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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2-06 20:34:09

벌초


1. 개요2. 기원3. 상세4. 기타5. 관련 문서

1. 개요

벌초()는 조상을 모신 에 자란 잡초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말한다. 금초라 부르기도 한다.

2. 기원

벌초의 기원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으나 유교의 관혼상제에서 시제와 묘제를 언급하고 있고, 특히 성리학에서 묘제를 중시하는 부분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대한민국 사회에 유교가 보급되면서 벌초를 하는 관습도 같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실제 성리학이 보급된 조선시대에는 조상들의 묘에 잡풀이 무성한 것 자체도 불효이자 조상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다.

3. 상세

벌초를 하는 시기는 , 가을 2번하는 것이 보통으로 봄은 한식, 가을에는 추석 때 벌초를 한다. 허나 가을의 경우 딱히 추석 당일이 아니더라도 추석 몇 주 전에 미리 벌초를 하는 경우가 있다.[1] 벌초의 대상이 되는 묘는 가깝게는 부모와 조부모, 더 올라가면 선산에 모셔진 웃대 조상들을 포함하게 된다. 이로 인해 오래 전부터 특정 성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가문의 선산이 오래된 경우에는 많은 수의 묘지들을 벌초해야 된다. 그로 인해 보통 여러 가족들이 모여 직계 조상들의 묘만 분담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과거에는 상술했듯 특정 성씨 집단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고, 보통 3대 이상이 함께 사는 대가족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벌초를 하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가까운 친척이라 해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핵가족화가 진행된 상태라 벌초 자체를 안 할 수는 없는데 또 그렇다고 적은 머릿수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보통은 도시로 떠나지 않고 여전히 해당 지역에 남아있던 문중의 사람들이 벌초를 책임지고, 일가 친척들은 이에 대한 감사를 뜻하는 의미에서 벌초비를 주는 형태가 많았다. 하지만 이것도 1980년대 ~ 1990년대 중반까지 이야기이고, 이후로는 시골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대부분 늙거나 죽는 일이 많아진 까닭에 직접 벌초를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때문에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서 벌초를 맡겨 수고비를 주는 쪽으로 넘어갔다[2]. 초창기에는 그냥 마을에서 그나마 좀 젊은 사람들한테 술값이나 밥값 좀 쥐어주고 맡기는 형태가 많았으나 전문적으로 하는 벌초를 대행해주는 전문업체도 생겨났고, 코로나 19 범유행 이후로는 벌초대행업체에 맡기는 쪽이 많이 늘어났다.

참고로 왕릉 같은 경우는 문화재로 분류되기 때문에 문중에서 벌초를 담당하지 않고 나라에서 일용인부와 공공근로자를 동원해 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나 원예용 가위같은 걸 써서 했지만 요즘에는 예초기란 아주 좋은 도구가 있다. 군대에서 웬만하면 한번씩 돌리기에 경험자에겐 익숙한 도구일 것이다. 다만 비석 주변과 같이 섬세한 동작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서 낫과 가위도 여전히 보조 도구로서 역할은 하고 있다.

그 외에 벌초를 하면서 사고가 많이 나는 편이다. 가장 유명한 것이 추석을 앞둔 벌초 때 예초기 돌리다가 땅벌집 건드리는 바람에 땅벌들에게 공격을 받고 응급실 신세를 지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고로 본인이 벌초를 간다면 벌레 기피제와 살충제는 필수다. 그 외에 우거진 풀 아래 숨어 있는 독사를 보지 못하고 물려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한다. 매년마다 벌초 때 독충들을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발견이 어렵기 때문에 대비가 어려운 사고 유형이다.

예초기와 관련된 사고도 많은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잡아서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고, 바닥의 돌 같은 게 튀어서 맞아 다치는 경우도 발생한다.[3] 그래서 벌초할 때는 선 캡이나 헬멧, 고글 같은 걸로 얼굴 및 눈을 보호하는 게 좋고, 일자형 날보다는 힘은 떨어지지만 안전한 원형톱날이나 나일론 커터 또는 예초기 롤러를 쓰는 게 좋다. 간혹 친척들 모인 김에 겸사겸사 막걸리와 같은 약주 한 잔 하고 벌초하러 가서 예초기 돌리다가 사고 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또한 야생의 들판은 유행성 출혈열이나 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 증후군(SFTS)을 유발하는 작은소참진드기 등 온갖 종류의 치명적인 병원균, 바이러스를 보유한 전염병 매개체들이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벌초를 하다 절대로 맨 땅이나 풀밭에 그냥 드러누워서는 안된다.

이외에도 묘의 위치가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험한 곳에 있거나 무덤으로 가는 길 자체가 어지간한 등산로보다 위험하다면 이동하는 도중에 사고가 날 수 있는지라 매우 조심해서 움직일 것. 특히 벌초를 하러 갈 때는 낫, 호미, 예초기, 갈고리 등의 위험한 도구도 함께 지참하기 때문에 넘어지거나 부딪치는 등의 사고가 나는 순간 소지하고 있던 도구에 신체를 심하게 베이거나 찔리는 등 2차 사고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데다 묘지 특성상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외곽 지역의 언덕이나 산중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구조대원이나 전문 의료인의 처치를 받기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거기에 여러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조상들의 무덤으로 이동하는 벌초 특성상 평일보다는 다 같이 모이기 쉬운 주말에 약속을 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면 대응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병ㆍ의원은 아무리 잘해도 토요일 오전 진료를 끝으로 휴무 모드에 돌입하는지라 믿을 구석은 종합병원의 응급실 밖에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벌초를 하러 간 다른 구성원들도 이동과 노동으로 소모된 체력+대부분 험한 지역에 위치한 묘지의 특성상 오고 가는 것 자체가 난이도가 높은 상황으로 인해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든 만큼 부상자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주기 힘들다.

4. 기타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매장이 치러지고 있으나 과거처럼 선산에 묘를 만들기보다는 가까운 공동묘지에 만드는 경우도 많아졌는데, 이 경우엔 공동묘지 쪽에서 벌초와 같은 관리를 해주기 때문에 굳이 벌초를 갈 필요가 없다. 아예 화장 후 납골당을 이용하면 당연히 벌초고 뭐고 없다. 그 외에 각종 다양한 장례 방법이 늘고 있어 벌초란 문화 자체가 서서히 축소되고 있다. 사실 벌초를 좋아서 가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4]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장차 벌초 문화가 아예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제주특별자치도에는 2000년대까지 매해 음력 8월 1일임시공휴일로 정해 학생들이 벌초에 참여해 조상을 모시고 효를 배우도록 권장한 '벌초방학'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부터는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해지고 핵가족화가 보편화 되고 또한 효 문화가 사라지면서 제주도의 주요 행사였던 벌초문화도 점차 간소화된 것. 이 때문에 같은 제주도민인데 벌초방학을 모르는 세대가 생겼다. #

현대에 와서는 제사 문화만큼은 아니지만 사실상 악습 취급을 받고 있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보다 굳이 후손들의 육체적 노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또 명절이라고 시골로 내려가지 않는 집도 많아지면서, 과거만큼 젊은 세대에게 달가운 문화는 아니다. 애당초 망자를 땅에 묻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 땅, 풀, 나무 등과 다시 하나가 되라는 의미인데, 그 위에 자라는 자연물을 잡초라 간주하고 굳이 인위적으로 손을 대는 것 자체가 다소 모순적이다.

5. 관련 문서


[1] 대체로 추석을 앞두고 몇 주 동안 주말을 할애해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1년 동안 일반 잡초 외에도 넝쿨이나, 환삼덩굴, 아까시나무 같은 것들도 자라나는 경우가 있어서 벌초를 하기 전에 제초제를 뿌리는 경우도 있다.[2] 농촌 지역 산림조합이나 단위농협에서 이런 대행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3] 이는 대체로 일자형 날을 쓰다가 많이 발생하는 사고다. 일자형 날은 파워가 좋아서(웬만한 나뭇가지도 다 자른다.) 많이 쓰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풀 속에 있는 돌이 많이 튀어서 사고를 당하는데, 대체로 눈을 다치는 사고가 많다.[4] '조상님 보러 간다'라며 기꺼이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묘지가 있으니 마냥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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