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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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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배경2.2. DR DOS 3.312.3. DR DOS 5.02.4. DR DOS 6.02.5. 노벨 DOS 7.02.6. 이후
3. 반응

1. 개요

게리 킬달의 디지털 리서치(Digital Research)에서 개발한 MS-DOS 호환 운영 체제. 과거에 닥터 도스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디지털 리서치 도스라는 뜻이며 디알도스 또는 디알디오에스라 부르는 것이 옳다. 또한 제목과 같이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하드웨어를 리뷰하는 월간지(HOW PC) 같은데서도 DR과 DOS 사이에 하이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1997년 12월 칼데라가 7.02 버전을 내놓고 3개월 후에야 하이픈을 달았다.

2. 역사

2.1. 배경

디지털 리서치는 8비트 개인용 컴퓨터 시절 이를 위한 운영 체제 CP/M을 만들었는데 당시에 가장 잘 나갔다. 8.3 파일 시스템, 확장자, 명령어 형식, 드라이브 이름 등 여러모로 이후의 MS-DOS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운영 체제이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오면서 IBM은 개방형 아키텍처였던 IBM PC를 만들었고, 컴퓨터 제조 회사들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IBM PC 호환기종 컴퓨터들을 제조하면서 8비트 컴퓨터의 시대가 끝나고 16비트 컴퓨터의 시대가 시작됐다. 디지털 리서치 역시 CP/M의 IBM PC 운영 체제 CP/M-86을 내놓아 IBM에 납품했다. 그러나 8비트 시대와 다르게 디지털 리서치는 16비트의 시대에 적응하는데 실패해 몰락의 길을 걸었고, MS-DOS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시대의 시장 지배자가 되었다.

디지털 리서치도 손 놓고 있지만 않았는데, CP/M-86을 업데이트 한다던가 멀티 유저 기능을 집어넣은 MP/M-86, 멀티 태스킹 기능을 지원하는 Concurrent DOS도 내놓는 등 오랫동안 노력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 사이에 수많은 PC-DOS와 MS-DOS 응용 프로그램들이 깔렸다. 결국 디지털 리서치는 Concurrent DOS을 개량해 멀티유저 기능 같은 복잡하고 비싼 기능은 제거하고, PC-DOS와 MS-DOS의 응용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컴퓨터 제조 회사들이 지적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운영 체제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처음에 등장한 1985년에는 DOS Plus로 불렸으나, 1988년 DR DOS로 이름을 바꿨다.

2.2. DR DOS 3.31

DR DOS 3.31은 1988년 5월 28일에 출시했다. 3.31이라는 버전은 MS-DOS와 경쟁하기 위해 선택했다. 컴팩에 제공한 MS-DOS 3.31과 마찬가지로 32MB 이상의 하드디스크를 지원한다. CP/M API는 완전히 제거해 버렸고 BIOS 시스템 파일은 MS-DOS 호환 파일로 대체했다.

DR DOS는 명령에 대한 도움말 기능을 집어 넣었고, 오류 메시지를 좀 더 자세하게 기술했다. 또한 사용했던 명령을 기록하고 다시 불러내 편집한 후 사용할 수도 있게 만들었다. 또한 MS-DOS보다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했고, 부족한 용량의 저장 장치를 보완하기 위해 컴퓨터 제조 회사들이 원하면 ROM으로 박아 넣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컴퓨터 제조 회사들이 디지털 리서치에 접근해 원하는 기능을 넣을 수 있도록 소스를 수정할 수도 있었다.

DR DOS는 컴퓨터 제조 회사들에게만 납품했으나, 3.4부터 일반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었다.

2.3. DR DOS 5.0

DR DOS 5.0은 1990년 5월에 출시했다. 5.0이라는 버전 역시 MS-DOS가 이유였다.

GUI 셸 프로그램 ViewMAX를 도입했다. 랩톱을 위한 BatteryMAX 전원 관리 시스템, 캐싱 소프트웨어(DRCACHE), 원격 파일 전송 도구(FILELINK), 커서 모양 구성 유틸리티(CURSOR)를 도입했다. 또한 부트 섹터의 개선된 로더 덕에 BIOS 시스템 파일이 디스크의 어느 곳에나 저장이 가능해졌다.

DR DOS 5.0은 크게 향상된 메모리 관리 시스템(MemoryMAX)을 통해 고위 메모리 영역(High Memory Area, HMA)과 상위 메모리 영역(Upper Memory Block, UMB)에 운영 체제 기능과 장치 드라이버를 할당할 수 있는 최초의 DOS였다. 이 덕에 당시 귀중했던 640KB 기본 메모리 확보가 더 수월해졌다.

이런 완성도 높은 경쟁 운영 체제가 등장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큰 위협을 느끼게 됐다. DR DOS 5.0 등장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선택은 지연 전략이었다. DR DOS가 출시한 같은 달인 1990년 5월 긴급히 MS-DOS 5.0 제품 발표했는데, DR DOS와 비슷한 기능들을 포함해 DR DOS보다 우수한 제품이 수 개월 내로 출시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행위를 1년 내내 계속했다. 결국 13개월만인 1991년 6월이나 되어서야 출시했으며, 결국 제품 발표회 때마다 약속했던 일부 기능은 빠져 버렸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1991년 4월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윈도 3.1의 베타 버전에 AARD 방해 코드를 집어넣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2.4. DR DOS 6.0

1991년 7월 17일 디지털 리서치를 노벨(Novell)이 인수합병했다. 노벨은 Netware라는 운영 체제를 만들고 있었으나 MS-DOS에 밀려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기 위해 디지털 리서치를 인수합병한 것이다.[1] DR DOS 6.0은 노벨이 인수합병한 이후 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MS-DOS 5.0을 1991년 6월에 내놓은지 얼마 안 된 1991년 9월 디지털 리서치는 DR DOS 6.0을 내놓았다.

디스크 압축 기능인 Superstor를 집어넣었으며, 멀티 태스킹을 위한 작업 전환기(Task Switcher) TASKMAX를 넣었다. TASKMAX는 응용 프로그램 간 복사 후 붙여넣기 기능도 일부 지원했다. GUI 셸 프로그램 ViewMAX는 TASKMAX를 이용해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수행했던 동시에 작업 전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디지털 리서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DOS/V에 대응해 DR DOS 6.0/V도 1992년 7월 출시했다. 한국어로도 번역해 출시한 적이 있다. #

2.5. 노벨 DOS 7.0

디지털 리서치를 인수합병한 노벨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나는 스타트렉 프로젝트라 불렸다. 마치 Windows 95처럼 애플 매킨토시의 운영 체제 System 7.1을 DR DOS 기반으로 이식하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에는 1992년 2월 14일부터 인텔과 애플, 노벨이 참여했으나 세 회사의 파벌 싸움과 시장성 때문에 결국 1년여만인 1993년 중반에 좌초되고 말았다. 또 하나는 유닉스 같은 유저별 권한 기능이었으나 이 역시 포함시키지 못했다. 이런 목표가 큰 프로젝트들 때문에 출시가 지연됐고 결국 노벨 DOS 7.0는 1993년 12월에 늦은 시기에 출시됐다.

노벨 DOS 7.0은 DPMI(DOS 보호 모드 인터페이스) 및 DPMS(DOS 보호 모드 서비스)를 내장했다. 이덕에 선점형 멀티 태스킹을 지원했으며, MultiMAX로 가상 DOS 머신을 구현해 여러 DOS 응용 프로그램을 동시에 사용 가능했다. GUI 셸 프로그램 TASKMGR을 통해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P2P 네트워킹 시스템인 Personal NetWare도 추가됐으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 체제와 호환되지 않는 관계로 사용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또한 노벨 DOS 7.0은 운영체제가 많이 무거워졌을 뿐 아니라 불안정했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 노벨은 무려 10개도 넘는 업데이트를 내놔야 했다. 또한 Windows 95의 개발 소식이 들려오면서 판매가 위축했다. 결국 노벨은 1994년 9월 개발을 중단했고, 1996년 1월에는 기술 지원마저 중단했다.

2.6. 이후

1996년 7월 23일 노벨은 칼데라에게 DR-DOS 사업부를 매각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의 PC-DOS나 칼데라의 DR-DOS를 파는 컴퓨터 제조 회사들에게 Windows 95를 팔지 않겠다고 압력을 넣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칼데라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반독점 소송을 벌였고 2000년 1월 7일 2억 8천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아냈다. 1997년 2월 3일 7.01 버전을 내놓았는데 OpenDOS라는 이름으로 소스를 공개하였다. 이후 칼데라는 1997년 12월에 디지털 리서치 접두어를 다시 부활시켜 DR-DOS 7.02를 내놨으며, 1999년 1월 6일에는 DR-DOS 7.03을 내놨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이미 Windows 9x의 시대였으며, 칼데라 역시 DR-DOS를 Windows 9x와의 공존을 시도했으나 상업적으로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1999년 8월 19일에는 DR-DOS 7.04, 1999년 11월 30일에는 DR-DOS 7.05도 만들었으나 일반 시장에 내놓지는 못했고 컴퓨터 제조 회사에 판매했다.

그 와중에 칼데라는 1999년부터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칼데라는 영국에 있던 DR-DOS 부서를 미국에 있는 씬 클라이언트(업무용 PC) 및 임베디드 사업부로 옮겼고, 이윽고 그 사업부는 Lineo라는 회사로 분할되어 나왔다. 그리고 2002년 Lineo는 디바이스로직스(DeviceLogics)에게 DR-DOS 부서와 일체의 권리를 매각하였다. 2004년 3월 29일 최신 버전 8.0이 나왔다. 임베디드 운영 체제로 사용 중. 2018년 여름부터 홈페이지가 사라졌으며,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러던 도중 2022년 7월 6일, Unofficial CP/M#이라는 웹 사이트에서 CP/M 라이선스에 대한 이메일을 교환을 통해 디지털 리서치에 대한 모든 권리가 디바이스로직스의 대표이사였던 Bryan Sparks에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참고로 그는 2001년에 CP/M 2.2의 CCP와 BDOS의 소스 코드를 공개한 적이 있다.

3. 반응

미국 시장의 약 10%를 차지했으며, 유럽에서는 매우 인기가 있었다. 특히 독일에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독일을 위시한 유럽에서는 미국의 소프트웨어 독점 대응으로 안티 MS 성향, 오픈소스 선호, 같은 미국산이라도 2, 3위 업체를 밀어주는 경향이 있었다. OS/2 warp가 나왔을 때에도 독일 같은 유럽에서 반응이 좋았다.

다만 일반인 시장에서 반응이 좋지 않았는데, 약간의 호환성 문제가 있었는데 특히 게임이 그러했다.

[1] 그외에도 노벨은 비슷한 시기에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 워드 퍼펙트를 인수합병하고, 그외에도 볼랜드에게서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 쿼트로 프로를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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