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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4-22 15:28:52

JG 11

제11전투항공단(Jagdgeschwader 11 : JG 11)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전투항공단.

1. 본토 방어부대로 창설2. 첫 끗발이 개끗발3. 다가오는 파국4. 최후의 반격5. 역대 지휘관

1. 본토 방어부대로 창설

JG 11은 JG 4JG 5처럼 제3제국이 전쟁 준비를 하던 시기가 아니라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에 새로 창설한 전투기 부대였다.
이들의 주임무는 북부 독일 영토를 연합군의 주간 공습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으로, 히틀러가 그렇게도 싫어한 방어부대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제아무리 "공격 앞으로!"를 외친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독일 본토의 도시들이 차례차례 불바다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요격 부대를 일체 운영하지 않겠다는 명령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1943년 4월에 제1전투항공단의 일부 편대원들을 차출하여 JG 11로 재편성했다.

북부 독일의 해안가에 배치된 비행장들을 모기지로 이용한 이들은 바다 건너 영국을 불침 항공모함으로 삼고 제3제국의 옆구리를 찔러 들어오는 연합군 폭격기 부대들을 맞아 혈투를 벌였다. 1943년 여름 동안, 연합군 공습 부대들은 항속거리가 짧은 전투기들 때문에 폭격 전 과정을 엄호받을 수가 없어서 독일 깊숙히 위치한 목표를 공습할 때면 폭격기만으로 위험천만한 적진 상공을 왕복해야만 했다. 루프트바페 사령부는 이런 상황을 간파하곤 서부전선에 주둔하고 있던 전투항공단 예하의 전투기 중에서 40%에 달하는 1,200대의 각종 단발 전투기가 JG 11에 배속되거나 파견되었다.

파일:tumblr_nwowfuWlUL1usoct5o1_1280.jpg

2. 첫 끗발이 개끗발

다양한 적기들을 상대하며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은 수많은 베테랑 조종사들이 JG 11 소속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방어화력이 큰 폭격기 수백 대가 견고한 방어대형을 짜고 날아오는 공습 부대들을 요격하기 위해 참으로 다양한 전술이 고안되고 기발한 신무기도 여러가지 동원되었다. JG 11은 그중에서 전투기에 250 kg 폭탄을 1발 매달고 적 폭격기 편대보다 더 높은 고도로 상승했다가 전투기로 폭격기를 폭격하는 수단을 고안해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중폭격기 킬러로 명성을 쌓은 하인츠 크녹케 중위가 만들어낸 이 전술은 폭탄의 정밀한 신관 세팅과 적기들보다 앞서 고공에서 매복하는 것이 성공 조건이었는데, 마침 프레야와 뷔르츠부르크 레이더 같은 새로운 장비들이 적기들의 침투 경로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들은 또한 육군의 네벨베르퍼 로켓탄을 공대공 무기로 개조한 베르퍼-그라나테 21(Werfer-Granate 21) 같은 무기도 종종 사용했는데, 이것은 밀집편대 대형을 무너뜨리고 폭격기들간에 틈을 벌리는 용도로 자주 사용되었다. 미군 폭격기 승무원들은 4발 폭격기도 직격당하면 일격에 풍비박산내버리는 이 신무기를 가리켜 "불타는 야구공"이라고 부르며 두려워 했다.

3. 다가오는 파국

그렇지만 1944년 초부터 폭격기의 전 비행과정을 동행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경이적인 항속거리를 지닌 P-51이 공습 부대에 엄호 전투기로 따라오자 상황은 돌변하고 말았다. 독일 전투기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성능이 앞서는 이 명전투기가 폭격기 숫자의 1/3 이상이나 되는 머릿수로 함께 몰려오자 이때부터 JG 11의 전투기들은 연합군 폭격기 편대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후부터는 기존의 전술이나 응급 무기들이 거의 효과를 볼수 없게 되었고, 루프트바페는 Bf 109G 시리즈처럼 고공 성능이 받쳐주는 기종으로 미리 매복해 있다가 급강하하면서 일격을 가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달아나는 전술만이 그나마 효과를 볼수 있었지만, 결코 이전과 같은 격추율은 거둘 수 없게 된다.

4. 최후의 반격

1945년 1월이 되자, 빈사 상태에 빠져 구석에 몰린 루프트바페는 마지막 전력을 모두 쥐어짜 대반격 작전인 보덴플라테 작전을 시도했다. JG 11은 연합군 전투기들이 둥지를 틀고 있던 벨기에의 아슈(Asch)와 네덜란드의 오프호벤(Ophoven) 같은 전략거점에 기습을 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연합군 전투기들의 반격에 귄터 슈페흐트(Günther Specht : 1914~1945 / 34대 격추) 중령 같은 사령관급 장교와 고참 승무원들을 상당수 잃고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고 만다. "Y-29의 전설(Legend of Y–29)"로 일컬어지는 이 날의 기습은 연합군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피해를 입히는데 그쳤으나 정작 독일 공군 자신들의 목을 조르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JG 11의 지휘부는 1945년 5월에 해당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영국군에게 투항했다.

5. 역대 지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