새로운 삶을 가지게 되면서도 음악적으로 큰 변화를 보였다. 1992년 《The One》을 시작으로 어덜트 컨템포러리 성향의 음악을 하기 시작했고 록적인 음악보다는 깊고 웅장하면서 적당한 리듬의 음악을 선보였다. 1995년 25집 Made In England에서는 1976년 Blue Moves 이후로 20년 만에 현악 편곡을 선보였다는 의의를 두기도 했다. 1994년 The Lion King에서 작사 협업을 맺은 팀 라이스와 1999년 Elton John And Tim Rice's Aida, 2000년 The Road To El Dorado을 작업했다. 두 작품 모두 1996년 작업.[27][28]

하지만 손꼽히는 명반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록적인 음악이 아니라 웅장한 편성을 보이는 어덜트 컨템포러리 성향의 음악을 선호했던 시기로 기존의 팬들이 원하는 바와 약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어덜트 팝 넘버들로 수록된 1997년 26집 The Big Picture가 전작들과 음악적이나 사운드 면으로 별다른 발전이 없고 편곡만 지나치게 되어 있다는 혹평을 받았다.[29]

1.5. 2000년대

1990년대 말에는 뮤지컬, 영화 음악에 크게 몰두했던 탓인지 The Big Picture 이후 정규 앨범은 한동안 나오지 않았고 버니 토핀과의 협업도 상당히 줄어졌다. 그러다가 2000년 여름, 두 사람은 오랫동안 눈에 띌 만한 걸작을 작업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다시 예전처럼 제대로 된 걸작을 작업하자는 결심을 내렸다.[30]

그렇게 작업된 2001년 27집 Songs From The West Coast는 1970년대 초기 시절의 음악으로 회귀함과 동시에 현대적인 요소를 흡수하여 음악적으로 극찬을 받았고 상업적으로도 꽤 성공하여 1989년 22집 Sleeping With The Past 이후로 오래간만에 나온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Songs From The West Coast》를 기점으로 전성기 시절의 음악의 뿌리로 회귀한 복고적인 음악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후로 발매된 앨범들은 팬들과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31] 한동안 엘튼 존의 음악을 듣기를 관둔 팬들, 전성기 시절의 음악을 그리던 팬들에게도 큰 선물이 되었다.

1990년대에 이어서 2000년대에도 정규 작업과 뮤지컬 작업도 꾸준히 했다. 특히 2003년은 강행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2003년 1~3월쯤 리 홀과 함께 2주간 Billy Elliot The Musical의 음악을 작업했고 5월에는 11일간 버니 토핀과 함께 뱀파이어 뮤지컬 Lestat의 음악을 작업, 2004년 1월에는 컨트리 색채가 강한 28집 Peachtree Road를 작업했다.[32][33] 28집은 2003년 9월에 작업할 예정이었으나 The Road To El Dorado, 《Songs From The West Coast》의 프로듀서 패트릭 레너드와 계획이 틀어졌고 급하게 두 뮤지컬 작품을 작업하느라 지쳤던 본인도 휴식을 취하는 겸에 녹음을 1월로 미룬 것이다.[34][35] 엘튼 존은 그 1년 채 안되는 기간 동안 《Billy Elliot The Musical》, 《Lestat》, 《Peachtree Road》 각 작품들마다 20곡 이상의 곡들을 작곡했고 전부 합쳐서 60곡 이상이나 한다.

2006년에는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의 후속작이자 29집 The Captain & The Kid를 발매했다. 전작과 걸맞은 완성도의 걸작이라는 호평을 받았지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29집은 상업적 성공과 별도로, 팬들에게 지대한 사랑을 받았고 엘튼 존의 2000년대 명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36][37][38] 엘튼 존도 2013년 롤링 스톤 인터뷰에서 비운의 걸작이라고 평한 적 있다.[39]

2000년대의 음악은 1990년대에 이어서 뮤지컬 음악에 크게 매진하면서도 전성기 시절의 본질적인 음악으로 회귀하여 특유의 음악성을 다시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6년 11집 Blue Moves 이후로 근 20년 동안 엘튼 존 음악을 듣지 않던 팬들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많이 돌아왔고 70년대 이후로 가장 훌륭한 음악을 하고 있다고 평하는 팬들도 상당수 된다.

1.6. 2010년대

2010년대에는 부각된 피아노 선율과 소박한 악기 편성을 돋보이는 엘튼 존 다운 음악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로 발매된 앨범들도 전작들의 연장선상에 속하면서도 장르에 따라 각각 다른 분위기 보여준다. 2010년 발매된 30집이자 합동 앨범 The Union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자신의 우상인 리언 러셀과 작업했다. 컨트리 록의 진수를 담았다는 깊은 완성도의 명반이라는 호평을 받았고 상업적으로도 꽤 성공했다.[40][41] 빌보드 200에서 3위나 올랐으며 2개월 정도 차트에서 머물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1976년 11집 Blue Moves 이후로 가장 높은 성적을 거둔 앨범이 되었다.[42]

2012년 호주의 그룹 '파나우'(Pnau)는 엘튼 존의 1970년대 음악을 신스팝, 누 디스코로 리믹스한 Good Morning To The Night을 발매했으며 엘튼 존의 전성기 시절 음악을 2010년대 방식으로 훌륭하게 편곡했다는 호평을 받았다.[43] 리믹스로 샘플링된 곡들은 기존의 히트곡뿐 만이 아니라 싱글로 발매되지 않은 곡들, 싱글 B면 수록곡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고 팬 위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다. 이 앨범은 영국에서 데뷔 1위로 올랐다.[44] 또한 앨범의 타이틀 트랙 "Good Morning To The Night"는 2012 런던 올림픽의 공식 주제가로 사용되기도 했다.

2013년 31집 The Diving Board는 1970년대 초기 시절의 작품들을 연상케 하면서도 기존의 엘튼 존과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담았다. 섬세한 피아노 선율과 재즈적인 요소, 조용하면서 진지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뛰어난 완성도의 앨범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대체로 엘튼 존의 2010년대 걸작 중 하나로 평한다.[45][46] 상업적으로 거의 고려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차트 성적도 세계적으로 꽤 양호한 편이다.

2000년대에 이어서 복고적인 방향을 추구하고 있으나, 밝은 색채와 경쾌한 곡들로 수록된 앨범은 1980년대 이후로 없다고 봐도 무방했었다. 그러나 2016년에 발매된 32집 Wonderful Crazy Night으로 팝, 록적이고 경쾌한 음악을 그리던 팬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 사실상 1989년 22집 Sleeping With The Past 이후로 거의 30년 만에 발매된 경쾌하고 밝은 곡들 위주의 앨범이며 젊은 시절의 팝 록을 오래간만에 선사했다.

2. 영화/뮤지컬 음악 및 기획

2.1. 영화

1971년 영화 《프렌즈》의 사운드트랙 앨범 Friends을 작업하고 20년 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뮤지컬 음악을 시도하여 이쪽 방향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엘튼 존의 첫 사운드트랙 앨범은 《Friends》이지만 이는 앨범 작업 한정이고, 영화 음악에 참여한 첫 경우는 1970년 영화 《The Games》의 주제가이자 1970년 7월 3일 발매된 초희귀 싱글 From Denver To L.A.이다.

1982년 《여름의 연인들》의 OST "Take Me Down To The Ocean", 1989년 고스트버스터즈 2의 "Love Is A Cannibal", 1990년 《폭풍의 질주》의 "You Gotta Love Someone", 1990년 록키 5의 "The Mesure Of A Man", 1992년 《푸른 골짜기》의 "Some Other World", 1992년 리쎌 웨폰 3의 "Runaway Train"로 몇 곡 정도 영화에 OST로 수록된 적 있지만 영화 음악 자체를 담당한 건 아니다.[47] 1992년부터 1993년까지 한스 치머, 팀 라이스와 함께 음악을 맡은 디즈니의 1994년 장편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엘튼 존에게 제2의 전성기를 열어준 계기이자 본격적으로 사운드트랙 작업에 몰두한 계기가 되었다.

라이온 킹 이후, 팀 라이스와 협업을 더 가지면서 1999년 뮤지컬 아이다, 2000년 드림웍스의 장편 애니메이션 엘도라도의 음악을 작업했다. 아이다의 음악은 1996년 4월 작업, 엘도라도의 음악은 1996년 12월부터 1999년 2월 사이에 작업되었다.[48][49][50] 두 작품의 사운드트랙 앨범은 1998~99년 녹음되었다. 같은 시기, 엘튼 존 밴드의 전 키보디스트 가이 바빌론과 함께 1999년 코미디 영화 《더 뮤즈》의 사운드트랙 앨범 The Muse를 작업했다.[51] 지나 맥키, 헬레나 본햄 카터 주연의 1999년 영화 《위민 토킹 더티》에서 엘튼 존은 기획자로 참여하면서도 현악 연주곡 Sofa Love을 작곡했다.

1996년, 캐나다의 영화 제작자이자 동성 배우자 데이비드 퍼니시와 함께 영화 제작사 〈로켓 픽처스〉를 설립했고 《위민 토킹 더티》, 《보이 걸 씽》, 《브루노》, 《노미오와 줄리엣》, 《셜록 놈즈》 등 영화들은 전부 로켓 픽처스를 통해 개봉되었다. 〈로켓 픽처스〉로 통해 개봉된 1999년 영화 《위민 토킹 더티》에서 기획을 맡은 걸로 시작하여 〈로켓 픽처스〉에서 제작/개봉된 모든 작품에서 기획자로 참여했다.[52]

2011년 2월 개봉된 〈로켓 픽처스〉의 장편 애니메이션 《노미오와 줄리엣》에서 기획과 더불어 음악을 맡았는데 노래는 엘튼 존/버니 토핀, 스코어는 제임스 뉴튼 하워드가 작곡을 맡았다. 대부분의 수록곡은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Crocodile Rock 등 기존의 엘튼 존 히트곡들을 재활용한 것이고 신곡은 "Love Builds A Garden", 레이디 가가와 듀엣으로 부른 "Hello, Hello" 밖에 없다. 해당 두 곡은 2009년 여름에 작곡되었고 사운드트랙 앨범은 2009년 여름에서 2010년 겨울까지 1년간 작업되었다.[53]

가끔씩 각종 영화에서 카메오로 출연한 적도 있다. 2017년 9월 개봉된 킹스맨: 골든 서클에서 카메오로 출연했고, 2016년 5월 출연 발표 당시에는 Wednes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으로 포스터에 표기되었다.[54] 원래 2015년 2월 개봉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먼저 카메오 출연 제약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고, 나중에 영화를 본 엘튼 존은 그 결정을 후회한다면서 2편 출연을 결정한 것이다.[55] 엘튼 존은 1975년 토미 이후로 오랜만에 하는 영화 출연이라고 했는데 사실 1998년 《스파이스 월드》에서 카메오로, 2002년 《컨트리 베어스》에서 정원사 역을 맡으며 카메오로 출연한 적 있다.

2011년, 엘튼 존의 음악 인생을 다룬 영화 《로켓 맨》은 영국의 감독 덱스터 플레처가 감독, 엘튼 존과 Billy Elliot The Musical에서 협업을 가졌던 각본가 리 홀이 각본을 맡고, 톰 하디가 엘튼 존 역을 맡으며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제작, 개봉이 흐지부지되었다. 톰 하디는 영화에 출연할 것으로 2013년에 계약했으나 4년 뒤 2017년 7월, 자신의 노래 실력 때문에 하차했고 태런 에저턴이 대신 주연 자리를 맡았다.[56]

엘튼 존은 자신이 카메오로 출연한 킹스맨: 골든 서클을 촬영하던 도중, 킹스맨의 감독 매튜 본과 이야기하면서 태런 에저턴을 거론했고 만약 태런 에저턴이 출연하게 된다면 2017년 하반기에 촬영을 예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이 들리고 2개월 뒤 2017년 9월 17일, 태런 에저턴은 영화 출연을 결정했다.[57] 2018년 2월 22일, 태런 에저턴은 영화 제작을 위해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엘튼 존의 히트곡 몇 곡 정도를 녹음했고 영화는 2018년 5월 중순에서 6월 초에 촬영이 시작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배급은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맡는다.[58] 사실 태런 에저턴은 2016년 12월 21일 개봉된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장편 뮤지컬 애니메이션 에서 엘튼 존의 1983년 히트곡 I'm Still Standing을 커버한 적 있고 반응이 상당히 좋았던 덕분에 엘튼 존 역에 어울릴 것이라는 반응이다.

2017년 11월 27일, 라이온 킹의 실사 리메이크 영화 제작에 참여한다고 알려졌다. Circle of Life,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등 기존의 OST 리메이크 작업에 참여할 것이고 영화 제작을 위해 1300만 달러(한화로 140억 6,600만 원) 정도 모금할 예정이다. 2017년 12월부터 2018년 5월까지 미국, 유럽, 중동에서 순회공연 진행을 앞두고 있어 2017년 내에 참여하지 않고 2018년 5월에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에서 열리는 <The Million Dollar Piano> 투어의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나서 스케줄을 조정할 것이라고 한다.[59][60] 2018년 2월 12일, 엘튼 존은 팀 라이스와 함께 새로운 곡들을 작업할 것으로 발표되었고 실사 영화에서 날라 역을 맡은 비욘세도 사운드트랙 작업에 참여한다고 한다.[61] 존-라이스 협업은 2000년 엘도라도 이후로 거의 20년 만이다.

2017년 11월 28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ARIA 뮤직 어워드에서 2016년 노래 "Chameleon"으로 최우수 댄스(ARIA Music Award for Best Dance Release)상을 수상한 호주의 그룹 <파나우>(Pnau)가 시상식 도중, 엘튼 존과 함께 영화 사운드트랙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슨 영화인지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이후 《셜록 놈즈》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걸로 알려졌다.[62]

2018년 3월 23일, 《노미오와 줄리엣》의 후속편 《셜록 놈즈》가 개봉되었고 이번에도 음악을 맡았다.[63] 단 전작처럼 노래는 엘튼 존/버니 토핀, 스코어는 크리스 베이컨이 작곡을 맡았다.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은 사운드트랙을 작업하던 2016년 여름에 "Stronger Than I Ever Was", "Better Together" 2곡을 새로 작곡했는데 "Stronger Than I Ever Was"는 메리 제이 블라이즈에게 써준 곡이다.[64]

2.2. 뮤지컬

기존 라이온 킹 곡들과 1996년에 추가로 작곡된 곡들로 바탕으로 한 뮤지컬 라이온 킹은 1997년 7월 8일 미니애폴리스에서 초연되었고 10월 15일 프리미엄 공연, 11월 13일 브로드웨이에서 정식 공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었다.[65][66] 2012년 기준으로 총 8억 5천만 달러의 수입을 올려 브로드웨이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올라섰다.[67]

팀 라이스와 함께 1996년 4월에 음악을 맡고 1998년 초연된 뮤지컬 Aida는 토니 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뮤지컬 주제가상(Tony Award for Best Original Score)을 비롯한 4개 부문의 상을 받는 성과를 거두었고, 영국의 각본가 리 홀과 함께 2003년 1~3월에 음을 맡고 2005년 초연된 뮤지컬 Billy Elliot The Musical은 2009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뮤지컬 상(Tony Award for Best Musical)을 비롯한 10개 부문의 상을 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버니 토핀과 함께 2003년 5월에 음악을 맡은 뱀파이어 뮤지컬 Lestat의 수록곡을 작업했고 2006년 2월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수록된 2곡을 추가로 작곡했다.[68][69] 《Lestat》는 2005년 12월 1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초연되었고, 2006년 3월 25일부터 5월 28일까지 2개월간 브로드웨이에서 진행되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

2010년,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뮤지컬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발표되었지만 몇 년째 별 소식이 없다.[70] 같은 시기, Rocket Man을 모티브 한 《Rocket Man》도 계획했는데 2018년에 작업이 들어가기 전까지 소식이 없었다.[71] 2017년 1월 27일, 미국의 극작가 폴 루드닉과 함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뮤지컬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전해졌다.[72] 2018년 7월 3일, 미국의 가수이자 뮤지컬 제작자 샤이나 타부가 참여하여 세 사람이서 음악을 작업할 것이라고 발표되었는데 1개월 뒤 8월 16일 샤이나 타부 인터뷰에 따르면, 2018년 여름 들어서 엘튼 존과 함께 런던에서 다수의 곡들을 서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라이온 킹, 아이다, 빌리 엘리어트의 대성공으로 크게 성공한 뮤지컬 작곡가로 꼽혔고 팝 음악뿐만이 아닌 영화/뮤지컬 음악 쪽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팝/록 뮤지션들 중에서 드물게도 영화/뮤지컬 쪽에서 대성공을 거둔 경우이다. 하지만 작품이 흥행 실패한 적도 있는데, 2000년 엘도라도는 흥행에 참패하여 사운드트랙 앨범도 큰 반응을 얻지 못했고 2005년 뱀파이어 뮤지컬 《Lestat》의 2006년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커다란 혹평을 받은 데다 심각한 적자를 기록하여 흥행에 실패했다.[73][74] 《Lestat》의 실패 때문인지 그 후로 뮤지컬 음악 작업에서 한동안 손을 놓았었다.

2010년 발표되고 몇 년간 별 소식 없었던 《Rocket Man》은 2018년에 제작될 예정이라며 데이비드 퍼니시가 2017년 11월 17일 <Music Week> 인터뷰에서 밝혔다.[75] 2018년 기준으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Rocket Man》 뮤지컬 제작을 예정하고 있다.

3. 공동 작곡

1970~90년대에는 동료 뮤지션, 세션들이 공동 작곡으로 참여하고 크레디트 되는 경우도 있었다. 엘튼 존 밴드의 기타리스트 데이비 존스턴이 1975년 10집 Rock Of The Westies의 수록곡 "Grow Some Funk Of Your Own"에서 기타 리프를 작곡한 걸로 시작하여 1980년대까지 한동안 공동 작곡으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있었다.

데이비 존스턴이 작곡에 참여한 곡들은 다음과 같다. "Boogie Pilgrim"[76], "Cage The Songbird", "Between Seventeen And Twenty"[77], "The Wide-Eyed And Laughing"[78], "If There's A God In Heaven (What's He Waiting For?)"[79],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Passengers"[80], "Wrap Her Up"[81], "Heavy Traffic", "Dancing In The End Zone", "Love Is A Cannibal".[82]

엘튼 존 밴드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던 제임스 뉴튼 하워드는 1976년 11집 Blue Moves의 수록곡 "One Horse Town"[83], "The Wide-Eyed And Laughing"[84], 1981년 15집 The Fox의 수록곡 Fanfare, 2011년 《Gnomeo & Juliet》에서 공동 작곡을 맡았다.[85]

1986년 20집 Leather Jackets의 수록곡 "Angeline"[86], 1992년 23집 The One의 수록곡 "Runaway Train"[87] 이후로는 공동 작곡 없이 엘튼 존 혼자서 작곡을 맡는다.[88] 다만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리언 러셀(1942~2016)과의 합작 2010년 30집 The Union은 예외다. 《The Union》은 리언 러셀과 작업한 앨범으로 모든 수록곡이 전부 엘튼 존 작곡은 아니다. 엘튼 존 작곡 곡들 중에서 리언 러셀과 티 본 버넷 공동 작곡으로 "Jimmie Rodgers' Dream", 리언 러셀, 티 본 버넷, 제임스 티모시 셔 공동 작곡으로 "There's No Tomorrow"가 있다.[89]

4. 프로듀싱

프로듀싱 작업도 자주 맡았다. 1973년 키키 디의 3집 《Loving And Free》에서 클라이브 프랭크스[90]와 함께 프로듀싱을 맡은 걸로 시작해 동료 음악가들의 앨범 프로듀싱을 자주 맡았고 자신의 앨범에서는 1978년 12집 A Single Man을 시작으로 1980년 14집 21 AT 33, 1981년 15집 The Fox, 1993년 24집 Duets, 1995년 25집 Made In England, 2004년 28집 Peachtree Road, 2011년 Gnomeo & Juliet, 2016년 32집 Wonderful Crazy Night에서 프로듀싱을 맡았다. 주로 공동 프로듀싱을 맡았지만 《Peachtree Road》의 경우는 유일하게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한 앨범이다.

원래 28집은 2000년 The Road To El Dorado, 2001년 27집 Songs From The West Coast에서 프로듀싱을 맡은 패트릭 레너드[91]와 2003년 9월에 작업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패트릭 레너드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프로듀싱을 맡지 않았고 엘튼 존도 그해에 두 뮤지컬 작품을 급하게 작업한 탓에 크게 지쳤던 지라 잠시 휴식을 가졌다. 그렇게 3개월 뒤인 2004년 1월, 혼자서 프로듀싱을 맡으면서 앨범을 작업했다.[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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