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추리온의 첫 실전 투입. 6.25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투입된 센추리온은 17파운더와 20파운더 주포를 사용하는 Mk 2, Mk 3 모델이었다. 당시에는 북한군의 전차가 거의 남아나지 않은데다가 중공군의 기갑병력이랑은 잘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에, 전차대 전차의 싸움에서 큰 전과를 올린 것은 아니다. 때문에 보병과의 전투를 주로 치르게 되었는데, 임진강 유역 전투에서는 대전차무기가 부족한 중공군이 해치에 기어올라 수류탄을 전차 안에 던져넣으려는 것을 건물에 고속으로 들이받아 떼어내 사살한 사례까지 있다. M26 퍼싱과 M46 패튼을 능가하는 등판능력, 동등한 화력[1]에 명중률은 더 높다는 평을 받는 등 한국전 참전 전차 중 최강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또한 중공군이 1.4 후퇴 당시 영국군으로부터 노획해 운용하던 크롬웰을 장거리 사격으로 격파한 전과가 있다.
사천 우주항공과학관 소장 센추리온 Mk 5
이러한 대활약 덕분인지 국립현충원 충혼당 건물에 양각부조벽화로 M26 퍼싱이나 M46 패튼도 아닌 센추리온 전차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향으로 영국으로부터 기증받은 센추리온 Mk 5가 사천시 우주항공과학관에 전시되어 있다. 해당 센추리온은 Mk 5/1의 개량 절차를 받지 않고 제 8 왕립 아이리시 후사르 연대에서 사용하던 Mk 3가 개량된 물건으로, 한국전에서 사용된 사양이 맞다. 여의도에 있던 시절에는 방수천이 있었고 포탑의 위치 또한 달랐으나 사천으로 옮겨질 때 떼어지고 포탑이 돌려진듯하다.(출처)
마틸다 작전 당시의 호주 기갑군단 제1기갑연대 A분대 소속 센추리온 Mk 5/1, 1970년 1월
호주군이 베트남 전쟁 당시 센추리온 Mk 5/1과 센추리온 ARV를 사용했다. 베트남의 정글 속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다고 한다.
처음에 호주군은 M113 APC들만 보냈지만, M113들이 정글을 돌파하는데 어려움을 겪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68년 2월부터 센추리온 전차들을 파견했다고 한다. 주로 보병들과 함께 합동으로 임무를 수행했으며,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을 상대로 대인 캐니스터탄을 발사하고 이들의 벙커들을 파괴했다. 그러나 북베트남군과 베트콩도 센추리온에 대항하고자 RPG 대전차 로켓을 사용했고, 작전 기간동안 RPG 매복 공격에 당해 승무원이 부상당하고 서스펜션이 파괴당하기도 했다.[3] 호주군이 파견된 동안 총 58대의 센추리온이 투입되었는데, 이 중 42대가 손상을 입었고, 승무원 2명이 전사했다.(출처)
처음에는 사이드스커트가 설치된 상태 그대로 운용했지만, 궤도와 스커트에 진흙이 달라붙고 진흙 때문에 서스펜션의 가동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줄이기 위해 대부분 흙받이와 사이드 스커트를 제거한 상태로 운용했다.
센추리온 AVRE가 사용되었으며, 참전한 단차들 중 하나가 싣고 있던 히드라 70 로켓이 사고로 유폭되어 대폭발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해당 차량의 보기륜 중 하나는 폭심지로부터 3km 밖에 떨어진 포병 진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1] 20파운더는 83mm이다. 미국의 90mm 대전차포 파생형 M3 계열 주포들과 비교할 때 기갑 차량들을 상대하기 위한 물리탄 계열 탄종의 관통력과 포구 초속에서는 우세를 점했지만, 보병을 상대할 때 필요한 고폭탄은 화력 면에선 구경 상 열세였다.[2] 거의 박살난 1개 여단의 숏칼 알레프들이 시리아군 사단 2개를 틀어막았다.[3] 그러나 대부분 수리가 가능한 수준의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수리 불가 판정을 받은 6대를 제외하면 모두 수리를 받고 다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