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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00:06:55

엄인숙

엄인숙
Uhm In-sook
파일:엄인숙_프로필.jpg
이명 엄여인
출생 1976년 7월 29일 ([age(1976-07-29)]세)
서울특별시 중랑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62~3cm
죄목 강도
사기
절도
존속상해
상해죄
현주건조물방화죄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범행 기간 2000년 ~ 2005년
체포 2005년
피해자 10명[1]
형량 무기징역
수감처 청주여자교도소
가족관계 아버지(? ~ 1998), 어머니, 오빠, 남동생
(1997 ~ 2000),
아들(2003 ~ 2005)
1. 개요2. 생애3.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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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엄 여인 보험 살인사건의 가해자.

사건 발생 24년, 체포 19년[2] 만인 2024년 4월 29일 대중에게 얼굴이 공개되었다.

2. 생애

1976년 7월 29일 서울특별시 중랑구에서 태어났다. 그부근에서 초, 중학교를 나왔으며, 1993년 고등학교 2학년때 다른 학생의 돈을 훔친 것이 들통나 강제전학을 당했다. # 친구에게 수면제를 먹여 신용카드를 절취하기도 했으며, 1998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아버지의 통장에서 남은 돈을 멋대로 인출해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

엄인숙은 1995년 고등학교 졸업 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집에서 가출해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삿짐 센터에서 일하던 남성 이 씨를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곧이어 동거를 시작했다. 이후 엄인숙은 1997년 10월임신을 하게 되었고, 1998년 4월 17일, 동거하던 남성과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였다.

엄인숙은 친정생활을 친정 중랑구에서 하였으며, 딸을 출산하였다. 그러나 1998년 6월경 아버지의 사망 후, 그녀가 가족들 몰래 아버지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여 사용하고 어머니의 돈과 패물을 훔친 것이 문제가 되어 친정에서 나와 1999년 10월경부터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남편과 딸과 함께 살게 되었다.

남편 이 씨는 이삿짐 센터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허영심이 많고 사치가 심한 그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벌이여서 두 사람은 자주 다툼이 있었다.[3]

2000년 2월 17일, 그녀의 세 살 된 딸이 집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뇌진탕으로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4]그녀의 범행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

엄인숙은 딸이 죽고 난 뒤 우울증에 걸려 2000년 3월 30일 처음으로 정신의학과를 방문해 치료제를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사망상해 보험 4개를 잇따라 들고, 남편에게 몰래 우울증 치료제를 먹여 정신을 혼미하게 한 뒤 넘어뜨려 뇌진탕에 걸리게 하거나 뾰족한 물건으로 눈을 찔려 실명시키는 방식으로 상해를 가해 보험금을 타냈다.

엄인숙은 남편이 입원한 병원에서 그를 극진히 간호하며 보살펴 누구도 그녀를 의심하지 못했다. 결국 2002년 3월 25일 남편이 사망하자, 엄인숙은 바로 나이트클럽에 가서 새로운 남성을 만났다. 그녀는 사실 고졸이었지만, 자신이 덕성여자대학교 유아교육학과 졸업 후 리라초등학교 부설유치원의 교사였다고 소개하며 남성의 환심을 샀다.

그녀는 2002년 5월경부터 운동선수 출신의 새 남자친구와 그가 살던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했으며, 마찬가지로 우울증 치료제를 먹인 후 상해를 가해 병원에 입원시켰다. 남성이 병원에 입원한 사이, 엄인숙은 몰래 남성과 혼인신고를 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우울증 치료제를 먹인 뒤 눈을 찔러 실명시키는 등의 범행을 했다. 이 사이 두 번째 남편의 아들을 낳기도 했다. 2003년 2월 12일, 두 번째 남편이 만난지 1년도 안돼 결국 사망했다. 엄인숙은 시댁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영혼결혼식을 올리기도 했으며, '어머니가 자기 앞으로 10억 원 정도를 따로 보관하고 있다'며 부유층 자녀처럼 행세했다.

엄인숙은 남편의 사망 이후 2003년 7월 26일 어머니에게 우울증 치료제를 먹이고 눈을 찔러 오른쪽 눈을 실명시키고, 2003년 11월 2일에는 오빠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양측 눈을 실명 시켰다. 그녀는 2003년 10월경 부터 어머니, 오빠,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집인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지냈는데, 2004년 12월 16일 이 아파트를 몰래 대금 9,500만 원에 매도하고 계약금과 중도금 5,500만 원, 잔금 4,000만 원을 지급받았다. 새 집주인에게 아파트를 비워주기로 하였으나 그녀가 이사할 집의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고 하며 2005년 1월 9일까지 미루다가 결국 당일이 되자 집에 불을 질렀다.

그녀는 집에 불을 지른 이후 갈 곳이 없어지자 자신의 아이를 돌보아 주던 가사도우미의 집에 앉혀 살았는데, 가사도우미가 설날이 되기 전에는 나가달라고 하자 앙심을 품고 2005년 2월 1일 그녀의 집에 방화를 저질렀다. 결국 이 방화사건으로 가사도우미의 남편은 사망했고, 가사도우미와 그녀의 자녀들까지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엄인숙은 가사도우미가 화상을 입고 입원해 있던 병원에 찾아가 재차 방화를 시도했으며, 이 장면이 병원 CCTV에 찍혀 처음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이 방화미수 사건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던 와중에도 지인의 집에 몰래 들어가 절도를 저지르거나, 아들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알게 된 여성에게 사소한 일로 앙심을 품고 우울증 치료제를 먹인 후 실명시키는 등의 범행을 하였다.

2005년 4월 19일, 엄인숙은 경찰에 붙잡혔고 이 모든 범행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마약을 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범행했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조사 도중 갑자기 실신한 척 연기를 하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였다.

그녀는 큰 키에 예쁜 외모,[5]나긋나긋한 말씨를 가지고 있었으며, 주변에서는 그녀의 범행을 상상조차 못 했다고 한다. 그녀를 본 사람들은 “남자라면 한 번쯤 호감을 느낄 정도의 외모”라고 말했다고 한다. # 남편이 죽은 후에도 시댁에 극진히 잘해 천사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녀를 취조한 형사들조차도 예쁜 말씨와 용모에 넘어갈 뻔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오후근 형사는 “첫 인상은 예쁜 얼굴이 범죄자 같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당시 동료 형사는 "연예인을 많이 보곤 했지만, 저런 미인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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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근황


[1] 사망자 3명, 실명 5명 포함 부상자 수 7명 #[2] 당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인하여, 경찰들이 연쇄살인범 같은 흉악범죄자까지 신상을 비공개하는 내부 지침을 시행 중이었다.[3] 엄인숙은 그 외에도 남편이 자주 술을 마시고 주사도 심한데다 그녀를 때리고 원하지 않은 성관계를 강요하여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4] 딸이 죽고 나서 남편의 등을 밀어 뇌진탕에 빠트린 전적이 있기 때문에 그녀가 딸을 살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으나, 이에 관해서는 그녀가 완강히 부인해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다.[5] 여태 얼굴이 공개된 적이 없어, 갖가지 소문만 무성하다가, 엄인숙이 체포된 지 19년만인 2024년 4월 29일에 얼굴이 공개되었다.[6] 권일용도 경찰의 일원으로서 면담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외부인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사건 수사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그나마 외부인이라고 볼 수 있다.[7] 자료 수집을 위해, 2인 이상 살해한 살인범 십수 명을 만나 면담한 적이 있었다.[8] 오형사가 알아본 결과, 다른 재소자들에게 이 물건들을 죄다 나눠줘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