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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00:38:57

야율제

1. 개요2. 상세3. 작중 행적

1. 개요

耶律齊. 신조협려의 등장인물. 실존인물이었던 몽골의 명재상 야율초재의 아들로 설정되어 있으며, 야율주의 동생으로 차남이다. 야율연의 오빠.

2. 상세

어린 시절에 주백통을 만나 재미있게 놀았고, 주백통은 제자로 삼고 이런 저런 무공을 가르쳐주게 된다. 별로 많이 가르쳐준 것은 아니었지만 영특하고 부지런해서 또래 가운데서 돋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주백통은 야율제가 점점 행동이 의젓해지자 흥미를 잃어갔고, 쌍수호박도 익히지 못하자 아예 자기 제자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떠나버렸다. 덕분에 야율제는 전진교 무공을 쓰면서도 얼마동안은 자신의 스승을 밝히지 못했다.

젊은 나이임에도 무공 수준은 매우 높아서 전진칠자와 비슷한 수준이다.[1] 이막수와 결투를 벌일 때 그가 펼치는 전진검법을 보고 양과가 자신의 것보다 더 경지가 높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비록 당하지는 못하였지만, 양과와의 협공으로 이막수를 잠시 몰아붙이기도 했다. 소용녀와 양과가 힘을 합해도 그녀를 당해내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3. 작중 행적

아버지 야율초재는 몽골의 황후가 조정을 장악하게 되자, 충언과 직언을 마다하지 않다가 황후에게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그래서 하남의 민심이 흉흉하니 순시를 가겠다는 상소를 올리고 야율제와 야율연을 데리고 하남 경략사로 일하고 있던 야율주에게 가게 된다.

야율초재의 목숨을 노리는 완안평을 세번이나 막았다. 세번째에는 다음번 대결에서 왼손을 쓰면 목숨을 버리겠다고 맹세하여, 완안평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않게 하고 시간을 끌어서 복수심을 없애려 했지만 양과에게 가르침을 받은 완안평이 야율제의 오른손을 잡은 다음, 스스로 자결하려 하자 할 수 없이 왼손을 써서 완안평을 구하고 약속대로 목숨을 내놓으려 한다. 하지만 완안평은 그 기개에 탄복해 칼을 버리고 도망친다.

객잔에 들렀다가 양과육무쌍을 구하기 위해 이막수와 대결하는 것을 보고 양과를 도와 이막수와 싸운다.

아버지 야율초재가 암살당하자, 아버지를 이용하고 토사구팽해버린 몽골에 깊은 원한을 가지게 되어 어머니와 야율연을 데리고 송나라로 남하하여 송의 무림인들과 손을 잡는다. 무삼통무돈유, 무수문 형제가 공손지와 싸우는 것을 보고 그들을 도왔으며, 황용이막수의 도움을 받아 공손지를 물리치고 곽양을 찾기 위해 전진교고묘파의 활사인묘가 있는 종남산으로 간다.

그리고 전진교 종남산에서 주백통과 재회하게 된다. 오랜만에 야율제를 만난 주백통은 듬직하게 성장한 자기 제자를 자랑하고 싶은 생각에 즐거워진 주백통은 예전에 사부라고 하지 말라고 한 것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전진교에 야율제를 소개해주면서 "이제부터는 전진팔자라고 해야 한다."라고 농담을 한다.

곽양을 찾아 고묘파의 고묘로 들어가지만, 이막수의 흉계로 곽부, 무삼통, 무돈유, 무수문와 함께 석실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마침 곽양이 배가 고파서 우는 소리를 듣고, 무공으로 그 방향의 벽에 구멍을 뚫어 빠져나온다.

고묘를 탈출한 후에는 몽골군이 일으킨 화재를 피해 계곡 물을 따라 내려와 황용, 완안평, 야율연과 합류하여 절정곡으로 갔다.

절정곡에서 문제가 해결된 후, 양양성으로 돌아왔으며 그 동안 사이가 좋아진 곽부와 결혼하게 된다. 16년 후에는 노유각이 사망하자 양양 영웅대회에서 개방의 방주를 선출하는 무술대회에 참가하여, 여러 젊은 영웅들을 물리치고 개방 방주로 선출된다.

곽도의 음모로 개방 방주 직위를 빼앗길 뻔 하기도 했지만, 양과의 개입으로 음모가 밝혀져서 무사히 방주 자리를 승계했다.

신조협려에서의 행적을 보면 그야말로 최고의 대인배. 성품이 매우 후덕하며 사려깊고 머리 또한 좋다. 주백통의 제자이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전진칠자와 항렬이 같고[2], 무공 또한 전진칠자급으로 동년배에서는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높다.

단지 동년배이면서도 혼자 천하오절급으로 올라가버린 양과에게는 역시 많이 못 미치지만, 이건 양과가 워낙 기연을 많이 만났기 때문. 고묘파에서 막 나온 양과와 야율제의 무공을 비교해보면 이설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이막수와 주루에서 싸울 때를 기준으로는 야율제가 더 강하다. 양과는 이막수의 초식을 제압하는 구음진경의 검법을 사용했음에도 얼마 싸우지 않아 위기에 몰렸는데, 야율제는 이막수는 전진칠진와 연일 싸워 전진검법을 꿰고 있는데 자기는 이막수의 초식을 하나도 모르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40여초까지는 버티다가 밀리기 시작했다. 사실 초식의 정교함과 화려함은 양과가 야율제보다 낫지만, 야율제는 양과보다 내공이 심후하였다. 양과가 진정으로 야율제를 넘어서는 경지에 들어선 것은 절정곡에 들어섰을 시점부터라고 봐야 한다.[3]

나중에는 곽정에게 항룡십팔장도 전수받는다. 곽정의 뒤를 이은 바른생활사나이 2호. 스승인 주백통은 야율제가 너무 바른생활사나이라 재미가 없고 깐깐하다며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도 했지만, 그래도 번듯한 자기 제자라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젠 전진칠자가 아니라 (야율제를 더해) 전진팔자라고 불러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다.

이런 대인배적 품성을 인정받아 황용, 노유각의 대를 이어 개방방주 자리에 올랐으며, 개방을 이끌어 양양성에서 곽정, 황용과 함께 몽골의 대군세에 맞서 싸운다.

야율제 본인은 항룡십팔장을 모두 익혔지만, 이후 개방 방주들이 덜떨어져서 <의천도룡기>시대에는 십팔장을 전부 전수하지 못하게 돼버렸다.(…)

아래는 작중에서 보이는 야율제의 대인배적 행적

어쨌든 곽정과 황용의 자식들중에 그야말로 공기중의 공기인 곽파로도 양양성에서 순국했다는 결말이 나와있는데, 야율제와 곽부는 함께 순국했는지 곽양처럼 다른 지역에 있었는지 둘 사이에 자식은 있는지 없는지 전혀 나와있지 않다.. 주자류무씨 형제중에 무수문도 악역이지만 후손들을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조금 이상한 부분. 아무래도 둘 사이에 자손이 있다 하면 대협 곽정의 후손이기도 하니 대충 가벼운 인물을 만들 수도 없고 곤란해서 그냥 묻어버린 모양. 의천도룡기 구판에서는 야율제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야율연여(耶律淵如)라는 개방의 방주가 언급되긴 하는데... 문제는 작가가 이 인물의 존재를 망각하고 뒷부분에서 사화룡을 개방 방주로 설정해 버렸다는 것.[4] 개방 방주가 2명이 되어버리는 설정오류 문제가 있기도 하고, 개방 방주가 세습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좀 이상하기 때문에 2판부터는 이 야율연여라는 인물을 삭제해 버렸다.


[1] 다만, 이막수가 야율제와 싸워 본 후 그의 무공에 대해 "전진칠자 중 구(처기), 왕(처일), 유(처현) 등에는 못 미쳐도 손불이에게는 지지 않겠다"고 평한 것을 볼 때, 전진칠자 중 평균적인 멤버 정도 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고, 전진칠자 말석 이상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껏해야 전진칠자의 사손 정도일 젊은 나이에 이 정도 하는 것도 대단한 것이다.[2] 주백통이 왕중양의 사제(師弟), 전진칠자는 왕중양의 제자이고, 야율제는 주백통의 제자이니 전진교의 사제 항렬로 따지면 2순위가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연배로는 사백이나 태사백쯤 되는 구처기, 마옥과 사형제지간이나 진배없는 것. 야율제에게 항룡십팔장을 전수한 곽정은 말하자면 사부뻘이 되지만 곽정이 마옥에게 내공을 전수받은 부분을 따지면 오히려 곽정의 사숙뻘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곽정은 정식으로 전진교 문하에 든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주백통이 곽정과 의형제를 맺어버렸기 때문에...[3] 이 무렵에는 홍칠공의 타구봉법을 배우고, 황약사로부터 옥소검법과 탄지신통을 배워 매우 강해졌다. 신조협려 내에서도 난적에 드는 공손지와 잠시나마 대등하게 맞붙었다.[4] 황삼미녀가 언급하길, 사화룡이 20여년 전에 항룡18장을 수련하다가 내상을 입고 개방의 업무를 장로에게 맡겼다고 하는데, 야율연여가 언급되는 시기는 대충 10여년 전이다. 즉 타임라인대로라면 야율연여가 사화룡의 전대 방주일 가능성도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