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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전투항공단(Jagdgeschwader 4: JG 4)
1. 개요
독일 공군이 제2차 세계 대전을 치르는 동안 새로 창설한 전투기 부대 중 하나인 JG 4는 1944년 6월 15일에 바이에른주의 안스바흐에서 Jagdgeschwader z.b.V.의 본부 비행대를 차출해 신출내기 전투 비행사들을 더해서 만들어졌다. 특수배치 전투항공단(Jagdgeschwader zur besonderen Verwendung: JG z. b. V.)이라는 의미의 야크트게슈바더 추어 페존데렌 페르벤둥은 대전 말기에 루프트바페가 새롭게 창설한 항공단 중 하나였다. 이 부대는 JG 3과 JG 5, JG 27, JG 53, 그리고 JG 54를 하나의 명령 계통에 넣어 신속하게 지휘 통솔하기 위한 목적으로 1944년 4월 20일 카셀에서 창설되었다.초대 지휘관은 JG 54의 제3비행단을 지휘하던 게르하르트 쇠펠(Gerhard Schöpfel: 1912~2003 / 45대 격추) 소령이 맡아 만들어진 이 부대는 1944년 6월 15일자로 JG 4로 재명명되었고, 곧 물밀듯이 달려드는 연합군기들을 맞아 싸우게 된다.
2. 부대 설립
사실 I./JG 4는 1942년 8월 7일에 루마니아에서 작전 중이던 JG 77의 예비 중대를 빼내서 완전한 편제는 아니었지만 서류상으로나마 만들어지고 있었다. 42년 12월에는 여기에 제2비행단이 추가되었고, 1943년 1월 1일에는 추축 동맹국인 루마니아의 미질(Mizil)에서 부대기가 올려졌다. 여기에 1944년 7월에 구축전투항공단인 ZG 1에서 제1비행단을 분리시켜 JG 4 제2비행단으로 집어넣어 부대의 편제가 어느 정도 갖춰지게 된다. 곧 여기에 ZG 1의 제3비행단이 그대로 옮겨와 제3비행단이 되었고 1944년 10월 20일에는 독일 동부의 핀스터발데(Finsterwalde)에서 JG 5 제2비행단이 덧붙여지면서 제4비행단까지 진용이 갖춰졌다. 이처럼 JG 4는 서류상으로 만들어낸 부대였을 뿐 실제로 신참 파일럿들을 보충시켜 만들어낸 부대는 아니었는데, 당시 루프트바페의 궁색한 상황은 이러한 졸속 조치를 정당화하고 있었다.3. 실전
I./JG 4는 루마니아에 있는 플로에스티 유전 단지를 방어하기 위해 1943년 초부터 해당 지역에 전개했다. 1943년 8월 1일에 이들은 연합군의 B-24 중폭격기에 맞서 첫 교전을 벌였고, 이때 12대의 중폭격기를 격추시켰다고 보고했다.JG 4는 곧 북아프리카 전선과 이탈리아 전역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미 육군항공대 제15공군 예하의 중폭격기들을 막기 위해 발칸 반도에 발판을 마련하고 요격전투를 전개했다. 이들은 나중에 로마와 북부 이탈리아 반도의 방위를 위해 재배치되었다.
JG 4는 노르망디 침공을 예측한 사령부에 의해 프랑스로 이동되기 이전에 1944년 상반기 동안 이탈리아 방공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1944년 5월 7일, 브라치아노 호수 지역에서 이들의 Bf 109 전투기들은 RAF의 제72스쿼드론 소속 스핏파이어와 정면으로 맞부딛혔고, 9대의 적기를 격추시키는 댓가로 4명이 전사하고 2명은 후방으로 이송될 만큼 중상을 입은 채 돌아왔다. 그들이 이탈리아 캠페인에서 작전하는 동안에 JG 4 대원 40명이 죽거나 행방불명되었고, 26명은 부상을 입고 7명은 포로로 잡혔다.
JG 4는 1944년 9월에 또다시 큰 손실을 입자 잠시 태세를 정비하고 보충을 위하여 독일 본국으로 철수했다. 12월에 루마니아에 다시 파견된 4./JG 4는 루마니아 공군 Escadrilla 53과 함께 다시 폭격기 요격에 임했으나 폭격 전과정을 밀착 엄호하는 P-51로 인해 소모가 극심했다. 이후 부대는 JG 53으로 명칭을 바꾸었지만 1945년 3월 19일까지 서류상으로는 존재하고 있었다.
4. 지휘관
- 소령 게르하르트 쇠펠(Gerhard Schöpfel): 1944년 6월 15일 ~ 1944년 8월 6일
- 중위 게르하르트 미칼스키: 1944년 8월 7일 ~ 1945년 5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