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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미디아 서부 4대 군주 Arabio | 아라비오 | ||
제호 | 한국어 | 아라비오 |
라틴어 | Arabio | |
가족 | 마스테아바르(조부) 마시니사 2세(아버지) | |
생몰 년도 | 미상 ~ 기원전 40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44년~기원전 4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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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누미디아 서부의 4대 군주. 유바 1세와 함께 누미디아의 마지막 군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2. 생애
누미디아 서부 2대 군주 마시니사 2세의 아들이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의 내전이 발발했을 때, 마시니사 2세와 누미디아 동부의 군주 유바 1세는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편에 섰다. 기원전 46년 카이사르가 아프리카를 침공하여 메텔루스 스키피오와 연합한 유바 1세를 쳐부쉈을 때, 마우레타니아 왕국 군주 보쿠스 2세의 용병대장인 푸블리우스 시티우스가 키르타로 쳐들어와서 마시니사 2세를 몰아냈다. 카이사르는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키르타 일대를 시티우스의 영지로 하사했고, 키르타 서쪽의 영역은 마우레타니아 왕국에 줬으며, 나머지 지역은 로마의 속주로 삼았다.그는 탈출한 뒤 히스파니아로 피신해 폼페이우스의 지지자들과 합류했다. 문다 전투에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후에도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함께 히스파니아에서 계속 활동한 것은 분명하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이 발생한 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는 그에게 아프리카로 돌아가 누미디아를 접수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즉시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을 이끌고 아프리카로 돌아와 키르타로 진격해 시티우스를 처단하고 누미디아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42년, 제2차 삼두정치는 아프리카 베투스 총독 퀸투스 코르니피키우스를 숙청 대상으로 지정하고 아프리카 노바 총독 티투스 섹스티우스에게 그를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코르니피키우스와 섹스티우스 모두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처음에는 폼페이우스파와의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코르니피키우스 편을 들려 했지만, 아프리카의 정세가 삼두정치파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걸 보고 섹스티우스 편으로 전환했다. 결국 코르니피키우스는 우티카 전투에서 전사했고, 섹스티우스는 아프리카의 두 지역을 장악했다.
기원전 40년 페루시아 내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옥타비아누스는 가이우스 풀피키우스 팡고를 아프리카 노바 총독으로 삼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지지자인 섹스티우스와 대결하게 했다. 이때 그는 어느 쪽을 돕지 않고 중립을 택했지만, 팡고는 그를 잠재적인 적으로 인식하여 그가 다스리는 왕국을 침공해 강제로 몰아냈다. 그는 아프리카 베투스에서 섹스티우스와 합류했고, 두 사람은 곧장 아프리카 노바로 쳐들어가 팡고를 격파했다. 팡고는 언덕으로 달아났다가 야생 버팔로 떼가 돌진해오는 걸 누미디아 기병의 야간 공격으로 착각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섹스티우스는 그가 처음부터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점을 들어 그의 충성심을 의심했고, 결국 사람을 보내 죽여버렸다. 이리하여 누미디아 서부와 키르타는 로마 공화국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