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3대 성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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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이슬람 | |
문화 | 예언자의 모스크 | 알 아크사 모스크 | 바위의 돔 | 우마이야 모스크 | 카이라완 대사원 | 쿠세이르 암라 |
건물 전면의 모습. |
성밖에서 바라본 모습. 뒤의 푸른 돔은 기독교 최대 성지인 성묘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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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랍어 | [꿉바투싸크라] قبة الصخرة |
영어 | Dome of the Rock |
예루살렘의 성전산에 있는 이슬람 성원이다.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 의하면, 이곳에서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으며,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만들어졌고,[2]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사악(이슬람 전승에선 이스마일)을 하느님에게 바치려 했던 장소이다.[3]
무슬림들은 이 곳에서 무함마드가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간 적이 있다고 믿는다. 이와 같이 종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순례장소가 되는 곳이다. 건축적으로도 중세 시기 최대 규모의 돔 중 하나이며, 화려한 타일 장식에 자연 암반 위에 세워진 인공 구조물인 것 등 큰 의미가 있다.
2. 상세
좌측이 알 아크사 모스크, 우측이 바위의 돔이다
같은 성전산 바로 앞에 알 아크사 모스크가 있다. 현재 광경만 보면 마치 바위의 돔이 알 아크사의 부속 건물인 양 느껴지지만, 원래 바위의 돔이 무함마드의 승천 장소를 성역화하고 보호할 겸 승천 제단을 둘러싸서 먼저 건설되어 692년 완공되었고, 알 아크사가 무함마드의 승천(미라즈)을 기념하기 위해 나중에 건설되어 705년 완공되었다. 상술했듯이 미라즈 외에도 알라가 아담을 창조한 곳이고 아브라함이 아들을 희생하려 한 곳이라는 등 이슬람에서 매우 성스럽게 여기는 장소로, 메카나 메디나와 견주는 3대 성지로 선정되기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
바위의 돔 내부는 안에서 대규모 인원이 이슬람식으로 무릎 꿇어 절하며 예배 드리기에는 매우 협소하고 불편하다. 승천 제단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기념사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배용으로 알 아크사를 따로 또 지었다. 내부의 금박 모자이크 장식은 매우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모스크의 모자이크와 함께 전성기 시절 이슬람 제국의 국력과 동로마 미술의 계승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기반석으로도 불리는 내부의 바위. 중앙 상단의 발자국이 무함마드의 것이라는 전승이 있다. 구멍 밑에는 작은 동굴도 있다
바위의 돔 내부 한 가운데에는 암반을 다듬어 만든 제단 자리가 있다. 바위의 돔이란 이름에서 말하는 '바위'가 바로 이 암반을 뜻한다. 유대교의 전승에 따르면 여기서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고 하고[4] 솔로몬 시절에는 언약궤를 그 바위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또한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첫 아내 카디자가 죽은 뒤 부라끄(Buraq)라고 불리는 사람 얼굴에 나귀 몸을 한 신수(神獸)를 타고 메카에서 바로 이곳 성전[5]에 와서 다른 예언자들과 함께 알라에게 예배를 드리고, 승천하여 알라를 만나 계시와 명령을 들은 후, 다시 메카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바위는 무함마드가 하늘로 올라간 장소로, 이슬람에서 성지로서 중요시한다.
무함마드가 이 바위에서 승천했다는 말을 죽었다는 말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이슬람 전승에서 무함마드는 하늘로 올라가 알라의 계시를 받은 뒤 메카로 다시 돌아왔으며, 그 뒤 메디나로 도피했다. 다만, 승천한 때가 전승에 따라 메디나로 간 이후라고 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가 이 바위에서 승천한 뒤 다시 메카(혹은 메디나)로 돌아왔다고 믿는다.
8세기에 지어진 후 1015년 돔이 붕괴하여 1022-23년에 걸쳐 파티마 왕조에 의해 재건되었다. 돔 위에 입힌 금은 성전산을 관리하는 요르단 왕가인 하심 가문에서 기증하여 1959-62년과 1993년에 입힌 것이다.[6] 원래는 흑색 납판이 덮혀 있었다고 한다. 거대한 돔의 겉을 감싸는 금의 양은 최소 80kg이 들었다고.
십자군 시대에 결성되었던 성전 기사단의 상징에 등장하는 건물이 바로 바위의 돔이다. 예루살렘 왕국 당시에는 아주 당연하게도 성당으로 개조당했다. 물론 살라딘이 탈환하고 나서 모스크로 되돌아왔다.
바위의 돔을 오마르 모스크라고 서술한 자료도 있는데, 오마르 모스크는 성묘 교회와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둔 다른 건물이다.
알파고 시나씨가 바위의 돔 내부를 촬영한 영상#
3. 구조
통으로 지어진 외벽 내에는 두 차례에 걸쳐 16개, 12개의 기둥들이 서 있다. 각각 8각, 원형 대형을 이룬다. 8각 구조는 비잔틴 양식의 영향이다.
내부 구조 삽화 | 19세기 오스만 제국 시절 내부 모습 |
3.1. 부속 건물 : 사슬의 돔
사진 우측의 푸른색 돔을 지닌 작은 개방형 구조물
아랍어: قبة السلسلة
영어: Dome of the Chain
처음 보는 이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바위의 돔 옆의 작은 돔 건축물이다. 이름이 사슬의 돔인 이유는 이슬람 전승에 의하면 다윗 (다우드) 혹은 솔로몬 (술레이만)이 재판을 하던 곳이고 천국에 닿는 사슬이 있었다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오직 정직한 자만이 사슬을 만질 수 있었다고 하며, 해당 사슬은 심판의 날에 다시 내려와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분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마이야 왕조에 들어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데, 창건자인 무아위야 1세가 충성 서약 (바이아)를 받고 칼리파로 대관식을 치른 곳이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술라이만, 우마르 2세 등이 이곳에서 바이아를 받았다. 그 상징성을 기리기 위해 바위의 돔이 세워질 무렵 사슬의 돔 역시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상징성 외의 용도에 대해서는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대사원의 구조물처럼 보물고로 쓰였다고도 하고, 혹자는 건축 기법상 유사성을 들어 바위의 돔을 세우기 전에 견본으로 만들어 본 것이라고도 한다. 어쨋거나 사슬의 돔은 알 아크사 사원, 바위의 돔과 함께 성전산에 남아있는 우마이야 시기 건축물 중 하나이다. 세월이 흘러 십자군 지배기에는 예배당으로 개조되었고, 오스만 제국기에는 전승을 답습하여 실제로 재판장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하람 일대의 다른 건축물들과 마찬가지로 아이유브, 맘루크, 오스만, 요르단 당국에 의해 보수되고 관리되어 왔다.
4. 사건사고
기 들릴이 그린 굿모닝 예루살렘을 보면 이스라엘 유대인 극단계열인 하레디들이 여길 헐고 예루살렘 성전을 새로 지어야 한다고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온다. 아예 돔 근처에 큼직한 벽돌과 건축재료들까지 두기도 한다.유대교의 믿음에 따르면, 신에게 적법하게 제물을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예루살렘 성전 자리이다.[7] 구약성경에는 다른 곳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기원전 10세기 솔로몬 시대에 신께서 바로 예루살렘 성전 터를 제사를 지낼 곳으로 정했기 때문에, 이후로는 오직 그 자리에서만 율법에 합당하게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도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한 이후로는 성전 외 다른 곳에서 제물을 바치는 행위를 대단히 몹쓸 종교적 범죄로 간주한다. 그런데 기원후 1세기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자 제사를 바칠 수 있는 장소가 사라졌고, 따라서 유대교에서 제사를 담당하는 제사장 계층이 붕괴했다. 하레디 등은 이제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으니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여 율법에 따라 제례를 바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여길 헐기라도 하면 전세계 이슬람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셈이라서, 이스라엘 정부는 물론 웬만한 우익들도 여길 건드리지 못한다. 인도에서 바브리 모스크를 헐고 그 자리에 힌두교 사원을 세웠다가[8] 인도 전역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나 수천명이 죽었는데 바위의 돔은 그 모스크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자리니 이슬람교인들 눈이 뒤집힐 것이다. 그래도 유대교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성지다보니 종종 건축재료를 가지고와서 시위하기도 한다. 그 건축재료들을 이스라엘 군경이 출동하여 강제로 회수해서 돌려주거나 멀리 치우는데, 그 와중에 극단 우익들이 저항하여 과격시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게다가 이슬람에서도 건물이 아니라 그 '위치'를 중요시하므로, 바위의 돔을 파괴하지 않고 건물을 옮기는 것도 거부할 테니...게다가 중요한 것이 그 돌 제단이니 폭격이나 우발적 방화를 방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슬람교인들이 워낙 여기저기에 고의적으로 땅밟기를 통해 이교도의 성지를 해치는 일을 해놔서 이런 분쟁이 있는 곳이 꽤나 많다. 유대인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한쪽에 남은 통곡의 벽인데 이 벽을 만지고 저 모스크를 쳐다보면, 감정이 안생기기도 어려우니 무척 어려운 일이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중 이스라엘 군이 예루살렘 구도심을 점령한 후 바위의 돔에 이스라엘 국기를 게양하기도 했으나 몇시간 후 모세 다얀의 지시로 내렸다.
前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이 살아생전 여길 방문하다가 이슬람권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시위하던 팔레스타인 무슬림에게 총격이 가해지기도 했을 정도.[9] 샤론은 여길 모독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이스라엘 총리가 여길 헐고자 둘러봤다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우방인 터키나 요르단도 항의했을 지경이었고 후원국 미국조차도 자제하라고 할 정도로 외교적으로 곤욕을 치러서 그 뒤론 이스라엘 정계에서도 가기를 자제한다.[10] 하지만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는 이곳을 폐쇄하고 무슬림들에게 제한적인 출입만 허용하는데, 역시 무슬림들의 반발이 크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일어난 날 여기도 소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본격적으로 불이 번지기 전에 진화되었다고 한다. 기사
5. 사진
바위의 돔 내부 모습
내부에서 바라본 돔, 창문 역시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색깔이 있다
- [기타 내부 사진들]
지하의 바위굴인 영혼들의 구덩이 (بئر الأرواح).
유대 성전 시기에 성소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슬람에서는 심판의 날에 영혼들의 울음소리가 들릴 것이라는 전승이 있다.
현재는 무슬림들의 예배당으로 쓰이며, 두 개의 미흐랍 중 계단 맞은편의 것은 쉴레이만 1세가 세웠다
아라베스크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돔 안쪽
6. 대중문화에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의 예루살렘 배경 미션에서 등장한다. 적 소속 건물이지만 파괴하면 성지를 훼손시켰다며 패배 처리된다.보물찾기 시리즈 이스라엘편에서는 다윗의 별을 찾으러 혼자 이곳으로 들어가게 된 터키 소년 누리를 주인공 일행이 걱정하자 유대인 소녀 레나가 걱정하지 말라면서 "이곳은 세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믿는 한 분의 신이 지켜주는 곳이니까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꿉바투싸크라] [2] 영어 위키백과 참조 #[3] 하느님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한 장소였던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곳이다.[4] 이슬람 전승에서는 이사악이 아니라 이스마엘을 바치려 했다고 한다.[5] 이슬람 기록에는 '성전'이라고 하는데, 무함마드 무렵이면 이미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성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원래 이슬람 기록에는 무함마드가 '멀리 있는 사원'으로 갔다고 하는데, 나중에 그 '멀리 있는 사원'을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해석한 것이다.[6] 하심 가문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 집안으로서 성지의 수호자를 자처한다.[7]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이전에 예루살렘 성전 제사를 부정했던 일부 종파도 있었는데, 에세네파와 초기 그리스도교이다. 에세네파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탓에 예루살렘이 타락했다고 보았고, 그리스도교는 예수가 자기 몸을 바쳐 제사를 드림으로써 모든 제사를 폐했다고 믿기 때문이다.[8] 아우랑제브의 부하 미르 바키가 힌두교의 신 라마의 탄생지로 성지로 여겨지는 람 잔마부미에 일부러 지어놓은 모스크다. 이미 19세기에서부터 분쟁이 있었는데 1992년 힌두교 극단주의자가 불을 질러 태운 후 무슬림 vs 힌두교 폭동이 일어나 2천명이나 죽었다. 그런데 2019년 대법원이 이 땅을 힌두교 재단에 넘기고 사원건립을 허가했다. 무슬림측에게는 대체부지를 제공하긴 했다.[9] 샤론한테 돌던지고 욕하자 샤론 측은 호위병력들을 지휘해 총질로 쫓아내버렸다. 당연히 사상자가 생겨서 샤론은 국제적으로 욕 엄청 먹었다.[10] 아리엘 샤론 본인도 한 기자한테 "바위의 돔과 알 아크샤 모스크를 철거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생각인가?" 하는 질문을 받곤 "예루살렘에다 핵폭탄 터뜨리자는 소리"라는 답으로 일축했다.