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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10:47:45

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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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言
? ~ 1010년(현종 원년)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의 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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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초기의 승려.

2. 생애

제2차 여요전쟁 당시 요나라 거란의 군사가 서경을 공격했는데, 탁사정과 함께 군사 9천을 이끌고 임원역(林原驛)[1] 남쪽에서 거란군 3천여 명을 살해하는 전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거란군의 반격으로 법언은 전사했고, 적이 서경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자 탁사정은 서경을 버리고 도주했다.

이듬해 현종은 법언을 수좌(首座)로 추증했다.

3. 대중매체에서의 법언

소설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에서 중흥사의 주지였지만 거란의 군사가 중흥사 구층탑을 불태우자 분노해 승려들을 이끌고 5백명의 군대를 조직했고, 임원역에서 거란군이 방진을 치고 있자 법언이 승병을 이끌고 앞장서서 공격했다. 거란군의 수비가 견고해 진을 깨지 못하자 탁사정이 승병들을 쉬게 해주기 위해 교대하려 하자 법언은 아직 승병들은 지치지 않았다면서 자원했다. 승병들과 함께 불경을 암송하면서 거란군을 공격했고, 거란군과 싸우면서 여러 곳에 창과 칼을 맞았으며, 거란군의 칼에 턱이 찢어진 상황에서도 계속 싸우다가 쓰러졌다.[2]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에서 전령에 의해 법언이 언급되는데, 아마도 10회에서 지채문과 대도수 옆에 있던 승려로 보이며, 16회에서 현종양규, 김숙흥과 함께 추증했다.


[1]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상, 현 평안남도 대동군 부산면 남궁리 일대이다. 훗날 고려 인종묘청 등의 건의를 받아 대화궁을 짓는 곳이다.[2] 법언이 죽자 승병들이 더욱 맹렬히 공격했고 거란군의 전열이 밀리자 지채문과 탁사정이 거란군을 공격해 방진을 무너뜨려 물러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