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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8년 8월 27일 ([age(1958-08-27)]세) |
소련 러시아 SFSR 레닌그라드 (現 러시아 북서 연방관구 상트페테르부르크 연방시) | |
국적 | [[소련| ]][[틀:국기| ]][[틀:국기| ]] (1958~1991)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1991~) |
주요 서훈 | 소비에트 연방 영웅 러시아 연방 영웅 |
정당 | |
경력 | |
우주비행 | 6회 |
우주체류 | 803일 9시간 39분 |
우주유영 | 8회 (41시간 8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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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 러시아의 우주비행사. 2015년 5월까지 인류 역사상 최장시간 우주 체류자로 기록된 역사적인 인물이기도 하다.[2]
2. 생애
1958년 8월 27일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레닌그라드 공학원에서 기계공학 전공으로 학위를 딴 뒤 NPO 에네르기아에 입사했다.[3] 살류트 프로그램의 마지막인 살류트 7호의 구조 임무에 참여한 뒤 1986년 우주비행사 훈련을 수료하고 부란 미션의 승무원으로 예정되어 있었다가 미르-EO 4(4차 장기 체류 미션)에 투입되어 1988년 11월 26일부터 이듬해 4월 26일까지 5개월을 체류했다.미르에서의 단란한 한때.
2차 비행은 미르 EO-9로, 1991년 5월 18일 발사되고[4] 1991년 10월 2일은 합류한 미르 EO-10의 알렉산드르 볼코프와 합류하여 미르 EO-10 미션도 뛰었다. 이때 소련인으로는 최초로 우주에서 코카콜라를 마셨다.
그러나 이 시기에 사건이 터졌는데, 우주에 나가 있는 동안 소련이 붕괴하는 바람에 그가 귀환하지 못하고 우주난민이 되어버린 것. 원래는 넉 달 남짓 체류하는 단기 임무였으나, 자신의 새로운 국가인 러시아 연방은 그를 교대시키기는커녕 단순 귀환시킬 돈과 여력도 없었다. 결국 독일에서 귀환 재정을 지원해 줘서 어찌저찌 10개월여만에 지구로 돌아왔다. # 우주에 올라갈 때는 소련인이었지만, 내려와보니 나라가 사라져있었다.[5][6] 이때의 기록은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어 역사에 길이 남겨졌다. 러시아에서는 고생했다고 새로 제정된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를 줬고, 이 칭호의 초대 수훈자로 이름을 남겼다. 이 일화는 2020년 2월 2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기도 했다. 무국적자가 되어버려서 고향에 못 돌아가는 이야기는 영화 터미널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물론 크리칼료프는 소련 해체로 무국적자가 된 것이 아니고 거주지가 러시아 레닌그라드였기에[7] 법적으로 신생 러시아 연방 국적이 자동 부여된 상태였다.
3차 비행은, 미국의 우주왕복선 미션인 STS-60이다. 1992년 로스코스모스와 NASA가 합동 우주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NASA로 파견된 크리칼료프는 NASA의 우주왕복선 훈련을 거쳐 정규 미션 스페셜리스트로서 STS-60 디스커버리에 탑승, 사상 최초의 러시아인 우주비행사로 기록되었다.[8] 사진의 인물은 앞줄이 케네스 리틀러(Kenneth S. Reightler, 조종사)와 찰스 볼든(사령관) 가운데가 프랭클린 창-디아즈(Franklin Chang-Diaz), 잰 데이비스(N. Jan Davis), 윗줄은 로널드 마이클 셰가(Ronald Michael Šega)와 크리칼료프.
미션 이후 당연히 미국의 노하우를 습득한 채로 러시아에 돌아갔지만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미르-셔틀 합동 미션을 지원하기 위해 양국을 오가며 바쁘게 활동했다.
양쪽에 앉은 이들은 크리칼료프와 낸시 커리(Nancy J. Currie), 가운데가 사령관 로버트 카바나(Robert D. Cabana), 파일럿 프레더릭 스터코프(Frederick W. Sturckow), EVA복 입은 이들은 제리 로스(Jerry L. Ross), 제임스 뉴먼(James H. Newman)
크리칼료프의 4차 비행은 ISS의 건설 미션인 STS-88 엔데버로, 미국 최초의 ISS 모듈인 유니티(Unity)가 러시아 자르야 모듈에 도킹한 미션이다. 이 당시 셔틀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카바나와 함께 도킹 후 자르야에 처음으로 돌입하여 카바나와 함께 ISS에 진입한 최초의 우주인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5차 비행은, ISS Expedition 1이다. 당시 사령관으로 유력하게 점쳐졌지만, 미국이 미국인 우주비행사 윌리엄 맥마이클 셰퍼드를 사령관으로 하자고 고집하다가 결국 러시아가 졌다. 대신 러시아는 다음 미션인 Expedition 2에서 유리 우사초프(Юрий Владимирович Усачёв, Yury Vladimirovich Usachov)가 사령관을 맡았다. 사진의 우주비행사는 크리칼료프, 셰퍼드, 유리 기젠코(Юрий Павлович Гидзенко, Yuri Pavlovich Gidzenko).
6차 비행은 Expedition 11로, NASA의 존 필립스(John L. Phillips)와 함께 체류했다. 사진은 STS-107 컬럼비아 참사 이후 최초의 셔틀 미션인 STS-114 디스커버리가 ISS에 도착한 사진으로, 컬럼비아 사고의 방지를 위해 도입된 디스커버리의 360도 회전 기동을 감독하기도 했다. 크리칼료프의 오른쪽은 존 필립스이고, 왼쪽의 여성은 당시 셔틀 사령관인 아일린 콜린스이다.
커리어를 보면 알겠지만, 죄다 우주정거장 장기 체류 미션이다. 게다가 소련이 망하는 순간 우주에서 체류하면서 지상팀이 나라꼴이 어수선하다고 귀환이 늦어지기도 했고, 미르 시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ISS의 개발에 크게 공헌하였다. EVA 횟수도 8회 41시간 8분에 달하며, 800일이 넘는 우주 체류기간은 그야말로 넘사벽이다. 소비에트 연방 영웅과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를 모두 받았고, 러시아와 미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며 양국의 교류에도 이바지했다. 2007년 이후에는 우주비행사로서 은퇴하고 에네르기아의 부사장으로 활동하며 소유즈와 ISS의 개량, 개보수에 종사하고 있다. 나이를 보면 알겠지만 우주비행사 커리어를 좀 일찍 시작한지라 그렇게 800일 넘게 우주에서 살았는데도 은퇴 당시 나이가 50도 안되었다. 만약 한두 달 정도 더 우주에 있었다면 대조국전쟁 시절 고향 땅이 굶어죽어가던 기간에 범접했을 것이고 1000일을 달성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기록 때문에 십수년 후 70대 전후의 고령이 되면 건강 상태의 추이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항공우주의학계의 관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렇게 늘그막에도 연구원들에게 시달려야 하는게 우주비행사들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만약 암이라도 걸리면 업계에서 논문이 쏟아져나올 듯.
소유즈가 ISS 택시 노릇을 하는 2010년대인지라 소유즈 관련 검색을 하다보면 이 사람 얼굴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9][10]
2.1. 근황
2003년 11월 11일 통합 러시아에 입당했다.2015년 6월, 러시아 항공우주군 출신으로 미르-ISS에서 4회의 우주비행을 수행한 ISS Expedition 44 사령관 겐나디 파달카(Гeннадий Падалка, Gennady Padalka) 대령[11]이 3월 28일 소유즈 TMA-16M으로 시작된 5번째 우주비행에서 6월 28일자로 크리칼료프의 기록을 추월했다. 2015년 9월 11일자로 소유즈 TMA-16M으로 귀환한 뒤 완성된 기록은 879일. 정말로 레닌그라드 포위기간에 범접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대표로 러시아 국기를 게양했다. 4인의 선후배 우주인들과 함께 등장했는데 러시아의 우주 관련 업적이 잘 드러나는 희대의 명장면이다. 함께한 이들은 러시아의 네번째 여성 우주인인 옐레나 세로바(Eлена Серова)[12]와 세계 두번째 여성 우주인이자 여성으로는 최초로 EVA를 수행한 스베틀라나 사비츠카야(Светлана Савицкая), ISS 엑스퍼디션 36/37에서 우주 성화 봉송을 하고 돌아온 표도르 유르치힌(Фёдор Юрчихин)과 볼코프 부자, 오웬/리처드 개리엇 부자에 이은 세번째 부자 우주인인 로만 로마넨코(Роман Романенко)[13]이다. 지금 현재도 러시아 연방 우주비행사 교육에서 "세르게이 크리칼료프"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1] 키릴 문자를 영미권에서 통용되는 라틴 문자로 옮긴 표기인 Sergei Krikalev의 영향으로, 크리칼레프라는 표기도 많이 보인다. 니키타 흐루쇼프의 표기법 논쟁에서 벌어진 혼동과 비슷하다. 그래서 러시아 언론에서 라틴 문자 표기를 할 때는 의식적으로 Krikalyov라고 쓰는 편이다.[2] 이후 후술할 겐나디 파달카에게 자리를 넘겨줌. 최장시간 체류 여성은 NASA의 페기 윗슨으로, ISS Expedition 16 일정을 끝으로 376일 17시간 49분의 체류 기록을 갖고 있다. 16팀의 귀환 당시 17팀과 함께 ISS에 왔던 이소연과 함께 귀환하기도 했다. Expedition 50의 사령관으로 예정되어 있으므로 몇년 후에는 다시 연장될 예정.[3] '에네르기아'는 로켓 자체를 말하는 명칭도 있지만, 'S.P. Korolev Rocket and Space Corporation Energia'...라는 로켓 제작 회사의 긴 명칭으로도 유명하다. 참고로 이 길고 아름다운 이름의 앞부분은 그 분이 맞는다.[4] 이 때 프로젝트 주노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헬렌 셔먼이 소유즈 TM-12에 동승하며 사상 최초의 영국 우주인으로 기록되었다.[5] 당연히 여론에서 우주인들에게 소련과 관련된 공격을 하기도 했다. 크리칼료프와 동료 우주인 아나톨리 아르체바르스키(Анатолий Павлович Арцебарский)는 현명하게도 찍소리도 않은 채로 묵묵히 일이나 했다. 뭔 허튼소리라도 했으면 돌아와서 후폭풍이 장난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르체바르스키는 이 사건의 여파인지 이때 돌아온 후로 다시 우주비행 기회를 잡지 못했다.[6] 참고로 이때 이 사람은 제한된 식량으로 무려 311일 동안이나 우주선에서 생활했다.[7] 소련 해체 후, 소련인들의 국적은 그들의 최종 거주지로 정해졌었다.[8] 이 반대로 미국 우주비행사로서 최초로 소유즈에 탑승하여 우주비행사가 된 인물은 노먼 태거드(Norman Thagard)다. 소유즈 TMA-21에 탑승하여 미르 EO-18에서 118일간 체류한 후 STS-71 아틀란티스로 귀환했다.[9] 해당 기자회견은 세르게이 볼코프의 통산 두번째 우주비행이자 2010년대 소유즈 개량 시리즈인 소유즈 TMA-M의 두번째 우주선이었던 소유즈 TMA-02M가 귀환한지 3일 뒤 열린 기자회견이다.[10] 참고로 상단 미르에서의 움짤에서 이 아저씨한테 머리 깎이는 사람이 세르게이 볼코프의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볼코프다.[11] 파달카 외의 승무원은 미하일 코르니옌코(Михаил Корниенко, Mikhail Korniyenko)와 스콧 조지프 켈리(Scott Joseph Kelly)로, 이 둘은 ISS에서 1년간 장기체류를 하며 노화 실험을 하였다.[12] 이 당시에는 훈련 중이었고 이후 2014년 9월부터 2015년 3월까지 ISS 엑스퍼디션 41/42 승무원으로 활동했다.[13] 미르에서 삼시세끼를 찍으며 324일을 버티고 은퇴 이후 부란 프로그램 감독으로 활약했던 유리 로마넨코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