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비트박스
1. 시초
1966년 9월 17일, 더글러스 데이비스(Douglas Davis)가 바베이도스에서 태어난다. 그의 가족은 곧 미국 뉴욕의 할렘으로 이사하게 되고,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데이비스가 살던 거리에는 엔조이 레코드(Enjoy Records)라는 레코드 상점이 있었는데, 그는 자주 그곳을 지나가며 자연스럽게 힙합에 익숙해지게 된다. 상점에서는 같은 노래들만 주야장천 흘러나왔고, 그 곡들을 외워버린 데이비스는 입으로 노래를 모방하기 시작한다.그의 친구인 배리 B(Barry B)는 데이비스의 취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데이비스가 드럼 사운드를 흉내 내는 것을 본 배리 B는 이 취미에 Human Beat box라는 이름을 붙여주는데, 여기서 Beat box는 비트를 만드는 기계라는 뜻으로, 당시 많이 사용되던 Roland TR-808이라는 드럼머신에서 유래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1982년 더글러스 데이비스는 공연을 다니기 시작하며 서서히 이름을 알린다. 어릴 적에 트럼펫을 연주한 것의 영향인지 그는 버징을 애용하곤 했다.
비슷한 시기에 대런 로빈슨(Darren Robinson)은 버피(Buffy)라는 예명을 사용하며 Fat Boys라는 3인조 그룹에 합류해 비트박스를 시작하게 된다. 누가 제일 먼저 비트박스를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가장 먼저 비트박스를 녹음한 사람은 버피라고 할 수 있다.
1984년, 더글러스 데이비스는 엔조이 레코드에 더그 E. 프레시(Doug E. Fresh)라는 이름으로 합류하게 된다. 그는 DJ Chill Will, DJ Barry Bee, 그리고 Slick Rick과 함께 The Get Fresh Crew를 결성해 활동한다. 이들은 차례대로 ‘The Original Human Beat Box’, ‘Just Having Fun’, ‘The Show/La Di Da Di’라는 앨범을 발매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몇몇 곡들은 음악사에서 가장 많이 샘플링이 된 곡으로 꼽히기도 한다. 당시 데이비스는 고작 만 19세였다는 점에서 그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비즈 마키(Biz Markie)라는 음악가가 래퍼 록샌 샨테이(Roxanne Shante)와 함께 공연하러 다니며 빠르게 인지도를 높였다. 노래와 비트박스를 처음으로 접목시킨 사람도 비즈 마키였다.
정리하자면, 이 시기에는 3명의 유명한 비트박서들이 활동한 셈이라 할 수 있다. 클릭을 집어넣은 비트를 사용하던 더그 E. 프레시, 육성이 섞인 거친 호흡을 자주 사용하던 버피, 그리고 이 둘의 스타일을 섞은 비즈 마키는 각자의 위치에서 활발히 공연했다.
1980년 후반이 되자, 비트박스는 서서히 힙합 문화의 주류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Ready Rock-C라는 이름의 비트박서가 당시 래퍼로 활동했던 윌 스미스와 공연하며 인지도를 높인다. 이 시기에 활동한 또 다른 비트박서로는 Ladies Fresh 그룹에서 활동한 퀸 라티파가 있다. 심지어 마이클 잭슨도 비트박스를 즐기곤 했다.
하지만 이들로 인해 비트박스가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수많은 사람이 비트박스를 하게 되며 점차 ‘신기함’이라는 핵심 요소가 사라져버렸고, 급속도로 잊혀갔다...
다음 시기로 넘어가기 이전에, 이 시기에 활동했던 몇몇 비트박서들을 짧게 소개하자면.
바비 맥페린(Bobby McFerrin)은 비트박스를 응용한 보컬로 보이스 퍼포먼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는 여러 아카펠라 그룹의 우상이 되며 많은 영향을 주었다. 또 마이클 윈즐로(Michael Winslow)는 영화 ‘폴리스 아카데미’에서 비트박스를 사용해 총소리를 흉내 내는 장면으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1]. 유명한 장면으로, 이는 나중에 유명 비트박서 Dharni가 비트박스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2. 몰락 이후의 재기
힙합 문화로서의 비트박스는 완전히 몰락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미약하게나마 그 흐름을 이어나갔다. 비트박스 배틀이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다. 랩 배틀에서 파생된 비트박스 배틀은 누가 더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 있나 겨루는 대회가 되었고, 우승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큰 존중을 받는다.당시 유명했던 두 명의 비트박서로는 라젤(Rahzel)과 케니 무하마드가 있다. 우선 케니 무하마드에 대해 알아보자면
케니 무하마드는 비트박스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린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전에는 그저 랩의 부속 장르이자 힙합 문화의 일부였다면, 케니는 ‘비트박스’를 새로운 장르 그 자체로 바꾸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기본 스킬인 케스네어를 만들기도 하였다. 4원소 비트 중 윈드와 워터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라젤은 힙합 뮤지션이었지만, ‘Make The Music 2000’라는 앨범을 통해 비트박스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앨범의 곳곳에서 비트박스를 들을 수 있으며, 마지막 트랙인 Man vs Machine에서는 케니 무하마드의 윈드와 워터를 피처링했다. 라젤 본인의 ‘If your mother only knew’ 비트 또한 포함되어있다.
라젤은 이후 씬을 떠나지만, 그의 자리는 Scratch라는 비트박서가 채운다.
영국에서 비트박스를 하던 리 포터(Lee Potter)이라는 소년은 17살에 Killa Kela라는 예명으로 데뷔한다. 그는 힙합뿐만이 아닌 드럼 앤 베이스, 일렉트로 등 여러 장르를 비트박스로 표현한다.
이 즈음 비트박스는 다시금 문화의 주류가 되어간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비요크, 대니얼 베딩필드 등 여러 유명한 싱어송라이터들이 자신의 앨범에 비트박스를 담았다.
시간이 흘러 2002년, 예명 Kid Lucky로 활동하던 테리 루이스(Terry Lewis)는 Beatboxer Entertatinment를 설립한다. 이는 비트박스 문화상 최초의 기획사로, 앞서 언급했던 바비 맥페린의 아들인 테일러 맥페린(Taylor mcferrin)을 포함해 Doug E. Fresh, Butterscotch, D-Cross, Kaila Mullady 등의 비트박서들이 소속되었다. 또한 테리 루이스는 랩과 비트박스를 동시에 한다는 의미의 단어인 ‘비트 라이밍’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그는 이후 Beatrhyme Communication을 설립해 여러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3. 인터넷 확산 이후
21세기에 접어들며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하고, 비트박스를 다루는 사이트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가장 주목할만한 사이트로는 beatboxing.de와 beatboxing.co.uk가 있다. 후자는 2001년에 A-Plus라는 비트박서가 개설했는데, 커뮤니티의 기능을 가진 첫 비트박스 웹사이트라는 의의가 있다.2002년, 비트박서 TyTe에 의해 최초의 비트박스 영상 강좌가 업로드 된다. 이전에도 텍스트나 오디오 형식의 비트박스 강좌는 존재했지만, 비디오 형식의 강좌가 학습에는 훨씬 용이했다. 누구나 비트박스를 배울 수 있게 되자 씬이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TyTe는 2003년까지 총 52개의 강좌를 올렸으며, 그로부터 1년 뒤에는 튜토리얼 DVD를 발매하기까지 한다. 이후 TyTe의 웹사이트는 현재 우리가 아는 Humanbeatbox.com으로 개편된다.
인터넷을 통해 교류하는 전 세계의 비트박서들을 위해, A-Plus는 최초의 국제 비트박스 행사인 Human Beatbox Convention을 개최한다.
4. 대형 대회의 개최
Human Beatbox Convention은 2003년 4월에 런던에서 개최되었고, 제2회 HBB Convention은 1년 뒤에 뉴욕에서 Beatboxer Entertainment의 주도로 개최된다.2002년, 런던에서 King of the Jam이라는 비트박스 대회가 있었고, 마크 스플린터(Mark Splinter)라는 사람이 대회를 촬영해 인터넷에 업로드했다. 이후 영국에서 비트박스 잼이라는 문화가 유행한다.
이후에 개최된 영국 비트박스 대회의 대부분은 Shlomo라는 비트박서에 의해 개최된다. Shlomo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개막식에서 비요크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만 비트박스 대회가 개최된 것은 아니다. 최초의 지역 리그는 2002년 독일에서 있었고, 2005년에는 최초의 월드 챔피언십이 Bee Low에 의해 개최된다. 사실 2005년 월드 챔피언십은 Hip Hop World Challenge라는 행사의 일부였지만, 여전히 비트박스는 대회의 중심을 당당히 차지했다.
제1회 비트박스 배틀 월드 챔피언십의 결승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Joel Turner과 벨기에의 RoxorLoops가 맞붙었고, Joel은 세계 최초의 월드 비트박스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또한, 여성 부문이 따로 개최되어 Butterscotch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심사위원으로는 앞서 언급되었던 Scratch, Kid Lucky, Killa Kela 등이 있었다. 제2회 BBBWC는 2009년에 있었고, 이후부터는 3년을 주기로 개최된다.
이 시기에는 아시아에도 비트박스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2006년에 제1회 비트박스 챔피언십이 개최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아시아 비트박스 커뮤니티가 급속도로 성장한다. 2015년에는 홍콩, 일본, 그리고 대만의 비트박스 커뮤니티가 모여 Asia Beatbox Association을 설립한 뒤 2016년에 첫 아시아 비트박스 챔피언십을 개최한다. 우승은 Piratheeban이 차지한다.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서, 2006년에 Kilian So는 Swissbeatbox[2]를 설립하고, 2년 뒤 Pepouni가 합류하게 된다. Pepouni는 비트박스를 비디오 콘텐츠로 제작하는데 힘썼으며, 이들은 여러 배틀과 잼을 주선하고 영상으로 녹화해 SBX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한다.
2009년, 첫 그랜드 비트박스 배틀이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된다. 초창기에는 참가자의 대부분이 스위스 비트박서들이었고, 나머지도 독일에서 온 비트박서들이 많았다. SBX가 독일어를 사용하는 커뮤니티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인데, 이 문제는 2011년부터 SBX가 영어를 같이 사용하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고쳐진다.
이 때를 기점으로 GBB는 어엿한 국제 행사가 되었고, 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비트박서들이 몰려든다. 2011년 대회에는 영국의 Hobbit, 룩셈부르크의 Slizzer, 독일의 Babeli, 캐나다의 Scott Jackson[3]과 Krnfx, 그리고 이 대회의 우승을 차지한 Skiller이 참여했다.
다음 해의 GBB 챔피언은 Ball-Zee였고, 같은 해 Skiller가 제3회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여성 부문에서는 Pe4enkata가 우승하였다. 참고로, 제2회 월드 비트박스 챔피언은 Zede와 Bellatrix였다.
2013년, Pepouni는 GBB에 참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와일드카드’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또한 루프스테이션 부문이 신설됐고, GBB의 첫 루프스테이션 챔피언은 스페인의 Grison이 차지한다. 솔로 부문에서는 싱가포르의 Dharni가 우승하였다.(아까 그 사람 맞다) 2014년에는 7 to Smoke 배틀이 GBB에 도입되었고, 2015년에 열린 제4회 월드 챔피언십에서는 Alem과 Kaila Mullady가 우승하였다.
Beatbox House라는 팀이 생긴 것도 2015년이다. 당시에는 배틀 문화가 주류였지만, 이들은 비트박스만으로 ‘음악’을 표현해보고자 했다. 이들은 유렵에 끌려있는 씬의 주목을 미국으로 가져오는 역할을 했으며, 2016년부터는 미국 비트박스 챔피언십의 주최자가 되었다.멤버는 Napom, Kenny Urban, Gene Shinozaki, Chris Celiz 등이 있다.
같은 시기에 Reeps One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음성학을 가르쳤고, 이후에도 여러 대학교에서 짧은 강의를 진행했다. 2019년에는 노키아 벨 연구소와 협력하며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소리의 한계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이들은 ‘We Speak Music’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SBX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2017년에는 제1회 World Beatbox Camp가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지식 공유와 친목을 위해 개최되기도 하였다.
5. 오늘날
제5회 월드 챔피언십에서 Alexinho가 우승하며 현재까지 월드 챔피언 자리를 유지하고 있고, 여성 부문에서는 Kaila Mullady가, 크루 부문에서는 Berywam이, 태그팀 부문에서는 Spider Horse가, 그리고 루프스테이션 부문에서는 Saro가 각각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갔다.2019년도 역시 대규모 비트박스 대회로 GBB 2019이 열렸고, 이 대회에서는 D-Low, Uniteam, Rythmind가 각각 솔로 부문, 태그팀 부문, 루프스테이션 부문에서 우승하였다. 이후 코로나 팬대믹 때문에 오프라인 행사들은 줄줄이 취소된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는 여전히 활발했고, 온라인으로 개최된 GBB 2020에서 Zer0가 우승을 차지하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흐름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제6회 월드 챔피언십은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되었지만, SBX가 GBB의 개최를 강행하며 오프라인 대회의 흐름을 유지했다. GBB 2021은 태그팀 루프스테이션 부문과 크루 부문을 도입한 첫 GBB이기도 한데, 2021년 기준 솔로 부문 챔피언은 Colaps, 루프스테이션 부문 챔피언은 Bizkit, 태그팀 부문 챔피언은 Middle School, 태그팀 루프스테이션 부문 챔피언은 Sorry, 그리고 크루 부문 챔피언은 M.O.M이다. 또한 7 to Smoke 챔피언 자리는 King Inertia가 차지했다.
[1] 마이클 윈즐로는 이후 영화 스페이스볼에서 단역 병사로 출연하는데 여기서도 입으로 전파 신호를 그대로 재현해낸다.[2] 현재 구독자 446만명이 넘는 초대형 채널이다[3] 현재는 진행자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