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bec13e><colcolor=#ffffff> 알리나 카바예바 Алина Кабаева | Alina Kabaeva | |
본명 | 알리나 마라토브나 카바예바 Алина Маратовна Кабаева Alina Maratovna Kabaeva |
출생 | 1983년 5월 12일([age(1983-05-12)]세) |
소련 우즈베크 SSR 타슈켄트[1] | |
국적 | [[소련| ]][[틀:국기| ]][[틀:국기| ]]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6cm, 50kg[2] |
종목 | 리듬체조 |
정당 | |
은퇴 | 2007년 |
링크 |
[clearfix]
1. 개요
러시아의 前 리듬체조 선수 출신 정치인이자 현직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부(情婦)다. 통합 러시아 소속 국가두마 의원으로서 2007년부터 일했으나 2014년 9월 15일 사퇴하고 현재 친정부 성향 최대의 민간 언론사 내셔널 미디어의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공식적으로 은퇴 선언을 하지는 않았으나 활동하지 않은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은퇴다.2. 선수 경력
어릴 때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체육관에서 왕따를 당했으며 다들 리듬체조를 그만두라고 했으나 남다른 유연성을 눈여겨본 비녜르 덕에 성공하였다.[3]살을 뺀 후에도 저주를 받은 체형으로 악명을 떨쳤는데 사실 살도 살이지만 뼈가 통뼈이고 거기에 머리가 워낙 대두라 더 그렇게 보이는 거다. 다른 선수들과 서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리듬체조를 할 체형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얼굴도 못생긴 얼굴이 아닌데 워낙 여신 몸매에 냉미녀 포스를 자랑하는 이리나 차시나와 함께 활동하다 보니 비교되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
2004 아테네 올림픽 |
사실 2000년이 최전성기였으나 올림픽에서의 후프에서의 치명적인 실수[4]로 동메달로 밀려나게 되었다. 팬들은 2000 시드니 올림픽 전후 1년을 그녀의 최전성기로 친다.
현역 기간이 길어지면서 무너지는 체형과 지저분해지는 실시로 인해 명성에 흠이 많이 갔다. 2000 시드니 올림픽 직후까지는 명실상부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리듬체조 선수였다. 2001년 약물 파동[5] 이후로 기량이 떨어지고 살도 쪘지만 그 유연성을 이용한 높은 신체난도 덕에 약물 파동 이후에도 계속해서 세계 최강 자리를 지키다가 차시나와 함께 2004년에 올림픽 팀에 발탁된다. 예전에 비해 아쉬운 수구 조작을 보여주었으나 여전한 유연성과 차시나의 리본 실수에 힘입어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이후에도 무려 2007년까지 활동을 계속했던 걸 생각하면, 카나예바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2008 베이징 올림픽까지 나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헤드코치 비녜르의 관심을 독차지했던 선수이다. 비공식적인 카바예바의 후계자로는 알렉산드라 메르쿨로바가 있다. 몸매는 카바예바와 비교가 안 되게 좋지만 실력은 유연성과 얼굴 모두 카바예바에 비해 딸린다.
3. 은퇴 이후
2007년 직후 여당인 통합 러시아의 공천을 받아 7년 동안 국가두마 의원으로 재직하였다. 2014년 푸틴의 후원자인 유리 미란추크가 설립한 언론사 내셔널미디어그룹의 회장으로 추대되었다.4. 평가
4.1. 긍정론
프리레그를 손으로 잡고 정수리에 바짝 붙여서 돌던 특유의 백스플릿 피봇은 해설자들 사이에서는 아예 '카바예바'라고 불릴 정도였다. 프리레그의 발을 어깨에 걸어 링 포지션을 만든 상태에서 턴을 도는 것도 그녀의 시그니처 기술이었다. 현재 대부분의 선수들이 장착하는 백스케일 피봇은 그녀가 최초로 선보인 기술이다.
워낙 유연성이 쩔었던 만큼 점수도 잘 나왔고 덕분에 안티도 많았다. 사실 그녀의 가공할 유연성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탓을 하려면 규정 탓을 해야지 심판들 탓만 하기엔 좀 그런 감이 있다. 이런 불평이 예브게니야 카나예바가 4년 동인 리듬체조계에 원탑으로 군림했을 무렵엔 더 커져서 2013년부터 적용되는 룰에는 신체난도가 대폭 줄어들었다.
흔히들 이 선수 때문에 비녜르는 유연성이 좋은 선수만 뽑는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비녜르는 당시 규정상 몸이 많이 유연한 선수가 앞으로 유리해질 것이라는 걸 간파했고 카바예바가 나타나기 전부터 유연성을 중요시했다.
카바예바보다 먼저 야나 바티시나가 존재했다. 이 선수의 루틴을 보면 미친 유연성, 그 유연성에 기반한 컨토션을 연상시키는 신체 난도, 고난도의 오버스플릿 점프와 립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미소 등 카바예바의 스타일과 거의 동일한데 거의 카바예바의 프로토타입인 선수로서 이 선수 이후로 리듬체조 규정이 신체난도를 높게 평가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바티시나 이후로 유연성을 중요시하던 비녜르의 눈에 카바예바가 들어온 것이다. 카바예바가 발탁될 쯤에는 이미 룰이 바뀌어 있었던 덕분에 카바예바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러시아 체조의 패러다임을 바꾼 선수는 바티시나와 카바예바라고 해야 맞다.
흔히 카바예바 전후로 리듬체조 시대가 나뉠 정도로 리듬체조계에 굉장한 영향력을 끼쳤던 전설적인 선수이다. 그만큼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데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을 비롯해 14개의 세계선수권 메달과 25개의 유럽선수권 메달을 땄다. 이 중 유럽선수권 메달 최다 소유자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1999년에 16세의 나이로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는 2013년에 야나 쿠드랍체바가 15세로 경신하기 전까지 최연소 금메달이었다.
사진처럼 특유의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 선수였다. 비록 안티들에게는 루틴 내내 표정 연기를 미소로만 일관해서 까였지만 아직도 러시아인들에게는 그 미소로 기억되는 선수이다. 그녀의 라이벌인 이리나 차시나가 특유의 무표정으로 기억되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4.2. 부정론
난도에 걸맞은 표현력이 부족했다는 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카바예바의 루틴 대부분은 특유의 쿵짝쿵짝한 업템포 음악이며 카바예바가 하는 연기라고는 루틴 내내 미소를 짓는 게 다이다. 모든 연기를 미소 연기로 일관했던 점은 신체적 표현력이 뛰어났던 이리나 차시나와 표정 연기가 뛰어났던 안나 베소노바와 비교했을 때 아쉬운 점이다. 그리고 카바예바의 이 연기 스타일을 알렉산드라 메르쿨로바가 그대로 이어받았다.안티들 사이에서는 예술적 스포츠인 리듬체조를 기예나 곡예 수준으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위 사진만 봐도 설명이 가능하다. 다만 이는 카바예바의 대두와 리듬체조를 하기에는 좋지 못한 비율이 그 유연성을 더 기괴하게 보이게 하는 것도 있다. 카바예바의 링 발란스와 카나예바의 링 발란스를 비교해 보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특히 말년에 하던 다리 사이에 리본대를 끼우고 흔드는 등의 연기는 팬들을 불편하게 하였고, 정석적인 연기를 선보이던 차시나와 더욱 비교되게 하였다. 거기다가 자신보다 못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게 싫다고 인터뷰를 하는 등 선수들과 팬들 돌려까기 신공을 보여주어 겸손함이 부족하고 자기 객관화가 약간 떨어지는 성격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수구 조작, 실시, 표현력은 난도에 비해 훨씬 더 부족했으며, 그런 부분이 카바예바보다 월등한 선수들도 많았기 때문이다.[6]
그 밖에도 욕을 먹을 점은 현역 생활이 길어지고 나이가 들면서 수행이 시망똥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성기의 점수 유지를 했다는 점이다. 사족이지만 그녀와 푸틴의 염문설은 사실 카바예바가 10대였던 시절부터 2000년쯤부터 들리던 이야기다.
5. 수상 기록
대회 | <colcolor=#ffffff> 금 | <colcolor=#ffffff> 은 | <colcolor=#ffffff> 동 |
올림픽 | <colbgcolor=#ffe970> 1 | <colbgcolor=#c0c0c0> 0 | <colbgcolor=#d7995b> 1 |
세계선수권 | 9 | 3 | 2 |
유럽선수권 | 15 | 3 | 3 |
유럽 팀선수권 | 3 | 0 | 0 |
그랑프리 파이널 | 4 | 1 | 1 |
월드컵 파이널 | 5 | 1 | 0 |
친선 경기 | 4 | 1 | 0 |
합계 | 41 | 9 | 7 |
올림픽 | ||
금메달 | 2004 아테네 | 종합 |
동메달 | 2000 시드니 | 종합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99 오사카 | 단체전 |
금메달 | 1999 오사카 | 종합 |
금메달 | 1999 오사카 | 공 |
금메달 | 1999 오사카 | 리본 |
금메달 | 2003 부다페스트 | 단체전 |
금메달 | 2003 부다페스트 | 종합 |
금메달 | 2003 부다페스트 | 공 |
금메달 | 2003 부다페스트 | 리본 |
금메달 | 2007 파트라스 | 단체전 |
은메달 | 1999 오사카 | 줄 |
은메달 | 1999 오사카 | 후프 |
은메달 | 2003 부다페스트 | 후프 |
동메달 | 2003 부다페스트 | 곤봉 |
동메달 | 2007 파트라스 | 리본 |
유럽선수권 | ||
금메달 | 1998 포르토 | 종합 |
금메달 | 1998 포르토 | 후프 |
금메달 | 1999 부다페스트 | 종합 |
금메달 | 2000 사라고사 | 단체전 |
금메달 | 2000 사라고사 | 종합 |
금메달 | 2000 사라고사 | 공 |
금메달 | 2000 사라고사 | 후프 |
금메달 | 2001 제네바 | 곤봉 |
금메달 | 2001 제네바 | 공 |
금메달 | 2001 제네바 | 후프 |
금메달 | 2002 그라나다 | 단체전 |
금메달 | 2002 그라나다 | 종합 |
금메달 | 2004 키예프 | 단체전 |
은메달 | 1999 부다페스트 | 리본 |
은메달 | 2001 제네바 | 줄 |
은메달 | 2006 모스크바 | 종합 |
동메달 | 1998 포르토 | 단체전 |
동메달 | 1999 부다페스트 | 줄 |
동메달 | 2000 사라고사 | 줄 |
유럽 팀선수권 | ||
금메달 | 1999 파트라스 | 단체전 |
금메달 | 2001 리에사 | 단체전 |
금메달 | 2003 모스크바 | 단체전 |
그랑프리 파이널 | ||
금메달 | 1999 코르노부르그 | 종합 |
금메달 | 1999 코르노부르그 | 공 |
금메달 | 1999 코르노부르그 | 리본 |
금메달 | 1999 코르노부르그 | 후프 |
금메달 | 2001 데벤테르 | 종합 |
금메달 | 2001 데벤테르 | 공 |
금메달 | 2001 데벤테르 | 후프 |
은메달 | 1999 코르노부르그 | 종합 |
은메달 | 2001 데벤테르 | 줄 |
동메달 | 2000 데벤테르 | 줄 |
월드컵 파이널 | ||
금메달 | 2000 글래스고 | 공 |
금메달 | 2000 글래스고 | 리본 |
금메달 | 2000 글래스고 | 줄 |
금메달 | 2004 모스크바 | 리본 |
금메달 | 2004 모스크바 | 후프 |
은메달 | 2000 글래스고 | 후프 |
친선 경기 | ||
금메달 | 1998 뉴욕 | 종합 |
금메달 | 1998 뉴욕 | 곤봉 |
금메달 | 1998 뉴욕 | 리본 |
금메달 | 1998 뉴욕 | 후프 |
은메달 | 1998 뉴욕 | 줄 |
6. 여담
6.1. 기타
- 대조국공훈훈장 4급 수훈자다.
- 현역 시절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은 공이고 싫어하는 종목은 후프였다. 시드니 올림픽에서의 치명적인 후프 실수가 트라우마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 예브게니야 카나예바의 인터뷰에 의하면 카바예바는 러시아 노보고로스크 체육관에 종종 나타나서 2시간 가량 훈련을 하지만 몸매 유지와 후배들의 교육 용도, 이따금 참여하는 갈라 연습이라고 한다.
- 아버지인 마라트 카바예프는 타타르족 출신이며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갖고 있다. 젊은 시절 파흐타코르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현재는 자신이 설립한 국제이슬람비즈니스협회의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 현재 리듬체조 관련 직책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자선대회 주최 등 체조와 관련하여 활발히 활동 중이다.
- 이리나 비녜르가 심판직 박탈 위기에 처했을 때 정재계 관계자들에게 부탁하여 큰 위기를 넘기게 한 사람도 바로 카바예바였다. 반대로 카바예바가 도핑 문제로 메달을 박탈 당하고 1년간 선수 자격 정지를 받았을 때는 비녜르가 구했다. 대회 출전을 하지 못한 1년 간 새 루틴을 받지 못하고 연습장에서 몸을 풀기만 하는 카바예바를 안쓰럽게 생각한 비녜르는 친분이 있는 방송국 관계자에게 부탁하여 카바예바에게 인기 스포츠 채널의 진행자 자리를 주었다. 그 프로그램은 사실 푸틴이 즐겨 보던 채널이었으며 푸틴은 수행원들에게 항상 환하게 웃는 그 여자를 크렘린 궁으로 초대하게 했다.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성화봉송의 마지막 주자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2014년에 푸틴과 비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크렘린 궁 내부에서 인터뷰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7] 2015년 3월에 아이를 출산했는데 다들 99%의 확률로 푸틴의 아이라고 하지만 아이 아빠를 밝히지는 않았고 푸틴도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푸틴이 여러모로 막 나가는 언행으로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카바예바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감추는 모습을 보고 러시아 호사가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마도 역대 러시아 대통령 중 이혼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서서 재혼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거기다가 2017년에는 결혼 반지를 낀 채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어린 소년 두 명과 함께 공식 석상에 참여하였다. 찌라시들은 여태까지 있었던 아이 관련 루머들이 죄다 사실일지도 모른다며 난리가 났다.[8] 2018년 영국 언론에 의해 임신설이 돌았고 2019년 4월 쌍둥이를 출산했는데 크렘린과 카바예바 모두 푸틴과 아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 은퇴한 지 오래되었고 사생활로 인해 찌라시에 자주 등장하지만 여전히 카나예바와 함께 역대 최고의 리듬체조 선수로 기억 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카나예바보다도 높게 쳐주는 경향이 있다. 전반적인 커리어는 카나예바가 앞서지만 러시아에서 리듬체조를 대중화시킨 것은 카바예바의 공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악명 높은 미소 연기와 대중 친화적인 퍼포먼스 스타일은 일반 시청자들에게 매우 잘 먹혔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지지를 표하는 Z 배경과 함께 등장했다.
- 2023년에 엄청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보도되었다. 러시아 최대 아파트로 불리는 소치의 펜트하우스는 144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이고 흑해가 내려다보이며 방은 무려 20개나 된다. 여기에 영화관과 당구장, 미술 갤러리와 바, 사우나 등의 시설까지 보유했다.
6.2.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부(情婦)
- 블라디미르 푸틴과 오랫동안 관계를 가져 온 정부로 쌍둥이 아들을 포함해서 최소 3명의 사생아를 낳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EU는 카바예바를 제재 명단에도 올릴 계획을 세웠다. 제재가 이뤄지면 EU 지역 여행이 불가능해지고, 자산도 동결된다. 미국에서도 제재 대상이다.
- 푸틴을 사로잡은 비결은 뛰어난 유연성 덕분일 것이라는 항간의 추측과 달리 카바예바의 자주 웃는 얼굴과 잘 맞춰주는 성격, 이리나 비녜르의 모욕적인 언사를 오래 견뎌내며 다져진 비위와 인내심 같은 성격적 요소 때문이라고 한다. 푸틴의 취향은 아프고 슬퍼도 겉으로는 항상 웃는 여자, 한 마디로 어리고 고분고분한 여자라는 이야기다. 선데이 타임즈에서는 푸틴이 절친한 기자에게 '재능 있고 아름다운 러시아 여성'이라며 카바예바를 칭찬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덕분에 비녜르의 입지도 단단해지고 일석이조가 됐다. 참고로 현역 시절 내내 비녜르에게 엄청나게 구박받았으면서도 악감정이 전혀 없어 보이는 것이, 최근 인터뷰에서조차도 비녜르의 가혹한 훈련은 선수들에게 꼭 필요하다면서 그 과정을 통해 "그녀가 아무것도 아니었던 자신을 보석으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7. 관련 문서
[1] 現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지역이며, 현재는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다.[2] 리듬체조 선수치고는 키가 살짝 작고 뚱뚱한 편이다. 당장 예브게니야 카나예바는 172cm에 49kg이며 많은 리듬체조 선수들이 장신(168cm 이상)에도 50kg을 넘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다.[3] 그러나 훈련하는 동영상에서는 비녜르조차도 살을 좀 빼라고 난리를 치는데 정말 인성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깐다. 대층 '니가 그렇게 뚱뚱하니까 머리가 안 돌아가서 내 말도 못 알아듣는구나' 같은 내용인데 문제는 동영상의 알리나는 그렇게까지 뚱뚱하지는 않고 어디까지나 리듬체조 선수로서 좀 통통한 편이라는 점이다.[4] 정말 간단한 핸들링 중에 후프를 경기장 밖으로 날려 버렸다. 밖으로 흔히 나가는 다른 수구들에 비하여 후프는 이런 대형 사고가 적은 편인데 관중들도 다들 놀랐다. 게다가 후프를 앞도 아니고 뒤로 날리는 건 일부러 하려고 해도 힘들다.[5] 다이어트 약을 비녜르가 먹였는데 금지 물질이 있어서 그 기간 동안 땄던 메달들을 박탈당했으며 한동안 대회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라이벌 이리나 차시나도 이때 같은 이유로 메달을 몇 개 박탈 당했는데 이 중에는 그녀가 유일하게 갖고 있던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금메달도 있었다.[6] 대표적인 예로 이리나 차시나가 있다.[7] 인터뷰한 내부인에 의하면 정계에서는 이미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본인들이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까지는 외부에 이 일에 대한 브리핑도 없을 거고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결혼설을 보도했던 러시아 타블로이드지인 모스코비치 코레스폰덴트의 편집장 그리고리 네코로세브는 강제 사임당했으나 이후 복귀했다.[8] 이 연애가 사실이라면 나이 차가 1952년생-1983년생으로 무려 31살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