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이름의 1953년생 前 레슬링 선수에 대한 내용은 양정모(레슬링) 문서 참고하십시오.
양정모 梁正模 | |
본관 | 남원 양씨 |
출생 | 1921년 9월 13일 |
경상남도 부산부 | |
사망 | 2009년 3월 29일 (향년 87세) |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 |
가족 | 아버지 양태진 딸 양경화(梁京華), 딸 양쥐언니[1], 사위 왕정홍, 외손녀 왕지원 |
학력 | 부산공립공업학교 (가구과 / 졸업 / 14회)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기업인, 국제그룹 제2대 총수.2. 일생
1921년 9월 13일 경상남도 부산부에서 양태진(梁泰振)의 아들로 태어났다.부산공립공업학교 졸업 후, 1949년 부친과 함께 부산에 국제고무공업사를 설립해 왕자표 고무신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6.25 전쟁 와중에 군수품 생산으로 큰 돈을 모았다. 1963년 신발류와 비닐제품 생산업체 진양화학[2]을 세워 1970년대초 신발 수출 붐을 타고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이후 직물가공업체 성창섬유, 국제상선, 신동제지, 동해투자금융 등을 잇따라 창업하고 동서증권, 동우산업, 조광무역, 국제토건, 국제종합엔지니어링, 원풍산업, 연합철강[3] 등을 인수하며 재벌 반열에 올랐다. 1980년대 초반 들어 2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서열 7위 기업집단으로 키웠다. 1976~1985년까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및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을 지내며 부산도시가스 및 항도투자금융 설립에 참여했고, 198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지냈다.
그러나 1985년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국제그룹이 해체된다. 국제그룹 해체 사건 문서 참조. 결국 주력 계열사였던 국제종합건설과 동서증권은 극동건설그룹에, 연합철강과 국제종합기계는 동국제강에, 국제상사 등 나머지 계열사와 국제그룹 사옥은 한일그룹에 각각 넘어갔다. 당시 정부 측은 그룹 해체 원인이 자체 브랜드 개발 실패 및 용산사옥 신축으로 인한 자금난, 전근대적 경영방식, 사우디 건설업 적자 등으로 보았으나, 세간에선 양 전 회장이 정치자금 헌납 등의 요구를 거부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모임에 늦게 나타난 것이 최고 권력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이것이 그룹 해체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게 재계의 정설이다.
상기한 바오 같이 무도한 군사정부의 압박으로 해체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한편으로 무리한 사업 확장 중지 및 당시 정부에서 외채를 보증해 빌려와 지급하는 방식의 구조를 생각해볼때 납작 엎드렸더라면 국제그룹의 임직원 및 그 처자식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막을 수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정주영 처럼 훗날을 기약하더라도 일단 오너이자 경영자로써 회사를 유지하는데 집중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았더라면, 적어도 국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호황기라도 당시 30대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이 480%임을 감안했을때, 국제그룹의 900%는 높은 수치이기도 했다.
이후 1987년에 '국제그룹 복원 추진위원회'를 세워 1988년부터 정부를 상대로 국제그룹의 해체가 부당하다며 위헌 소송[4]을 벌여 1993년에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아 1994년에 한일합섬을 상대로 국제상사를 돌려받고자 '주식인도 청구반환 소송'을 냈으나 1996년에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고,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결국 그룹 재건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국제 계열사들을 많이 가져간 한일그룹, 극동그룹 등이 외환위기로 파산했기 때문이다.
결국 1998년 부산도시가스 사외이사 추대 후 고향인 부산에서 칩거생활을 하다가 2009년 3월 2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노환에 따른 폐렴으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3. 대중매체에서
4. 가족관계
- 양태진
- 양정모 (1921 ~ 2009) / 妻 김명자 (1925 ~ ?)
- 양경화
- 양지혜(양쥐언니) (1977년생)
- 양규모
- 양귀애
- 자식이 3남 11녀로 매우 많다. 장남은 그룹이 해체된 직후인 1985년에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동생으로는 KPX그룹(진양화학) 회장 양규모와 양귀애 전 대한전선 명예회장[5]이 있다.
- 아직 어린 아들을 대신해 사위들을 요직에 배치한 가족 중심의 경영체제가 그룹 해체 당시 도마에 올랐었다.[6] 이들 다수는 국제그룹 해체 이후 세간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상당 기간 칩거해야 했다. 다만 이 가운데 2인자로 가장 중용되었던 다섯째 사위 김덕영은 김종호 신한종합금융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서, 국제그룹 해체 이후인 1986년에 국제그룹 직원들을 중심으로 두양상사를 설립하고 두양그룹의 창업주가 되었다.
- 발레리나 출신 배우 왕지원의 외조부다. 즉, 왕정홍 전 방위사업청장이 양정모의 사위다.
- LG그룹에서 ㈜LG 대표이사,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등 최고위 전문경영자로 활동한 권영수 부회장도 사위이다. 권영수는 동갑내기(1957년생)인 양정례와 결혼하였고, 당시 다른 사위들과 마찬가지로 국제그룹 경영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제안을 거절하고 계속 LG에 근무했다고 한다.
[1] 1977년생, 본명 양지혜[2] 1974년에 동생 양규모에 의해 독립하여 현재의 KPX그룹이 되었다.[3] 그러나 인수 과정에서 창업주인 권철현(1925~2003)과 연관된 논란이 많았다.[4] 당시 소송 대리인이 조영래, 황인철 변호사였다.[5] 설원량 2대 대한전선 회장의 아내. 하지만 설 회장의 급서로 아버지와 남편-아들 그룹 모두가 분해되는 고통을 겪었다.[6] 첫째 사위(한윤구)가 국제상사 생산담당 사장, 둘째 사위(이대황)가 국제상선 사장, 셋째 사위(김정형)가 국제상사 부사장, 넷째 사위(김영)가 동서증권 부사장, 다섯째 사위(김덕영)이 국제그룹 부회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