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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1-31 21:23:06

보릴(불가리아 제2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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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공국 · 불가리아 차르국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 불가리아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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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보릴
(영어: Boril, 불가리아어: Борил)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직위 불가리아 제2제국 차르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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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가리아 제2제국 4대 차르. 칼로얀의 갑작스런 사망 후 집권하였으나 내란과 외적의 침략에 시달리다 이반 아센 2세에게 축출당했다.

2. 생애

페터르 4세, 이반 아센 1세, 칼로얀 3형제에게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동생이 있었다. 그녀는 모종의 남편과의 사이에서 보릴을 낳았다. '보릴'은 슬라브어 동사 보리티(boriti)에서 땄는데, '투쟁'을 의미한다. 1207년 10월 칼로얀이 테살로니키 공성전을 벌이던 중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역사가 게오르기오스 아크로필리티스는 그가 늑막염으로 죽었다고 기술했지만, 옆구리에 창으로 때린 듯한 흔적이 있어서 신의 분노로 인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밝혔다. 그가 칼로얀을 암살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다.

불가리아군이 테살로니키 공성전을 포기하고 귀환한 뒤, 그는 칼로얀의 미망인 데시슬라바와 결혼하여 차르가 되었다. 그러나 그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많았으며, 특히 이반 아센 1세의 작은 아들인 이반 아센 2세를 차르로 추대하려는 움직임까지 일었다. 이에 보릴은 이반 아센 2세를 죽이려 했고, 이반 아센 2세는 쿠만족의 땅으로 도망쳤다가 나중에 키에프나 할리치로 도피했다. 보릴의 친동생 스테즈는 세르비아로 망명했다. 보릴은 헝가리 왕 스테판 네마니치에게 스테즈를 넘겨달라고 요구했지만, 스테판은 거부하고 스테즈에게 프로세크 요새 수비를 맡겼다. 여기에 보릴의 또다른 친척인 알렉시오스 슬라브는 로도프 산맥의 체피나 성에서 독립했다.

1208년 5월, 그는 위신을 끌어올리기 위해 트라키아 원정에 착수했다. 그러자 라틴 제국 황제 앙리가 요격에 나섰고, 그해 7월 8일 플로브디프 전투에서 불가리아군을 격파했다. 보릴은 타르노보로 철군했고, 알렉시오스 슬라브는 앙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 사이, 세르비아 왕 스테판 네마니치가 마케도니아로 쳐들어가서 스트루마와 바르다르 강 사이의 땅을 점령했다. 스테판은 스테즈에게 점령지를 다스릴 권한을 넘겨주면서도, 세르비아군은 그곳에 남겨뒀다.

1209년 초, 테살로니키 왕국의 지배를 받던 세레스의 그리스 시민들은 멜니크의 보릴 휘하 사령관에게 구원을 청했다. 그러나 앙리 황제가 먼저 움직여서 추종자를 그곳의 통치자로 삼았다. 보릴은 니케아 제국, 이피로스 전제군주국과 동맹을 맺어서 라틴 제국에 대항했으며, 스테판 네마니치에게 등을 돌린 스테츠와도 화해했다. 1211년 초 타르노보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여 가톨릭력에 따라 부활절 날짜를 정하고 보고밀파를 이단으로 정죄하기로 하고, 불가리아어로 공의회의 결의를 공표하게 하였다.

1211년 4월 테살로니키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가던 앙리 황제를 잡기 위해 산악로에 병력을 매복시켰지만, 앙리가 이를 간파하고 인근 라틴 요새에서 군대를 모아 역습을 가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후 스테즈가 테살로니키 왕국을 침략했다가 이피로스가 라틴 제국과 평화 협약을 맺고 그의 영지에 쳐들어오는 바람에 위기에 처하자, 그는 동생을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 그러나 1211년 초여름, 보릴과 스테즈 형제는 비톨라 근처에서 테살로니키-이피로스 연합군에게 패배했다. 그해 10월 테살로니키를 포위공격했으나, 알렉시오스 슬라브가 구원군을 이끌고 달려오자 철수했다. 알렉시오스 슬라브는 불가리아군을 추격해 상당한 타격을 입혔고, 뒤이어 멜니크를 공략했다.

거듭된 패전으로 그의 위신은 추락하였고, 보야르들은 1211년과 1214년 사이에 비딘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외부의 도움 없이는 진압할 수 없다고 보고 헝가리 왕 언드라시 2세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언드라시 2세는 페체네그로 구성된 부대를 앞세워 구원군을 파견해 비딘을 공략하고 그에게 넘겼다. 이렇듯 내우외환이 심해지자, 그는 라틴 제국과 화해하기로 했다. 마침 앙리 황제도 불가리아와 평화를 맺고 니케아 제국과 전쟁을 재개하고 싶었던 터라 협상이 진행되었고 앙리는 칼라얀의 딸 마리아를 후처로 들이는 조건으로 종전을 하는데 합의를 봤다. 이로서 불가리아와 라틴 제국의 전쟁은 종식되었다.

1214년 초 자신의 딸을 헝가리 황태자 벨라와 약혼시켰고, 헝가리와 라틴 제국의 지원에 힘입어 세르비아를 공격해 니시를 포위했다. 여기에 스테즈도 남부에서 세르비아를 공격했다. 그러나 스테즈는 원정 도중 암살당했고, 불가리아군과 라틴 제국군 간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니시를 좀처럼 공략하지 못했다. 그러다 1216년 앙리가 사망하자 라틴 제국군은 철수하였고, 1217년 언드라시 2세가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기 위해 헝가리를 떠나면서, 그는 더 이상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반 아센 2세는 이 틈을 타 1218년 불가리아로 돌아가서 반란을 일으켰다. 보릴은 이를 진압하려 했으나 참패를 면치 못하고 타르노보로 도주했다. 그는 몇달간 항전했지만 끝내 붙잡혀 실명형에 처해졌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