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빈 클라우젠(Erwin Clausen : 1911년 8월 5일~1943년 10월 4일)
1. 수병 출신 조종사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561회 출격하면서 132대의 적기를 격추한 에르빈 클라우젠은 독일 제국 시대인 1911년 8월 5일, 베를린의 남서쪽 지역인 슈티글리츠-젤렌도르프 자치구(Bezirk Steglitz-Zehlendorf)에서 태어났다. 목공 장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꽤 큰 목공소를 운영하고 있었던 탓에, 에르빈은 군에 들어가기 전에는 원목 공예를 배우며 일하고 있었다. 아직 징병제가 시행되지 않던 1931년에 에르빈 클라우젠은 바이마르 공화국 해군에 자원해서 입대했다. 해군 시절에 훈련함으로 마스트 3개 달린 기범선 고르히 포크(Gorch Fock)를 탄 그는 정식으로 수병이 된 후에는 브라운슈바이크급 전함인 SMS 헤센을 타고 순양항해 경험도 쌓았다. 1935년에 루프트바페가 모집하는 비행 훈련을 받기 위해 지원한 에르빈 하사는 비행 교육을 마친 뒤에는 결국 공군으로 전속 조치되었다.2. 개전 초기
나치 독일이 2차 대전을 일으키기 직전에 상사로 승진한 그는 제2교도비행단(Lehrgeschwader 2)의 제3중대(3.(Jagd)/ LG 2)에 로테 리더로 배속되었다. 1939년 9월 9일에 그의 부대는 비드고스츠(Bydgoszcz) 서쪽에 있는 라우엔베르크 비행장으로 이동하는 명령을 받았다. 같은 날 오후 16시 6분에 출격한 부대는 전선에서 전투공중초계 임무 도중에 처음으로 적기에 만나게 된다. 이 교전에서 클라우젠 상사는 구식 복엽기 PWS-26를 1대 격추하면서 첫 전과를 세웠다. 9월 17일에 2급 철십자 훈장을 받은 그는 폴란드 전역에서 가장 대규모 전투였던 브주라 전투에 참가한 후에 9월 20일에 LG 2는 그라츠로 이동했다.9월 30일, I. (Jagd)/LG 2는 독일만 영공 방어 임무를 받았다. 그 후로는 5월 10일에 덴마크의 에스뵈르그(Esbjerg)에서 독일 북부 영공 방어 임무로 출격했고 5월 14일부터는 프랑스에 대한 작전에 참가하게끔 에센으로 이동했다. 5월 23일에는 프랑스 본토인 캉브레에서 남쪽으로 약 15km의 떨어진 비행장으로 전진 배치되었다. 5월 25일, 캉브레 근처에서 작전 중이던 제4군에 물자를 공수하는 독일 공군 수송기들을 엄호하기 위해 출동했다. 이 임무에서 클라우젠 상사는 프랑스 공군의 쌍발 전폭기 포테즈 630을 격추시켰지만, 타고 있던 Bf 109E도 피격되어 캉브레 근처에 비상 착륙했다.
3. 발칸 전역
6월 15일에 생토메르(Saint-Omer)로 이동하여 작전하던 클라우센 상사는 6월 22일에 프랑스의 항복 소식을 들었고 한동안 총성이 멎었다. 그의 부대에게도 3일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6월 30일, 생토메르 남서쪽 상공에 나타난 영국 공군의 브리스톨 블렌헤임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대대는 긴급 출격했다. 이 요격 전투에서 클라우센은 브리스톨 폭격기 1대를 격추했지만, 또다시 타고 있던 Bf 109E가 격추되었다. 7월 4일에 1급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은 그는 이듬해인 1941년 2월 1일에 소위로 진급하며 발칸반도 전투에서 부대를 지휘하도록 제1비행중대장으로 임명되었다.4월 6일에 유고슬라비아 침공 중 쿠마노보(Kumanovo) 부근에서 유고슬라비아 공군 제36전투비행단의 호커 퓨리 전투기를 연거푸 3대나 격파해버렸고, 이 무공으로 6월 20일에 공군 명예컵이 수여되었다. 6월 18일, I. (Jagd)/LG 2는 제77전투항공단에 편입되어 부카레스트로 이동하여 6월 22일부터 바르바로사 작전에 참가했다. 서부전선에서 다소의 부침을 겪던 클라우센은 이곳 러시아로 건너온 후부터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다. 7월 2일, 동부전선에서 최초의 격추 전과인 I-153을 동시에 2대 잡아낸 그의 격추수는 연말까지 18대까지 늘어났다.
4. 동부전선의 비행중대장
1942년 1월 6일에 I. (J)/LG 2는 JG 77의 제1중대로 개편되었다. 2월 3일과 4일에 클라우젠 중위와 프리드리히 가이스하르트(Friedrich Geisshardt : 1919~1943 / 102대 격추) 중위는 3대의 폴리카르포프 R-5와 R-Z를 격추했다. 3월 9일에는 한번 출격에 5기의 R-5를 격추해낸 에르빈 클라우젠 중위는 일일 에이스(Ace in a day)가 되었고, 40대 격추를 달성했다. 4월 6일에는 케르치 반도 전투 후에 52기 격추를 기록했다. 이 전공으로 그는 5월 18일에 제국 원수 헤르만 괴링이 직접 달아주는 독일 황금십자장을 받게 되었고, 나흘 후인 22일에는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6월 27일, 클라우젠 중위는 JG77 제II비행단 제6비행중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7월 12일에도 5기를 격추해낸 그는 다음 날에도 또다시 5기 격추를 기록했다. 7월 22일에는 Il-2를 포함해 전투기 6기를 격파한 그는 이제 독일 공군에서 12번째로 100대 격추를 달성하는 위업을 이루었다. 그 다음날, 그는 독일군에서 106번째로 곡엽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상하게 된다. 그는 빅토르 바우어(Viktor Bauer : 1915~1969 / 106대 격추) 중위와 함께 라슈텐부르크로 소환되어 아돌프 히틀러에게 직접 훈장을 받았다.
5. 본토 방공전
클라우젠 중위는 7월에 45대를 격추하면서 동부전선에서 마지막 불꽃을 불살랐다. 1943년 2월 1일, 대위로 승진한 에르빈 클라우젠은 남부 예비전투비행단(EJGr Süd)으로 전속을 가서 잠시 실전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쉴 수 있었다. 넉 달 후인 6월 20일에 에르빈 클라우젠 대위는 발터 슈피에(Walter Spies) 소령의 후임으로 제11전투항공단 제I비행단(I/JG 11)을 지휘하는 수석 비행단장이 되었다. 본토 방어전에 참가한 I/JG 11는 미8공군을 요격하기 위해 후숨(Husum) 비행장에서 연일 출격을 거듭했다. 이때문에 JG 11은 유독 중폭격기 킬러(Viermot-Töters)를 여럿 낳았다. 에르빈 클라우젠 대위는 본토 방공전에서 19기 격추의 하인츠 크녹케(Heinz Knoke : 1921~1993 / 33대 격추) 중위, 14기 격추의 게르하르트 좀머(Gerhard Sommer : 1919~1944 / 20대 격추) 대위 같은 에이스들과 함께 요격 임무를 수행하면서 12대의 4발 중폭을 격파했다.6. 북해에 잠긴 에이스
10월 4일에 Fw 190A-5/U12Y(WNr.7358)을 몰고 출격한 그는 1기의 B-24를 격추했지만, 곧바로 엄호 전투기들에게 반격당해 보르쿰 섬(Borkum) 북서쪽 약 115 km 떨어진 북해 상공에서 격추되었다. 그의 최후를 목격한 증인은 없지만, 10시 28분에 마지막 교신을 보내왔을 때 그는 후퇴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겨울의 북해에 추락했다면 설사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20분이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긴 시간 동안 살아남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시 그의 아내와 3명의 아이들은 후숨 기지에 살고 있었다.클라우젠의 유족에게는 행방불명이 아닌 전사통지서가 송부되었고, 소령 계급이 추서되었다.
총 격추수 132기 중에서 폴란드에서 1기, 유고슬라비아에서 3대, 서부전선에서 14대, 동부전선에서 114대였다.
7. 서훈
2급 철십자 훈장 (1939. 9. 17)1급 철십자 훈장 (1940. 7. 4)
공군 명예컵 (1941. 6. 20)
독일 황금십자장 (1942. 5. 18)
기사철십자 훈장 (1942. 5. 22)
곡엽기사철십자 훈장 제106호 (1942.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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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 이름 | 국적 | 격추 수 | 비고 | |
52위 | 아돌프 보르허스 | 독일 | 132대 | ||
아돌프 티크펠트 | 독일 | ||||
에르빈 클라우젠 | 독일 | ||||
55위 | 빌헬름 렘케 | 독일 | 131대 | ||
56위 | 게르하르트 호프만 | 독일 | 130대 | ||
하인리히 슈테어 | 독일 | ||||
58위 | 프란츠 아이제나흐 | 독일 | 129대 | ||
59위 | 발터 달 | 독일 | 128대 | ||
프란츠 되어 | 독일 | ||||
61위 | 루돌프 라데마허 | 독일 | 126대 | ||
요제프 츠베르네만 | 독일 | ||||
63위 | 디트리히 흐라박 | 독일 | 125대 | ||
64위 | 볼프-우도 에텔 | 독일 | 124대 | ||
65위 | 헤르베르트 일레펠트 | 독일 | 123대 | 스페인 내전에서 9기 격추 | |
66위 | 볼프강 토네 | 독일 | 122대 | ||
▼ 67~84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