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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6-11 03:19:31

삽혈

고사성어
마실 삽[1] 피 혈

상고시대 중국 상나라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하는 한국, 중국, 몽골, 만주 등지에서 행한 제후들의 회합, 회맹에서 지내는 제례의식이다.

위의 한자 그대로 마시는 것으로, 이는 회맹에서 나온 의제들 가운데 동의한 내용에 대해서 모두 어김없이 지키겠다는 약속을 나타내며 어기는 자는 하늘이 죽인다는 맹세구를 연호했다. 상고시기 화북지역과 북방의 기마민족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던 제물의 피를 마시는 의식들이 결합하여 기원한 것으로 추정하며 상나라 시기 인신공양 등의 제물공양과 북방민족들의 피를 신성시하는 문화 등 정확히 같지는 않아도 당대에는 이러한 피 관련 의식들이 많았다.

제물은 주로 흰 말을 사용했는데 흰 말이 없을 때는 검은 소도 사용했다. 중국 춘추시대 즈음으로 넘어와서는 피를 입술에 바르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피를 바르는 순서는 참여한 제후들의 순으로 이루어졌으며 작위가 동등한 경우에는 상황을 고려하여 순서를 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성 제후국 여부라든가...

춘추시대로 넘어와서는 "실질적 국가의 직위 VS 명목적 국가의 직위"라는 갈등이 많이 이루어졌었다. 예를 들면 제,, vs 송,,齊, vs 진,晉,,,晉, vs 오,吳,,,

사기열전에 의하면 왕릉이 진평과 주발에게 "예전에 선제와 함께 백마의 피를 마시며 맹세했을 때 공들은 그 자리에 없었소?"라며 언급한 구절이 나온다. 여러모로 초한쟁패기 때도 유행한 듯. 삼국지연의동탁 토벌전에서 18로,, 제후들이 이 의식을 행했다고도 한다.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이 의식을 행한 기록이 있는데 신라 문무왕백제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당나라 사신 유인궤의 동행 하에 이루어졌던 취리산 회맹이 바로 그것. 또한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와 삽혈 동맹을 하고자 했었다고 언급했던 이야기 역시 전해진다.

그 뒤로도 꽤 오래 유지되었는데 조선시대에도 왕의 즉위식 때나 세조가 반정 이후 공신회맹제 때 행하는 등 기록이 자주 보이며 정묘호란 회맹식 때도 보인다. 조선 후기로 들어 줄어들었는지 이때의 삽혈 의식은 후금 측에서 먼저 제안했는데 인조는 처음에는 거부감을 드러내다가 삽혈 의식이 중국 고전인 춘추에서도 나온다는 신하들의 의견으로 겨우 받아들였다.
몽골의 경우는 '안다'라 하여 의형제를 맺는 의식이 이 삽혈의식에서 기원하거나 증표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1] 과 같은 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