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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52:27

빌 게이츠/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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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학창 시절3. Microsoft 창업과 성공4. 은퇴5. 복귀와 완전 은퇴6. 사내 불륜 및 성희롱 논란과 이혼

1. 개요

빌 게이츠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

2. 학창 시절

부유층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성장했다.[1] 할아버지 빌 게이츠 1세[2](1891 ~ 1969)는 가구점 주인[3], 아버지 빌 게이츠 2세(1925 ~ 2020)는 시애틀 최고 법률 회사를 운영하던 저명한 변호사였으며 어머니(1929 ~ 1994)는 은행 재벌 집안인 맥스웰 가의 일원이었고 사교계 명사였다고 한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가족으로는 1살 위의 누나와 아홉살 아래의 여동생이 있으며 아내 멜린다 게이츠가 여동생과 동갑(1964년생)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나와 여동생은 둘 다 Microsoft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신동 기질도 타고나서, 성당 신부님이 박람회에 데려가는 조건으로 내건 성경의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에서 7장에 해당하는 내용이다)을 완벽하게 외운다든지 수학적으로 재능을 보여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또 엄청난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식탁에서도 책을 놓지 않아 부모가 늘 나무랐다고. 어머니도 고학력에 스포츠를 즐기는 재원이었고 아버지가 일하느라 육아에 신경을 못 썼기 때문에 게이츠의 내향성을 걱정하여 운동신경과 사회성을 길러주려 굉장히 노력했다고 한다. 타고난 천재성으로 학교에선 늘 우등생이었고 경영과 프로그래밍을 금방 익혔다고 한다.

13세인 8학년 때 처음 컴퓨터를 접하며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시분할 컴퓨터를 만지며 프로그래밍에 몰두한다. 이때부터 컴퓨터에 두각을 나타내며 폴 앨런과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 기업과 학교의 업무를 돕는 벤쳐기업을 설립하여 수익을 올린다. 언젠가는 폴 앨런과 함께 학교단말기에 연결되어 있던 중앙컴퓨터를 해킹하여, 학교가 지고 있던 빚을 회계장부에서 지워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당연히 이에 단단히 화가 난 학교장에 의해 쫓겨나고, 부모에게도 컴퓨터 따위 그만하고 법률 공부를 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4]

많은 사람들이 빌 게이츠를 그저 수완 좋은 사업가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빌 게이츠 자체가 컴퓨터과학의 천재다. 이게 빌게이츠가 공개한 하버드 대학교 1학년 당시의 이력서인데 고등학교 재학중 상당한 경력을 쌓았다.

하버드는 중퇴했지만 기간 내에는 인공지능 연구실에서 조교로 일하며 이 시기에 알고리즘 논문을 하나 쓴 것이 1979년 이산수학 학술지에 실렸다. 내용은 팬케이크 소팅#이라는 문제에 대한 알고리즘을 제시한 것으로, 더 좋은 알고리즘은 30년 뒤에야 나왔고 그나마도 2% 빠른 것이 고작이다.

3. Microsoft 창업과 성공

빌 게이츠는 하버드 재학시절 Honeywell이라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친구인 폴 앨런과 함께 여름 인턴으로 잠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프트웨어 회사 설립을 꿈꾸게 되고 마침내 1975년 4월 4일, 친구인 폴 앨런Paul Allen과 함께 Microsoft를 창업한다. 이때 빌 게이츠는 창업을 위해서 결국 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했다.[5] 사람들은 그가 패기있게 자퇴한 것으로 아는데 사실 그는 당시 사업이 결국에 안 풀리면 학교로 돌아올 생각으로 휴학을 했다고 한다. #

초기 Microsoft는 알테어용 베이직 인터프리터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당시 빌 게이츠는 코드 압축의 황제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주요한 모듈은 폴 앨런이 작성하였다.

파일:1723b7171e849376f.jpg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작성한 GW-베이직 소스 코드[6]

그러다 몇 년 뒤, IBM 사에서 처음으로 PC를 출시할 때 Microsoft는 IBM에 PC용 운영체제를 공급하기로 계약한다. 이후 Microsoft는 시애틀 컴퓨터의 Q-DOS의 판권과 소스 코드, 그리고 Q-DOS의 원작자이자 개발자 팀 패터슨을 영입해서 이름도 MS-DOS로 바꾼 뒤[7] 팔아서 떼돈을 벌었다.

그가 IBM과 맺은 계약은 컴퓨터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계약이라고 불린다. 결국 IBM은 Microsoft에게 돈만 퍼준 꼴이 되고 만다.
파일:bill_gates_windows.jpg
1985년, Windows 1.0 디스켓과 함께.

이후 Microsoft는 Apple에게 GUI 특허 사용권을 받아 1985년, GUI 인터페이스를 도입한 운영체제 Windows 1.0을 발표하여 완전히 OS 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되고 사실상 IT 업계의 1인자로 등극하게 된다. Microsoft WindowsGUI 방식 컴퓨팅을 전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세계 최초의 GUI 탑재 컴퓨터는 1981년에 탄생한 제록스 스타(Xerox Star)였는데[9] 제록스의 기술 연구소 PARC에서는 당시 이미 태블릿 PC, 내부 네트워크를 이용한 이메일 등 시대를 수십년 앞질러가는 기술들을 개발한 상태였다. Apple의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 스타의 GUI 시스템에 크나큰 감명을 받았고 사내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PARC 팀을 스카웃해 1984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GUI 방식 PC 'Apple Lisa'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Apple Lisa는 1만 달러에 달하는 가격 책정 때문에 팔리질 않았고[10] 결국 잡스는 짤린다. 이후 빌 게이츠는 잡스 퇴출 이후의 Apple을 상대로 재정적으로 압박하면서 실리콘 밸리의 악마로서 무자비한 사업 일화를 많이 만들어냈다.

1985년, Microsoft는 Apple에게 GUI 특허 사용권을 받아 Windows 1.0을 탄생시켰는데 이는 빌 게이츠가 1~2년 안에 쓸모없어질 (Apple II의) Apple 소프트 계약 갱신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1985년 11월에 매킨토시 GUI의 영구적인 라이선스를 존 스컬리로부터 얻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11] 이 때문에, Apple은 Microsoft에게 1988년 저작권 소송을 걸었지만, 판사는 Apple이 '부주의하게' Microsoft에게 1985년에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권한을 영구적으로 넘긴 것으로 판결내렸다.

또한 Apple은 제록스로부터 GUI와 GUI를 위한 기술들에 대한 사용권을 구매했으며,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GUI 요소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토대로 Microsoft에게 GUI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소송을 걸자, 빌 게이츠는 제록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변호사들이 제록스가 가진 GUI 원천 특허를 발견하게 한다.[12] 결국 Apple 고유의 GUI 특허들 또한 제록스의 원천 GUI 특허 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인정되어 Apple의 GUI 특허를 무효화시켜버린 일이 있다.

이외에도 MacBASIC을 묻어버린 일이 있다. Apple의 돈 데먼이 개발 중이던 MacBASIC이 Microsoft에서 제작 중인 베이직 인터프리터보다 뛰어나다는 걸 알자, Apple 소프트 계약을 빌미로 MacBASIC을 포기하도록 요구하고선, MacBASIC을 1달러에 사서는 무기한 보류시킨 다음 소스 코드와 복사본을 전량 폐기시켜 버렸다.

컴퓨터 제조사들에게 경쟁사 제품을 쓰면 Windows를 납품하지 않겠다고 협박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래선 반드시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에, 복돌이 대책 겸 해서 "OS 없는 PC의 출시를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당신들이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건 그건 당신들 자유지만 Microsoft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라고 한다거나, OS 내에 경쟁사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하는 코드를 몰래 집어넣는 일을 하기도 했다. 사실 이 정도는 웬만한 대기업들도 많이 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사람이 정직하고 깨끗하게 부를 축적했다고 하는 말은 맞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 아니, 오히려 한때의 별명이 '실리콘 밸리의 악마(Demon of Silicon Valley)' 였을 정도로 악랄한 장사수완을 자랑했다. 위에서 알 수 있듯 프로그래머로서의 재능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업가로서의 재능 또한 매우 뛰어났던 것이 성공의 원인으로 꼽히는 인물. 사실 MS의 경쟁자들은 왠지 삽질을 저질러서 망한 경우가 많지만… 실수를 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원래 전쟁은 잘 싸우는 쪽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덜 하는 쪽이 이기게 마련이다.

사실 상기의 업적들을 뛰어넘는 빌 게이츠의 가장 큰 업적은 소프트웨어(= 손에 잡히지 않는 순수 디지털 콘텐츠)를 그 자체만으로 판매될 수 있도록 한 것 혹은 그런 패러다임을 만든 것이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돈 받고 팔겠다고 나서기 전까지,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와 결합된 형태 혹은 종합적인 컴퓨팅 서비스의 일부로서만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즉 저작권 대국 미국에서도 그 이전까지는 무형의 코드 다발 자체로는 팔고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13] 그러다가 빌 게이츠가 소프트웨어에 대한 배타적 재산권을 주장하고 이를 판매하는 것에 대한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한 덕분에 현재 전세계의 무수한 상용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14]

이는 Apple과 비교해봐도 극명하게 차이나는 부분. Apple은 2024년인 현재까지도 자사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결합한 상태로 판매한다. 이는 전 시대의 IBM이 그랬고 그 외의 유닉스 기반 기업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의 (어떤 의미에선 구세대의)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세대적 비즈니스 모델을 넘어서서 소프트웨어, 즉 무형의 디지털 콘텐츠를 그 자체로 독립적인 상품으로 판매하는 새로운 모델을 세운 사람이 바로 빌 게이츠인 것.

4. 은퇴

Internet ExplorerWindows 끼워팔기로 인하여 넷스케이프 등의 기타 웹 브라우저 업체들이 고사하게 되자 2000년 미국 법무부는 해당 행위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시스템 소프트웨어(윈도우)와 응용 소프트웨어(오피스)를 나누어 기업 분할할 것을 명령했다. 이후 항소를 통해 앞으로는 끼워팔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며 2000년에 CEO 자리를 사퇴하고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기업 분할은 일단락 났다.


2008년 CES 마지막 기조연설을 했다. 기조연설 중 빌 게이츠의 Microsoft 출근 마지막날이라는 비디오를 틀어줘,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비디오는 당시 미국에서 방영 중인 인기 시트콤 오피스와 클린턴 대통령 임기 종료 파티에서 상영된 코미디 영상을 패러디한 것이다. 클린턴 항목에 해당 영상의 링크가 있으니 비교해서 보면 좋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인터뷰로 뒷담화 까는 게 똑같다.

내용은 대략 게이츠가 Microsoft 퇴사 후 할 일을 찾는 것인데, 그 중 빌 게이츠가 차기 대통령 민주당 후보로 유력했던 2명 중 한 명이었던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부통령감으로 좋은 사람이 있는데, 제가 해먹으면 안될까요?" 힐러리 왈 "당신이 정치에 어울릴지 모르겠군요"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그 다음 장면에는 버락 오바마앨 고어도 나온다.

그 밖에도 U2보노JAY-Z, 조지 클루니, 스티븐 스필버그, 존 스튜어트 등 유명인들이 기꺼이 출연하여 여러모로 대박이다. 유머도 있고, 센스도 있는 사람. 특히 본인의 샌님스러운 면모를 철저히 반영하여 사람을 웃긴다.


건즈 앤 로지스 & 前 벨벳 리볼버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의 기타 연주와 함께 무대에서 퇴장했다.

5. 복귀와 완전 은퇴

빌 게이츠는 경영선에서 은퇴한 지 오래이지만, 크리스 카포셀라는 2013년 6월 Windows 공식 블로그와의 인터뷰에서 최고마케팅경영자(CMO)로 소개했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2014년 2월 4일 사티아 나델라 신임 최고경영자의 취임을 발표하는 동시에 33년간 재직해 오던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 '창립자 겸 기술 고문'이라는 새 직책을 맡게 된다고 한다. 이는 은퇴 5년 만에 현역으로 복귀하는 것.

2020년 3월 Microsoft의 이사직과 투자회사의 직책까지 모두 내려놓으면서, 완전히 은퇴하고 교육 및 자선사업에 전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 하지만 Microsoft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는 것은 아니며 회사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돕겠다고 했으며, 현 Microsoft CEO 사티아 나델라 역시 기술 지도부와 빌 게이츠는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사로서의 기본적인 영향력까지 모두 내려놓고 기술 지원만 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Xbox Game Studios의 부사장 필 스펜서는 일년에 2~3번 빌 게이츠로부터 게임 사업을 검토받는다고 한다. 이유는 빌 게이츠가 아끼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ChatGPT의 초기 알파테스트 버전과 GPT-4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먼저 보여주며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2022년 8월 15일 오후 김포공항 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1 #2 16일 오전 10시 국회를 방문해 김진표 국회의장과 면담한 뒤 오전 10시 40분부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장에서 '코로나19 및 미래감염병 대응·대비를 위한 국제공조 중요성과 대한민국의 리더십'을 주제로 연설했다. 이번 국회 방문은 지난 2013년 이후 9년 만이다. 같은 날 오후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접견해 백신에 대한 공평한 접근 등을 통한 코로나19 팬데믹 극복 방안과 글로벌 보건 증진을 위한 연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접견에 앞서 외교부, 보건복지부와 게이츠 재단 간 체결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1 #2 #3

2023년 6월, 무스타파 슐레이만리드 호프먼이 세운 Inflection AI에 투자했다. 이 기업은 창업 1년만에 무려 13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며 400억 달러 기업가치를 인정 받았다고 한다.

6. 사내 불륜 및 성희롱 논란과 이혼

2021년 멜린다와의 이혼 덕분에 드러난 은퇴의 진짜 이유가 사내 불륜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 빌 게이츠도 이를 인정했다. ##

게이츠 재단의 전 관계자를 정보원으로하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후속보도에 따르면 아동 성범죄 혐의로 수감, 옥중에서 자살한 부호 제프리 엡스타인과 빌 게이츠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친분을 이어왔는데, 이 당시에는 이미 제프리 엡스타인이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어서[15] 멜린다가 빌 게이츠에게 지속적으로 이를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교류를 지속해 왔고, 결국 엡스타인이 감옥에 들어간 순간부터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16][17] # 아내와 함께 만든 재단에서도 여성들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고 한다.

추가로 2000년대 초 빌이 20년전 다른 여자랑 불륜 관계였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전부터 결혼 생활이 삐걱거리지 않았나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여기엔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다. 빌은 멜린다와 만나기 전에 5살 연상의 앤 윈블래드와 연애하다 헤어진 적이 있었으며 헤어진 후에도 줄곧 소울메이트마냥 깊은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18] 심지어 결혼하기 전에 빌은 멜린다에게 자기는 일년에 몇번은 앤하고 단 둘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조건을 내놨으며 멜린다도 알겠다고 동의해줬다. 빌은 앤에게도 자신의 부인이 될 멜린다를 소개해줬는데, 앤은 멜린다에게 지적이고 똑똑해서 빌하고 잘 어울린다며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빌이 앤하고 단 둘이 지낼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라 순 과학이나 수학 외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만 줄창했다.[19]

최근에는 빌 게이츠의 불륜과 성희롱 의혹에 대해 실태조사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결혼 전부터 나체파티를 즐기는 등 문란한 성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2023년 5월 21일, 제프리 엡스타인이 빌 게이츠가 브리지 게임 선수인 밀라 안토노바와의 만남을 포착하고, 이를 빌미로 협박하여 거액을 뜯어내려 한 적이 있다는 보도가 올라왔다. 그녀와의 불륜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2023년 6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의하면 빌 게이츠 개인 사무실 측이 채용 과정에서 여성 구직자들에게 성희롱성 질문을 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해당 회사는 일부 여성 지원자에게 "불륜 관계를 가진 적 있느냐", "어떤 종류의 음란물을 좋아하냐", "휴대전화에 나체 사진을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해 물었다. 또 "성병에 걸린 적 있는지", "돈을 받고 춤을 춘 적이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1] 이 때문에 같은 창업자들 중 자수성가한 스티브 잡스래리 엘리슨과 출신 성분부터 비교되기도 한다.[2] 그의 아버지이자 빌 게이츠의 증조할아버지도 아들, 손자, 증손자와 같은 윌리엄 헨리 게이츠(1858 ~ 1926)이지만 1세, 2세 하는 넘버링에서는 빠졌다.[3] 빌게이츠의 할아버지 시대에 대공황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자. 그리고 미국에는 가구점 주인을 하다가 정치인이 된 조 맨친 집안 같은 사례도 있다.[4]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1970년대는 미국에서조차 컴퓨터 산업은 초기 단계에 불과했으며 법률 분야가 훨씬 안정적인 진로였다.[5] 나중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명예 졸업증을 주긴 했다.[6] 이 소스 코드는 2020년 마이크로소프트의 GitHub에서 공개했다.[7] 그래서 MS DOS는 1.10부터 시작한다 1.0은 Q-DOS이기 때문이다.[8] 웅진출판에서 냈던 "만화로 보는 20세기의 큰 인물" 시리즈에서는 Microsoft 내에서도 '일생일대의 기회다'와 '일정이 빠듯하다'로 의견이 분분했지만, 상술한 것처럼 팀 패터슨의 Q-DOS를 구입해서 기반을 마련하는 식으로 처리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CP/M 문서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빠듯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쪽 프로그래머들이 갈려나가는 모습이 나온다.[9] 여기서의 제록스는 그 복사기 제조업체로 유명한 제록스 맞다.[10] 현재 1만 달러라 해도 1천만 원. 당시 물가를 고려해보면 엄청난 금액이다.[11] 정확히는 Microsoft는 Apple 소프트 개발을 위해 GUI에 대한 사용권을 받았는데, 해당 라이선스의 만료일이 기입되지 않은 점을 이용하여 Microsoft의 OS를 만드는 데에 가져다 쓴 것. Apple 측은 해당 라이선스가 1회용임을 주장했지만, Microsoft는 만료일이 기입되지 않았으므로 영구적인 라이선스를 넘겨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12] 그전까지 제록스의 경영진들은 자신들이 GUI 원천 특허를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13] 그래서 젊은 시절의 빌 게이츠는 상위 문서의 어록에서 보듯이 공개 서한을 보내서 '무료 개발로는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없다'며 불법복제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14] 다만 법적으로 소프트웨어 특허의 길을 열어준 인물은 마틴 괴츠이라는 프로그래머다. 데이터 분류의 비효율성을 가진 자기식 테이프의 문제점으로 인해 1968년 4월 데이터 정렬 알고리즘 특허를 허가 받았으면서 IBM 메인프레임 번들로부터 별개의 보호 대상으로 인정받으며 최초로 소프트웨어 분리의 길을 열었다. 즉,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 산업이 하드웨어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을 대중화시킨 경우에 가깝다.[15] 2008년에 유죄판결을 받았었다.[16] 멜린다는 재단을 통해 수십년동안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문제를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사회 활동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이 문제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여러 증언들에 의하면 엡스타인은 어찌나 매너가 나빴는지, 그가 성범죄와 관련되었음을 몰랐던 사람들도 그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17] 한편 이 소식을 2019년에 처음 기사화한 뉴욕 타임스에 의하면, 게이츠와 엡스타인간의 관계는 2014년 이후부터 소원해진 걸로 보인다. (단, 게이츠 재단의 인물 몇몇은 약 2017년까지 엡스타인과 계속 만났던 모양). 한번은 엡스타인이 왜 게이츠가 자기한테 연락을 안 하냐고 불평했었다고. #[18] 앤은 빌과 헤어진 후 오랫동안 독신이었으나 배우 케빈 클라인의 형인 알렉스 클라인과 2015년에 결혼했다.[19] 다만 둘 사이에 성적인 것은 없고 아내가 동의해줬다고 해도, 유부남이 일년에 몇 번 씩 외딴 곳에서 미혼의 친구이자 전여친과 단 둘이서 지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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