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샨드리 파투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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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샨드리 파투 Alexandre Pato | ||
<colbgcolor=#fe0000><colcolor=#000> 본명 | 알레샹드리 호드리기스 다시우바 Alexandre Rodrigues da Silva[1] | |
출생 | 1989년 9월 2일 ([age(1989-09-02)]세) | |
브라질 파라나주 파투 블랑쿠 |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0cm / 체중 78kg |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
소속 | <colcolor=#000> 선수 | SC 인테르나시오나우 (2006~2007) AC 밀란 (2007~2013) SC 코린치안스 (2013~2016) → 상파울루 FC (2014~2016 / 임대) → 첼시 FC (2016 / 임대) 비야레알 CF (2016~2017) 톈진 톈하이 (2017~2019) 상파울루 FC (2019~2020) 올랜도 시티 SC (2021~2022) 상파울루 FC (2023) |
국가대표 | 27경기 10골 (브라질 / 2008~2013) | |
SNS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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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상파울루 FC 소속 축구선수. 포지션은 공격수이다.2. 클럽 경력
2.1. AC 밀란 이전
SC 인테르나시오나우 유스 출신으로 2006년 프로에 데뷔하였으며, 데뷔전에서 투입 1분 만에 데뷔골을 터뜨리는 활약을 보이며 관심을 모으게 된다. 이후 2006 FIFA 클럽 월드컵에서 FC 바르셀로나를 꺾고 우승, 2007 FIFA U-20 월드컵 등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고, 그해 여름 AC 밀란의 러브콜을 받아 유럽 무대로 진출하기에 이른다.2.2. AC 밀란
2007-08 시즌을 앞두고 영입되었으나 세리에 A Non-EU 규정으로 인해 시즌 초반에는 경기를 뛰지 못했고, 2008년 1월이 되어서야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이후 1월 13일 세리에 A 공식 데뷔전을 나폴리와 치르게 되었는데 여기서 데뷔골[2]을 넣어 자신이 전세계적인 센세이셔널한 유망주임을 각인시켰고, 시즌 20경기에 출전해 9골을 넣는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치른다. 이후 파투는 밀란 공격의 중심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이때 당시 카-파-로 조합이라 하여 카카가 받쳐주고 호나우두, 파투가 공격의 마무리를 짓는 역할을 했는데 궁합도 좋고 파괴력도 좋아 큰 기대를 받았으나 호나우두가 왼쪽 무릎 슬개건이 끊어지는 장기 부상을 당해 흐름이 끊기게 되어 최종적으로 피오렌티나에게 챔스 티켓을 내주게 된다.
2009-10 시즌 후반기부터 슬슬 유리몸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햄스트링 부상으로 후반기 시즌을 거의 못 뛰게 되었다. 이 외에도 잔부상이 많아지고 있어서 성장기 때의 혹사로 인해 유리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팬들도 많았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2010-11 시즌부터 옛날처럼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드리블 돌파보다는, 기회가 왔을 때 순식간에 침투하며 골을 꽂아넣는, 전형적인 포쳐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하지만 2011-12 시즌 개막 직전 중국에서 열린 AC 밀란과의 이탈리아 슈퍼컵에서 인종차별적인 세레머니를 보이며 신나게 까이고 있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FC 바르셀로나전에서 전반 시작하자마자 미친 듯한 치달을 보여주며 24초 만에 득점하였다. 일명 파투 4드론 골으로 챔스 역사상 5번째로 빠른 골이다.[3]
여담으로 유부남이었으나 2010년 4월경 이혼했다는 뉴스가 떴다.[4] 이후 구단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막내딸 바르바라[5]와의 염문설이 퍼지더니 결국 열애 확정. 각종 언론에 둘이 만나고 다니는 사진이 엄청나게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바르바라가 파투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한다.
2012년 PSG로 이적이 확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파투의 잔류가 확정되었다는 공식 보도가 AC 밀란의 공식 홈페이지에 나왔다.# 그러나 유리몸 기질이 더욱 심화되면서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바르셀로나와의 챔스 8강 2차전에서 교체로 간만에 복귀했으나 곧바로 다시 벤치로 실려가며 시즌 아웃당했고, 밀란 팬들은 '홀로그램이었나?' '게임 캐릭터였군' 등의 개드립을 시전했다. 2년 반의 연애 끝에 2013년 7월 경 바르바라와 헤어졌다고 한다. 결국 유럽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2013년 브라질의 코린치안스로 이적했다.
밀란에서 6시즌을 뛰면서 총 117경기 51골의 성적을 기록했다.[6]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파투가 19살에 밀란으로 이적한 후, 공식 무대 데뷔전을 치른 20살부터 브라질로 돌아가기 전인 25살까지 그 어린 나이에 저 득점을 쌓았다. 밀란에서의 마지막 두 시즌은 부상과 그로 인한 폼 하락으로 골을 거의 넣지 못했는데도 저 정도다. 참고로 파투가 한창 날라다닐 때의 세리에는 망조가 보이긴 했으나 아직 건재한 리그였다. 밀란 초창기 시절엔 평가도 좋고 착실한 선수였지만 상술했듯이 호나우지뉴의 영향을 아주 제대로 받으신 듯. 하필 밀란 시절 호나우지뉴가 우울증 + 축구계의 모든 명예를 차지한 후라 동기부여가 없어 방탕하게 놀던 시절[7]이라 안좋은 쪽으로만 제대로 영향 받았다.
2.3. SC 코린치안스
브라질 리그 역대 최고 이적료 2위로 코린치안스에 입성했다.[8]
처음 기대치는 리그 득점왕, MVP 유력 후보. 네이마르와 리그 지배자 자리를 다툴 것으로 예상되었다. 또한 당시 코린치안스의 라이벌 산토스는 이미 리그에서 검증된 크랙인 아르헨티나 선수 몬티요를 펠레 넘버 10번을 주면서 데려왔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그보다 파투의 영입이 훨씬 낫다고 평가했을 정도다.[9]
사진: 2013년 파투의 이적 즉시 글로부가 진행한 '세계 최고의 공격 듀오는?' 투표 결과
사진: 글로부가 진행한 2013시즌 전국 리그 득점왕 예상 투표 결과
그러나 실제 모습은 전망했던 것과 완벽하게 상반되었다. 파투는 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피지컬을 관리, 첫 시즌부터 약 60경기에 출장했지만 활약이 매우 저조했다. 이로 인해 실망한 홈팬들은 그에게 야유를 보냈다. 은퇴한 레전드, 전문가들도 당시 이에 대해 "파투는 플레이에 자신감이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본인 역시 스스로의 부진을 인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끝까지 나아지지 않은 채 2014 시즌 도중 상 파울루로 임대되었다.[10]
2.3.1. 상파울루 FC (임대)
짧게 정리하자면 코린치안스에서의 저조한 활약을 상 파울루에서도 이어갔다. 오죽하면 여기서도 홈팬들에게 야유를 받을 정도였다.
2015 시즌 약 5개월 동안 준수한 모습을 선보이기는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파투를 잘 활용하던 오소리오 감독이 5개월 만에 경질된 후 바로 다시 활약도 급락. 또 홈팬들에게 야유를 받는 신세로 전락한 채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줄리아누 벨레티는 "파투는 활용하기 까다로운 선수다. 그의 슈팅 스킬은 여전히 괜찮은 수준이지만, 다른 부분들로 인해 감독 활용 방식에 따라 활약도가 크게 차이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력적인 부분보다 더 심각한 것은 멘탈이었다. 그는 이 때부터 브라질 선배 아드리아누에 버금가는 막장짓을 하기 시작했다.
파투가 상파울루에 임대된 지 약 1달 정도 뒤 갑자기 원소속팀 코린치안스를 조롱하는 내용의 SNS글을 게재했다.(참고로 코린치안스와 상파울루는 라이벌 관계다.) 상 파울루가 코린치안스와의 더비전에서 3-2 승리를 거뒀는데, 뜬금없이 본인이 경기에 출장하지 않고서도 위와 같은 글을 올렸다. 내용은 '대단한 승리야! 상파울루 짱!'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사태였냐면 파투는 코린치안스에서 리그 역대 2위 이적료로 데려왔는데도 삽만 푸고 임대간 선수다. 그런데 임대를 떠난 지 약 1달 만에 원 소속팀을 조롱하는 짓을 했다. 오죽하면 코린치안스 회장까지 나서 파투에게 유감을 표시했을 정도. 그러나 그의 막장 행동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5년 12월, 파투는 임대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코린치안스 감독 티테는 그를 다음 시즌 중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그는 유럽으로 복귀하고 싶다는 얘기를 계속 했고, 끝내 팀 의도와 관계없이 유럽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당시 사태를 요약하면...
1. 원소속팀 코린치안스에서 다음 시즌 중용하겠다고 함.[11]
2. 하지만 유럽 돌아가고 싶다고 징징거림.
3. 예전 SNS 사태 + 이번의 전혀 프로답지 못한 행동에 팀원들이 모두 화남. 복귀하면 자신들에게 사과부터 하라고 인터뷰.
4. 이러한 상황에서 이적을 문의한 팀이 없는데, 본인이 직접 유럽 재진출을 알아보겠다면서 에이전트와 함께 비행기 타고 유럽으로 출국. 참고로 당시 다른 팀원들은 이미 구단 프리 시즌 소집에 응하기 시작한 상태.
5. 결국 아무런 소득없이 돌아옴.
이후 파투는 코린치안스에 복귀해 프리 시즌 동안 팀 훈련에서 제외된 채 혼자 개인 훈련만을 하는 신세로 전락. 그런데...
2.3.2. 첼시 FC (임대)
2016년 1월 30일, 뜬금없이 첼시 임대를 확정짓게 되었다.# 첼시는 30일(한국시간)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파투의 영입 소식을 발표, 임대 기간은 2015-16 시즌 종료까지다. 파투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첼시에 합류하게 돼 매우 기쁘다. 이것은 내 꿈이었다. 새로운 동료들을 만날 생각에 너무 흥분된다”라고 입단 소감을 전했다. 등번호는 11번을 부여받았다.
그런데 얼마 후 파투가 몸을 만들기 위해 6주간 추가 훈련을 소화해야 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브라질 리그는 2월부터 12월까지 리그를 진행하는데, 파투는 리그가 끝난 후 휴가 기간 동안 개인 훈련도 안하고 휴가를 만끽하고 있었던 듯하다가 아니라 유럽에 가겠다고 에이전트와 함께 유럽 투어를 다니고 있었다. 이로서 첼시는 졸지에 6개월 임대로 데려온 선수를 2달 가까이 훈련 시켜주고 3개월 정도 쓰게 생겼다.
29라운드에서 챔피언스리그 16강 파리 생제르망과의 2차전을 대비해 코스타를 명단 제외한 탓에 후보 명단에는 들었으나 출장하지는 못했다. 챔스도 탈락하고 FA컵과 리그만 남은 현재 아무리 많이 뛰어도 최대가 11-13경기 정도다. 그것도 리그와 FA컵 전부 뛴다는 가정이다. 아무리 임대라지만 도대체 왜 데려온거지 알 수가 없다.
첼시 측은 파투의 영입을 실패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엉망인 몸상태인데 지금까지도 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는 걸 보면 확실히 심각한 듯. 최악의 경우 첼시에서 한번도 뛰지 못한 채 임대 복귀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데뷔조차 못하나 싶었으나 31라운드였던 아스톤 빌라 전에서 교체 명단에 들었고, 전반 23분 로익 레미가 부상당하며 교체투입되었다. 전반 막판 직접 얻어낸 PK를 성공, 첼시 데뷔골을 기록했고, 후반에도 오스카와의 2:1 패스 + 날카로운 슈팅으로 페드로의 2골에 기여하며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다음 경기인 스완지전에서 선발 출장했지만 이후 코스타가 복귀하면서 다시 벤치로 밀려났고 더 이상의 출전은 없었다. 더 이상 연장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브라질로 복귀를 준비중이다. 첼시는 졸지에 연봉까지 지급하며 선수를 재활시켜주고 개인 훈련까지 시켜준 셈.
이렇게 파투의 첼시 생활을 정리할 수 있지만, 본인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하다. 그는 2017년 1월 브라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첼시에서는 운이 나빴어요. 난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있는데, 감독 결정에 의해 그라운드에 나가지 못했거든요. 팀 일원으로서 난 감독 의견을 존중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는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2.3.3. SC 코린치안스 (임대 복귀)
2016 시즌 도중 원소속팀 코린치안스로 복귀했다. 이 무렵 코린치안스는 작년 리그 챔피언 등극에 공헌했던 파올로 게레로, 바그너 로베 등의 공격수들이 모두 떠나 최전방이 빈약해진 상태, 감독은 파투를 바로 기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복귀 후에도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판정이 나와 피지컬 훈련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참고로 이는 절대 부상 탓이 아니다. 그냥 본인이 관리를 제대로 못한 편.2.3.4. 총평
1번째 시즌: 홈팬들에게 야유 받음.2번째 시즌: 부진.
3번째 시즌: 5개월 동안 활약했지만, 이게 전부. 다시 홈팬들에게 야유 받는 신세로 전락한 채 시즌 마무리.
4번째 시즌: 임대복귀 후 비야레알 이적 전까지 부상 당하지 않았는데도 피지컬 훈련만 받음. 참고로 임대 기간에도 첼시에서 피지컬 훈련만 받았음.
실력적인 부분은 코린치안스, 상파울루 2팀 모두 홈팬들에게 야유받을 정도이니 더 설명할 필요도 없고, 멘탈적인 부분은 팀 동료들에게 '너의 행동을 우리에게 사과하라'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
이러한 선수가 리그 역대 최고 이적료 2위로 영입되었는데, 연봉 또한 입단 당시 기준으로 브라질, 남미가 아닌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 공동 6위였다.[12]
이에 코린치안스 팬들은 2016년 진행한 '구단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순간은?' 조사에서 파투의 영입을 6위로 선정했다. 참고로 이밖에 TOP 10으로 뽑힌 일들은 오심으로 인한 중요 경기 패배, 2부 리그 강등 등의 '사건'이었고, 선수 영입에 관한 것은 오로지 파투 하나뿐이었다.
2.4. 비야레알 CF
브라질 복귀 후 파투는 팀을 떠나 유럽 재진출 의사를 보였고, 비야레알이 관심을 보인 끝에 파투 영입을 확정지었다. 당시 감독이었던 마르셀리노는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의 공격수 루카스 페레스의 영입을 원했는데, 로이그 회장은 파투를 영입. 어지간히 빡친 마르셀리노는 바로 감독직을 사임했고, 루카스 페레스는 아스날 FC로 이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투는 간혹 예전 모습을 떠오르게 만드는 플레이를 펼쳤지만, 전체 종합 활약도가 높지는 않았다. 2017년 1월 30일 기준으로 그의 스탯은 총 24경기 출장 6득점 4도움. 리그는 14경기 출장 2득점 2도움이다.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팀에 적응하는 분위기여서 응원하는 팬들한테 차후를 기대하도록 만들었는데, 갑자기 중국행을 선택한다. 이미 메디컬 테스트를 마쳤고, 언론은 파투가 텐진과 총 3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으며, 수일 내로 공식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알렸다.
참고로 파투는 텐진 이적에 합의하기 약 일주일 전 브라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야레알에 뼈를 묻을 것이라는 뉘앙스의 답변을 했다. 해당 내용은 아래를 참조.
G: 하지만 현 소속팀에 오래 머물 것 같지 않다는 게 대부분의 생각인데요. 비야레알에서의 활약을 발판 삼아 더 큰 클럽으로 진출할 욕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P: 아니요. 난 브라질을 떠날 때 오로지 비야레알만을 생각했고, 이팀에서 반드시 우승컵을 획득하겠다고 각오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죠. 스페인에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비야라는 4강이 존재하니깐요. 그러나 비야레알도 이들과 경쟁하기에 충분한 전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팀은 오랫동안 몸을 담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구단이고, 팬들이 나타낸 애정 역시 내 마음을 확 사로잡았습니다.
2.5. 톈진 취안젠
파일:external/s2.glbimg.com/c3qp0mgwqaadw5t.jpg2017년 1,8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중국 리그로 갔다.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이 지휘하는 톈진 취안젠은 2016년 중국 갑급 리그에서 우승하고, 중국 슈퍼 리그로 승급했는데, 악셀 비첼, 앙토니 모데스테와 함께 파투를 영입했다. 파투는 슈퍼리그에서 어느정도 폼을 회복하여 팀의 핵심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으며, 9월 현재 13골을(득점 6위) 넣어 팀을 상위권 (4위)에 올려놓고 있다.
사실 약한 멘탈 및 그동안의 전력으로 중국에서도 먹튀가 상당히 예상되었으나, 중국에 와서는 마음 잡고 성실히 플레이하는 듯. AC 밀란의 2010-11 시즌 이래 가장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다.
2017시즌 15골로 마감했다. 페널티킥이 하나도 없이 순수한 필드골이기 때문에 부활했다. 다만 그의 갱생을 이끈 파비오 칸나바로가 시즌이 끝난 후 광저우로 이적했기 때문에 다른 감독 아래서도 잘할지는 두고 봐야 할듯하다.
시즌을 마친 후 이탈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칸나바로가 직접 제의해서 중국 이적을 결심했다며, 팀에 도움이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본인은 톈진이 3위로 리그를 마쳐 티켓을 따낸 아챔이 기대된다고 하니 한국팀과 대결에 그의 플레이를 볼 수 있을 듯. 게다가 같은 중국 리거 브라질리언이었던 파울리뉴가 유럽에서 실패 이후 중국에서 갱생하여, 다시 유럽으로 성공적인 복귀, 셀레상과 FC 바르셀로나라는 두 초거함에서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파투 역시 아직 늦지 않은 나이이니 만큼 부활의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2018 AFC 챔피언스 리그 전북 현대와의 경기에서 2골을 넣었다. 두 번 모두 승부가 결정 난 뒤의 로스 타임에 넣은 골이긴 했다.
5월 15일 아챔 16강전 광저우 헝다 2차전(원정)에서는 1-0으로 뒤지고 있는 가운데 천금같은 만회골을 넣었다. 0-0, 2-2로 비겨서 원정 다득점에 의해 톈진은 8강전으로 오르게 되었다.
부상 여파인지 로테이션으로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아챔과 리그에서 쏠쏠히 골을 넣어주고 있다.
2018년 후반기, 악셀 비첼의 이적과 앙토니 모데스테의 팀 무단 이탈로 톈진은 매우 침체되어 있고, 결국 파울루 소자도 해임당했다. 파투는 그나마 제 몫을 하고 있지만, 2018년 이후에는 떠날 듯 한다. 중국에서도 괜찮은 폼을 보여주었는데, 본인의 이야기로는 세리에 A의 오퍼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 오퍼가 괜찮으면 2018년을 마지막으로 다시 유럽으로 복귀할 듯.
2018년 10월 27일, 광저우 푸리와의 원정전에서 모처럼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팀은 6-2로 승리.
2018년 시즌에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총 15골을 기록했다. 사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때가 많아서 출장 수는 많지 않았는데도, 골수를 보면 골감각은 아직 죽지 않은 듯.
임시 감독으로 부임해서 파투를 지도했던 박충균의 평가에 의하면, 파투는 잘 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다른 선수들이 만들어 준 기회는 잘 포착하는데, 자기가 이끌어가는 스타일은 아닌 듯 하다.
취안젠 그룹의 몰락에 따라 톈진 취안젠이 톈진 톈하이로 이름을 바꾸고 톈진시 축협이 운영을 맡음에 따라서 이적을 점치는 기사도 있다. 중국에서 어느정도 폼이 되살아난 파투는 유럽에 복귀하고 싶어했는데, 문제는 거액의 이적료였으나, 취안젠 그룹이 망하고 파투의 급여가 2개월 동안 밀리면서 상하이에서 뛰던 드로그바나 같은 팀이었던 모데스테의 경우 처럼 자유이적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하지만 2019년 시즌에도 톈진 톈하이 소속으로 뛰고 있다. 본인은 유럽이나 브라질 복귀를 희망했지만, 숱한 먹튀전력 때문에, 신뢰를 받지 못하는 듯 하다.
2019년 3월 15일, 톈진 톈하이와 상호 계약해지를 발표했다. 아무래도 파투의 고연봉이 부담스러운 톈진과 임금이 체불되는 불안정한 팀에 있기 싫은 파투가 쉽게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적료 없는 자유 계약 신분으로 브라질 복귀가 점쳐진다고 한다.
2.6. 상파울루 FC
2019년 3월 27일, 브라질의 상 파울루 FC로 이적했다는 오피셜이 발표되었다 계약기간은 3년으로 2016년 팀을 떠난 이후 3년 만에 복귀하였다. 자국 복귀 후 모습은 중국 이적 전과 비슷하다. 지역구 내 대회인 상 파울루 주 리그와 브라질 전국 리그 초반까지는 나쁘지 않았지만, 점점 활약도 하락 시작한다.코린치안스전 팀 내 최저 평점인 4점, 크루제이루전 팀 내 최저인 3점, 바이아전 역시 팀 내 최저인 5.5점 등으로 부진했고 시즌 말미에는 벤치만을 지키며 2019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전 소속팀인 코린치안스를 비방 했고, 코린치안스 회장에게 "거짓말 좀 그만해라"라고 일침을 듣는 논란도 만들었다.
2020 시즌을 끝으로 방출되었다.
2.7. 올랜도 시티 SC
브라질 리그를 떠나 2021년 2월 13일, MLS로 진출한 파투는 과거 카카가 뛰었던 올랜도로 이적하게 되었다.하지만 시즌 시작 후 무릎 부상을 당해 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렸다. 시즌 종료 후 계약 연장하였다. 연장 기간은 1년.
현지 시각 2022년 11월 14일,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이후 2023년 2월 14일, 전방십자인대 부상 회복을 위해 상파울루 FC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8. 상파울루 FC
2023년 5월 26일, 상파울루 FC로 이적했다. 계약 기간은 2023년 12월 31일까지.# 계약 기간이 끝나고 팀을 떠난걸로 보인다.3. 국가대표 경력
2007년 브라질 U-20 대표로 선발되어 그해 FIFA U-20 월드컵에서 대한민국과 만나 2골을 꽂아넣는 활약을 보였다. [13] 이후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2 런던 올림픽에 2연속 출전해 동메달과 은메달을 받았다.
2008년 3월 26일, 둥가 감독이 이끄는 브라질 대표팀에 선발되어 스웨덴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고, 해당 경기에서 데뷔골도 기록하였다. 이후 2009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했으나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탈락했다.
마누 메네지스 감독 부임 이후에도 대표팀에 선발되어 2011 코파 아메리카 출전했다. 그러나 2013년 이후부터는 소속팀에서의 부진 및 부상으로 점차 대표팀에서도 외면받아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4. 플레이 스타일
파투의 플레이스타일은 그가 이름을 널리 알렸던 AC 밀란 시절 전후로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브라질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활약하던 10대 시절의 파투는 공격수로서 컴플리트 포워드에 가까운 6각형 공격수였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완성되어 있는 개인 기술과 피지컬에 더해, 공격수로서 필요한 문전 앞에서의 침착함도 모두 갖추고 있는 등 굉장히 원숙했다. 특히, 16살의 나이에 출전한 클럽 월드컵에서 바르셀로나의 리빙 레전드인 카를레스 푸욜에게 경기 내내 여러 굴욕을 안기며 소속팀을 클럽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며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당시 커리어 초반의 파투는 공격수로서 위협적인 슈팅을 찰 수 있었고, 10대 중반의 나이에 주눅들지 않는 침착하면서도 성숙한 멘탈을 보유했었다. 브라질리언답게 기본적인 기교와 테크닉도 동나이대에 비해 수준급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파투는 빠른 속도와 10대의 몸인데도 운동 선수로서 뛰어난 바디 밸런스를 갖추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무기였다. 1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180cm의 작지 않은 신장을 보유했으며, 아직 성장하는 청소년임에도 호리호리하지 않고 꽤 근육량이 있었다. 그것이 그가 이탈리아 노동법상 프로 계약을 맺을 수 없는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밀란과 가계약을 맺고, 밀란이 그가 18세가 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게 하며, 구원 투수로서 혜성같이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실제로 밀란이 그토록 기다렸던 파투의 데뷔전에서 그는 전설적인 선수인 호나우두와 투톱으로 선발로 나와서 데뷔전 데뷔골을 기록하는 등 계약상 이유로 시즌 중반이 되어서야 데뷔할 수 있었음에도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활약으로 무너져 가던 밀란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이렇듯, 파투의 밀란 데뷔 시즌은 센세이션하였고, 따라서 파투의 전성기는 사실상 10대 중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라는 평론도 심심찮게 나오기도 한다.
밀란 시절의 파투는 당시에 활약했던 대다수의 유럽인 공격수들에게선 보기 드문 유형의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최전방에 위치해 있음에도 공을 공중으로 띄우는 트래핑을 자주 시도했으며, 본인의 개인 기술을 통해 공을 오래 소유하는 것에 더해, 간결해져야 할 때는 공을 간결하게 다루었다. 발재간과 속도로 상대 수비진을 헤집는 동시에, 필리포 인자기와 같은 라인 브레이킹을 노리는 등 플레이가 종잡을 수 없이 통통 튀는 느낌이 있었다. 전방에서 정제되지 않은 자유분방한 움직임을 가져간다는 점에서 티에리 앙리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파투는 앙리와는 다르게 킥이나 슈팅 스킬이 둔하지만, 헤더를 이용한 공중볼 경합 및 득점에 있어서는 앙리보다 능했다. 슛은 강하게 차기 보다는 정교하게 차는 것을 선호해서 보는 맛은 떨어졌으나, 나이에 비해서 침착하다 보니 결정력이 상당했다. 물론 그렇기에 슈팅력은 옥에 티같은 느낌으로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가 물려받은 7번 셔츠의 전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감안한다면 더욱 그랬었다.
그러나, 재능이 매우 뛰어난 선수였음에도 훈련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했는지, 자신이 노려야 할 다음 레벨인 '유럽 최고의 공격수'로 가는 길목에서 번번히 후퇴하였다. 이러한 원인에 대하서는 부상과 사생활에서의 잡음, 자기관리 실패 및 선수 본인의 야먕 결여 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파투의 부진은 이후, 브라질 축구사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이라고 평가되는데, 브라질은 호나우두 이후의 최고의 슈퍼 루키였던 아드리아누를 잃었고 파투마저 부진하면서 최전방 공격수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파투가 부진하면서 루이스 파비아누나 프레드, 타르달리 등 2~3군에 어울릴 법한 자원들이 2010년 중반의 브라질의 최전방을 맡았으며, 이후 빅 리그에서 활약하지만 득점력은 낙제인 호베르투 피르미누나 가브리에우 제주스, 히샬리송 등이 최전방을 맡으면서 브라질의 월드컵 성적도 이름값을 못하거나 굴욕에 가까운 나날이 지속되고 있다.
밀란에서의 사실상 데뷔 시즌인 07-08시즌 이후에는 준수한 골 기록에 비해 경기 영향력이나 스타성에 있어서는 아쉬웠다. 게다가,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떠난 이후에는 이후 감독들이 부상을 자주 당하는 파투를 뒤로 하고 정통 공격수를 거의 기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신의 스타일과 잠재성을 제때 발전시키지 못했다. 결국, 밀란에서 기대만큼 성장을 이룩하지 못한 채 팀을 떠났고, 이미 밀란 말년 시절부터 플레이 스타일이 부상과 자신감 하락, 떨어지는 경기 경험 등으로 인해 협소해지기 시작했다. 부상으로 인해 역동적이고 종횡무진으로 전진했던 과거의 파투는 없어지고 필리포 인자기처럼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면서 득점을 넣는 데에만 집중하는 포처로 변모해 나갔다.[14] 밀란을 떠나게 되었을 무렵, 이미 그의 몸상태는 20대 초중반의 선수라기엔 혹사가 된 상태였으며, 그 이후 두 번 다시는 그 시절의 몸상태로 돌아가는 일이 없었다. 피지컬적 능력이 떨어진 파투는 폭발력이 줄었으며, 필드에서의 자신감이 예전같지 않았고 기교와 볼을 만지는 센스, 어린 시절부터 갈고 닦았던 슛 감각만으로 프로 생활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여진다.
파투와 세스크 파브레가스, 웨인 루니, 델리 알리 등처럼 너무 어린 나이부터 완성된 재능들은 그 능력을 인정받아 어린 나이부터 많은 경기를 소화함으로서 남들보다 일찍 전성기가 찾아오며 원숙해지지만 동시에, 남들보다 비교적 전성기가 빠르게 끝나며 신체적으로나 멘탈적으로 일찍 하락세가 찾아 오는 경우들이 있다.
파투의 경우 10대 중후반에 브라질 리그를 떠나 곧장 이탈리아 거대 클럽의 주전을 맡았다는 점에서 굉장한 멘탈 관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타지에서의 생활과 커리어 관리를 모두 신경 쓰기에는 굉장히 어린 나이였기에 그의 노력에도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15] 결국 역동적이었던 그의 모습은 2000년대 후반 추억거리로만 남게 되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SC 인테르나시오나우
- FIFA 클럽 월드컵: 2006
-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2007
- AC 밀란
- 세리에 A: 2010-1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11
- SC 코린치안스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013
-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2013
- 브라질 U-20 축구 국가대표팀
- 남미 U-20 챔피언십: 2007
5.2. 개인 수상
- 골든보이: 2009
- 세리에 A 올해의 영플레이어: 2009
- 세리에 A 이달의 선수: 2009년 1월
- 브라질 U-20 챔피언십 득점왕: 2006
- 브라질 U-20 챔피언십 MVP: 2006
- 센다이컵 득점왕: 2006
- 센다이컵 MVP: 2006
- AC 밀란 명예의 전당
6. 여담
- 톈진에서 인기가 상당히 많고 본인도 중국 생활에 만족하는 듯 웨이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팀 동료 권경원을 자기 인스타에서 "가장 훌륭한 한국인"으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권경원의 이름이 어려운지 톈진의 외국인 선수들은 권경원을 디에고라고 부른다고.
- 중국 여배우 디리러바의 팬이다. 전북 현대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팬들이 던져준 디리러바의 포스터를 받고 매우 기뻐했다. 기사링크 그런데 페북을 보면, 다른 여친이 있는 것 같으니 그냥 연예인로서 좋아하는 듯.
-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페북에서 성경을 읽는 포스팅을 올리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 방탕한 생활을 한 것을 보면 좀 의아할 정도다.
- 본인에게 가장 좋았던 순간은 AC밀란 시절 나폴리를 상대로 데뷔골을 기록했을 때라고 한다.
[1] /a.leˈʃɐ̃.dɾi ʁoˈdɾi.ɡis da ˈsiw.vɐ/[2] 이 당시 보여주던 골 셀레브레이션이 아내에게 보내는 양손으로 만든 하트라 꽤 화제가 되었다.[3] 참고로 가장 빠른 골은 로이 마카이가 2007년 FC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레알 마드리드 CF전에 넣은 10.02초 골.[4] 이혼 사유는 파투가 당시 팀 동료였던 호나우지뉴의 영향으로 문란한 밤문화에 빠졌다고 한다. 2017년에 본인이 이러한 소문이 전부 오해였다고 해명. 그러나 워낙 본인 위주의 인터뷰인 탓에 이를 전부 믿기는 힘들다.[5] 파투처럼 이혼경력이 있다.[6] 경기당 0.4골이 조금 넘는다. 부상으로 인한 폼 하락이 있기 전까진 경기당 0.5골 수준이었다.[7] 바르셀로나 클럽(!)을 무지 좋아하여 비행기 타고 매주 다녀올 정도. 그러나 호나우지뉴는 이후 자신을 '끝난 선수'라고 악평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고, 끝내 남미 챔스인 리베르타도레스 우승+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2020년 호나우지뉴는 각종 범법행위로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8] 1위는 카를로스 테베스, 3위 니우마르, 4위 간수, 5위 마스체라노.[9] 둘 다 이적 후 망했다.[10] 코린치안스는 파투를 임대보내는 대신 상 파울루로부터 브라질 정상급 미드필더 자드손을 영입, 이 선택은 성공해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자드손은 코린치안스 에이스로 리그 베스트 11이 되었고, 파투는 상 파울루에서도 홈팬들에게 야유를 받았다.[11] 임대 갈 때의 감독이 다른 감독으로 바뀐 상태.[12] 1위 네이마르, 2위 앙리, 3위 루이스 파비아누, 4위 세도르프, 5위 로비 킨, 6위 움베르토 수아소, 포를란, 파올로 게레로.[13] 팀은 3-2 승리[14] 이러한 부분은 마이클 오언의 사례와도 유사하다. 물론 오언과는 다르게 1:1 스킬과 발재주가 뛰어났기에 빠른 발을 살려서 윙어로도 기용되었으나 윙어로서는 의욕이 없는 모습들만 보여주었다.[15]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맨유로 데려 온 알렉스 퍼거슨 감독 역시 호날두를 두고서 같은 말을 했었다. "18살의 어린 나이에 해외에서 운동선수로 생활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곁에 가족이 있어야 했다. 다행히 호날두 어머니가 그의 곁에 있었다" 라고 밝혔다."
분류
- 1989년 출생
- 파투블랑쿠 출신 인물
- 공격수
- 브라질의 축구 선수
- 2006년 데뷔
- SC 인테르나시오나우/은퇴, 이적
- AC 밀란/은퇴, 이적
- SC 코린치안스/은퇴, 이적
- 첼시 FC/은퇴, 이적
- 비야레알 CF/은퇴, 이적
- 톈진 톈하이/은퇴, 이적
- 올랜도 시티 SC/은퇴, 이적
- 상파울루 FC/현역
- 2011 코파 아메리카 아르헨티나 참가 선수
-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브라질의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
- 2008 베이징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
-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
- 브라질의 FIFA U-20 월드컵 참가 선수
- 2007 FIFA U-20 월드컵 캐나다 참가 선수
- 골든보이 수상자
- 스트라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