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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23:49:40

스트렐치

파일:Russian_Strieltsy.jpg

1. 개요2. 모집과 구성3. 복장, 무장과 전술4. 변화와 팽창5. 몰락6. 여담7. 각종 매체에서

1. 개요

Стрельцы́(러시아어), Streltsy(영어, 복수형) 16세기 루스 차르국부터 18세기 러시아 제국 시기까지 존재했던 러시아군 부대명이다. 이름은 '화살(스트렐라)을 쏘는 자, 즉 사격수'를 뜻한다. 창설자는 '이반 뇌제' 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이반 4세, 러시아 최초의 상비군이었다고 한다.[1]

스트렐치 부대는 1545년에서 1550년 사이에 이반 뇌제에 의해 창설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552년 카잔 공성전에 처음으로 실전투입되었다. 이 전투에서 이들은 '궁수 또는 머스킷 사수'라는 뜻의 '스트렐치'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이후 이들은 오랫동안 러시아군의 정예 부대로 존재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훈련 부족과 장비가 시대에 뒤떨어져감에 따라 구식 군대로 전락하였고 표트르 1세에 의해 결국 폐지된다. 비슷한 성격을 지닌 군사집단 보야르와는 약 2세기 정도 공존하였다.

근위대였다는 오해가 있으나 스트렐치 부대 중 근위대의 역할을 맡은 부대가 있었던 것일 뿐, 스트렐치 자체가 근위대는 아니었다. 오히려 러시아 내에서 보편적으로 운용된 머스킷 소총수였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2. 모집과 구성

최초의 스트렐치 부대는 촌락민이나 상인들로 이루어졌는데, 이 부대가 전장에서 효율적이라는 게 판명된 이후 세습제로써 그 지위가 유지되었다. 기존의 스트렐치 구성원 뿐만 아니라 군역을 마치고 군대에 말뚝박은 평민들도 스트렐치의 일부가 되곤 했다. 이들 스트렐치 부대는 세부적으로 모스크바에 주둔하는 비보니예(выборные), 고로스키예(городские), 지방 도시에 주둔하는 시립 부대로 나뉘었다. 이외에 모스크바 총대주교 친위 스트렐치 부대들도 있었다.

모스크바에 주둔한 스트렐치는 평시에는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며 모스크바 주변에 거주하다가 전시 또는 평시 임무가 돌아왔을 때에 모집되어 그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스트렐치는 기본적으로 크렘린 왕궁 수비를 맡았고 전장에서는 지휘관에 대한 호위 업무를 기본으로 여타 군사 작전에도 참여하였다. 이들은 또한 모스크바의 치안과 소방 업무도 수행했다. 이들의 소방 활동에는 약간의 논란이 있는데, 러시아의 외교관이자 1660년대 스웨덴에 첩자로 파견되었다가 망명한 그리고리 고토쉬킨은 스트렐치가 도끼와 함께 양동이, 구리 펌프를 이용해 화재가 난 건물 내부로 물을 뿌리는 방식으로 화재를 진압했다고 기술했지만 17세기 러시아를 방문했던 서유럽인 아담 올레리우스는 스트렐치가 단 한번도 물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기술하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방 도시에 배치된 시립 부대는 요새 및 요새도시를 구축하고 국경 경계 업무를 맡았으며 지방관들에 의해 통솔되었다.

스트렐치는 평시에는 스트렐치 부서(Стрелецкий приказ)의 지휘를 받았고 지방의 시립 부대들은 각 지방의 보야르들의 지휘를 받기도 했으나 전시에는 부대 지휘관에게 지휘권이 주어졌다.

스트렐치의 가장 큰 단위는 500명 단위로 이루어진 연대(полк)였는데, 처음에는 pribor(прибор)라고 불리다가 prikaz로 이름이 바뀌고, 이것이 1681년에 연대(полк)라고 재명칭된 것이다. 연대 단위의 지휘관(стрелецкие головы)에는 귀족이나 왕족만 임명되었다.

연대는 다시 소트니(сотни, 수백이란 뜻)로 세분화되고, 소트니는 다시 데시아스키(десятки, 수십이란 뜻)로 쪼개져 각각의 지휘관들의 지휘를 받았다.

3. 복장, 무장과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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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발목까지 내려오는 붉은색이나 파란색, 녹색 카프탄 외투와 털모자로 구성된 특유의 군복을 입었고 노란색 부츠를 신었다. 특히 붉은색 코트를 자주 입었는데 이는 붉은색이 '군대', '힘',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색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상징 정도가 아니라 원래 러시아어에선 '빨간색'이랑 '아름답다'나 둘 다 красный(끄라쓰늬)로 똑같다. 요즘 들어와서 '아름답다'는 단어는 красивый(끄라씨븨)로 바뀌고 있는 추세지만 그 유명한 붉은 광장도 원래 러시아인들 본인들은 '아름다운 광장'이란 의미로 명명한게 소련시절 이미지도 있고 외부엔 '붉은 광장'이라 알려지게 된거고, 크렘린처럼 따지고 보면 '아름다운/붉은 광장'도 모스크바에 있는게 가장 유명할 뿐이지, 수즈달, 블라디미르, 옐레츠 같이 모스크바보다 더 오래된 다른 도시들에도 있다.

초창기에는 아퀴버스를 썼지만 곧 머스킷으로 바꾸었고, 샤벨과 같은 굽은 칼을 차고 러시아의 전통 도끼인 버디슈[2]를 들고 다녔다.

일반적으로 목재 등으로 구축한 엄폐물을 구축하고 사격전을 수행했으며, 보통은 각 열이 카라콜과 비슷한 형태로 돌아가면서 사격전을 수행했다. 사격시에는 버디슈를 사격 지지대로 삼는 특유의 사격 자세를 취하곤 했다.[3]

백병전시에는 버디슈를 휘두르며 돌진했는데, 이 무기는 날의 크기가 60cm에 달했지만 자루의 길이가 길어 봐야 1.5m 이내로 폴암류 병기 중 길이가 가장 짧았다고 한다. 파이크도 사용했지만 많지는 않았고 서유럽과 같은 대기병 방진을 짜는 일이 드물었다.

스트렐치의 이러한 특징적인 장비는 17세기에 창설되는 신식 부대(New order regiments)[4]의 머스킷 사수들도 사용하였고, 이웃한 리투아니아의 머스킷 사수들도 버디슈를 장비했다.

4. 변화와 팽창

상비군으로서 복무 중에는 월급을 받으며 생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 정부의 재정부족으로 급여가 제 때 지불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면세 혜택이 주어졌으며, 어떤 지역에서는 돈 대신 땅을 지불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스트렐치가 군사특권집단으로 변화하면서 정치적 활동에도 참여했고, 군사적 필요에 의해 규모 자체도 팽창되어서 이반 뇌제 시절에는 7천명이었던 것이 16세기 말에는 20,000~25,000명으로, 1681년에는 55,000명까지 증가했으며 이 중 22,500명은 모스크바에 주둔했다. 17세기가 되면 사회의 상층 지배 집단이자 무장 세력이 되었고, 자신들의 특권을 위협하는 서구화 개혁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으로 차르의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오른다. 실제로 스트렐치는 17세기에 일어났던 여러 차례의 쿠데타에 강한 영향력을 끼첬는데, 이는 예니체리가 걸은 행보와 비슷하다.

5. 몰락

스트렐치는 이렇게 팽창했으나 동시에 전투력의 저하 및 충성심의 결여를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특히 재정악화로 인한 정부의 빈번한 급여의 지연은 17세기 말~18세기 초에 일어난 스테판 라진의 반란, 1705~6년에 걸처 일어난 아스트라한 반란을 진압하기는커녕 일부 스트렐치가 오히려 이에 합류하기까지 할 정도였고 스웨덴과의 전쟁에서도 스웨덴군에게 참패하여 전투력이 저하되어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물론 차르들도 문제를 잘 알고 있었으나 급여를 제대로 주자니 재정이 나빠서 못하고 스트렐치들의 힘도 너무 강성했기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표트르 대제가 실권을 잡으면서 상황은 전환된다. 어린 시절 스트렐치와 손을 잡은 이복누나 소피아 알렉세예브나의 쿠데타에 의해 폐위당해 시골에 숨어 살았던 적이 있었던 표트르 대제는 스트렐치를 제거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1689년 인기가 떨어진 소피아와 그 애인이 재차 쿠데타를 일으키려 기도하자 서유럽 출신 용병들의 힘으로 복위하여 이를 제압했다. 이후 모스크바 시내에 주둔하던 스트렐치 8개 연대를 키예프 등 지방 도시들로 이전시켜 정치적 영향력을 제거한다.

이에 분노한 스트렐치들은 표트르 대제가 1697년 서유럽으로 유학간 틈을 타 다시 소피아와 손을 잡고 1698년 재차 반란을 일으킨다(스트렐치의 난). 그러나 급거 귀국한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된 친위병들로 진압에 들어가 8월 25일까지 완전히 진압당했다. 이때 표트르 대제는 자신이 직접 도끼를 들고 죄수들을 한 줄에 줄줄이 묶은채 목을 베는 등[5] 1182명의 스트렐치를 처형하고, 601명에게 낙인을 찍어 추방시켜버렸고 이로써 스트렐치는 정치적 영향력을 거세당하게 된다. 일설에 따르면 이러한 처형을 소피아가 유폐된 수도원 주변에 집행한 다음 그 시체를 그대로 놔둬 더이상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못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에 남은 스트렐치 연대 16개는 모두 해산되고 장병들을 변방으로 추방당했다. 하지만 '대북방전쟁'에서 병력이 부족하자 몇 개 연대가 재창설, 참전했고 표트르 대제가 큰 참패를 당한 나르바 전투에도 다수 참전하였으나 훗날의 반란을 예방한다는 이유와 군 혁신화 정책을 이유로 차츰 정규군에 편입되며 사라져 갔다. 마지막 연대는 1708년에 아스트라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해산됐다.

대부분의 주요 도시들의 연대들도 1720년대를 전후로 정규군에 통합, 완전히 소멸했으며, 일부 사립 부대들은 18세기 후반까지 잔존해 있었으나 결국 사라졌다.

6. 여담

니콜라스 랴자놉스키의 러시아의 역사 한국어판 번역본 신판에는 스트렐치가 "소총수"라는 단어로 번역되어있는데, 이들이 사용한 총은 소총이 아니므로 별로 적절하지 않은 번역으로 볼 수 있다. 차라리 삼총사 할 때 총사 같은 어휘로 번역하였으면 더 적절했을 수도 있다. 70년대판을 번역한 구판의 경우 스트렐치 그대로 번역되어 있다.

7. 각종 매체에서

7.1. 마운트 앤 블레이드

DLC With Fire & Sword에서 러시아의 머스킷 총병으로 등장한다. 이름이 스트렐치가 아니라 영어로 번역된 Marksman, 그냥 "사수"라서 몰라볼 수 있으나 이들이 스트렐치에 해당하는 유닛이 맞다. 성능은 그냥 타 국가의 머스킷 총병과 대동소이하나, 버디슈를 들고 있어 근접전에서 좀 더 강력하다.

7.2.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항목 참조.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4에서도 루스인의 고유 총통병으로 등장한다. 화약 총기류가 총통으로 끝나는 다른 국가와 다르게 유일하게 제대로된 총을 사용한다.

에이지3의 오합지졸 보병과는 차원이 다른 상당히 강력한 유닛 등장한다.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서 있을 경우 공격력과 공격속도가 증가하는 버프가 걸리는데 이게 최대 3중첩까지 되어 라인배틀에서 엄청난 성능을 발휘한다. 에이지3의 맨주먹보다 약한 바디쉬와 다르게 에이지4는 근접전투를 할 때 위의 버프가 3중첩된 상태로 고정 공격력으로 고정되어 대미지도 상당한 편. 이런데도 생산비용은 오히려 다른 나라의 총통병보다 더 싸다. 더 싼 이유는 촌락민들이나 상인들을 모아 빠르게 훈련시킨 실제 역사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7.3. 엠파이어: 토탈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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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odskiye Streltsy Viborniye Streltsy

러시아가 유럽에서 민병대 대신 생산할 수 있는 유닛으로, 기병 버전과 보병 버전이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수"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기병이나 보병이나 장거리 공격능력이 없다. 보병은 버디슈, 기병은 세이버를 휘두를 뿐. 허리에 총탄 차고있는데도 그렇다. 아무래도 이 시기에는 구식 부대가 되었기 때문에, 정규군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치안유지 부대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6]

그러나 기병이든 보병이든 치안유지에 보너스가 붙어 있어서 다른 국가보다 싸고 저렴하게 도시를 관리할 수 있다. 보통 치안유지 보너스는 드래군 계통에만 달려있는데, 치안유지 효과는 같으면서 가격면에서도 유지비 면에서도 스트렐치쪽이 훨씬 싸고 좋으면서 드래군보다 훨씬 일찍 뽑을 수 있어 유용하다.

이런 치안유지 효과는 후방의 도시들을 관리하는 데도 유용하지만, 최전선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점령지에서는 항상 점령자에 대한 불만도가 항상 문제가 되는데, 스트렐치를 섞어서 데리고 다니거나 주력부대 뒤에 스트렐치 부대를 대기시켜두다가 점령 이후 도시치안을 맡기는 식으로 운용하면 점령지의 관리도 쉽다.

거기에 전투력도 의외로 상당한 편이다.바로 윗 항목의 이름 똑같은 유닛과는 관련이 없다고 보아도 좋다 보병 스트렐치는 돌격능력과 접근전 능력이 상당히 강력하므로, 적이 총을 쏘든 말든 그냥 닥치고 우라돌격을 시전해버리면, 적의 전열이 썰물 빠지듯 붕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병은 특출난 게 없는 편이지만, 다른 국가의 민병기병대보다 유지비가 싼 편이다.

7.4. 워해머 판타지

키슬레프의 병종으로 등장한다, 자세한 것은 스트렐치(Warhammer) 항목 참고.


[1] 이전까지 모스크바 대공국/러시아의 군대는 보야르, 포메스티 제도에 따라 군복무를 대가로 토지를 배분받은 집단, 그리고 그들의 노예 혹은 농노 출신의 사병으로 구성된 반봉건적인 기병 중심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몽골-타타르인들과의 오랜 전쟁 및 교류로 인해 중세 후기~근세 초기 러시아군은 유목민 기병들과 비슷한 장비와 전술을 가지게 되었다.[2] 바르디슈가 여기서 이름의 모티프를 가져왔을 것이다.[3] 이 시기의 머스킷은 몹시 무거워 그냥 조준하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버디슈를 지지대 삼아 사격하는 자세가 유행했다. 한때 스웨덴군도 비슷한 방식을 사용했다.[4] 혹은 외국형 부대(Foreign formation regiments). 서유럽식 전술을 사용하는 부대들이다.[5] 표트르 대제는 키가 2미터에 철봉을 손으로 휠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 하지만 아무리 장사라도 최소 수천명에 달할 모든 반역자를 표트르가 손수 처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대부분은 교수형에 쳐해졌으며 일부 귀족들이 참수형 집행을 돕기도 했다.[6] 실제로 이시기의 스트렐치는 표트르 1세 제위기간 초기에 반란을 일으켰다 진압당해 해산되었던 걸 대북방전쟁이 터지며 다시 재건된 것이었다. 다만 해산당한 건 중앙군 소속 스트렐치이고 수도 외의 주요 도시에 위치한 부대는 1720년대까지는 남아 있었으며 사립 부대들은 18세기 후반까지도 남아있었다. 여기 나온 스트렐치는 민병대 대신 생산한다는 걸 감안하면 18세기 후반까지 살아남은 사립 스트렐치들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