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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의 대륙 간 탄도 미사일에 대한 내용은 RS-28 사르마트 문서 참고하십시오.Sarmatia/Sarmatians
사르미티아족 중 하나인 록솔라니족 기병의 재현도.
1. 개요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서기 3세기 무렵까지 오늘날의 러시아 남부와 우크라이나(흑해 연안), 동유럽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란계 유목민족으로 사르마트라고도 부른다.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도 겁먹게 한 유명한 유목민족이었던 스키타이를 흡수한 민족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활을 주무기로 삼던 스키타이와는 달리 기병과 말을 갑옷으로 무장한 채 장창으로 돌격하는 충격 기병 전술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스키타이처럼 기마 궁술도 뛰어났으며, 이들의 무장과 전술은 카자흐스탄 남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고대 유목민족인 강거와 고고학적으로 많이 흡사하다.
2. 역사
기록에 따르면 사르마티아인들은 본래 스키타이 밑의 일개 부족이였으나 기원전 3세기 경 스키타이의 쇠퇴기 때 스키타이를 공격하여 무너뜨렸으며, 비스와강부터 도나우 강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획득했다.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는 본인의 역작인 《역사》에서 이들 사르마티아인들은 스키타이와 아마조네스의 혼혈 민족이며 동시에 이들은 사랑의 도피(...)로 태어난 민족이라고 서술했다. 그에 따르면 본래 스키타이와 아마조네스는 서로 적대하던 민족이었는데 양 부족의 젊은 전사들이 경계였던 타나이스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다가 서로 사랑에 빠져 싸우는걸 멈추고 타나이스 강을 건너 두 민족이 간섭할 수 없는 땅으로 도망쳐 정착하면서 이들 사이에서 사르마티아인이 태어났다는 것이 헤로도토스가 쓴 사르마티아의 건국 설화이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스트라본에 의하면 이 과정에서 원주민이었던 켈트족들을 복속시키고 동화시키기도 했다.[1]
서기 2세기경에는 지금의 루마니아에 위치한 다키아 왕국과 동맹을 맺고,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제2대 황제인 트라야누스가 벌인 다키아 전쟁 당시, 사르마티아의 일원인 록솔라니족이 다키아를 도와 로마군과 전투를 벌였다. 전쟁이 끝난 후 패배한 사르마티아의 전사들은 로마로 끌려가 로마군의 보조군(Auxilia) 기병으로 복무해야 했고, 기병 전력이 부족했던 브리타니아 속주 등으로 배치되었으며, 5세기 무렵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그들에게 있어선 사실상 세계의 반대편으로 옮겨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아서 왕 전설과 엮어 각색한 영화가 앤트완 퓨콰 감독의 2004년작 <킹 아더>이다.
그러던 중 3세기 말에 튀르크계 훈족을 피해 남하하기 시작한 동게르만계의 고트족들과 다뉴브 강에서 충돌하게 되었고 이후 고트족의 이주와 침공에서 패배하여 쇠퇴했다. 그러자 대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자신의 아들인 콘스탄티누스 2세를 시켜 고트족을 정벌했고, 100,000명의 고트족을 사살했다.
이후 사르마티아인들은 근거지를 흑해 연안에서 다뉴브 강 일대로 옮기며 계속되는 고트족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힘썼지만 연이은 반란으로 무너졌으며, 그후 사르마티아인 중 일부는 동로마 제국으로 이주하면서 동화되었고, 다뉴브 강 지역에 잔류한 사르마티아인들은 4세기 경 훈족에 멸망하며 동화되었다.
이들은 멸망했지만 훗날 4세기 경에 일어난 역사적인 게르만족의 대이동 때 고트족, 반달족 등과 함께 이베리아 반도로 이주한 알란족의 경우, 그 풍습이 게르만족들과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았으며 사르마티아와 비슷한 풍습을 지녔다는 이야기로 보아 사르마티아에서 파생된 이란계 민족으로 여겨지며, 북캅카스의 오세트인들 또한 이때 로마 제국 영내로 이동하지 않고, 잔류한 사르마티아인/알란인의 후예로 전해진다.[2]
3. 아마존 전설의 기원
위 그림은 사르마티아인 부녀가 사위로 찍은 스키타이 남성을 납치하는 장면을 묘사한 상상도이며 제목도 <아마존이 그녀의 남편을 취하다>이다.
사르마티아의 것으로 추정되는 쿠르간(봉분)과 그 속의 부장품 등으로 밝혀진 고고학적인 사실에 따르면 사르마티아에는 고위 여전사의 무덤이 존재했는데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거나, 동시에 여전사들도 다수 존재했던 모계사회 혹은 여성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은 사회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르마티아인의 풍습과 문화가 그리스 신화속 아마존/아마조네스 전설의 기원이 되었거나 혹은 그리스인들이 '아마존'이라 부르던 민족의 후예들로 추정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선 사르마티아의 이 풍속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되는데 그는 사르마티아인은 아마존에서 기원했기에 여자들도 전장에서 싸웠으며 어느 처녀든 한명이라도 적을 무찌르지 못하면 결혼을 할수 없는 엄격한 법이 존재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아예 사르마티아와 아마존을 동일시 했다고 여겨질 기록도 있는데 우선 아마조네스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 자체가 이들이 신화적인 존재가 아닌 '외국에 존재하는 어떤 나라'이자 스키타이, 사르마티아등 이란계 유목민족과 문화적으로 가까운 민족이라는 느낌으로 서술된다. 상술한 헤로도토스는 사르마티아가 스키타이와 아마조네스의 통혼에서 태어난 민족이라고 기록했으며 로마 공화국 말기의 명장 폼페이우스는 제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 때 만난 스키타이 전사들을 보고 그냥 아마조네스라고 기록했다.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인 요르다네스 역시 사르마티아인을 아마조네스와 동일시하는 식으로 기록했다.
특히나 고대 그리스의 경우엔 시대상을 감안해도 극단적인 남존여비 사회였던지라 여성이 남성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전사로서 활약하기도 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전투민족이라는 과장이 덧붙여졌을수 있다.
즉 여자만으로 이루어진 전사민족 '아마조네스' 자체는 허구일지언정 그 기원엔 스키타이, 사르마티아 등 흑해에 살던 이란계 유목민족의 문화적인 특성이 반영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현재 캅카스 지역의 소수민족들 중 하나인 오세트인들은 상술했듯이 사르마티아의 후손으로 여겨지는데 오세트인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복장을 착용하고 싸웠으며, 다른 캅카스의 민족들과 다르게 여성의 권리도 높은 편이었다.
4. 사르마티즘
고대 로마 시기에는 폴란드 지역을 '사르마티아'라고 불렀는데[3] 이때문에 17세기 무렵의 폴란드인[4]들은 서유럽 출신 국왕에 의해 시작된 서구화 개혁의 반발로 자신들을 '사르마티아의 후손'이라고 믿으며, 사르마티아 문화를 모방하거나 재현하려는 문화 운동을 일으켰다. 역사에서는 이를 사르마티즘(Sarmatism, 사르마트주의)이라고 한다. 하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멸망하면서 사르마티즘은 나태와 신분차별을 합리화한다는 이유로 국내외에서 많은 비판을 받으며 소멸했다.폴란드 내에서 사르마티즘을 비판한 소설로 《인형》[5]이 있는데, 굳이 폴란드나 역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1] 현재 켈트족하면 프랑스와 영국, 아일랜드 등 서유럽이 먼저 떠오르지만 고고학적으로 봤을 때, 켈트족은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중부-동유럽 지역에서 발생한 민족 집단이었다. 그 일부는 오늘날의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지대까지도 살았던 걸로 여겨진다.[2] 남오세티야 전쟁이 이들이 형성한 남오세티야의 거취를 놓고 2008년에 러시아와 조지아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3] 정확히는 에욱시네 해(흑해)를 기점으로 동쪽의 캅카스 산맥과 소아시아 방향을 사르마티아 아시아티카(Sarmaia Asiatica), 북쪽의 크림 반도 방향을 사르마티아 에우로피아(Sarmatia Europia)라고 불렀는데 이 '사르마티아 에우로피아'가 나중엔 광의적으로 오늘날의 폴란드와 발트 3국 지역까지 포함되게 되었다.[4] 이 무렵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5] 볼레스와프 프루스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