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유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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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대 군안궤 | 봉은사 판전 | 지장사 목조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25호 | |
봉은사 판전 奉恩寺 板殿 | |
<colbgcolor=#ae1932><colcolor=#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73)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
수량 / 면적 | 건물 1棟, 토지 210.7㎡ |
제작시기 | 1857년(조선 철종 7년) |
지정연도 | 2018년 7월 12일 |
소유자 | 봉은사 |
관리자 | 봉은사 |
봉은사 판전[1] |
1. 개요
봉은사의 건물로, 목재 경판을 보관하며 예불을 드리는 공간이다. 현재 봉은사에 있는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2. 역사
1856년(철종 7년)에 지었다. 당시 봉은사의 남호 영기 스님이 《화엄경수소연의본(華嚴經隨疎演義本)》을 무려 80권이나 직접 손으로 썼다. 남호 영기 스님은 자신이 쓴 《화엄경수소연의본》을 인쇄하여 책을 만들 목적으로 목판을 제작했고, 그것을 보관하기 위해 새로 건립한 전각이 이 판전이다.1878년(고종 15년)에 다시 고쳐지었고 2012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2018년 7월 12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25호로 지정받았다.
3. 구조
- 정면은 전부 세살창호를 한 문이 달려있는 모습이며 교창은 없다. 측면 모습은 정면과 많이 다르다. 머름 위에 붉은색 나무 판으로 만든 창이 달려있으며, 창 위에 나무로 만든 벽을 세웠다. 머름의 크기는 일반적인 다른 한옥의 머름보다 큰 것이 특징이다.
- 실내 벽 가장자리에 받침대를 만들어 경판을 보관하고 있다. 경판에 습기가 스며들지 않게 하려고 바닥에 온돌을 깔았다.
4.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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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기로회도 | 봉은사 판전 현판 |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83호 | |
봉은사 판전 현판 奉恩寺 板殿 懸板 | |
<colbgcolor=#ae1932><colcolor=#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73)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목판각류 / 현판류 |
수량/면적 | 1点 |
제작시기 | 1856년(조선 철종 7년) |
지정연도 | 1992년 12월 31일 |
소유자 | 봉은사 |
관리자 | 봉은사 |
봉은사 판전 현판[3] |
판전의 현판으로,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이다.
길이는 가로 181cm, 세로 77cm이다. 조선 시대의 작품이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씨를 읽는다. '전(殿)' 자 왼쪽에는 세로로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이란 글씨가 쓰여있는데, 이는 '71세에 과천에서 병을 앓고 있을 때 썼다'는 뜻이다.
일설에 의하면 김정희가 사망하기 3일 또는 4일 전에 썼다고 한다. 그 말이 맞다면 김정희 최후의 작품인 셈이다. 실제로 김정희는 판전이 완공된 1856년(철종 7년)에 봉은사에 와서 잠시 머물렀다가, 그 해 10월에 과천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 달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상술했듯, 현판 글씨를 과천에서 썼다고 적은 것을 보아 저 말이 사실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1992년 12월 31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83호로 지정받았다.
5.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유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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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판전 현판 |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 김양보 호성공신록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84호 | |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初木版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73)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목판각류 / 현판류 |
수량 / 면적 | 3,190판 |
지정연도 | 1992년 12월 31일 |
소유자 (소유단체) | 봉은사 |
관리자 (관리단체) | 봉은사 |
<colbgcolor=#ff8c00>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5] |
판전에 두고 보관하는 목판이다. 상술한 남호 영기 스님이 만든 목판이 이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화엄경》의 정식 이름으로, 편의상 줄여서 '화엄경'이라 부르는 것이다.
1992년 12월 31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84호로 지정받았다. 처음 문화재가 될 때에는 3,175판이었다. 그러나 2018년에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가 함께 전국 사찰에 있는 목판들을 조사하던 중에 미처 문화재로 지정하지 못한 목판 15판을 새로 찾아냈다. 이에 서울특별시에서는 저 목판 15판을 2019년 10월 10일에 추가로 지정했다.
6. 봉은사 판전 신중도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유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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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대웅전 신중도 | 봉은사 판전 신중도 | 봉은사 괘불도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230호 | |
봉은사 판전 신중도 奉恩寺 板殿 神衆圖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73) |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 괘불화 / 석가불도 |
수량 / 면적 | 1幅 |
지정연도 | 2007년 9월 20일 |
제작시기 | 1857년(철종 8년) 경 |
소유자 (소유단체) | 봉은사 |
관리자 (관리단체) | 봉은사 |
<colbgcolor=#ff8c00> 봉은사 판전 신중도[6] |
판전 향 왼쪽 벽에 모신 신중도(神衆圖)이다. '신중(神衆)'은 직역하면 '신(神)의 무리(衆)'로, '신중도(神衆圖)'는 '부처님의 정법을 수호하는 신들(神衆)을 그린 그림(圖)'이란 뜻이다. 사실 신중은 원래 불교의 신이 아니었고, 불교가 생기기 전에 인도에 존재했던 다른 종교들의 신이었다. 처음에 불교는 이들과 경쟁할 수 밖에 없었지만, 경쟁 대신 이들을 감화해 귀의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기존 종교의 신들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신으로 삼았으니 이들이 바로 신중이다.
이 신들은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파할 때 나타난다고 하여 '화엄신중(華嚴神衆)'이라고도 일컫는데, 상술한 목판이 화엄경인만큼, 건물의 목적과 잘 맞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로 224.4cm, 세로 237cm이다. 신들의 배치는 4열이고 총 39신을 빼곡하게 그려두었다.
2007년 9월 2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230호로 지정받았다.
7. 봉은사 비로자나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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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괘불도 | 봉은사 비로자나불도 | 봉은사 칠성도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232호 | |
봉은사 비로자나불도 奉恩寺 毘盧舍那佛圖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73) |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 불도 |
수량 / 면적 | 1幅 |
지정연도 | 2007년 9월 20일 |
제작시기 | 1886년(고종 23년) 경 |
소유자 (소유단체) | 봉은사 |
관리자 (관리단체) | 봉은사 |
<colbgcolor=#ff8c00> 봉은사 비로자나불도[7] |
판전 내부 중앙에 있는 불상 뒤편에 걸린 탱화이다. 1886년(고종 23년)에 그렸다. 이 그림을 제작하기 위해 상궁 8명이 시주를 했다고 한다. 원래는 같은 시기에 그린 〈칠성도〉 및 〈산신도〉와 한 자리에 있었는데, 〈칠성도〉는 1942년에 새로 지은 북극보전으로 옮겼고, 〈산신도〉는 지금 없다.
이 그림 속 부처님은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은 '광명' 혹은 '태양'이란 뜻의 산스크리트어 '와이로짜나(vairocana)'를 음차한 말로, '두루 빛을 비추는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불교의 입장대로는,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들, 모든 보살들, 모든 중생들은 비로자나불의 화신이다. 오직 불변하는 하나의 중심이 있는데 이를 '중앙 비로자나불'이라고 부른다. 우주의 중심에 있는 불국토인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에 존재하면서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총괄할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의 최고신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이자, 우주일체 만물을 고루 평등하게 밝히고 있는 법성체(法性體)로, 안으로는 진여법계를 비추고, 밖으로는 모든 중생에게 법성을 비추어 우주를 밝히며, 항상 변하지 않고, 우주의 대생명체 바로 그 당체를 말한다고 한다.
가로 224.4cm, 세로 302.3cm이다. 가부좌를 한 채 앉아있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양 옆에 양 손을 모은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그려두었다. 비로자나불 아래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그림의 왼쪽과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사천왕이 각 면에 2명 씩 있다.
2007년 9월 2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232호로 지정받았다.
8. 여담
현재도 예불하는 장소로 쓰이는 만큼, 실내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경판을 사진 촬영하는 것은 금지이니 참고하면 좋다.[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82호 〈목장지도〉는 2008년 12월 22일 해제되고 보물 1595-1호로 승격받았다.[3]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4] 85호 《성시헌 익사공신록》과 86호 《열조통기》는 각각 제주특별자치도와 부산광역시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2010년 6월 10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해제시켰다.[5]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6]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7]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