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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4 12:08:46

에아르닐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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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C0C0C0> 레젠다리움의 등장인물
에아르닐 2세
Eärnil II
본명 Eärnil
에아르닐
성별 남성
종족 인간 (두네다인)
출생 T.A. 1883
거주지 곤도르
가문/왕조 House of Elendil
엘렌딜 왕조
Anárioni
아나리온 왕조[1]
직책 King of Gondor
곤도르의 왕
재위기간 T.A. 1945 - 2043
가족관계
부모 시리온딜 (아버지)
자녀 에아르누르 (아들)

1. 개요2. 이름3. 생애4. 여담5. 평가

[clearfix]

1. 개요

레젠다리움의 등장인물. 곤도르의 제 32대왕이다.

2. 이름

에아렌딜과 같은 뜻이다.

3. 생애

제3시대 1883년에 방계왕족인 시리온딜[5]의 아들로 태어났다. 에아르닐은 곤도르의 장수로서 왕위와 상관없는 인생을 살 것 같았지만 1945년에 온도헤르왕과 두 아들들이 전차몰이족과의 전쟁에서 전사하면서 가장 가까운 왕족이었던 그가 즉위하게 되었다.

1944년, 아르세다인의 왕자 아르베두이가 곤도르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을 때, 당시 섭정이던 에아르닐은 그 주장에 대해 완곡히 거절하였다. 자세한 것은 아르베두이를 참조.

1974년, 앙마르의 마술사왕아르세다인을 공격하자 에아르닐은 에아르누르를 사령관으로 하여 병력을 파견한다. 그러나 병력이 도착하는데 시간이 지체되었고, 1975년에 병력이 도착했을 때 아르베두이는 사망하고, 수도 포르노스트는 유린된 상태였다.

1977년, 북방의 기마 민족 에오세오드는 늘어나던 인구로 인해 당시 거주하던 지역인 창포벌판과 바우바위 사이의 땅만으로는 부족했고, 돌 굴두르의 어둠이 점차 확장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새로운 거주지를 찾고 있었다. 마침 앙마르가 무너진 것을 안 에오세오드의 군주 프룸가르는 거의 모든 백성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올라가 정착하였고, 안두인 대하의 근원지인 그레일린강과 랑웰강 사이에 수도를 건설하였다. 따라서 중류인 안두인 계곡에는 남은 이가 거의 없었다. 곤도르와 그들의 관계가 끝난 것은 아니나 이로써 곤도르는 급할 때 듬직한 우방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들과의 동맹은 2510년 에오를을 필두로 내려온 로히림들에 의해 비로소 회복된다.

1980년, 앙마르에서 사라졌던 마술사왕모르도르로 들어와 나즈굴을 소집하였다. 두네다인북왕국은 쓰러뜨렸으니 이제는 두네다인의 남왕국, 곤도르를 멸망시킬 차례였다. 이 무렵, 버려진지 오래인 곤도르의 키리스 두아스의 요새오르크들에게 점거되고, 키리스 두아스키리스 웅골로 불리게 되었다.

1981년, 벨팔라스의 영주인 임라조르는 린도리난드에서 님로델과 함께 내려왔다가 길을 잃은 요정인 미스렐라스와 결혼하였다.[6]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갈라도르는 돌 암로스의 초대 제후가 되었고, 그 후손들에게는 요정의 피가 흐르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임라힐 대공.

2000년, 모르도르에서 나즈굴들이 키리스 웅골의 샛길로 내려와 미나스 이실을 포위, 공격한다. 성 안의 곤도르 수비대는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중앙에서도 원군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2002년에 결국 미나스 이실은 나즈굴에게 함락되고, 팔란티르도 빼앗겼다. 미나스 이실은 미나스 모르굴로 개명되고 그 일대의 땅은 죽은 땅이 되어 그 어떤 생명도 살려고 하지 않게 되었다. 이실리엔에 거주하던 자들도 모두 이실리엔을 떠났다. 이실 석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에아르닐 2세는 팔란티르의 사용을 금했다. 팔란티르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다른 지역과의 감시 겸 비상통신수단이 사라졌다. 비록 칼레나르돈 지역의 인구수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아노리엔에는 많은 인구들이 살고 있으므로 그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아몬 딘 등 세 개의 봉화대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수도 미나스 아노르와 안두인 서편 둘레로 거대한 방벽 람마스에코르를 세우기 시작하고, 그 안쪽을 펠렌노르라 불렀다.

에아르닐 2세는 2043년 160세로 사망할 때까지[7] 98년간 곤도르를 다스렸다. 그가 죽은 후, 아들 에아르누르가 뒤를 이었고 그는 마지막 왕이 되었다.

4. 여담

그가 재위에 있던 시기는 매우 혼란한 시기로, 인간 뿐 아니라 다른 종족들에게도 운명의 변환을 맞이하게 되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예시로 1980년에 카라드라스 아래를 파내려 가던 크하잣둠의 왕 두린 4세는, 제1시대 말기 분노의 전쟁에서 발라의 대군을 피해 도망 와 이곳에 숨어서 자고 있던 발로그를 깨우고 말았다. 두린 4세는 그에게 살해당했다. 이 사건 이후 이 발로그는 두린의 재앙이라 불렸다. 이에 아들 나인 1세가 크하잣둠의 왕이 되어 난쟁이들을 이끌고 저항핬다. 하지만 그 또한 발로그에게 죽고, 많은 난쟁이들도 죽거나 크하잣둠을 탈출하여 북쪽의 에레드 미스린으로 떠나고, 일부는 나인 1세의 후계자 스라인 1세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여 망명 왕국 에레보르를 세웠다. 텅 빈 크하잣둠는 오르크들의 아지트로 전락하니, 태양이 떠오르기 훨씬 전부터 이어지던 크하잣둠 왕국의 영광은 여기서 끝났다. 이후 요정들 사이에서 이곳은 모리아라 불려진다.

5. 평가

반지의 제왕에서는 그가 현명한 인물이며 통치자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여러 번 묘사한다. 이는 아르베두이가 아르노르-곤도르 통합왕국의 왕이 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에아르닐이 훌륭한 왕의 자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의 재위 기간에 곤도르는 크나큰 손실을 입었고, 그의 아들인 에아르누르가 후사 없이 실종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악수가 되었다.


[1] 엘렌딜 왕조의 분가이자 곤도르 왕가.[Q] 퀘냐[3] Sea(바다). 'Sea(바다)'를 의미하는 원시 요정어 어근 AY(AR), 또는 'Awe/Dread(경외로운/두려운)'를 의미하는 원시 요정어 어근 GAY(AR)에서 파생됐다.[4] Friend/Lover/Devotion(친구/사랑하는 자/헌신). 원시 요정어 어근 NIL/(N)DIL에서 파생된 접미사 -ndildo의 축약형이다.[5] 시리온딜은 텔루메흐타르의 아들 아르키랴스의 아들 칼림마킬의 아들로 31대 왕인 온도헤르왕의 6촌이었다.[6] 다만 엘다르와 인간의 결합은 역사상 베렌루시엔, 투오르이드릴, 아라고른아르웬의 세 차례만 인정되는 것을 보면 미스렐라스는 엘다르가 아닌 아바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7] 곤도르 초기와 비교했을 때 왕의 수명이 100세나 줄어든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누메노르인가운데땅으로 이주한 후, 그들의 수명은 조금씩 감소하였는데 에아르닐은 감소 속도를 생각해도 일찍 죽은 편이다. 이 시기에는 그것이 더 급속하게 일어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