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荒谷卓
일본어: あらや たかし
1. 개요
아라야 다카시는 일본의 전직 자위관, 무술인, 극우인사이다.2. 생애
1959년 아키타현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금광 채광을 하던 곳이었다. 아키타현립 오다테호메이 고등학교(大館鳳鳴高等学校)를 나오고 도쿄이과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인공위성 등 원격탐사를 공부하고 극진가라데 도장에서 가라데 수련을 했다.대학을 졸업한 뒤 1982년 육상자위대에 입대하여 간부후보생(장교후보생)으로 교육받고 3등육위(소위)로 임관했다. 병과는 보통과(보병)였고, 공수부대인 공정단에서 근무하고 보병 중대장을 지냈다. 이후 국비로 독일의 연방지휘참모학교로 가서 교육받았고, 1990년대에 특수부대 창설 등의 준비를 하면서 그린 베레에 유학하기도 했다.
2004년 육자대의 특수부대인 특수작전군(特殊作戦群)이 창설되자 초대 군장(지휘관)을 지냈다. 선발 과정에서 영미권 특수부대 수준을 요구하여 특정 사단에선 합격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서 사단장이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2007년에 특수작전군장을 이임하고, 연구관 등으로 있다가 2008년에 퇴직했다. 최종 계급은 1등육좌로 한국군의 대령에 해당한다.[1]
3. 퇴직 이후 행보
퇴직 이후엔 무술인 등으로 활약하며 극우 운동에도 관심을 보였다. 세계화 등 글로벌 자본주의에 반감을 공공연히 표하기도 한다. 메이지 신궁 산하의 무술도장 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종교적인 성향도 강한 모양. 메이지 신궁의 무술도장 관장 직을 수락한 이유도 메이지 덴노에게 나름대로 봉사하고 싶어서였다고 스스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글로벌 자본주의를 넘어서 인류가 조화와 공생의 질서를 기조로 하고 돈 등의 가치에 휘둘리면 안 된다 같은 말을 하는데, 신토에 가까운 자기만의 종교관이 뚜렷하고 거기에 심취한 사람인 듯하다. 미에현에 마을을 조성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여길 고른 이유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자연신앙이 있는 곳이라서라고 한다.여러 활동 등에서 다모가미 도시오 등과도 협력한다고 한다. 이토 스케야스와 비교하는 글도 많다.
2021년엔 자위대정보보전대의[2] 감시 대상임이 알려졌다. 아라야가 현역과 예비역 자위관 등을 모아서 산지에서 전투 훈련을 실시해왔단 사실이 교도통신에 보도되었다. 미시마 유키오처럼 "자위대는 천황의 군대"라는 말을 하고 다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미시마의 사상에 크게 경도되어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자위대를 퇴직한 뒤 미시마의 사상을 주제로 강연을 열기도 할 정도. 미시마가 1969년 출판한 시사평론 《문화방위론(文化防衛論)》을 읽어보았거나 그 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라야가 주장하는 국가관이나 사회관에서 문화방위론의 내음을 짙게 맡을 수 있다.
2020년대 들어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시절의 황군으로 회귀하자고 주장한다. 또한 알렉산드르 두긴과 비슷한 주장을 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하는 발언도 했다. 이는 일본인들 상당수와 일부 극우, 우익들조차도 친우크라이나 행보를 보이는 것과는 완벽히 대치된다. 일본인들의 국민감정은 러시아 사람 개개인과는 별개로 '러시아'란 나라 자체는 예비 적국쯤으로 여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소수 정치극단주의 계층을 제외한다면, 북한을 거의 전국민이 대적하는 것과 같다. 아라야는 일본의 대중적인 국민감정과도 코드가 안 맞는 구시대적 극우인사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라야 또한 자신의 글에서 일본의 대중들이 자신을 '이상한 놈' 취급하는 것에 반박하기도 했을 정도.
한국웹에선 아라야 다케시, 아라야 타케시 등 이름을 다르게 훈독한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한국 군사 커뮤니티에서는 자위대에서 특수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부대를 만든 군인 정도로 평가되었으나, 언행이 좀 더 알려진 뒤로는 일본 내에서도 사상구조가 굉장히 이상한 괴짜 우익인사 취급도 받는다. 유용원의 군사세계 글 밀리돔의 글 루리웹의 글 DC 군사 마이너 갤러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