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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11:06:59

박종성(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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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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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강원도지사
박종성
朴鍾星 | Park Jong-sung
파일:박종성(강원도지사)_대문.jpg
1. 개요2. 생애3. 주요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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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 강릉 박씨 27대손 (삼가공파(三可公派))[1].

2. 생애

1919년 강원도 강릉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보, 단국대학교 정법학부('61) 및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67)을 졸업하였다.

고향인 강원도 명주군 강동면의 면서기('43)로 관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삼척 군수(10대, '60. 5.23 ~ '60.11.17)과 명주 군수(현 강릉시, 10대군수, '60.11.01 ~ '61.03.25)를 지냈다.
중앙에서 내무부지방국 지도과장 ('68.03 ~ '69.07) 으로 근무하였고, 이후 다시 고향인 강원도로 발령받아, 춘천 시장(15대, '70.07.23 ~ '71.08.09), 강원도부지사 ('71.08 ~ '73.10) 및 19대 강원도지사 ('73.10.20 ~ '78.02.14) 를 역임하였다.[2]
1978년 2월 지병인 간암으로 공직에서 물러났으며, 1978년 4월 10일 사망했다. 향년59세.[3]
슬하에 1남4녀(주철, 계희, 재희(한국무용가, 국가무형문화재보유자[4]), 현숙,경애)를 두었다.

3. 주요 업적

도지사 임명 이듬해인 1974년 ‘새강원장학회’(현 강원인재육성평생교육진흥원) 를 설립하고 1975년 강원도 출신 서울 소재 대학생들을 위한 기숙시설 ‘새강원의숙’(현 강원학사) 을 전국 최초로 지었다. ‘새강원의숙’은 다른 지역 향토학사보다 15년 가량 앞선 것이었다.[5] 이를 기리기 위해 강원학사 숙우회 주도로 강원학사 설립자인 고 박종성 전지사 추모사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6]

1974년 당시 박종성 도지사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도청 공무원 복지 조림법인을 설립하고,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1973년) 추진을 위해 기부금을 조성하였다. 이를 통해 강원도가 빠른 속도로 녹화사업을 추진하였으며, 관련 산림녹화 기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가 추진 중이다.[7]

1975년 11월 29일 제막된 ‘산업전사위령탑’은 당시 박종성 강원도지사의 뜻으로 도비 및 영월, 정선, 명주(현재 강릉), 삼척군비 8백만 원과 광업인 성금 5백만 원으로 건립되었으며 주위에 수목 조경하여 태백시의 시민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8] 4,086위의 위패가 봉안돼있다(2015년 기준). 위령탑은 태백의 '현충원' 같은 곳으로, 시민들은 매년 경건한 마음으로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새해가 되면 태백시장, 경찰서장 등이 참배하는 것은 물론 태백의 정치인들 또한 출마할 때면 항상 이곳을 먼저 참배한다.
강원도 탄광촌 문화제는 순직근로자 위령제를 시작으로 막이 오른다. 산업전사위령탑을 찾아서 석탄산업 역군으로 종사하다가 순직한 영령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것이다. 이때는 광부의 직업병인 진폐로 인한 순직자의 영혼도 함께 위로한다. 위령제는 사고 순직자 및 진폐순직자 제막식, 산업전사위령탑 앞의 헌화와 분향, 진혼무와 헌화무의 살풀이 공연 등이 행사의 핵심을 이룬다.

파일:산업전사위령탑.jpg

1975년 춘천 남이섬 내에 6‧25 당시 조국과 내 고장, 내가족을 지키고자 마을 청장년들이 자발적으로 반공투쟁 산악대를 조직하고 활동한 것을 기려, 당시 박종성 도지사의 글씨로 <6‧25 반공투쟁 산악대원 전적비>를 세웠다. 별도의 검은 돌(烏石)에는 이들의 넋을 위무하는 비문을 음각하고 뒷면에 참전대원 이름을 새겨 넣었다. 처음에는 83명의 이름이 있었으나, 이후 참전 확인된 분들이 추가되어 현재는 11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9]

파일:남이섬625반공투쟁산악대원전적비2.jpg

1976년 오죽헌 정화사업을 추진하여 400여 년을 전해 오는 동안 퇴락한 건물과 경내를 추스려, 율곡 선생과 신사임당의 위업을 기리고자 새롭게 정비하였다. 관련 사업 내용과 결과를 정리하여 오죽헌정화지를 발행하였다. [10]

파일:율곡선생유적정화기념비.jpg

1978년 강원도 강릉시 동부시장1길 7(옥천동 332-2번지)에 종중(宗中)과 박종성 지사가 보내온 문화기금으로 효자각을 세웠다. 효자각 안에는 효자비와 효자리비(孝子里碑)가 함께 세워져 있다. 1984년 6월 2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11]
[1] https://genealogy.inje.ac.kr/reader_responsive/index.php?u=08E65380-733E-C4B0-189C-7F5D9018FDBE&display=both[2] https://www.mk.co.kr/news/economy/228505[3] https://www.mk.co.kr/news/economy/385702[4] http://arirangs.com/m/page/view.php?no=1270[5] https://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733124[6] https://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245088[7]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31001/121450681/1[8] https://ncms.nculture.org/coalmine/story/3663[9] https://bomnae.chuncheon.go.kr/contentView?contentNo=396&no=329[10] http://www.grandculture.net/gangneung/index/GC00302634?category=%EC%84%9C%EB%AA%85%2F%EC%9E%91%ED%92%88%EB%AA%85&depth=2&name=%EC%95%84&page=10&search=%EC%98%A4%EC%A3%BD%ED%97%8C%EC%A0%95%ED%99%94%EC%A7%80[11] http://www.grandculture.net/gangneung/index/GC00304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